한 작품만을 읽고서 장르 전체를 판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그러나 한 작품을 더 읽음으로서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장르에 대한 견해 자체가 바뀌기도 마련이다.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을 빌린다면 "90%의 쓰레기"가 아닌 작품을 읽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당연히 내게도 그러한 예로 들 만한 작품이 여러 개 있다. 『어스시의 마법사』, 「오딘의 비애」,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등.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역시 『끝없는 이야기』를 능가하는 충격을 주었던 작품은 없다.

내가 이계 진입이라 하는 소재 - 혹은 하위 장르 - 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물론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하면서부터였지만, 그 소재에 대해 딱히 좋은 감정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한창 판타지를 읽어 내리던 시절 주변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이계진입물' 중에는 쓸만한 소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창작되던 '이계진입물'들을 싸잡아 '독자들이 대리만족할만한 요소들을 좀 더 첨가시킨 먼치킨물'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이계 진입'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질 못했다. 『끝없는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끝없는 이야기』의 도입부는 흔한 '이계진입물'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우연히' "끝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게 된 바스티안 발자타르 북스라는 소년이 책속 세계의 위기를 해결할 영웅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연 책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세계를 구하고, 그 대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는다. 여기서 '무엇이든'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다. 현실 세계에서는 뚱뚱하고 작고 힘없는 소년인 바스티안도 이 세계에서는 잘생기고 훤칠하고 힘센 외모를 가질 수 있고, 바스티안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그 세계의 현실이 된다. 그 뒤 바스티안이 벌이는 활약상. 여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이며 사실 작품 내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엔데의 진면목은 오히려 그 뒷부분에서 발휘된다.

바스티안이 갖게 된 힘은 물론 강력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뒤따른다. 바스티안이 현실화한 이야기들은 서로 뒤엉켜서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를 낳고, 그 후폭풍은 바스티안에게 몰려온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대가는 바스티안이 권능을 발휘할수록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는데 있다. 자잘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바스티안이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종내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자기 자신을 잃고 그 환상 세계에 함몰되는 것이야말로 권능의 가장 큰 대가이다. 그 뒤로는 바스티안이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현실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진다. 여기에는 화려한 재미가 없다. 그러나 여운을 길게 남긴다.

이러한 서사가 남기는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환상의 나라는 잠시의 피난처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영원히 안주할 공간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현실 속에서 현실과 부딪쳐야 한다. 이토록 정교하고도 매력적인 환상세계를 창조한 작품이 말하는 게 결국은 '현실로 돌아가라'라는 거라니. 현실과 환상세계와의 접점을 다룬 작품에서 충분히 나올 만한, 어쩌면 장르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아닐까. 소위 '이고깽'이라 하는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과는 명백히 구분될 만한 작품 아닌가 말이다. 내가 최근 들어 '장르나 소재 자체보다는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 때마다 늘 이 작품을 거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읽었을 때까지의 감상이었고, 몇 해 뒤에 이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을 때는 약간 달라졌다. 여태의 감상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의 새로운 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바스티안 발자타르 북스야말로 내가 여태 접한 작품 중 가장 부러워해 마땅한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거다.

이 작품 내에서 바스티안이 들어가는 환상의 세계는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 속의 세계이다. 바스티안이 이 책을 덮었을 때 - 모험에서 돌아왔을 때 - 흐른 시간은 고작해야 반나절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바스티안은 창고에 숨어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바스티안이 경험한 독서를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누가 바스티안만큼이나 '책 속에 빠져들어' 봤겠는가. 독자라면 누구나 바스티안처럼 되길 바라고, 작가라면 누구나 바스티안 같은 독자를 가져보길 바라지 않을까. 그러니 바스티안을 그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P.S.

『끝없는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었다. 당시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이 '평범한 이고깽물'과는 뭔가 다르기야 하다는 것 뿐이었고, 결국에는 '이고깽물'을 혹평할 만한 근거로 쓰일 만한 작품을 알게 되었다는 선에서 만족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 작품을 이처럼 좋아하게 된건 그로부터 적어도 2년 뒤다. 그 때서야 나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어낼 여유를 갖췄던 셈이다.

P.S.2

이 작품을 읽은 뒤에 엔데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어렸을 때 이미 읽었던 『모모』였고. 워터가이드에서 당시 절판 중이었던 『거울 속의 거울』인가가를 당시 대학 강사 생활하던 모님이 제본하여 뿌렸을 때(물론 복사비는 내야 했지만) 나 역시 받으려 했지만 서울 사는 사람 한정이어서 결국 수령해지 못했던 적이 있다. 내 대신 책을 받아주셨다가 결국 책 두 권을 떠안게 된 모 님께는 늘 죄송하게 생각했었는데, 작년엔가 수년 만에 뵈었을 때 여쭤보니 다핻히도 이미 선물용으로 쓰셨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자유의 감옥』이라는 중단편집을 사서 읽어봤지만 『끝없는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지금 읽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감상 같아서는... 이 외에 『짐 크누프』를 비롯한 다른 책들은 소개문만 읽어봐도 아동 서적이라는 느낌이 너무나 짙게 풍겨나오는지라 차마 건드리고 싶지 않다. 이러니 엔데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와 『모모』의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P.S.3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끝없는 이야기』를 읽게 된 계기 자체도 작품 자체의 가치와는 무관했다. 이름 자체는 워터가이드에 올라왔던 '벌거지 팬터지 목록 2.0'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 이름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된 건 누군가가 워터가이드에 『끝없는 이야기』 번역본 선택에 대해 올렸던 질문글을 본 뒤였다. 당시 어느 답변자가 저자인 엔데와 초역자인 차경아 사이에서의 인연에 대해 거론하며 차경아역을 추천했었는데, 그 사연이라는게 퍽 인상깊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미담이 나로 하여금 엔데라는 작가의 팬으로 만든 셈이다. 그러고보면 '가십거리'의 기능이라는 것도 꼭 그렇게 무시할만한 건 아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거의 처음으로 '외국 판타지'를 읽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번역본'과 '가십거리'에 대하여 그리 집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리플로 장문의 썰을 풀어내던 그이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내가 '판작안'과 '작가들에 대한 가십거리'를, 그리고 '북시 위키'를 만들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원흉(?)이랄까. 하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좋았고, 탈도 많기야 했지만 '판작안' 등의 기획도 결국 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딱히 그에게 악감정은 없다. 아니, 악감정 가지는 쪽이 이상한 거던가.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타스틱》  (0) 2010/03/03
『끝없는 이야기』  (1) 2009/12/05
『뱀파이어 레스타』  (4) 2009/12/01
「빈 집」  (0) 2009/12/01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82 관련글 쓰기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이환 외 9인 (황금가지, 2009년)
상세보기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과 마찬가지로 위 프로필의 '지은이' 부분을 고쳤다는건 다들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표제작 쓴 작가를 놔두고 왜 다른 작가를 메인 작가로 내세운단 말인가. 거 참...

지난 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앤솔러지가 출간되었다. 전작과는 달리 표제작을 선정했고, 포맷도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환상문학웹진 거울' 소속 작가진이 주축이라는 점만큼은 여전하다. 얼마 전에 '시작'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또한 거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담았다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적어도 창작 장르문학 단편에서만큼은 거울의 입지가 서서히 탄탄해져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거울 측에서 자체적으로 냈던 단편집들을 제외한다 해도 이걸로 거울 작가들이 주축인 단편집이 벌써 여섯 권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를 만났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U, ROBOT』) 최근 4,5년 사이에 정식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창작 SF&판타지 단편집이 열권 남짓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놀라운 수치다.

(물론,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 장르문학판의 작가 발굴 시스템이 뭔가 기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거다. 거울이 정말로 탄탄한 작가진을 갖춘 집단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비중이 쏠린다는건 사실 그렇게 바람직한 사태는 아니다.)

전체적인 평을 해보자면, 근래 메이저(?)에서 나온 거울 관련 앤솔러지 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경우와는 달리 대부분이 한두 해 전에 발표된 '최신' 작품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그 덕인지『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작품 간의 편차도 덜한 편이고...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수록된품들의 발표 연도는 2003년에서 2008년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북시의 관련 항목 참조) 

그런데 신기하게 이번 단편집에서는 결말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거의 없다. 미완성 작품이거나 편집 미스로 뒷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작품까지 있을 지경인데다 전반부는 정말 몰입해서 읽던 작품도 막판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보니... 원래 결말 맺기가 어렵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이 좀 괴팍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

※ 거울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게시물의 경우는 옆에 링크를 추가했다. 해당 게시물에 달렸던 리플 역시 참고해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지하철에서 한참 몰입해서 읽다가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 말미를 읽고는 속으로 '이건 뭐여!'하고 외쳤더랬다. 왜 이런 결말이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 전까지는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거울에 발표되었을 때 달렸던 어느 리플따나마 슬픈 작푸미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작품에 더이상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은림 「노래하는 숲」(2007)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eun&no=12
일전에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의 리뷰를 쓰면서 '비슷비슷한 작품을 내는 작가'라고 흉(?)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작품 또한 기존에 읽었던 작품과 연결지을 만한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 가령 '식물=여성성' - 절대 '고만고만'하다고 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지난 리뷰에서 내렸던 평가가 상당히 섣부른 것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신작도 아니고 2007년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사실 그 플롯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적은 소재로 좋은 작품을 쓰기란 더 어려운 법인지라...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결말을 거의 예상했으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이 단편선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

김보영「노인과 소년」(2009)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571
네이버를 통해 소개되었던 작품...이면서 그다지 네이버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 하여금 (정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들은 가입만 해놓고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얘들도 가끔은 쓸만한 짓을 하는군'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노인'과 '소년'의 대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선문답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그러고보니 작가가 헤세를 좋아한다던가.

김선우「천국으로 가는 길
베르나르 베르베르인가가 이미 써먹은 통에 참신성은 떨어지는 작품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끝나서는 안될' 부분에서 끝났다는게 아닐까. 박애진의 단편을 읽었을 때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의 '이건 뭐여!'. 다 읽고 나서도 혹시 편집 미스로 뒷 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싶어서 페이지 번호를 확인해봤을 정도다. 정말로, 만에 하나, 진실로 이게 완전한 버전이라면 뒷 부분을 좀 더 이어서 쓰라고 말하고 싶고.

김이환「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2006)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robby&no=10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몇 번 더 읽어봐야겠는데, 좀 자신은 없다.

정보라「은아의 상자
재밌게 읽긴 했지만 '은아의 편지' 부분부터는 급속도로 맥이 빠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좀 과격한 비유이긴 하지만 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에게 그간의 전모를 죄다 밝혀주는 그런 장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임태운「뮤즈는 귀를 타고
나비 효과와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한 단편인데, 사실 같은 소재라면 듀나의 「나비 전쟁」이 더 나았지 싶다. 이 작품도 재밌게는 읽기야 했지만... 여담으로, (항상 겪는 일은 아니지만) 임태운의 단편을 읽다 보면 한창 재밌게 읽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섹스 관련 장면 때문에 기분을 잡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게 절정에 달했던 「전설의 용 우리 마을에 오시네 Red Dragon is coming to town」때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 있어서 영 찜찜햇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취향 탓이긴 한데...

정지원「장미 정원에서」(2009)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sandmeer&no=5
'오빠'란 캐릭터의 '급격한' 성격 변화는 좀 황당했다. 바로 전까지는 주인공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다가 그 직후에 '널 보낼 순 없어' 하는 식이라니... 뭐 다 읽고 나면 나름 이해할 구석이 생기긴 하는데 여튼 그건 좀 걸렸던 부분이다. 거기만 제외하면 제법 준수한 단편.

정희자「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90년대 중후반부터 장르문학 관련 통신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면 향수를 자극할만한 요소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길게 갈 것 없이 차라리 중간 부분에서 끊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이영도「샹파이의 광부들」(2009)
「봄이 왔다」 때부터도 느꼈던 거지만 이영도는 도대체 왜 그리 반전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복거일이 『드래곤 라자』에 반전 없다고 까댔던 게 그렇게 상처였던 걸까? 엉성한 반전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작품의 생명을 깎아먹기 마련이라는 걸 모를리도 없을텐데 말이다. 결말부에 가서는 아예 그게 왜 반전인지 설명하기까지 하는 통에 보는 내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정 이영도의 단편을 싣고자 했다면 사실 이 작품보다는 전작인 「에소릴의 드래곤」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영도의 애독자들은 대부분 네이버를 통해 전작을 읽었겠지만, 사실 전작을 읽지 않았다면 깨나 재미가 떨어질 단편이 「샹파이의 광부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단편에서는 더스번 칼파랑이 왜 '좋은 남자'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영도쯤 되는 작가면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샹파이의 광부들」을 실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아직 출간 안된 전작을 내버려두고 굳이 이 작품을 수록한 것인지 참...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 2009/10/20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1) 2009/09/19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4) 2009/09/12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0) 2009/09/0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51 관련글 쓰기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강지영 외 12인 (시작, 2009년)
상세보기

※ 원래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 서비스에는 지은이가 '강지영'으로만 되어 있다. 차마 저자들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진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 외 X인' 하는 식의 언급은 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 딱히 표제작이 없는 이런 책에서는 그 것도 사실 썩 적합한 방식은 못되지만, 어쨌거나 그게 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거다. 

-

거울 작가들이 주로 참여한 단편선이라는 점에서 얼핏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실 '거울 작가진이 참여한' 책이라곤 해도 두 책의 저자가 그리 많이 겹치지 않는지라 서로 비교하기는 좀 어렵기야 하지만서도.

이 책에 대해서는 대체 뭐라고 평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좀 더 낫기야 하다. 개중 굳이 베스트를 꼽아본다면 은림의 「낙오자」, 이수현의 「쓰레기들의 왕」, 임태운의 「이빨에 낀 돌개바람」정도를 들 수 있겠고. (저자 이름 순으로 배열) 허나 그 작품들도 진정 베스트라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들이 영 많은데다, 반대편에서는 거의 울화가 치밀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도 더러 섞인 판이니... 그런 작품들만 보자면 장르문학 리뷰어로도 제법 알려진 모 작가가 이 책을 거의 걸레짝 마냥 씹어댔다는게 딴에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싶을 정도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못쓴 글 때문에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 (by 콘라드, 판타지 갤러리)


-

강지영「브라보,청춘!
이 작품을 읽고 난 다음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이 책의 편집자는 무슨 저의에서 이 작품을 맨 앞에 배치한 걸까 하고. 단편선과 음반의 유사성을 지적하지 않는다 해도 '첫 번째 작품'이라는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의미란 상당하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편선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마련인데, 그런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라기엔 상당히 민망한 단편이다. 캐릭터는 엉성하고, 반전도 반전 같지 않고, 메시지는 노골적으로 다 드러나 있고...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이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수록된 단편은 이보다 좀 더 나으리라 믿는다. 아니면 요 근래 낸 장편 소설이라도.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다!
 
배명훈「얼굴이 커졌다
요즘 들어서는 가능하면 특정 작품의 리뷰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하는 짓을 자제하려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이오네스코의 「무소」를 언급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같은 아이디어를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나로서는 해피 엔딩인 「얼굴이 커졌다」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최현숙(은림)「낙오자
은림의 단편들에서는 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일관된 스타일을 좇는다고도 볼 수 있겠고, 점점 그 완성도가 나아지는 걸 보면 역시 그렇게 보는게 맞겠지만, 줄곳 작품을 보는 입장에서는 사실 좀 질린다. 좀 더 색다른 방향으로 나가봐도 좋을 텐데.
  
