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특별한 결속감을 만들며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제국주의 언어는 여전히 지방어이고 또한 많은 언어 중 특정한 지방어이다.
-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3, 173면.
본 발표에서는 근대 한국과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전제하고자 한다. 첫째, 근대 동아시아 국민국가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개론적 설명이다. 본 발표의 2장에서는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전환이 이중 언어 체제의 극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둘째,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의 일본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소개이다. 제국 일본의 언어조차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전에는 확고한 실체를 가지지는 못했다. 본 발표의 3장에서는 일본에서의 영어 도입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어떠한 시도를 했는지 설명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실이 비단 한국 사회만의 특수상황이 아니라, 후발 근대국가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본 발표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4장과 5장에서는 근․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이 여전히 전근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는 외국어 능력이 매국노/기회주의자의 초상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5장에서는 탈민족주의자를 표방하는 복거일조차 제국주의적 언어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바꿔 말해 로고스로 인정받지 못한 말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자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인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 폴리스의 시민권자들이 로고스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때,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것은 ‘로고스’가 공동체 구성원을 형성하는 논리, 즉 누군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도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행위는 정치적 능력이 입증되는 감성의 경계를 추적하기 위한, 이를테면 무엇이 말이고 외침인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갈등이다.”1 서로 다른 폴리스에 소속된 자는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한다. 역으로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하는 자들은 서로 다른 폴리스를 구성한다. 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에서 이중 언어 체제가 일반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전근대 국가의 상위 계급들은 자국의 하위 계급보다 동 문화권 내 타국의 상위 계급에 보다 친밀감을 느꼈고, 그것이 전근대사회의 초국가적 보편 문어의 형성에 기여했다. 전근대 유럽의 상위 계급은 유럽 보편 문어인 라틴어를 통해, 전근대 동아시아의 상위 계급은 동아시아 보편 문어인 한문을 통해 타국의 상위 계급과 교류함과 동시에 자국의 피지배인들과 자신들을 구분지었다. 근대 이전까지 자국어는 많은 경우 하위 계급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즉 보편 문어와 자국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제도 하에서는 전근대 국가와 같은 명백한 신분 질서가 인정되지 않는다. 한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동등한 ‘국민’으로서 묶일 것을 요구받았다. 즉, 국민국가는 전근대국가와 달리 하나의 폴리스로 묶여야 했다. 따라서 이중 언어 체제는 근대 국가의 문제 상황이 된다. 근대 국가의 공용어 담론, 곧 ‘국어(國語, National Language)’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거의 모든 구체제의 성과가 부정되는 와중에도 부르봉 왕조가 채택했던 라틴어 폐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던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2 서유럽에서의 근대화는 라틴어의 무력화를 통한 이중 언어 체제의 해체, 곧 초국가적 폴리스의 해체를 통한 단일 국가 체제의 완성이기도 했다.
때문에 근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한문 관련 논쟁 – 이를테면 중국의 백화문 논쟁, 개화기 조선과 메이지 일본의 한문 전용/한문․자국어 혼용/자국어 전용론 논쟁 - 과 그 이후의 상황을 근대 서유럽의 라틴어 논쟁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문의 지위가 격하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전근대적 관념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후발국가/식민지는 서유럽 근대 국가들처럼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중화 질서의 쇠퇴로 인해 한문이 보편 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제도 자체는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근대 국민국가/국어 담론은 여전히 초국가적 폴리스/이중 언어 체제의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가 국가 내부에서 작동되었던 반면 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는 국가간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근대국가에서는 상위 계급만의 ‘보편 문어’가 아닌 국가 내 ‘공용어’로서의 외국어 도입론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근대의 보편 문어, 곧 제국의 언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체였다.
일본의 입말은 제국(帝國)의 인민의 점차 증대하는 필요에 적합하지 않으며, 음성 알파벳에 의하더라도 글말로서 충분히 유용한 것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그래서 우리들 중에는 시대의 보조를 함께 맞추려고 한다면, 풍부하고 널리 사용되는 유럽어 중 하나를 채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이제까지의 일본의 모든 학교는 수세기에 걸쳐서 중국어를 사용해왔다. 정말로 기묘하게도 우리들은 교육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언어에 의한 학교도 서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4(강조는 인용자)
일본에 있어서의 근대 문명의 발걸음은 이미 국민의 심부에까지 달해 있다. (……)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결코 우리들의 열도 밖에서는 사용되는 일이 없는 우리들의 빈곤한 언어는 영어의 지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 (……) 지식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지(知)적 민족은, 서양의 학문․예술․종교라는 귀중한 보고에서 주요한 진리를 획득하려 노력함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취약하고 불확실한 매체에 의존할 수는 없다.5(강조는 인용자)
이 책에서 바바는 본문을 통해 구어 일본어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서문에서 영어를 일본의 공용어로 채택했을 때 생길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함으로써 모리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했다. 이중 전자는 모리의 주장을 완전히 접하지 못했던 바바가 모리 역시 영어의 문법․정서법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나온 시도였지만, 후자는 모리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이중 언어 체제의 폐해를 간파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바바는 역사상 어떤 민족이 자청하여 타민족의 언어를 채용한 적은 없었으며 “설령 어느 민족이 정복자의 강대한 힘에 굴하여 언어의 채용을 강요당하는 경우에도 그 민족이 몇 백 년 동안이나 써 왔으며 그 때문에 가장 편리한 자민족의 언어를 버리는 일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9 즉 모리의 주장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바는 그럼에도 영어 도입을 강행할 경우 일본에 일종의 이중 언어 체제를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고, 영어를 배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상층 계급과 그렇지 못한 하층 계급 간의 분리가 일어나리라 보았다. 모리의 서신 상대였던 휘트니가 모리의 주장에 대해 일본의 서구 문명 섭취를 위해서는 완전한 영어의 도입을 통한 영어/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을 상기해보면,10 휘트니에 비해 바바 쪽이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한 훨씬 깊은 통찰을 했던 것이다.
모리 아리노리와 바바 타쓰이의 주장에 한 가지 공통된 전제가 있다면, 이들의 주장에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거의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리 아리노리가 종래 일본에서 쓰이던 언어(한문/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통일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 반대편의 바바 타쓰이