김이환(콜린)「버지니아 울프는 없었다
모 게시판에서 다른 단편선에 대한 프리뷰를 썼을 때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더니 이름모를 누군가가 사실 이 작품은 2005년에 거울에서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과연 찾아보니 「버지니아 울프 가라사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 있었다. 아하. 이게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단편선에는 통신상에 발표되었을 때와는 그 제목이 다른 작품이 여럿 있다. 작가와 편집자, 둘 중 누구의 뜻이었을까? 여하튼. 상상력의 과잉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던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을 본 탓인지는 몰라도 이 단편은 상대적으로 밋밋한 인상을 준다. 구멍 속 세계를 묘사할 것 까지야 없지만 - 그랬으면 오히려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르고 - 좀 더 길게, 과격하게 나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김주영(赤魚)「지구의 중력은 안녕하시니?
『환상문학웹진 거울 외계인 단편선』에 실렸던 작품의 재수록. 당연히 외계인을 다룬 단편인데, 소재를 활용한 방식은 내 취향에 맞는다. 외계인에 대한 작품을 쓰랬더니 '진짜' - 혹은 '전통적인' - 외계인이 튀어나와버리는 건 좀 재미없잖나. 다만 완성도가 그리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아르코의 아내가 등장하는 부분은 작가가 주인공들의 '정체'를 너무 서둘러서 밝히려 했다는 인상을 주고...
 
임태운「이빨에 끼인 돌개바람
임태운의 단편은 사실 두어편 읽어봤을 뿐이지만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을 쓰려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코믹물로서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이다. 김보영이 거울 프로필에 실린 임태운의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소년 만화 주인공을 컨셉으로 잡았다'고 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일리있는 관찰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민정(가는달)「나하의 거울
액자형 구조로 된 예술가 소설...이라고 정의해야 할 텐데, 액자형 구조가 과연 필요했는지는 의문. 바깥 이야기는 아예 내던져버리고 본론인 예술가 쪽에만 집중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작품의 내용과 제목이 그리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나하'에 대해 초반에 잠깐 언급되었다가 엔딩 부분에 거울이 다시 등장하는 수준인데, 이래서야 이런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김지현(아밀, 루나벨)「방문자
이전에 방문자들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과 신부의 차이가 대체 뭘까?

김지원(Sandmeer)「시간을 팝니다
책에는 '정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지만 그거 필명 아니던가? 뭐 은림도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작품을 수록했으니 별 문제 될 것 없긴 한데 좀 의아하기야 하다. 
 
김두흠(아이)「1억 원
중반부는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종반부까지 보고 나면 '초반부는 대체 왜 들어갔던 건가' 고민하게 되는 소설. '아 시발 꿈'은 대략 좋지 않다.
  
이수현(Askalai)「쓰레기들의 왕
혹시 예전에 발표된 단편이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과연 거울에서 2003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그 때는 「쓰레기나라의 왕」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바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웹상에 올라왔던 작품을 대충 훑어보니 - 정말 대충! - 제목이 바뀌었을 뿐 내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듯 하여 영 아쉽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어도 작가가 '영웅으로의 재탄생'이란 테마를 다루고 싶어했던 티가 너무나도 역력한 작품이었던 지라. (후반부의 '교수'는 거의 해설역에 가깝다.) 사실 단편 소설이라기보다는 장편 소설의 서장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단편이고,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신작을 내는 주기가 워낙 느리다는걸 감안하면 역시 이 작품이 장편으로 확장되는걸 보기란 지난한 일 아닐까...

써놓고나서 '왜 이 작품에 대해서만 할 말이 이리 많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창작을 한다면 꼭 한번쯤 다뤘을 만한 - 아니 다루고 싶어할만한 - 테마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양미현(Raile)「파랑새
'서로 시간차를 두고 천사와 악마를 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동일인물이더라' 하는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출처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간 그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에게는 참신한 맛이야 좀 떨어지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이상민「댁의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퇴마록을 비롯한 현대 배경 퇴마물에 등장할 법한 장면을 뚝 떼다가 글로 옮겨놓은 작품. 다른 소설의 외전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과 연결되는 글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소재를 글로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강지영의 「브라보, 청춘!」이 보자마자 사람을 격노케 했던데 비해,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사람을 울분케 했던 작품.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8 관련글 쓰기

어스시의 마법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상세보기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자니 아직 황금가지 홈페이지가 살아있을 때 누군가가 "『어스시』시리즈 나머지는 언제 번역되나요?" 하고 질문을 올렸다가 - 아마도 이영도의 팬이 아닐까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 "그딴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드래곤 라자』 양장본이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리플을 얻어들은 걸 본 게 생각난다. 해당 리플을 실시간으로 본 게 아니라 다른 일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라 제때에 화를 내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그날 내내 기분이 꽤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내가 이영도의 팬 때문에 불쾌함을 맛봐야 했던 두 경험 중 하나로 꼽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뭐냐고? 음... 이영도가 한국문학사에서 따라올 위인이 없는 최고의 작가라고 강변하던 작가지망생과 키워를 벌였던 추억.)

지금 시점에서는 그 기억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문제의 그 팬이 그리도 떠받드는 이영도라면 절대 르 귄의 작품을 '그런 거'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부를 수도 없고. 이영도가 이 정도로 대놓고 빌려온 작가를 그 팬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우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스시』의 '진짜 이름'과 『눈마새』의 '신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까?) 예전 기억에서의 그 양반이 기껏해야 '철딱서니 없는 것' 정도였다면 지금은 '무례한 놈' 쯤으로 평가가 하향조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좋은 작품을 점점 더 많이 접할 수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평가는 점점 떨어져가는게... 정말이지 광신도는 장르를 불문하고 만인의 적이라는 게 진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독서 경험이다.

...라고 써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군.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조만간.


'일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뭐지?  (0) 2009/09/18
『어스시의 마법사』와 이영도 팬덤에 대한 기억  (7) 2009/09/09
한국에 출간된 장르문학 관련 앤솔러지 목록 (미완?)  (4) 2009/06/01
서평  (0) 2009/04/23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7 관련글 쓰기

3월 초에 제가 이 게시판에 「도서 창고 위키의 총 항목수가 500개에 도달했습니다.」(링크)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운영 중인 위키의 항목 수가 500개에 도달했다는 걸 자축하기 위한 게시물이었죠. 지금 와 검색해보니 그 때가 무려 3월 중순이었군요. 와, 벌써 4개월이나 지나다니요.

여하튼,

4개월이 지나는 동안 저는 놀고만 있었느냐. 아닙니다! 원래 위키 주소 가보니까 문서가 죄다 지워져 있던데 위키질 접은 거 아니냐, 아닙니다! 그저 다른 곳에서 진행하고 있었을 뿐이죠! 「작가들에 대한 가십」 같은 홍보용 글은 그 이후로 한번밖에 쓰지 않았지만 항목은 열심히 추가하고, 수정해왔던 것이죠!

그 결과 오늘 새벽을 기점으로 총 문서량이 700건을 넘겼습니다. 4개월 만에 250~300건 정도가 더 늘어난 것이죠.

http://booksea.pe.kr/index.php/대문

('음? 500대에서 700대로 늘어난 건데 어떻게 300건이 늘어나는가.'하실 분이 계시겠지요? 헌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전에 쓰던 오위키 엔진과 지금의 미디어위키 엔진(위키백과에서 쓰는 엔진입니다)이 문서 갯수를 세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오위키 엔진을 쓰던 시절에는 문서를 종류별로 분류하는 기능이 없어서 일일히 분류용 문서를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무척 번거롭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전체 문서 갯수가 더 커보이는 문제가 있었죠. 당시 제가 한국문학, 영국문학, 서양철학 하는 식으로 문서 분류를 위해 쓰던 문서가 80~100개 정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디어위키 엔진에서는 이러한 분류용 문서를 따로 만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분류' 기능을 이용하면 되거든요. 깔끔하고 편리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는 전체 문서 숫자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지요. 쉽게 말해 지금 보이는 문서량이 700개긴 하지만 예전 식으로 세면 약 800개쯤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쓰는... '통계로 알아보는 북시 위키!'

1. 북시 위키에서 가장 긴 문서는 무엇? (특수기능:긴문서 링크)

1위.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23,971 바이트] (링크)
2위. 아이작 아시모프 [23,360 바이트] (링크)
3위. 존 딕슨 카 [23,351 바이트] (링크)
4위. S. S. 반 다인 [22,036 바이트] (링크)
5위. 존 로날드 르웰 톨킨 [22,015 바이트] (링크)

1위는 호러 소설가 H.P.러브크래프트로군요. 사실상 위키피디아의 H.P.Lovecraft 항목을 번역하다시피 한 항목이지요. 지금 와 생각해보면 대체 무슨 깡으로 저 긴 문서를 다 번역했을까 싶기도 한데... 이 항목은 Fangal.org에도 동시개재되어있습니다.
2위는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판갤의 qui-gon 님이 운영하시는 Fangal.org에 올라온 자료를 그대로 빌려와 작품 목록만 손본 걸로 시작했지요.
3위는 추리 소설가 존 딕슨 카. 하우미스테리가 원 출처입니다.
4위는 추리 소설가 S. S. 반 다인. 역시 하우미스테리가 원 출처이긴 한데 판갤에 콘라드님이 올리셨던 - 그리고 제가 이어받아 커그에도 올린 적 있는 - '반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법칙'을 덧붙이면서 문서량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5위는 판타지 소설가 J.R.R.톨킨. Fangal.org에 올라온 자료를 손봐서 붙인 자료입니다. 톨킨 저서 목록 정도는 제가 손보기도 했지요.

순위권 안에 드는 항목들은 죄다 소설가들 항목이군요. 참고로 6위는 '책세상문고', 7위는 '판타스틱', 8위는 '민음 세계문학전집', 9위는 '버트런드 러셀', 10위는 '제임스 매튜 배리'입니다. 제임스 배리와 5형제 소년들과의 관계는 제가 예전에 관련 글을 쓴 적도 있지요.

2. 가장 많이 읽은 문서는? (특수기능:인기있는문서 링크)

1위. 대문 (1,237번 읽음)
2위. 앤솔러지 (133번 읽음) (링크)
3위. Creative Unidentified Group (116번 읽음) (링크)
4위. 도서관 (76번 읽음) (링크)
5위. 도스토예프스키 (69번 읽음) (링크)

홍보가 미비했던 탓인지 조회수는 대체로 낮은 편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분류용으로 사용된 문서들의 조회수도 상당할 텐데, 아쉽게도 그런 문서들은 조회수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 같더군요. 1위의 대문 항목이 가장 높은 거야 당연한 일이고... 2위의 앤솔러지 항목은 제가 이 항목을 채우기 위해 링크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 덕분일 겁니다. 사실 별 소용은 없었지만요. 3위의 커그 항목은 저로서도 좀 뜻밖이군요. 순위권에 든 다른 항목들은 모두 첫 화면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문서에요. 하지만 이 항목은 여러번의 클릭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지요. 그런데도 무려 3위나 차지했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죠. 여담이지만 이 항목은 '커그', '팬커그'라고도 검색할 수 있습니다. 4위는 도서관. 5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들어가서 간신히 소설가들 체면을 살렸군요.

3. 가장 많이 사용된 분류는? (특수기능:많이쓰는분류 링크)

1위. 소설 (158개) (링크)
2위. 소설가 (143개) (링크)
3위. 판타지 (64개) (링크)
4위. 앤솔러지 (51개) (링크)
5위. 동음이의어 문서 (49개) (링크)

제가 어떤 계통의 문서를 가장 많이 작성했느냐를 보여주는 항목이겠죠. 역시 가장 많은 건 소설. 그 다음이 소설가 순이군요. 책에 관련된 종합 위키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래서야 문학 전문 위키라는 평을 피하긴 어렵겠네요. 다음이 판타지, 앤솔러지, 동음이의어 문서 순입니다. 동음이의어 문서는... 말 그대로 동음이의어가 정리된 문서입니다. 가령 '날개'라고 하면 이상이 쓴 단편 소설일 수도 있지만 판타지 팬덤에서는 페로딘님이 사용하시는 필명이기도 하지요.

덤으로 6위는 미국문학 (48개), 7위는 영국문학 (45개), 8위는 한국문학 (40개), 동 9위는 각각 38개가 분류된 SF와 시인 항목입니다.

4. 그렇다면 위키 운영자가 애착을 보이는 항목은?
나왔습니다. 위키 운영자 추천 문서! 이건 5개만 고르라고 하면 너무 적지요. 그래서 일부러 10개를 골랐습니다.

-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링크)
 : 문서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제게는 의미가 깊은 항목입니다. 이 항목을 쓰면서 북시 위키의 작품 항목을 작성할 때 사용하는 서식을 확정지었거든요. 원제 쓰고, 내용 쓰고, 판본에 대한 서지사항 정리하고, 관련 문서들 링크 걸고 등등. 위키에서는 89번째로 긴 문서입니다.

- 고정닉 짤방 제작글에 달렸던 추천 리플에 대한 정리 (링크)
 : 제가 도서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제작했던 추천도서목록 문서. 사실 도서 추천 리플은 다른 분이 모았고, 저는 정리밖에 한게 없지만 그 과정에서도 고생이 심했거든요. 도서 관련 위키를 만들면서 위키에 맞도록 다시 정리한 문서입니다. 위키에서 11번째로 긴 문서.

- 듀나 (링크)
 :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듀나 관련 항목. 듀나의 정체에 대한 가십거리들을 푸는 재미가 있었던 항목이죠. 75번째로 긴 문서.

- 드라큘라 (링크)
 : 문학사적 의의도 의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10위권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소설입니다. 항목 자체는 별 것 없는데 작품에 대한 애정이 좀 크죠. (워터십 다운 항목이나 끝없는 이야기 항목의 빈곤함과 비교해본다면 뭐 그래도...) 106번째로 긴 문서. 여기 소개된 10개 문서 중 가장 짧군요.

- 러브크래프트 (링크)
 : 위에서도 말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 항목입니다. Fangal.org에 동시개재. 위키에서 가장 긴 목록이죠.

- 메리 셸리 (링크)
 : 위키 번역하면서 가장 '깼던' 항목. 그래도 토마스 하디의 전처 사랑은 (시간대가 상당히 어긋난) 순애보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메리 셸리와 그 주변 인사들의 막장 행각은 당췌... 일단 위키에서 20번째로 긴 문서입니다.

- 반지의 제왕 (링크)
 : 판본에 대한 썰을 푸는 재미가 있었던 항목. 예전에 황금가지 출판사에 대한 가십을 이야기하면서도 짧게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 항목에서는 좀 더 길게 풀었습니다. Fangal.org에 동시 개재. 위키에서 13번째로 긴 항목입니다. 12번째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분량상의 차이가 별로 없어서, 곧 따라잡을 듯 합니다.

- 셜록 홈즈 (링크)
 : 판본에 대한 썰을 푸는 재미가 있었던 항목. 이 역시 황금가지에 관한 가십에서 다뤘던 부분이죠. 사실 아르센 뤼팽 항목이 개설되었다면(준비중입니다) 이 위치는 셜록 홈즈가 아닌 아르센 뤼팽 항목이 차지했겠죠. 일단 위키에서는 25번째로 긴 항목.

- 앤솔러지 (링크)
 : 장르문학 단편집 관련 정보를 모은 페이지.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일단 북시 위키에서는 가장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일 거에요. 위키 내에서는 96번째로 긴 문서.

- 판작안 (링크)
 : 판갤에서 제작했던 장르문학 추천도서목록. 이 목록을 만들면서 장르문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았었죠. 독서도 많이 했고. 추천도서목록으로서의 수준은 별볼일 없을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정말 의미 깊은 항목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걸 아직 완전히 옮기지는 못해서, 추가 작업이 많이 필요하죠. 위키에서는 17번째로 긴 항목. 16위인 괴테와는 별 차이가 없어서 곧 따라잡을 듯 합니다.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28 관련글 쓰기

1
[국내도서] 멋진 징조들 - 그리폰 북스  
닐 게이먼테리 프래쳇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 시공사 | 2003년 9월 
13,000원 → 6,500원(5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평점  마이리뷰(25) 구매자40자평(1) | 세일즈포인트 : 2,122 
수령예상일 : 지금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습니다.





 알라딘 독자분들에게만 드리는 큰 혜택 BIG3! 추첨을 통해 닌텐도 DS, 에이트리 전자사전, 가죽 북커버를 드립니다! 

『멋진 징조들』이 재간되었다. 이미 수년 전에 절판된 작품을 출판사 측에서 알라딘에서 하는 반값 이벤트 참가용으로 잠깐 재간한 듯 하다. 중고책 장사치들이 이상하리만큼 높게 프리미엄이 붙이곤 해서 (5만원에서 8만원 정도) 장르문학 팬덤들을 애태우던 책인데, 이번 재간 덕에 그 목마름이 상당 부분 가실 듯 하다. 장르문학 진영에서 본다면 알라딘 반값 이벤트 최대의 성과가 아닐지.

도갤과 행책 게시판에서 듣기로는 한시적 재간에 그치지 않고, 아예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이 나올 모양이다. 물론 번역자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실은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해도 기획 자체가 뒤엎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아직 '풍문' 이상으로 믿을만한 건 못된다. 허나 성사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08 관련글 쓰기

퍼언 연대기 세트 (전3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맥카프리 (북스피어, 2007년)
상세보기

※ 몇 주 전에 읽고서 뒤늦게 쓰는 감상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이 글에는 2월 초에 썼던 문장도 있다.

0.

사실 읽기 전부터도 내가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었다. 사실 드래곤에는 별 흥미를 못느끼게 된지도 꽤 오래 되었으니까. 드래곤 뿐만 아니라 에픽 판타지 장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북스피어에서 나온 책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반값 이벤트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좋아하는 출판사를 돕자는 핑계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작품을 집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게다. 반값 이벤트가 아니라 공짜 이벤트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다 읽기는 읽었지만, 작품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꺼번에 세 권을 사버렸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아마 1권부터 차근차근 보고자 했다면 2,3권을 사볼 일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근사한 오락물이라는데는 동의하지만 그냥 넘기기 민망한 요소들이 제법 눈에 많이 걸리니.

1.

작품에서 용기사들은 해당 세계관에서 자연 재해급 재앙인 사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과거에는 사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줌으로서 존경과 신망을 얻었었고. 다만 1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사포가 습격해온지도 근 400년이 지난 상황인지라 용기사의 권위고 뭐고 다 떨어진 상황이다.

이 지경이 되서도 용기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영주들이 자신들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1부 중반에 이르면 용기사들은 왕년의 권위를 되찾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왕년의 적이었던 사포의 귀환이다. 시대가 영웅을 다시 부른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용기사라는 집단이 작중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영웅적이며 존경할 만한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단히 봉건적이며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사포가 없기 때문에 영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노동을 거부하며 영주들에게 공물과 공녀들(여왕 드래곤의 파트너가 될 후보들)을 요구한다. 불만을 품는 영주들에게는 왕년에 용기사들이 수행했던 업적이나 용기사와 일반인들 사이의 '신분차'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나마 1부의 주인공 격인 플라르는 나은 편이고 2,3부로 갈수록 다른 용기사 몇몇도 권위주의적 모습을 벗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봤자다. 흡사 한국전쟁 참전자 출신 반공주의자들을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구시대인'에 이르면 뭐 별 달리 할 말도 없을 지경이고. (물론 이들은 명백히 부정적으로 묘사되기야 한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을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하니 스토리인들 궁금할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에 더 연관짓자면, 혈통주의의 흔적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용기사의 계급은 오로지 그 용기사의 파트너 드래곤에 따라 결정된다. 용기사 본인의 역량이 어떠하건 '황금 드래곤>청동 드래곤>갈색 드래곤>녹색 드래곤'의 서열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데 이 결정은 오로지 드래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거기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 용기사의 운명은 그저 타고날 뿐이다.

2.

사실 3부까지 다 읽은 후 권말의 서평에서 이 작품을 '페미니즘적 소설'이라고 평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었다. 읽는 내내 그런 식으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질 못했고, 되레 굉장히 마초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중편 「용의 간택」이 1967년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현대 독자들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아니다. 소설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려 한다는 - 이미 오른데다 그게 당연시되는 것도 아니고 - 정도로 감탄할 수 있는 시대야 이미 지나지 않았나.

더군다나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못마땅한 부분들이 많이 비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레사. 첫 중편인 「용의 간택」에서만 해도 상당히 정교한 성격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플라르를 만나면서부터 급격히 단순화된다. 여전히 현명하긴 하지만 성질은 예전같지 않아지고 그렇게 매력적인 면모도 보여주지 못한다. 말괄량이가 요조숙녀로 변하는 수준의 변화가 오는 건 물론 아니지만 상당히 허전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플라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굴다가 성관계를 맞은 뒤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 관계지 따지고 본다면 세련된 형태의 강간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런 장면을 두고도 여성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3.

그러고보면 이 작품이 무려 SF장르라고 이야기되는 모양이다. 번역도 김상훈 씨가 맡았고. 헌데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이 작품이 왜 SF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국내에 소개된 3부작만 본다면 『퍼언 연대기』는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이게 SF라면 《영웅전설》 시리즈(특히 가가브 트릴로지 이전)도 SF RPG 아닐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우스트』  (0) 2009/03/25
『퍼언 연대기』  (0) 2009/03/12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77 관련글 쓰기



"그렇습니다. 제국은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제국이 자신의 상처에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모험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언뜻언뜻 보이는 행복의 흔적들을 자세히 찾아나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측정해 보는 겁니다. 폐하의 주위가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으시다면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셔야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다리를 묘사한다.
"그런데 다리를 지탱해주는 돌은 어떤 것인가?"
쿠빌라이 칸이 묻는다.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르코가 대답한다.
쿠빌라이는 말없이 생각에 짐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묻는다.
"왜 내게 돌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내게 중요한 건 아치 뿐이지 않은가?"
폴로가 대답한다.
"돌이 없으면 아치도 없습니다."


이런 책을 한달음에 읽는 것만큼 미련스런 독서도 없을 게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68 관련글 쓰기

DCinside 판타지 갤러리에서 있었던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관련 논쟁...에 대한 요약글.

이미 새벽이라 길게는 못하고 일단 정리한 것만 올려본다. 날이 새는대로 더 자세히 정리해볼 생각이다.


※ 아래 「」 기호 안에 있는 제목을 클릭하면 판갤의 원문이 열립니다.



본문
- 별 내용 없음

리플
- 아프락사스 :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은 그저 고액의 원고료를 미끼로 판타지 작품을 사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상업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 qui-gon : 문학상에 상업성이 깃들어 있는 것도 문제 없다.
- 아프락사스 : 판타지 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시각은 판타지 팬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 (뭔가 중간에 글이 하나 더 있었던 듯 한데 확실치 않음)



본문
-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이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을 원한다지만 제대로 된 상업용 작가(ex: 딘 쿤츠, 스티븐 킹)가 드문 현실에서는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
- 다만 심사위원을 제대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감한다.

리플 
- 아프락사스 : 그나마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 주최측에서 원하는 '상업적 성과'를 위해서는 뛰어난 작품과 그 작품들을 통해 형성된 소비자층(=팬덤)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은 그걸 매우 안일한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바라는 '좋은 작품'이 발굴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런 성급한 방식으로 제작된 결과물은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퇴마록』영화판이 그 예다. (『퇴마록』에 대한 첫 언급)
- qui-gon : 주최측에서서도 그런 걸작보다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 정도에 만족할 것이다. 『퇴마록』이 흥행에 실패한 주된 원인은 영화 제작진의 역량부족이다.




본문
- 우파(=문화상품의 제작자? 문화생산자본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들이 문화를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산업'으로만 여긴다면, 그 결과물에 또한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작하기에, 원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퇴마록』영화판 또한 그 예이다.(간단히 언급만 하고 지나감)
- 문화 상품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아래에 기초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문학상' 또한 그 기초 투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에서는 기초 투자에 대한 의지 대신 이윤을 생산해내겠다는 천박함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그러한 우파들의 천박함은 『진시황 프로젝트』를 둘러싼 일련의 담론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이 글에서 좌/우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 요약자 본인도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m3 씨가 사용했던 좌/우 구분은 우리 흔히 아는 '보수 vs 진보'라는 틀 외에 '기득권(문화자본) vs 비기득권(일반 독자 내지 팬덤)'이라는 틀이 함께 사용된 게 아닌가 싶음. 그러나 이후 m3 씨가 '보수 vs 진보'라는 의미를 사용한 것으로만 여겨져 논란이 확산된 듯.

리플
- 별 내용 없음


- 논의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므로 생략.


6. qui-gon「m3 봐라.

본문
- 좌/우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퇴마록』 또한 『진시황 프로젝트』나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사례로서는 적합치 않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연결점이 거의 없다. 소설 원작의 영화 각색판이 흥행에 실패하는 건 흔한 일이다.
- 장르적 풍토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이 새로운 장르 풍토를 개척하러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리플
- 아프락사스 : 본래 『퇴마록』은 『반지의 제왕』이나 『쥐라기 공원』과 같은 '대박 문화 상품'과 연관지어 사용했던 사례다. 한 작품의 상업적 성공을 보고, 그걸 가능케 한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무턱대고 '돈벌이'에 나설 경우 결과가 참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야기하려 했었다. 문제는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의 주최측이 보이는 의식 수준이, 『퇴마록』 영화판 제작자들의 그것에 비해 별 나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사한 과정을 거쳐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1억원의 고료로 다른 사업을 벌이는 게 장르문학계에는 훨씬 이득이다.
- qui-gon : 조선일보에서 한국 장르 문학을 키우기 위해 공모전을 여는 건 아니며, 그럴 의무도 없다. 조선일보 측이 이번 공모전에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부여하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니 지금 단계에서는 지켜보는 게 낫다.



본문

- 좌/우파를 거론했던 건 qui-gon을 까기 위한 게 아니다.

- '조선일보를 위시한 한국 주류 우파'(=문화 자본을 쥔 기득권?)들이 '문화'를 왜곡된 시선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우파들이 제작한 (정치적으로는 극우민족주의적 성향을 띄는)『퇴마록』의 영화판이 맞이했던 운명은 그런 우파들의 장단점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우파적 작품이라서 망했다는 게 아니다. 망한 작품의 패인을 분석해보니 우파 생산자들의 단점(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몰이해, 이윤에 대한 맹목적 추구 등)이 보였다는 점이다.

- 문제는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의 주최자 집단 또한 그런 '우파'들이기에 『퇴마록』과 유사한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이 우파의 산물이기 때문에 무너질 거라는 저주를 남긴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 공모전이 기본적으로 이윤을 내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은 공감한다. 그러나 장르문학 공모전에서 "장르를 키울 의도"라는 캐치프레이즈 - 명분 - 가 완전히 무시될 수는 없다. 그 공모전의 참가자, 소비자들에게는 분명 그 명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ex : 이상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의 경향 차를 결정짓는 건 무엇?)

- 지켜보자는 말은 하지 말자.


리플

- 별 내용 없음


여기서 m3이 '우파의 단점'을 이야기할 때 타겟으로 삼은 건 거의 대부분 『퇴마록』(원작)이라기보다는 『퇴마록』(영화)의 생산자를 이야기하는 듯 싶다. 즉, 이우혁이 쓴 원작부터가 환단고기나 인용해대는 정신 나간 소설이었기에 그 2차 창작물인 영화도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 문학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문화 생산 자본(우파)이 그저 돈이나 만지려고 앞뒤 없이 뛰어들었지만 원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깡통들이다 보니 웃기지도 않는 졸작이나 내놓게 고... 그런데 원작의 원작자도, 영화의 제작자도 따지고 보면 같은 우파인지라 같은 편이 같은 편을 '팀킬'한 걸로 볼 수도 있는 희극적 상황. 뭐 이런 걸 이야기하려 했던 듯도 싶고.



8. qui-gon「댓글로 달자니 좀 길어질 것 같고. m3 봐라.



본문
- 『퇴마록』의 실패를 원작의 민족주의 성향에서 찾을 수는 없다. 원작의 팬들은 원작의 '이념'에 공감했다기보다는 '오락성'에서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통해 뽑힌 작품이 '주류 우파적 작품'의 단점을 보이며 실패할 거라는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다.
- 문학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문학상의 명분이라니. 돈되는 판타지를 구하고 싶다는 게 실리이자 명분이 될 수 있다. 또한 조선일보 스스로도 비교적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qui-gon은 m3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앞서 설명했듯 m3이 사용하는 우파의 개념은 '빨갱이'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문화 소비자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 생산자(중에서도 문화 '자본')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논의 대부분에서 m3이 이야기하는 '우파적 단점'이란 '결과물에 깃들어 있는 정치적 이념'보다는 '생산 과정에서 생산자가 보이는 무지함'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퇴마록』이 우익성향의 작품이라 실패했다는 식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건 완전 헛다리를 짚은 이야기다.

문학상의 '명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m3이 이야기하는 명분이란 문학상의 주최자 자신에게보다는 그 대상. 즉, 문학상에 응모하는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사줄 소비자들을 겨냥한 개념일 가능성이 크다. 주최자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건 독자들은 그 '명분'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주최자 또한 (속으로야 돈벌이에 환장했건 말건) 명분(공모전의 성격, 이상 등등...)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qui-gon은 이 지점에서 "어찌되었건 (주최자야) 책 잘 팔아서 돈 남기면 좋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점.

리플
- qui-gon : 이 문학상에 대한 논쟁이 좌/우 논쟁으로 변질될 필요가 없다. 『퇴마록』은 단지 상업적 완성도가 형편 없었을 뿐이다.
- m3 : 왜 자꾸 좌/우 프레임을 물고 늘어지는가?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는 건가?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건 문화 상품의 생산 과정에 우파의 문화적 몰취향·몰이해가 개입되면서 결과물이 심각하게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왜 정치 논리로 확산시키는가?



본문
- 이거 키워인듯...
- '한국 주류 우파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상업적 실패를 했다는 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왜 영화의 실패에 정치적 속성을 부여하려 하나. 그냥 실패한 작품에다 우파적 속성을 덧붙여서 싸잡아 까고 싶을 뿐인 건가?
- '주류 우파'라는 말도 상당히 자의적으로 사용한 단어 아닌가.

리플
- 별 내용 없음

10. m3「콰이곤에게
- 별 내용 없음.

※ 이미 논쟁이 아니라 키워.


요약 감상 : 

(나중에)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56 관련글 쓰기


※ 1월 8일 2시 58분, 판갤에 올렸던 감상문(http://gall.dcinside.com/list.php?id=fantasy&no=937410)을 다듬은 글이다. 한번 썼던 글을 다시 손봐 올리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다만 별 도리가 없었다. 애당초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취중에 휘갈긴 잡문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서평을 들려주고 싶었던 어느 누군가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 이하 『양말 줍는 소년』은 『양줍소』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외계인』으로 표기한다.

내용 누설 없는 잡설 - 문근영 대통령에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김이환은 내게도 낯설지는 않은 작가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004년 말. '거울'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았을 때다. 메인 화면에 실린 기사 제목 중 가장 눈에 띄던 게 그의 단편 「문근영 대통령」이었다. 문근영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은 글은 재밌었다. 심지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당시 내가 그런 류의 문화를 처음 접했던 것도 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내게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김이환의 문장이었다. 담담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문장. 나는 그의 문장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지만.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콧대가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다는 상황 자체가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은 좀 사정이 나았지만 소설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정말 최악이었다. 해서 딴에 보면 내가 거울에서 「문근영 대통령」을 읽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만했다. 아쉽게도 다른 글들에는 그런 기적(?)이 미치지 못했던 것 뿐이고.

그래서 그의 글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출간작인 『양말 줍는 소년』(링크)을 통해서였다. 근 3,4년만의 재회. 다 읽고 나서야 작가에게 좀 미안해졌다. 이런 작품을 출간된지 4개월이나 늦게 샀단 말인가. (이렇게 귀여운 연인들을 보는 걸 4개월이나 늦추다니!) 해서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바로바로 사보마 하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 나왔다.

『양말 줍는 소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양줍소』보다 더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유쾌함과 순진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주는 캐릭터는 단 한 명 뿐이다. 축복받았다 할만한 인물은 딱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냥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는 유쾌함은 어떤 의미에선 장식이다. 위장이고, 허식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받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글을 구연 동화 보듯 순수한 마음으로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전제하자. 내 삶이, 『외계인』의 삶만큼 팍팍하진 않았다. 공감할 영역이 없었냐하면 불행히도 그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먼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거의 극복된 일들이다. 즐겁지는 않은 경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헤묵은 상처와 재회하는 게 즐거운 경험일리는 없다. 물론 이 소설은 남의 상처나 헤집어대며 느끼는 SM적 희열(?)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인물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됨과 몰이해들을 감싸주려 하는게 이 소설의 미덕이다. 작가가 적어도 「문근영 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추구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게 잘 표현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이번 소설에서는 그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 전작인 『양줍소』에서도 결말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외계인』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 듯 하다. 급작스런 결말, 그 와중에도 가엾었던 북극곰. 의아할 정도로 화사한 해피엔딩 속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거북함은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분명 읽을 때는 내 감정도 순조로웠는데. 어찌하여 결말에 와서 이리 헝클어지는 걸까.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허나 지금의 감상만 놓고 본다면 『외계인』에 대한 내 태도는 좀 어정쩡한 편이다. 


P. S.

그래서 이걸 당신에게 추천해도 좋을지는 좀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평가로 어슬렁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작가 홈페이지에서 다른 작품들을 읽었기도 해서, 내가 읽은 김이환 소설은 총 5편이다. 「문근영 대통령」, 「로보트」,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내 개인적인 순위를 매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1위 『양말 줍는 소년』
 2위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3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4위 「로보트」
 5위 「문근영 대통령」

이 정도로.

※ 이 아래 가려진 내용에는 『외계인』에 사용된 요소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내용을 미리 알면 재미없어지는 질 낮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라는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은 이쯤에서 인터넷 창의 X 버튼을 누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작렬!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51 관련글 쓰기

※ 본 문서는 북시 위키(http://booksea.pe.kr/index.php/얼음과_불의_노래)에 작성한 자료입니다. 이후 리뷰로 대체됩니다.

A Song of Ice and Fire(1996~)


미국 소설가 조지 마틴의 에픽 판타지 소설 시리즈. 국내에선 줄여서 얼불노라고도 부른다.

본편의 외전이자 프리퀄인 중편도 두 편 나왔다. 또한 본편에서 발췌된 문구들로 구성된 중편 시리즈도 있는데, 그 중 한 편은 휴고상 중편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 시리즈는 1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중 4권이 발매 직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시리즈 전체의 판매량은 미국에서만 220만부를 넘긴 상황이다. 현재 집필중인 에픽 판타지 시리즈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인기작에 속한다.

사실 이 소설의 작가 조지 마틴은 중세사와 기사(Knight)에 대한 오랜 마니아였으면서도 초기에는 SF장르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잠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소설로 복귀한 뒤 1991년에 《Avalon》이라는 SF 소설을 구상하다 버린 아이디어를 재활용하여 쓴 책이 이 시리즈의 첫 세 작품이다. 당초 3부작으로 구상되었으나 시리즈의 성공에 용기백배한 작가가 필생의 대작을 쓰겠다고 결심하여 현재는 집필 계획이 7부 예정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일단 현재까지 출간된 책은 4부까지. 1부 나오는데 대충 5년 정도 걸리는 셈이라 팬들은 이제 작가의 연세를 걱정해야 할 신세다.

중세 유럽풍인 웨스테로스 대륙(대략 남미 대륙 정도 크기)의 왕좌를 둔 싸움과 그 싸움에 휘말린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일단은 판타지 요소를 최대한 배재한 현실적인 배경, 실감 나는 인물 묘사, 치밀한 전개, 중세 유럽 마니아인 작가의 디테일 묘사에의 집착이 어우러진 수작. 뛰어난 세계관과 필력, 매력적인 캐릭터, 중독적인 재미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그러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조지 마틴은 이 시리즈가 J.R.R.톨킨잭 반스테드 윌리엄스에게서 빚을 졌다고 하였는데, 특히 이들이 현실의 요소를 많이 가져다 쓴 점에서 영향을 받은 듯 하다. 톨킨이 신화에서 많이 영향을 받은 반면 《얼음과 불의 노래》는 주로 중세사, 특히 장미전쟁에서 많이 영향을 받았다. 또한 톨킨은 로맨스적 관계를 드러내려 하는 한편 조지 마틴은 근친상간이나 간통, 매춘, 강간 등 거친 소재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결과를 보인다. 이 결과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 중 사생아들이 여럿 나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이 시리즈가 에픽 판타지 분야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온 선구자적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딱히 주인공이 없이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4권의 경우는 무려 25명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이 중 한 번만 나오고 사라지는 캐릭터도 8명에 달한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물론 인간이지만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멸종되었다고 여겨졌던 다른 이종족들 또한 소개된다.


목차
1부 - 왕좌의 게임(A Game of Thrones)
2부 - 왕들의 전쟁(A Clash of Kings)
3부 - 검의 폭풍(A Storm of Swords) - > 국내 번역제는 "성검의 폭풍"
(1-2부 발매 당시에는 "폭풍의 성검"으로 번역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번역되었는지는 미스테리)
4부 - 까마귀의 향연(A Feast for Crows)
5부 - 용과의 춤(A Dance with Dragons)
6부 - 겨울의 바람(The Winds of Winter)
7부 - 봄을 그리는 꿈(A Dream of Spring)

번역
  • 서계인, 이은심, 신선숙, 박윤진
  • 2000『얼음과 불의 노래』(1부) 은행나무 30,000원 (4권, 반양장)
    2001『얼음과 불의 노래』(2부) 은행나무 32,000원 (4권, 반양장)
    : 멀쩡한 책을 각각 4권씩 분권하고 번역을 수 명에게 찢어맞기는 형태로 번역한 괴서. 모든 책에 서계인 씨가 기본적으로 참여하긴 했으나 공역자가 권마다 달랐다. (가령 1부 1권의 공역자는 이은심인데 2~4권의 공역자는 신선숙이라는 식) 더군다나 번역의 질도 가히 최악이었다. 약간 어렵다 싶은 문장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쑤며 칼과 스워드, 소드를 혼용하는 해괴한 고유명사 처리 방식은 아직도 팬덤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 서계인, 송린, 신선숙, 이은심, 이은주, 홍창선, 김은정, 기선정
  • 2005『얼음과 불의 노래』(1부) 은행나무 37,000원(2권, 양장)
    2006『얼음과 불의 노래』(2부) 은행나무 38,000원(2권, 양장)
    2005『얼음과 불의 노래』(3부) 은행나무 39,000원(2권, 양장)
    2008『얼음과 불의 노래』(4부) 은행나무 42,000원(2권, 양장)
    : 4년만에 다시 출간된 양장 개정판. 개정판이라지만 번역자가 두 배 더 늘어나고 가격만 비싸졌을 뿐 나아진 것은 많지 않다는 평.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그림

  • Xanu
  • http://cafe.daum.net/ ASongof Iceand Fire
    : 정식 번역본은 아니지만, 위의 판본이 출간되기 전부터 『얼음과 불의 노래』를 번역하던 이가 있었다. 팬덤들로부터 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얼음과 불의 노래』가 번역된다는 사실에 모두 이 번역본의 출간을 바랐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외려 은행나무판 출간과 함께 이 번역본은 지워져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역자는 4부를 건너뛰어, 앞으로 나올 5부를 번역하겠다고 밝혔다.

각색
이미 이 소설에 기반한 TRPG도 제작되었으며 일러스트집도 나왔다. 프랑스의 게임 제작사 시아나이드에서 이 소설에 기반한 비디오 게임도 만들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팬들을 가장 흥분시켰던 소식은 역시 《ROME》,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의 대작 드라마를 찍었던 HBO에서의 TV드라마화 소식. 2009년 가을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ROME》처럼 BBC와 합작으로 제작되어 적지 않은 영국 출신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단 주인공 에다드 스타크 역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보로미르 역할로 유명세를 탄 숀 빈. 파일럿 촬영지는 아일랜드.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서유기』  (0) 2008/06/05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40 관련글 쓰기

목차
0. 서문
1. 문학
2. 역사
3. 종교·신화
4. 군사
5. 문장
6. 웹사이트
7. 기타·대기

본래대로라면 본 안내서에서 문학 챕터를 개설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본디 작가에게 있어 명작이란,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의 명작을 원하는 것이라면 본 안내서보다 훨씬 적합한 곳에서 추천 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 안내서에서는 판타지적 상상력의 원형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 - 따라서 특히 판타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유의미하게 읽힐 - 작품들 일부만을 싣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 색깔있는 항목은 클릭시 '북시' 위키의 해당 항목으로 날아감. 게시물 주소는 

http://booksea.pe.kr/index.php/판작안

[편집]1.1 에픽 서사시

서사시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그렇기에 후대의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문학 장르이다. 『파우스트』나 『신곡』과 같은 수많은 고전들은 그 밑바탕이 된 신화와 서사시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거니와, 특히나 판타지 장르는 유독 서사시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가령 신화상의 인물과 전승, 아이템 따위를 차용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편집]1.2 아서왕 전설

오늘날 아서왕 전설은 동양의 삼국지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동양에서 삼국지가 다양한 변형과 재창작을 통해 동양 문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듯, 아서왕 전설 또한 무수한 모습으로 서양문학사에 다양한 족적을 남겨 왔다. 하다못해 기사도 문학만 하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아서왕 전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리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판타지 문학에서의 '기사'라는 존재도 지금과 같은 품격을 지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아서왕 전설의 전통은 서양 뿐만 아니라 우리네의 전통이기도 한 것이다.

[편집]1.3 기사도 문학

[편집]1.4 중국·인도 전설

[편집]1.5 신화·전설·서사시를 차용·변형한 작품들

이들은 오랜 구전문학 전통의 계승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인류사 초기의 걸작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들은 이들 작품들에 녹아들어 또다른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편집]1.6 호러픽 판타지

[편집]1.7 이세계와의 조우

[편집]1.8 톨킨 판타지

[편집]1.9 에픽 판타지

[편집]1.10 가상세계 건설(유토피아 문학)

[편집]1.11 가상세계 건설(디스토피아 문학)

[편집]1.12 동물 판타지

[편집]1.13 풍자문학

[편집]1.14 앤솔러지(한국)

※ 앤솔러지 항목 참조.

[편집]1.15 미분류

아직 분류를 끝내지 못한 작품들. 적당한 카테고리가 있다면 옮겨주길 바랍니다.

[편집]1.16 참고 자료

본 항목을 작성하는데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도움이 되었던 자료, 혹은 게시물의 목록. 각 항목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데 도움받은 자료들은 각 항목에 별도로 게재했고, 초기에 참고한 자료들의 경우는 간혹 제외된 것들이 있다.

'추천도서목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작안 : 문학 ver. 08.10.27  (14) 2008/11/13
판작안 : 기타·대기 ver 08.10.17  (0) 2008/10/17
판작안 : 웹사이트 ver 08.10.17  (0) 2008/10/17
판작안 : 작문 ver 08.10.17  (0) 2008/10/17
Posted by 최진석
TAG 《뱀파이어 연대기》, 《아발론 연대기》, 『1984』, 『가르강튀아』, 『갈매기의 꿈』, 『개미』,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장과 마르가리타』, 『걸리버 여행기』, 『광기의 산맥에서』, 『귀환병 이야기』, 『금지된 섬』, 『길가메쉬 서사시』, 『끝없는 이야기』, 『나무 위로 올라간 고양이』, 『니벨룽겐의 노래』, 『닐스의 모험』, 『데카메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드라큘라』, 『라마야나』, 『롤랑전』, 『마하바라타』, 『멋진 신세계』, 『모모』, 『미사고의 숲』, 『바람의 안쪽』, 『반지의 제왕』, 『백년 동안의 고독』, 『베오울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별을 쫓는 자』, 『보르헤스 단편 전집』, 『보이지 않는 도시들』, 『봉신연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산해경』,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 『샬롯의 거미줄』, 『서유기』, 『성배의 탐색』,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수신기』, 『스튜어트 리틀』, 『신곡』, 『신들의 사회』, 『실마릴리온』, 『아라비안 나이트』, 『아서왕의 죽음』, 『아이네이스』, 『아이반호』, 『악마의 묘약』, 『양말 줍는 소년』, 『어스시의 마법사』, 『얼음과 불의 노래』, 『에다』, 『오뒷세이아』, 『오디세이아』, 『오즈의 마법사』,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요재지이』, 『우리들』, 『우울과 몽상』, 『워터십 다운』, 『원탁의 기사』, 『월든 투』,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유리알 유희』, 『유토피아』, 『은하철도의 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리아스』, 『장미 이야기』, 『쟈마찐』, 『정글북』,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카자르 사전』, 『키리냐가』, 『태양의 나라』, 『태평광기』, 『파르치팔』, 『파우스트』, 『팡타그뤼엘』, 『프랑켄슈타인』, 『피터 팬』, 『향수』, 『호빗』, 『화씨 451』, 『후린의 아이들』, 간보, 괴테, 김민영, 김이환, 단테, 도서, 뒤비, 라게를뢰프, 라블레, 라이스, 러브크래프트, 레스닉, 로리스, 르귄, 린드그렌, 마르칼, 마르케스, 마틴, 말로리, 모어,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미야자와 겐지, 바움, 바크, 배리, 버튼, 베르길리우스, 베르베르, 보르헤스, 보카치오, 불가코프, 불핀치, 브래드버리, 셸리, 스위프트, 스콧, 스키너, 스토커, 스티븐슨, 안능무, 에메, 에셴바흐, 엔데, 오승은, 오웰, 와일드, 이방, 이수영, 젤라즈니, 쥐스킨트, 창작, 추천 도서 목록, 카도노 코우헤이, 카잔차키스, 칼비노, 캄파넬라, 캐럴, 키어넌, 키플링, 톨킨, 파비치, 판갤, 판타지, , 포송령, 허중림, 헉슬리, 헤세, 호메로스, 호프만, 홀드스톡, 화이트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0 관련글 쓰기





현실세계와 환상세계에 대한 갈등이라는 소재를 근사하게 소화해낸 작품. 사실 그것보다는, 간만에 동화풍 판타지를 봤다는 게 더 반가웠지만.

물론, '양줍소'가 『끝없는 이야기』(미하엘 엔데)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김민영)과 같은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다면 상당히 회의적이긴 하다. 『끝없는 이야기』에 비하면 그 성찰의 수준이 깊지 못하고,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에 비하면 몰입도가 - 즉 재미가 - 떨어지는게 사실이니까. 특히 결말 부분이 지나치게 허술했던 것도 '양줍소'의 점수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그만하면 무난하긴 했지만, '무난한 엔딩'에 만족해버리기에는 그 전까지 보여줬던 소설의 훌륭함이 지나치게 크다.)

그래도 이만 하면 근래 출간된 한국 창작 소설 중에서는 - 다른 곳에서 평이 좋은 『얼음나무 숲』(하지은)이나 『라크리모사』(윤현승)를 읽어보진 못했으니 '최고'라고까진 단언하지 못하겠지만 -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라 평하기 손색 없을 듯 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금가지의 기획력 하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기회였달까.


그런데 정말 다른건 다 놔두고, 표지 하나는 정말 근사하게 뽑았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서유기』  (0) 2008/06/05
『카탈로니아 찬가』  (0) 2008/05/2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93 관련글 쓰기



한달 전쯤 작성해뒀던 평을 뒤늦게나마 올린다. 가능한한 읽자마자 올리는 것이 책의 예의겠지만, 판평대를 진행하는 도중에 그 심사 대상의 평을 올린다는 것은 그다지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으리라. 그것이 호평이건 악평이건. 끝나고서 하는 말이지만, <바람의 열두 방향>이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여름달님 말씀대로, 재미있기는 한데 영 지루하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는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해야 하리라. 작품 수준도 괜찮고, 번역도 깔끔하다 여기면서도(읽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이바닥에서 보기 드물게 신뢰받는 역자 중 하나란다) 영 내키질 않아 쉬어가며 4일만에 겨우 읽었으니... 이런 책이 이리도 안읽힐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작품의 수준이 반드시 가독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것일까?

근래에 하도 책더미에 묻혀 살았던 탓에 머리에 쥐가 나 있었던 걸까? 마지막 단편을 다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제 지라르를 읽을 수 있겠구나!" 였던 걸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마, 판평대 때문에 책을 억지로 읽어야 했던 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치바나 다카시가 책을 빨리 읽으려면 '그 책을  서둘러 읽지 않으면 안될 환경을 조성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라'고 이야기했던게 생각나는데, 그것도 역시 사람 나름인 모양이다. 좋은 책도 의무로 읽으려면 영 못 읽어내는 걸 보니...

 아래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에 대한 단평.
 
 

  1. 샘 레이의 목걸이 : '신선놀음 하다 보니 도끼 자루 썩었네' 류의 시간여행물. 서사도 <술이기(述異記>에 실려 있다는 그 고사과 별 차이가 없다. <로캐넌의 세계>의 애독자라면 그 작품의 발단이 되었다는 사실에 흥미로워 하겠지만, 작품 자체로는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 헌데 이 경우는 고대 중국인들의 상상력에 감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르귄의 상상력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2. 파리의 4월 : 역시 시간여행물이지만 <샘 레이의 목걸이>에 비해서는 상당히 유쾌한 작품. 타임머신을 통해 먼 과거와 먼 미래의 인물과 사귄다는 상상은, 꽤 흔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사한 공상이다. 단편집에 실린 시간여행물 중에서는 드물게 유쾌한 색채를 띄고 있는 작품인데, 아마 이것은 주인공이 '원래 세계에서 별로 존중받지 못하던' 인물이라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3. 명인들 : 제목에서 얼핏,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떠올리게 했던 작품. 이 작품도 '예술가 소설군'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니 크게 달리 해석한건 아니리라. '예술가는 억압과 통제 너머에 있는 진리를 꿈꾼다'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 책에서 시간여행 다음으로 가장 즐겨 쓰이는 소재다. 보통 작가들이 이런 장르에서 자신을 투영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이런 작품들에서  르귄의 속마음을 짐작해볼 법도 한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그 결론이 일관되지 않아 르귄이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파악하기가 썩 쉽지 않다.
     
  4. 어둠상자 : 어둠이 왕에게서 왕자로 계승되는 것을 보면 '어둠'이란 권력자 사이에서 대물림되기 마련인 어떤 상처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정확치는 않다. 영웅 서사시에서 영웅 앞에 으레 등장하곤 하는 정신적 장애물 같은 것이 아닐까. 극복해낸다면 '왕'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몰락을 가져다줄 그런.
     
  5. 해제의 주문 : <샘 레이의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작자의 다른 작품과 연결지을 수 있다는 데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작품. 굳이 카테고리를 부여한다면 '성장물' 정도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6. 이름의 법칙 : 역시 다른 작품과 연결지을 수 있다는데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작품. 고유명사를 의역하는 시도가 돋보였던 작품. 르귄의 작품에서는 '진짜 이름'이라는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나온다는데, 르귄은 'Underhill'에 대한 번역으로 '언더힐'과 '언덕아래' 중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까? 톨킨이라면 후자 쪽이 확실하지만.
     
  7. 겨울의 왕 : 시간여행물. 시간 여행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아르가벤 왕에게 있어 그것은 강제된 여행이면서도, '왕이 아닌 아르가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을 테니. (이것은 이 단편집에 실린 시간여행물중에서 시간여행이 '자아상실'이 아닌 '자아 발견'을 위해 사용된 거의 유일한 예다) 빠른 귀국을 하며 아르가벤 왕이 느겼을 감정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한편으로, 이 작품은 내 자신에 잠재된 성편견을 깨우쳐준 '유익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의 식중에 등장인물들에 '성별'을 넣어 상상하다가, 역자 후기를 읽고서야 그들에게 성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8. 멋진 여행 : 마약...을 소재로 한 글인데, 사실 별로 관심 가는 부분이 아니었다. 도통 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있어서 그냥 넘거버렸던 작품.
     
  9. 아홉 생명 : (작자의 말에 따르면) '클론'에 대해 다룬 하드 SF. <플레이보이 SF 걸작선>(황금가지)을 통해 본 적이 있는 작품인데, 당시 그 책을 상당히 지루하게 읽었던지라 그냥 새로 읽는 작품처럼 읽었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클론들은 인간보다는 차라리 개미같은 군집 생명체를 연상시키던데, 그렇다면 '아홉 생명'이라는 제목도 살짝은 어폐가 있는게 아닐까?
     
  10. 물건들 : 넓게 보면 이것 또한 '예술가 소설군'에 집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결정적 도약은 남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마음에 안들긴 해도.
     
  11. 머리로의 여행 : 이것도 시간여행물이라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 단편집에 담긴 시간여행물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지난 세계와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자아 상실'을 그리고 있는 것도 다른 시간여행물들과의 특징과 일치한다. 생각해보면 시간여행에 대한 르귄의 태도는 <파리의 4월>이나 <겨울의 왕>만 제외하면 대체로 부정적인 편인데, 아마 시간 여행으로 인한 '자아 상실'을,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한 부분을 찾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겠다)
     
  12.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 시간여행물.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시종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유독 뒷맛이 씁쓸했던 작품이다. <파리의 4월>과는 달리 '원래세계로의 복귀'가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주인공의 '선택'이 차라리 '강요'된 것에 가깝게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찌보면 <파리의 4월>과 유사한 결론을 맺은 셈이지만, 그 색채는 전혀 다른 것 또한.
     
  13. 땅속의 별들 : 죽은 뒤에야 가치를 인정받았던 예술가들(특히 필립 K. 딕)을 생각하게 했던 작품. 독자된 입장에서는 '명작'을 발굴해내는 것이 더 기쁜 일이겠지만 과연 예술가들 또한 그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14. 시야 : 다소 삐뚤어진 예술가물? "우자들은 언제나 선각자를 이해하지 못하노라~" 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5. 길의 방향 : 주인공 나무에게 선생님이 있다면 물리학 점수는 0점을 주지 않을까? :) 어린 시절에 간혹 하곤 했던 상상이지만, 그걸 또 작품으로 보니 재미있다. 어린 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어둠 상자>보다도 훨씬 동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16.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방금 목차를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희생양>이라는 제목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민망스런 일이긴 해도, 그다지 이상하다 할 것은 없는 일이다. 사실인즉슨, 이 작품은 온전히 '희생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우화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프랭크 오코너의 <나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한 우화나 다름없는 것처럼.
     
  17. 혁명 전날 :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좌파 출신 - 혹은 좌파에서 전향한 - 작가의 정치적 히스테리가 녹아난 작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실은 지금도 의심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가장 투철했던 자가 결국 자기 신념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현장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마르크스가 살아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봤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1) 2008/02/28
『동주 열국지』(1~12)  (0) 2008/02/28
『바람의 열두 방향』  (0) 2008/01/22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  (0) 2007/11/19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41 관련글 쓰기

폐회사

아프락사스(주최자, 심사위원)
 
드디어 심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달 반 동안 준비해온 행사를 이제 마감하게 되었다 하니 좀 묘한 기분입니다. 아마 저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오기가 참 어려웠겠지요. 선뜻 후원에 나서주신 황금가지나 판평대 전용 공간을 마련해주신 판갈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특히 준비부터 심사 종료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도움을 줬던 듀론9G 씨의 노고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대회 내내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본 대회가 첫 회였다 보니 참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가령 부상 선정만 해도 정식 공고 직전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상당히 많은 고심을 해야 했고, 심사기준을 선정의 경우는 폐회 직전까지도 심사위원들을 괴롭히는 사항이었습니다. 거기에 외부 홍보나 심사평 작성, 점수 확정 같은 것까지 더하자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요. 원래부터 골치를 썩을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었던 반면, 경험 부족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해야 했던 경우도 허다합니다. 돌아보면 그저 암담할 뿐이지요. 그럼에도 성원과 기대를 보내주셨던 참가자, 관람객 여러분들께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접수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약 31일간의 응모기간동안 아홉 분의 평자에 의해 21편의 원고가 응모되었습니다. 주최측이나 심사위원들이 본 대회를 '테스트' 차원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최 단체(DC 판갤)에 대한 불신감, 불충분한 홍보, 미숙하고 어정쩡한 일처리 따위의 악재들이 산재해 있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만족할 정도이지 않나 싶습니다. 2회, 3회 판평대가 열리게 된다면 본 대회의 인지도도 점점 올라갈 테고, 그렇다면 응모 편 수도 점차 해결되겠지요.
 
다만 일부 평자들의 '불친절함'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싶습니다. 가령 저자, 역자, 출판사 등의 서지사항을 밝히는 기본적인 작업에서조차도 무성의함을 보이는 분들까지 계시더군요. 물론, 접수된 작품의 상당수가 단일 출판사에서 소개되고 있는 까닭에 굳이 세세하게 소개할 필요도 없는 작품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해외 작품 - 특히 다수 출판사에 의해 소개된 바 있는 작품들 - 을 소개하는 평자가 역자나 출판사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경우를 보고서는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가산점 사항 중 '서지사항 소개 충실도' 부분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불친절한 평자를 나무라는 용도로 쓰이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번역의 충실도에 대해 알려주는' 평자를 우대하기 위해 만들었던 기준이었지요) 접수되는 원고들의 획일화를 막기 위해 심사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던 주최측의 탓도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장르 문학 팬덤들이 번역의 충실성에 유독 민감한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의외이기까지 합니다.
 
거기다 적은 인원으로 응모된 원고와 해당 작품을 모두 읽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다 보니 심사가 다소 부실해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특히 예상과는 달리 '가산점수'가 의외로 큰 비중을 발휘하게 된 것도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다음 대회에서는 꼭 보완하고 싶었던 점입니다.
 
 
 듀론9G(심사위원)
 
 우선 제 1회 판평대에 참여해 총 21개의 리뷰를 응모하여주신 9명의 참가자분들과 대회 상품에 도움을 준 출판사 황금가지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먼저 전하며 이렇게 심사평을 올립니다.
 
저는 원래 판장대를 기획중에 있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계획을 취소하고 아프락사스가 계획중이던 판평대에 약간의 도움을 주려고만 했으나 심사위원을 공모하는 데에 있어서 판타지 갤러리의 반응도 좋지 못한 편이었고 실제로 심사위원이 모이질 않아 곤란하던 차에 아프락사스의 요청으로 예정에 없던 심사위원을 맡게 되어 응모작들을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갑작스런 연유로 작품을 심사하게 되었기에 개인적으로 판평대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짓는 것에 대하여 약간의 불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여 공정한 평가가 되도록 노력했으니 감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판평대 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미 주최자인 아프락사스가 밝힌 대로 점수는 최고 60점으로 각 심사위원이 산정한 점수를 채점한 뒤 이를 평균을 내어 기본점수를 산출하고 여기에 각각 10점씩 배당된 4가지의 가산점수를 더해 총 100점을 만점으로 정하여 점수를 계산하였기에 심사위원의 주관이 비교적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수는 60점이 할당된 기본점수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심사위원인 저에게 할당된 점수에 대한 개인적인 심사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비평글의 가독성을 중심으로 글의 흥미성, 글 구성의 일관성 통일성 등을 감안해서 글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고려하여 평가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무언가 복잡하고 어렵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사실 글의 구성에 대한 고등학교 수준의 기본적인 지식수준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고 심사평에서 구태여 하나하나 따져가며 언급할 생각이 없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여, 이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얼마나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지, 독서의 의욕을 북돋우는지, 그리고 글의 완성도가 어떠냐를 중심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혹, 좋은 리뷰에 무슨 통일성이니 완성도니 하는 것을 따지느냐 물으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읽기 좋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글을 기본적으로 글의 구성이 훌륭하다는 점을 미리 상기하신다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제 1회 판평대 응모작들의 심사평를 간략히 공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사기준
 
 1. 기본 점수
 - 심사위원의 개인 점수를 60점 만점으로 계산하여 각자의 점수를 낸 다음 평균치로 산출한다. 단, 심사위원의 주관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점수 기준은 통일했다. 40~45점이면 평작 수준으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2. 가산점
 - 심사위원들의 주관만으로 심사하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 평가에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한 점수다. 가산점에 할당된 점수는 40점 만점이며, 총 4가지 항목에 의해 평가했다.
 
 가. 맞춤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 (아래의 표에서는 '맞춤법')
  (1) 10점 - (오류 갯수/페이지수)/2
 
 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가? (아래의 표에서는 '선정작')
  (1)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없을 경우 0점 처리
  (2) 출간되었더라도 절판되어 더이상 구할 수 없을 경우 0점 처리.
  (3)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경우 5점 감점
      - ex: 베스트셀러, TV프로그램 소개, 고정 명작 리스트 등)
  (4) 문학상 수상 전력이 있는 작품일 경우 2점 감점.
 
 다. 가독성은 좋은가? (아래의 표에서는 '가독성')
  (1) 주요 용어, 개념어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1점 감점.
  (2) 문단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면 5점 감점.
  (3) 소문단 제목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면 2점 감점.
 
라. 서지사항을 충실히 알려주고 있는가? (아래의 표에서는 '서지사항')
  (1) 비평 내에서 작가 이름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을 시 2점 감점.
  (2) 비평 내에서 작품명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을 시 2점 감점.
      - 단편집이나 연작소설집이 몇몇 작품만 알린 경우에는 부분점수 처리.
  (3) 비평 내에서 (번역작의 경우) 역자명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을 시 2점 감점.
  (4) 비평 내에서 출판사명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을 시 2점 감점. (국내 기준)
  (5) 비평 내에서 출간연도를 명확히 알리지 않았을 시 2점 감점. (국내 기준)
      - 번역작의 경우 원작 연도 밝힐 시 부분점수 처리)
 
 
심사평
 - 심사평 개재 순서는 소개작품의 장르순과 동일하다.
 
 
1. 이지환, 화홍 & 정은궐, 해를 품은 달 - 과객
 
듀론9G : 처음 이 리뷰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일단, 분명히 장르소설의 범주에는 포함되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로맨스소설을 대상으로 작성된 리뷰였었고 또한 글에서 다루고있는 소설이 두가지라는 점에서 판평대를 준비해온 입장에서 응모자들이 다룰 것이라 생각한 부분의 외적인 특징을 가진 리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장르소설의 범주에 포함되고 리뷰가 재미있으면 그만이기에 별 다른 편견 없이 작품을 평가 하였습니다.
 이 리뷰는 기본적으로 소개-요약-배경-성격-구성-결말-마무리 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각 항목에 따라 화홍과 해를 품은 달 두가지를 비교 혹은 대조의 방식으로 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구마와 감자를 이용한 비유라던가 글 전체에 계속 이어지는 두 작품의 성향 분석을 통하여 각 항목을 중심으로 작품의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글쓴이가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러나 비교 항목을 설정한 기준이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하여 글을 읽어가는 내내 리뷰가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며 앞에서 말한 이야기를 뒤에서 갑작스럽게 보충하여 이야기가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결정적으로 배경에서 다룬 고증에 대한 글쓴이의 의견이 자기모순의 오해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리뷰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어 리뷰의 가치를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배경으로 조선이 사용되지 않는 보편적인 이유를 먼저 말한 뒤 화홍에서는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을 앞선 이유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로 설명하여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비교분석 글이 가지는 특유의 장점으로 인하여 글의 가독성은 그다지 나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익히 다루지 않는 로맨스소설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리뷰는 아니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프락사스 : 다른 심사위원님도 말씀하셨지만, 응모 자체로 심사위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리뷰였습니다. 로맨스 장르의 응모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바였으니까요. 기성문학 일변도의 문학판을 비판하곤 하는 장르문학 내에서조차도 'SF&Fantasy' 중심의 이중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일단 이 리뷰에는 그 형식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응모된 비평 중에서는 - 챕터 구분과 소제목을 사용함으로써 - 글의 흐름을 가장 잘 통제한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비교비평'이라는 참신한 방식을 도입한 것도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로맨스 장르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 로맨스의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또 작품들의 장단점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방식이었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도 단순히 줄거리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로맨스 장르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부분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 설명들은 저처럼 로맨스에 익숙치 못한 독자들에게 로맨스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줌과 동시에, 소개된 작품들(화홍, 해를 품은 달)이 그 장르 안에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소설인지 짐작하게 해주겠지요. 그런 부분이 가장 빛난 것이 '결말' 챕터가 아닐까 합니다.
 단점이라면... 일단 대화체로 편하게 쓰여진 탓인지 여기저기 군더더기 문장들이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특히 '마무리' 챕터가 그런 측면이 강한데,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문장들이 여럿 보입니다. 치사한(?) 지적이긴 한데, 분명 짚어야 하는 점입니다. 독자들은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비평(혹은 서평)을 읽는 것이지 평자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요 없는 문장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2. 김용, 소오강호 - 예니체리
 
듀론9G : 익히 잘 알려진 무협이라는 장르의, 역시 익히 잘 알려진 작가 김용의 작품인 소오강호를 대상으로 쓰여진 이 리뷰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그런 글입니다. 글이 짧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나 이 글의 큰 문제점은 도입부까지는 괜찮았음에도 정작 제대로된 작품 소개는 글 분량의 1/3이 채 되지 않으면서 리뷰의 마무리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독성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마치 소오강호에 얽힌 자신의 가정사에 대한 썰을 푸는 듯한 내용의 글로 성격이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도입부에 작품에 얽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하여 그 시작은 부드러웠던 점에 나름 점수를 주고는 있으나 글 자체의 불균형적인 구성으로 인하여 그 가치가 떨어진 아쉬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프락사스 : 역시 가장 문제되는 것이라면 '가정사'에 대한 썰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다치바나 다카시같으면 대번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책이 어떤지나 빨리 말해주시오"라고 하겠지요. 굳이 가정사 부분을 쓰고 싶었다면 가정사 부분의 역할을 도입부 정도로 국한시키는게 더 나았겠지요. 그러지를 못해 쓰다 말았다는 인상까지 주고 있습니다만. 평자 자신의 사담은 블로그에 가벼이 쓰는 감상문에라면 모를까 이런 비평(혹은 서평)에서는 절대 피해야 할 소재입니다. 앞서 다른 작품에서 꺼냈던 '독자들은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비평(혹은 서평)을 읽는 것이지 평자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이 비평에 가장 철저하게 -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3. 김용, 연성결 - Blues
 
듀론9G :
 
  출판된 특정 도서를 대상으로 리뷰가 작성되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서사시를 주제로 작성된 리뷰라 감점의 대상이 된 작품들입니다. 아쉽게도, 이 세 리뷰들은 해당하는 서사시로 출판된 도서를 대상으로 작성되었다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 있었겠지만 막연하게 단순히 서사시들을 각각 리뷰함으로써 독자들이 해당하는 서사시와 관련된 어떠한 도서를 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인도의 신화와 전설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예 쓸모가 없는 그런 리뷰는 아닙니다. 글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나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쉽게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인도의 신화와 전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나름대로 서사시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 리뷰의 대상이 된 서사시들이 당금의 장르소설계에서 가지는 의의를 언급하였기에 리뷰 자체의 가치는 의외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하바라타는 비교적 그 구성이 알차고 균형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머지 두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판차탄트라는 괜찮은 도입부로 시작해 무난한 설명을 지나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린 듯한 마무리로 리뷰가 끝나버렸는데, 특히 판차탄트라는 대충 만들어진 듯한 단순설명에 치중한 내용과 구성으로 인해 성의가 없어보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듀론9G : 앞서 평가한 소오강호와 같이 이번에도 작가 김용의 연성결이라는 작품을 대상으로 쓰여진 리뷰입니다. 이 작품은 가독성이 꽤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도입부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뚜렸하고 널리 알려진 단점을 먼저 제시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뒤, 그럼에도 작품을 옹호하는 글쓴이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설득하고 있으며 어려운 단어나 내용이 그다지 없어 일단 리뷰 자체는 부드럽게 읽히는 장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김용이라는 작가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들과 글쓴이 스스로의 평가가 삽입되어 작가에 대한 경향이라던가 특징들을 파악할 수 있는 작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꽤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시작된 글이 조금 서둘러 끝낸 듯이 짧게 마무리가 되어 조금 깔끔하지 못한 입맛이 남으며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각 인물들의 나열은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무슨 소린지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생소함을 가져다 주기에 이러한 몇몇 단점은 리뷰를 조금은 아쉽게 보이게 합니다.
 
아프락사스 : 전체 분량의 상당수가 김용 소설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할애되어 있는데도 김용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장점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도 언급해가며 별 치우침 없이 조목조목 풀어나가고 있는것도 좋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겠고요. 개인적으로는 제게도 김용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해준 리뷰였어요. 원래 무협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작품의 장점을 설명하는 건 다소 약한 감이 있더군요. '이런 단점이 있지만 저런 장점이 있어 추천할 만하다'로 균형이 맞춰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용 소설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인데 - 평자에 따라서는 김용 답지 않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 왜 그것이 재미있는 것인지 좀 더 분명한 어조로 설명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보태기'의 형태로 들어간 포우 소설과의 연계성도 좀 더 깊게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싶고요.
 
 
4~6. 라마야나,마하바라타,판차탄트라 - 예니체리
 
 ※ 비록 각각 다른 세 작품이 응모되었지만 작성자가 같고 모두 인도의 신화와 전설을 다루며 글의 구성이 흡사하기에 한 번에 심사평을 작성하였습니다.
 
듀론9G : 출판된 특정 도서를 대상으로 리뷰가 작성되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서사시를 주제로 작성된 리뷰라 감점의 대상이 된 작품들입니다. 아쉽게도, 이 세 리뷰들은 해당하는 서사시로 출판된 도서를 대상으로 작성되었다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 있었겠지만 막연하게 단순히 서사시들을 각각 리뷰함으로써 독자들이 해당하는 서사시와 관련된 어떠한 도서를 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인도의 신화와 전설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예 쓸모가 없는 그런 리뷰는 아닙니다. 글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나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쉽게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인도의 신화와 전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나름대로 서사시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 리뷰의 대상이 된 서사시들이 당금의 장르소설계에서 가지는 의의를 언급하였기에 리뷰 자체의 가치는 의외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하바라타는 비교적 그 구성이 알차고 균형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머지 두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판차탄트라는 괜찮은 도입부로 시작해 무난한 설명을 지나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린 듯한 마무리로 리뷰가 끝나버렸는데, 특히 판차탄트라는 대충 만들어진 듯한 단순설명에 치중한 내용과 구성으로 인해 성의가 없어보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프락사스 : 심사위원 입장에서 가장 바랐던, 그러나 가장 우려했던 리뷰의 전형이 아닌가 합니다. 바랐다는 것은, 신화들이 숱한 환상 문학 소설에 장르적 원형을 빌려줘 왔음에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을 통해 신화 속에 잠든 장르적 원형을 밝혀내는 작업은 팬덤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판타지 팬덤들을 위해 신화를 소개할 때는 신화들이 환상 문학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 등 일반 소설을 대상으로 할 때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많은 설명을 덧붙여야 합니다. 의미 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번거롭고, 매우 고된 작업이지요. 특히 본 리뷰들처럼 그나마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려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세 편의 리뷰 대부분이 해당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하는데서만 그친 것은 매우 아쉬운 점입니다. 가령 <라마야나>의 경우 대부분을 줄거리 요약에 할애하고 끄트머리에 '영웅설화의 기본 라인'과 '구도의 모티브'를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요약보다는 오히려 후자 쪽에 공을 들였다면 더 좋았겠지요. 인도 서사시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기본 줄거리부터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셨겠습니다마는 이런 데서는 외려 좀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편의 리뷰들이 대부분 역자나 출판사 등의 서지사항을 전달하는데 다소 소홀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판차판트라>를 제외한 두 평에서는 아예 판본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기까지 했지요. 현대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리뷰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달리 서사시를 대상으로 한 비평에서 이런 점을 소홀히 처리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서지사항을 분명히 한다는 것은 어떤 텍스트를 대상으로 했는지 그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저자나 역자, 출판사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번역서의 경우 그 성격상 번역자의 기량에 따라 그 번역 수준이 천지차이가 되니까요. 특히 신화나 서사시의 경우 그 성격상 현대문학에 비해 그 번역본이 더 많다 보니 판본이나 역자에 대해 세심히 언급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번역의 수준까지 비교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러이러한 판본들이 있다'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굳이 도서관까지 가서 뒤질 것도 없이, 인터넷 서점 검색창만 뒤져봐도 거의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성의 차원의 문제입니다.
 
 
7.김상현, 정약용 살인사건 - Blues
 
듀론9G : 판타지 팬덤들에 추천할 만한 작품을 대상으로 작성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지뢰작을 걸러내는 목적으로 사용될만한 내용으로 작성된 리뷰라 좋은 평가는 얻지 못한 몇몇 글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작품의 주요한 단점을 여럿 지적했고 덕분에 독자들이 이 작품을 피해야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기에 그 가치가 아예 없는 리뷰는 아닙니다. 다만 장점의 언급이 없이 계속되는 단점의 부각과 부정적 어조로 인해 조금 과도한 비난을 하는 것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 글입니다.
 
아프락사스 : 역사소설과 추리소설로서 어느 면이 미흡한지 조목조목 짚어내는 부분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본 대회의 취지 상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비록 입상을 하진 못하더라도, 본 리뷰의 가치는 입상작들에 못지 않겠지요.
 
 
8.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히스토리언 - 예니체리
 
 듀론9G :
 
 리뷰 초반 도입부분도 괜찮았고 나름대로 원작에 대한 스토리 설명에도 어느정도 충실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리뷰입니다. 그러나 문단을 나누는 데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고 스토리를 설명하다가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하고 다시 스토리를 설명하다가 주관적 평가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감 다소의 산만함을 느끼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성이라는 점이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단을 나눌 때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나누었다던가 스토리와 주관적 평가가 묶여서 잘 정리되었다면 좀 더 좋은 글이 되었을 수 있는 글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일한 참가자가 쓴 다른 리뷰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부분에 리뷰가 급하게 마무리되어 글의 균형이 맞지 않아 아쉬운 듯한 기분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프락사스 :
 
 줄거리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걸립니다. 같은 평자가 쓴 리뷰에서는 상당히 반복되는 단점인데, 왜 자꾸 줄거리 서술에 신경을 쓰시는지 모르겠군요. 특히 이 리뷰에서는 줄거리 요약이 분산 배치되어 있어 다른 부분에 갈 시선까지 빼앗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최악이라 할 만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줄거리 요약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써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아까운 부분이 많기도 하니까요.
 
 
9. 고든 R. 딕슨, 드래곤과 조지 - 예니체리
 
 듀론9G : 앞선 동일 참가자의 다른작품들과 같이 이번에도 역시 리뷰의 대부분을 단순한 스토리 설명에 그 비중을 할애한 작품입니다. 작품에 대한 간략한 주변설명과 그 작품이 가지는 의의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조금 곁들여져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소설의 배경이나 내용을 설명하는 데에 치중해있어서 리뷰가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정보로써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작품을 읽고싶게 만드는 무언가는 없는 글입니다. 이 리뷰는 원작에 대한 단순 내용설명을 위주로 하고있음으로 리뷰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를 가늠해볼 수는 있으나 그 외로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단순한 정보제공에 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프락사스 :  사실 굳이 외국 장르 소설을 소개하려 한다면 굳이 양판소와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의가 있을까 싶습니다. 양판소와 비교될 정도의 소설을 읽기 위해 굳이 오역과 절판에 맞서 싸울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당장 <드래곤과 조지>만 해도 - 리뷰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 왕년에 그리폰 북스로 나온 뒤 절판되었다가 최근에야 복간되는 등 힘겨운 과정을 밟아왔지만, 그 정도의 고난을 겪어야 했던 해외 장르 문학 작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심지어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반지의 제왕>조차도 나오는 판본마다 족족 오역 시비에 시달려야 했으니... 같은 악조건을 뚫고 접근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작품들을 제쳐놓을 수 있을 정도로 <드래곤 조지>가 뛰어난 소설인가 하는 점은 실로 회의적입니다. 물론 평자에 따라서는 <드래곤과 조지>를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리뷰에서 드러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10. 다나카 요시키, 창룡전 - 예니체리
 
 듀론9G : 안타깝게도 판평대의 취지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추천리뷰가 아닌 비판리뷰로써 역시 심사에 있어서 패널티를 가지게 된 리뷰입니다. 그러나 창룡전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을 몇가지 나열하여 작품에 대한 비판을 적절히 하고 있기 때문에 리뷰 자체의 가치가 떨어진다곤 할 수 없습니다. 의외로 출품자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스토리나 플롯설명에는 큰 비중을 주지 않고 배경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한 뒤 주요한 문제점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들이 이 책은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글의 구조가 보편적인 나열법을 이용하고 있으나 그런 이유로 인해 오히려 읽기엔 부담이 없는 글이 되어 분량에 비해 괜찮은 내용전달에 큰 어려움이 없는 글입니다.
 
 아프락사스 : <정약용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본 대회의 취지에서 어긋나는 리뷰이지요. 그저 취지에서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떨어뜨리기는 좀 아깝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자리에서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 미카게 에이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 9번 환자
 
 듀론9G :
 
 제 1회 판평대를 개최함에 있어서 응모된 21개의 작품 중 라이트노벨을 대상으로 작성된 두개의 리뷰중 하나입니다. 4페이지 정도의 적지 않은 분량과 더불어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 알찬 분석으로 인해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카미스 레이나에 대한 설명, 주인공들의 성별이 가지는 의미, 원작가가 소설의 완급을 위해 사용한 장치에 대한 약간의 분석 등은 기본적으로 리뷰가 가지고 있어야할 대상작품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을 전반적으로 포함하고 있기에 읽는 맛은 쏠쏠합니다. 물론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전무하지만 그런 작품 외적 부분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양념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감점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데 결정적으로 자기모순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인데, 그 일례로 리뷰의 앞부분에선 주인공의 성별관계 설명시 남성에겐 우호적, 여성에겐 적대적이라는 분석을 한 뒤에 리뷰 후반부에서는 그것을 뒤집어 여성에겐 이해자, 남성에겐 공격적이라는 말로 바뀌어버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리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상한 혼란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또한 그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받아지지 않은면서 그다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지 않은 인간의 습성을 내세워 설명함으로 인해 독자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리뷰와는 그다지 큰 상관없이 현실의 이야기를 갑자기, 그리고 아주 짧게 끌어옴으로 인해 어설픈 마무리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조금 아쉬워 보이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아프락사스 : 고백하자면, 접수되었을 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판평대 홍보하러 다닐 때 "페이트 비평 들고갈 사람이 있을 거다"는 괴담을 듣기도 했던지라 언젠가 낚시작이 들어올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고, 실제로 라노베 비평이 들어왔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런 우려를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근사한 리뷰였습니다만. 단지, 소개 작품과의 비교대상으로 <부기팝>시리즈와 <Missing>을 언급하고 있는데, 정작 그 두 작품에 대한 언급은 소홀한 것이 걸립니다. 특히 <부기팝>에 대해서는 왜 유사한지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은데, 소개 작품과 <부기팝> 시리즈 둘 다 읽지 않은 독자로서는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12. 미하엘 엔데, 모모 - 예니체리
 
 듀론9G : 한국 사회에서 꽤 알려진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대상으로 쓰여진 리뷰로써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과 그에 대한 훌륭한 리뷰가 많은 관계로 그 가치가 바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리뷰 자체도 본문을 발췌하여 넣고 작가의 말 역시 발췌하여 넣는 바람에 정말 리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의 분량이 꽤나 적어져 약간의 스토리 제시와 작가의 평가가 줄어들어 글 자체가 빈약해져버린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응모작 입니다.
 
 아프락사스 :1978년에 차경아 씨 번역으로 최초 소개된 이래 여러 차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 이제는 차라리 스테디셀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 작품을 굳이 판평대를 통해 소개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미하엘 엔데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끝없는 이야기>가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평자가 작품을 '괜찮은 우화'로 보는지 '좋은 환상 문학 작품'으로 보는지 확실치가 않습니다. <모모>가 단순히 어떤 '교훈'을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읽힐 이유가 있는 작품은 아닐 겁니다. 사실 교훈만 놓고 보자면 <모모>보다는 차라리 <탈무드>같은 작품이 더 낫겠지요. 중요한 것은 환상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얼마나 잘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지.
 
 
13. 존 밀턴, 실낙원 - 예니체리
 
 듀론9G : 무려 9작품이나 응모한 예니체리씨의 마지막 심사작인데, 결정적으로 이 작품 역시 다른 8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는 구조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다만 그 8작품에 비해서 분량이 많지 않은 와중에도 작품과 별 상관 없는 잡스런 이야기나 내용설명 등은 줄이고 이 작품의 어느부분이 흥미로운가에 대해 나름 많은 비중을 다루며 글쓴이의 의견을 피력하고있습니다. 도입부와 본문 마무리의 분량과 완급도 무난한 수준이어서 생각보단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리뷰로 평가 할 수 있습니다.
 
 아프락사스 : 같은 평자가 쓴 리뷰 중에선 가장 균형잡혀 있는 글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이 리뷰 하나에 집중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실낙원>이 제시하고 있는 많은 개념들이 현대에까지 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다만 널리 알려진 고전이라 판본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니, 어떤 판본을 사용했는지 혹은 어떤 판본을 추천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 못했다는게 아쉽습니다.
 
 
14. 로저 젤라즈니, 내 이름은 콘래드 - 별밤
 
 듀론9G : 아쉽게도 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너무 어렵게 썼다."입니다. 글쓴이 본인이야 글을 쓰면서 어떻게 느꼈을지 몰라도 공대생으로써 문과적 지식엔 고등학교 필수교과 수준인 본 심사자에게 있어선 글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마키아벨리적이란 단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죠. 본인이 공대생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고등학교 필수교과과정은 제대로 이수했다는 점에 있어서 다른 독자들이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을 맞딱뜨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독자들이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리뷰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글쓴이 본인이 그러한 정의를 내렸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내용과 비슷하게 적어내렸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글의 구성은 도입-본문-마무리로 보여지는 큰 단락으로 나누어 작품을 다룸으로써 꽤 깔끔한 편이며 다루고 있는 내용 역시 깊고 자세한 편이라 리뷰로써의 가치는 있지만 오히려 작품을 너무 어렵게 다룬 감이 있어서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지는 조금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글입니다.
 
 아프락사스 : 작가 로저 젤라즈니, 혹은 <내 이름은 콘래드>라는 작품이 SF 팬덤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는게 아무래도 좀 걸립니다. 물론 알려져 있다고 해봐야 '그 방면에서' 정도이고, 판타지 팬덤들이 죄다 SF골수 팬만 있는 것은 아니니 의의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본 대회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좀 묘한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이 리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본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 대부분에 해당되는 사항이긴 하지만요.
 중심인물인 콘래드의 성격을 해석하기 위해 아나키즘, 마키아벨리즘과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그리 효과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나키즘의 경우는 콘래드라는 캐릭터와 부합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그 단어 자체의 설명이 그리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마키아벨리즘'의 경우, 그 자체가 - 어원이 된 학자의 사상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 그리 바람직한 용어라고 볼 수도 없는 부분이고요. 콘래드라는 캐릭터를 해석함에 있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인용했던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지만, 그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로서는 어리둥절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누설'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작품 자체를 평함에 있어서도 '뉴웨이브 운동'이나 조지 R.R.마틴같은 외부 권위에 기대고 있는것 역시 조금 걸리는 부분입니다. 기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그에 관한 보다 친절한 설명이 아쉬웠습니다. (조지 R.R.마틴만 해도 그 팬이 아닌 이상 이 사람이 <얼음과 불의 노래>의 작가라는걸 리뷰만 보고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뉴웨이브' 운동의 경우 그리폰 북스 판본 뒤에 붙은 역자 해설에 사용된 어휘를 그대로 가져온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한 대목인데, 그 용어를 자세히 글 속에 풀어낼 수 없다면 오히려 쓰지 않는게 더 낫습니다.
 
 
15. 로저 젤라즈니, 신들의 사회 - 별밤
 
 듀론9G : 안타깝게도 내이름은 콘래드를 리뷰하면서 저지른 단점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글입니다. 역시 꽤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고 또 한 문장에 어려운 어휘를 잔뜩 삽입함으로 인해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있는 글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내이름은 콘래드의 리뷰와 비슷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도입-본문-마무리의 삼단 구성이 아닌 몇개의 큰 단락으로 소주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역시 그 단락 자체가 명시된 소주제에 벗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산만하지 않고 집중된 맛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휘의 한계로 인해 독자는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낄 것입니다.
 
 아프락사스 : 본 작품을 '강력한 캐릭터를 무기로 읽기 쉬운 것만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지적인 안일함과 싸운다'라고 평한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누군가가 <신들의 사회>를 두고 '서양 무협지 같다'라고 평한 것을 본 적도 있으니, 같은 작품에 대한 평이 이렇게 갈릴 수도 있다는게 흥미롭습니다. <내 이름은 콘라드>에서 보이는 단점들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 어떤 것은 더 심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완성도는 본 리뷰가 더 높더군요. 아무래도 <내 이름은 콘래드>보다는 <신들의 사회>가 보다 캐낼 게 많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겠습니다만.
 
 
16.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피용 - Srinberk
 
 듀론9G : 물론 분량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A4 1장을 넘는 것으로 잘만 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리뷰가 나올 것으로 그 제한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지만 이것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줄을 바꿔써서 분량을 늘린 것이 눈에 확 띄는 작품으로 성의가 없어도 너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리뷰입니다. 리뷰 자체도 그다지 작품을 자세히 다루고있지도 않아서 리뷰를 읽는 내내 그다지 작품에 대한 흥미도를 높일 수 없었다는 것이 큰 단점입니다. 물론 작품의 장점을 2가지로 제시하여 읽어야할 당위성을 간접적으로 제시하지만 리뷰 자체가 가지는 질적 저하로 인해 독자들에게 주는 신뢰성이 낮아짐으로 인해 리뷰 자체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아프락사스 :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분량 기준을 대폭 완화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했던 것이긴 하지만 정말 이런 리뷰가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른 모 평자의 리뷰가 '지나치게 친절'했다면 이 리뷰는 '지나치게 불친절한' 리뷰랄까요? 작가 이름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언급하지 않을 정도니... 뿐만 아니라 소설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지나치게 꺼리는 것도 다소 걸리는 부분입니다. 물론, 줄거리 누설은 최소한으로 줄이는게 마땅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작품의 가치를 최대한 잘 드러내야 하는 것이 평자의 의무이지요.
 
 
17. 스뚜르가츠키 형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나 남았다 - 재건
 
 듀론9G : 작품과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한 꽤 넓은 시야로 리뷰를 구성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시 꽤 훌륭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 작품도 근본적으로 리뷰 자체가 어렵게 작성되었다는 단점이 생겨버린 작품입니다. 독자들이 읽으면서 지루해할 수 있는 고급 혹은 전문 어휘들이 다수 출현해버렸고 주석을 과도하게 달아야할 만큼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판평대에 응모된 리뷰가 지향해야할 목표를 일부 상실한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발췌가 너무 잦고 그 분량이 많아서 리뷰를 읽는 사람은 그 부분만 가지고는 작품을 공감하기도 힘든데 본문의 맥까지 끊기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뷰 전반에 흐르는 글쓴이의 지식과 작품 내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시야는 분명 리뷰가 가진 가치를 평가절하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아프락사스 : 3학점 짜리 교양의 레포트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그 교양 과목에는 [러시아 문학의 이해] 같은 제목이 붙어있겠지요) 러시아 문예사조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모를까 -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기도 했습니다만 -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에게는 그 설명이 지나치게 자세하지 않나 싶습니다. 간간히 붙어있는 주석도 단순히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나 남았다>만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자세합니다.
 
 
18. 어슐러 K.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 - qui-gon
 
 듀론9G : 무려 7페이지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으로 응모되어 오히려 너무 길어서 독자들이 외면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을 만들어낸 리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뷰 자체는 7페이지를 읽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저것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리뷰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여타 다른 리뷰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분명히 쉽지 않은 내용과 어휘를 다루고 있으면서 비슷한 단점을 포함한 다른 글보단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비교적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속의 내용을 언급한 뒤 그 내용을 풀어주기를 반복하고 작품 내용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기 위한 시대적 정황 및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설명함으로 인해 독자들이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 분량이 비해 빈도수는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했어야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고급어휘들이 사용되고있기에 보편성을 만족시키는 리뷰로 보기는 역시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글의 구성도 알차고 단락의 내용이 각각의 소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집중되며 글 전체에 흐르는 작품 내외의 전반적인 소개를 넘어 그 것을 연계하여 풀어낸 설명은 리뷰 자체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훌륭한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아프락사스 : 작가 약력에 대해 불피요한 부분까지 파고 들고 있는 것이 걸립니다. 작가의 아버지가 누구였다는둥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둥 하는 것이 작가 소개에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거나 무슨 전공을 했다거나 하는 것이 도움될 수는 있겠지만요. 오히려 거기에 해당하는 지면을 작품 소개에 할애했다면 더 좋았겠지요. 17편이나 되는 수록작들의 목록을 한 자리에 정리해주는 건 독자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을 소개하지 않을 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책의 목차를 옆에 두고 평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사소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근사한 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해석을 풀어내는 솜씨는, 본 대회에 접수된 원고 중에서는 가장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19. 어슐러 K. 르귄, 어둠의 왼손 - 별밤
 
 듀론9G : 앞선 내이름은 콘라드와 신들의 사회에 대한 리뷰에 비해 상당히 난이도가 낮아진 글로써 조금은 독자들의 보편성을 획득한 리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서 평가한 리뷰와 같이 역시 도입-본문-마무리 식의 구성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고있으며 단락들의 내용 역시 구성된 소제목의 내용에 벗어나지 않아 글이 통일된 느낌을 줍니다. 글의 난이도가 대폭 낮아져서인지 가독성이 반사적으로 올라갔으며 덕분에 너무 어려워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던 것이 날아가 그전엔 가려져있던 작품 내외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통찰을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어 작품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프락사스 : 이렇게 근사한 글을 쓸 수 있었던 평자께서 다른 두 작품에서는 왜 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물론 다른 두 편도 심하게 뒤떨어지는 리뷰는 아니었지만 이 원고에 비할 바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을 평함에 있어 일견 과장되어보이는 수사를 동원하는 것은 여전합니다만 생소한 개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줄었고, 사용된 개념어들도 대부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보다 나중에 제출한 리뷰였기 때문에 보다 세심하게 살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20. 쥘 베른, 쥘 베른 컬렉션 - 눈사태
 
※ 전송된 파일의 제목에서는 <80일간의 세계일주>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본문 첫머리에 <쥘 베른 컬렉션>을 언급하고 있고, 또 본문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어서 제목을 <쥘 베른 컬렉션>으로 달았습니다. 이후 2주 넘도록 평자로부터의 항의가 없었으니 암묵적으로나마 동의를 받은 것이라 해도 되겠지요.
 
 듀론 9G : 역시 널리 알려진 작품을 대상으로 리뷰를 작성했기에 그 가치가 조금 빛이 바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진 통념을 비판하여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가치를 보여준 응모작입니다. 쥘 베른 컬렉션을 다루면서 컬렉션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을 언급하지 않고 몇 몇 작품만을 대상으로 쥘 베른 컬렉션을 읽어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했기에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리뷰 자체는 특별히 질적 저하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짧은 분량에 4개 가량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분부분 삽입하느라 리뷰에서 뭔가 깊은 내용을 다룰 여유가 전혀 없어서 글이 많이 가벼워졌기에 작품의 장점을 피력하는 부분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주는 신뢰나 설득력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글입니다.
 
 아프락사스 : <쥘 베른 컬렉션>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리뷰에서 언급하고 있는 작품은 <80일간의 세계일주>, <지구 속 여행>, <카르파티아 성>의 단 세 작품이더군요. 컬렉션 중 외려 언급되지 않은 작품이 더 많았습니다. (<신비의 섬>이나 <달나라 탐험>, <인도 왕비의 유산>, <지구에서 달까지>) 쥘 베른의 개별 작품이 아닌 <컬렉션>을 대상으로 한 비평에서 수록작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이 작품들의 경우 서사시와는 달리 검색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비평의 독자가 그것들을 알아서 찾아주기를 막연히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읽히고픈 책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건 평자의 기본 소양이며, 평자가 반드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곤 해도 쥘 베른에 대한 평만큼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쥘 베른의 -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게 보였을 - 판타지적 상상력이 사실은 현실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는 점을 언급해주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런 부분은 좀 더 깊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21.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 Blues
 
 듀론 9G : 어려운 이야기 없이 대상 작품이 가진 글 자체만의 가치를 부각시켜 장점을 드러내어 리뷰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글을 한 번은 호기심이 들게 만드는 글입니다. 리뷰를 하면서 반드시 작품의 외적인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고 만약 잘못 늘어놓게 된다면 재미없고 지루한 리뷰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이 글은 이러한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앞선 작품들이 작품 내외의 많은 부분을 아울러 설명했기 때문인지 이 리뷰는 꽤나 담백한 맛이 든다는 생각이 스쳐갔고 중요한 것은 이 리뷰의 글쓴이는 소설 자체가 가져야할 익살과 이야기의 등의 균형이 맞다는 것을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의 글로 강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어볼 것을 자연스럽게 권유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꽤나 부담감이 없다는 것을 꽤 큰 장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프락사스 : 딱히 나무랄 부분이 없습니다. 선정작의 정체성(장르)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무시한다면 무시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줄거리 요약에도, 작품 외적 지식 삽입에도 의존하지 않고서 작품의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게 놀랍군요. 블로그에 신작 소설을 소개하는 포스팅을 쓰려는 분들이 가장 본받을 수 있는 글이었다 생각합니다. '보태기'도 같은 평자의 다른 리뷰에 비해서는 비교적 친절한 편이었고요.
 
 
 
최종평가



(블로그에 올린 그림은 지면 관계상 원래 버전에 비해 좀 더 간략합니다. 자세한 버전을 원하는 분은 DCinside 판타지 갤러리의 게시물(링크)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대상
 
 <바람의 열두 방향>(어슐러 K. 르귄)을 제출한 qui-gon 님. (판갤, 판갈)
 
 최우수상
 
 <어둠의 왼손>(어슐러 K. 르귄)을 제출한 별밤 님. (블로그 nterplanetaries)
 
 우수상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미카게 에이지)를 제출한 9번 환자 님. (블로그 9번환자실)
 
 장려상
 
 <해를 품은 달>(정은궐), <화홍>(이지환)을 제출한 과객 님. (판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코니 윌리스)를 제출한 Blues 님. (판갤, 판갈)

 ※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은 원래 등수대로 수여됩니다.
 ※ 장려상의 경우 최우수상 수상자와 중복되는 관계로 그 다음 등수 등록자가 수상하게 됩니다.


이의제기
 위 심사결과에 대한 의문점은 2008년 1월 19일 자정까지 접수하며, 변동사항이 없을 시 20일날 아침에 부상을 배송합니다. (추후 인증 첨부 예정)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45 관련글 쓰기


지난 해 12월 1일부터 시작했던 원고 접수를 어제 부로 마감했습니다. 12월 10일, 별밤님의 <내 이름은 콘래드>(로저 젤라즈니, 1965) 서평이 접수된 것을 시작으로 총 21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접수된 작품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판갈(www.fangal.org)에 개재되어 있는 해당 게시물로, 이름을 클릭하면 작자의 개인 블로그로 날아갑니다.


[로맨스] 이지환, 화홍 & 정은궐, 해를품은달 - 과객
       
[무협] 김용, 소오강호 - 예니체리
[무협] 김용, 연성결 - Blues

[서사시] 라마야나 - 예니체리 
[서사시] 마하바라타 - 예니체리  
[서사시] 판차탄트라 - 예니체리

[역사] 김상현, 정약용 살인사건 - Blues
[역사]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히스토리언 - 예니체리

[판타지] 고든 R. 딕슨, 드래곤과 조지 - 예니체리
[판타지] 다나카 요시키, 창룡전 - 예니체리
[판타지] 미카게 에이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 9번 환자
[판타지] 미하엘 엔데, 모모 - 예니체리
[판타지] 존 밀턴, 실낙원 - 예니체리

[SF] 로저 젤라즈니, 내이름은 콘래드(1965) - 별밤
[SF] 로저 젤라즈니, 신들의 사회(1967) - 별밤
[SF]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피용 - Srinberk
[SF] 스뜨루가츠끼 형제,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이나 남았다 - 재건
[SF] 어슐러 K.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 - qui-gon
[SF] 어슐러 K. 르귄, 어둠의 왼손(1969) - 별밤
[SF] 쥘 베른, 쥘베른 컬렉션 - 눈사태
[SF]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 Blues




판평대(판타지 비평 대회)에 대해서는 판갤의 공고문(http://gall.dcinside.com/list.php?id=fantasy&no=302627&page=1)을 확인해주세요.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40 관련글 쓰기

최근 며칠간 방문자 수가 꽤 늘어났다. 판타지 비평 대회 공고문에 블로그 주소를 실어놓았더니, 그걸 보고 사람들이 들어온 모양이다. 이오공감에까지 올라간 글을 내 블로그 홍보하는데 쓴 셈이 되어버렸으니...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방문자들에게 괜히 쑥쓰럽고 미안하다. 링크한 주소로는 '판갤의 예비 작가들을 위한 안내서(판작안)'가 열리도록 해놨으니 그들이 낚인 기분이라도 느끼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

 판타지 비평 대회 공고문을 실은 후 닷새동안 내 블로그의 방문자 수는 약 400이 넘게 올랐다. 고무적인 상황이다. 내 스스로 홍보글을 여기저기 실어나르긴 했지만 판타지란 장르에 이 정도나마의 관심이 쏠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더욱이, 그 공고는 심사기준조차 확정되지 않은 엉성한 글이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부상품 사진도 며칠 뒤에야 업데이트되었다)

 그런 관심에 비해 주최 측(이라고 해봐야 거의 나 혼자지만)의 준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불과 3일이 남았을 뿐이건만 심사기준은 커녕 같이 의논해야 할 심사위원부터 충분히 섭외하지 못한 상황이고... 어떻게 면식은 터고 지내는 분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이 상당히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다.

 "남의 소설을 비평한다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그 비평을 다시 비평해야 한다니...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_- "


 ...난 그걸 듣고서야 깨달았다. 한 편으론 내가 정말 '대책없이' 나섰구나 싶기도 하고.

P.S.

 이 포스트를 쓰다가 갑자기 생각난 김에 메일함을 뒤져봤는데, 황금가지 출판사 온 메일이 있었다. 황금가지에서 최근에 낸 『티가나』 3질을 스폰해주겠다고 하는데,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무슨 공신력 있는 대회도 아니고 일개 팬이 진행하는 비평 대회에 스폰을 해주겠다 자청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마운 일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제법 부담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금가지도 국내의 팬덤들에게 아주 관심을 끊은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내심 기쁘기도 하다.

'일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책을 '짧고 굵게' 만드는가!  (3) 2007/12/28
판평대 관련 잡담 하나  (5) 2007/11/27
예비 도서 목록 정리  (2) 2007/11/14
판갤을 위한 추천 도서 목록?  (0) 2007/11/01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1 관련글 쓰기

  1. 웹 서핑을 하다 보면, 디씨에 대한 평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찌질이들의 집합소다, 다짜고짜 반말이다, 생산성 없이 잡담이나 지껄이며 놀 뿐이다, 괜히 남의 사이트 가서 훼방 놓기 좋아한다 등등... 물론 판갤(판타지 갤러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딱히 '타 사이트 비방'을 회칙으로 내건 곳이 아닌 이상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악동' 판갤에 대한 원성을 토하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처럼 판갤이 '사건(사고)'을 많이 치는 시즌이라면 특히나.

  2. 물론 판갤에 대한 악평들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디씨'의 기본 속성들은 다 갖춘 데다 - 이를테면 반말 사용이나 욕설 같은 것 - 타 사이트에 대한 높은 공격성까지 지니고 있으니, 판타지 팬덤들이 판갤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판갤에 여러 차례 습격당했던 커그[각주:1]나 시드 노벨[각주:2] 같은 커뮤니티가 특히 그렇다.) 자기들끼리 놀 때도 매너란 찾아볼 수 없고, 남의 집에 와서 깽판놓기를 좋아하기까지 하는 이웃에 무한정 애정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3. 그러나 판갤에 대한 이러한 불만들이 완전히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판갤 내부의 반말, 욕설 사용 등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사실 게시판에서 서로 반말을 쓰는 것이 디씨 안에서야 크게 두드러지는 현상이 아니지만, '예의 바른 커뮤니티'에 익숙한 이들은 이 대목을 두고 판갤의(혹은 디씨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투덜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수하는 상호 존댓말과 판갤의 상호 반말은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에는 그 대전제에 '상호 동등'의 원칙이 깔려 있다. 서로 반말을 쓰는 행위 역시 이 원칙을 전제로 한다. 다른 커뮤니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중학생 네티즌 A와 30대 변호사 네티즌 B는 서로 동등한 판갤러일 뿐이며, 말을 트고 놀 뿐이다. 겉으로는 무례해보이더라도 추구하는 바는 '존댓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존댓말을 하건 반말을 하건, 그것은 결국 커뮤니티의 선택사항이지 개념, 무개념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4. '멀쩡히 잘 지내다가' 판갤에 습격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미안하지만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진 않다. 판갤이 이유 없이 습격을 감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리딩판타지'[각주:3]에서 일으킨  '뷁커드빠 600플 낚시'[각주:4] 사건은 비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공격처럼 이루어지긴 했지만 사실 한번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까였던 커그는 그 폐쇄성과 친 오타쿠·동인녀 성향으로 인해 다소 점잖은 팬덤 사이에서조차 조심스럽게 이야기되던 커뮤니티였고, 환상처단자 표절 의혹[각주:5]이나 이글루스 광고 블로그 논쟁[각주:6]을 일으켜 최근에 대대적으로 까였던 시드 노벨의 경우는 도대체 누가  더 문제인지 모를 지경이다.

    냉정히 생각해보라. 판갤이 문제였는가?

  5. 그럼에도 왜 판갤의 이미지는 여전히 '찌질이'일 뿐인가.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판갤에 대한 선입견이다. 외부인들은 판갤에서 좋은 자료가 나온다 해도 그것을 '진흙 속의 진주', '시궁창 속에서도 가끔 나오는 개념' 정도로 치부한다. 즉, 자신들이 알고 있는 '찌질한 디씨'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판갤러들은 예외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설령 판갤이 아무리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해도 판갤의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의 머릿속에서 판갤은 이미 '찌질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판타지 커뮤니티 중에서 판갤(사실은 디씨 전체)에게만 이상하리만큼 가혹하게 적용되는 '생산성의 논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판갤(혹은 디씨)를 '하릴없이 노는 백수·찌질이들의 놀이터'라고 여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개념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진다 한들 판갤러의 대부분이 그냥 그저 그런 디씨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커뮤니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커뮤니티건 귀담아들을만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고, 대개는 잡담(판갤 식으로는 뻘글)이나 쓰는 라이트 유저가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자기 커뮤니티의 '비생산성'에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판갤이 거의 신성화되다시피 하던 이영도 작품의 표절 문제를 지적하고(그것이 옳든 그렇지 않든) 시드 노벨의 이면을 까발리며, 사재를 털어 여섯 번 넘게 판단대(판타지 단편 대회)를 열었다. 그들이 욕하던 그 찌질이들이 말이다. 그 '찌질이'들이 판타지 팬덤 전체에 하나둘씩 기여들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P.S.

 본문은 판갤을 중심으로 썼지만 사실 디씨에 대한 편견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비단 판갤뿐이 아니다. 디씨인사이드가 아직 카메라 리뷰 사이트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을 무렵부터 함께 해온 '유서깊은' 갤러리들(각종 사진 갤러리 등)는 그 이용자층부터가 스갤 막갤 등과 전혀 다르지만, '디씨인사이드'라는 이름 때문에 이상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보다는 좀 덜 억울할 도서갤, 과학갤 등의 개념갤도 마찬가지. 안다 하는 사람들도 그곳을 디씨의 청정 지역 정도로 치부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디씨의 자유로운 풍토와 개념갤들의 탄생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디씨의 개념갤들을 보고 진흙 속의 진주, 시궁창 속의 보석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진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진흙이 없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1. <비상하는 매>의 홍정훈, <카르세아린>의 임경배 등의 소위 '1세대 작가'들 여럿이 모여 만든 작가 커뮤니티. 그 이후로 끊임없이 작가들을 흡수해 공룡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본문으로]
  2. 한국형 라이트 노벨을 표방하고 출범한 라이트노벨 브랜드. 공모전도 개최하고 있다. [본문으로]
  3. DRC가 사라진 지금으로서는 네이버의 '피눈물을마시는새' 카페와 함께 이영도 팬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사이트. [본문으로]
  4. 뷁빠 600플 대첩이라고도 한다. 평소 이영도 팬덤들이 다른 판소 작가들을 무시하고 이영도만을 추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판갤러 뷁커드빠가 대표적 이영도 팬덤 사이트인 리딩판타지를 크게 낚은 사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사실 D&D룰을 표절한 소설이 아니냐'는 것이 그 내용이었으니 낚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600플은 물론 뷁커드가 '낚은' 리플의 숫자이다. [본문으로]
  5. 시드 노벨에서 출간한 <환상처단자>가 White Wolf 사의 TRPG 룰인 WoD의 주요 설정 및 세계관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판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한동안 판갤, 시드 노벨, 이글루스 도서 밸리를 시끄럽게 하다가 현재는 시드 노벨과 White Wolf 양 사의 문제로 넘어간 상태이다. 자세한 것은 판갤러 우라늄의 포스트(http://gdzergling.egloos.com/910431)를 참조. [본문으로]
  6. 이글루스 도서 밸리에 별 영양가도 없는 시드 노벨 글이 많은 것에 불만을 품은 도서 밸리 이용자들과 판갤러들이 그 원흉으로 시드 노벨이 개설했던 광고용 블로그를 지목하면서 일어난 논쟁. 이글루스 약관에는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니 명백히 약관 위반이기도 했다. 앞서 소개된 두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시드 노벨 측에서는 판갤러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으로 IP 차단을 먹이고 있다 [본문으로]

'일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비 도서 목록 정리  (2) 2007/11/14
판갤을 위한 추천 도서 목록?  (0) 2007/11/01
판갤을 위한 변명  (6) 2007/10/30
번역자의 자질에 대한 문제  (0) 2007/10/24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8 관련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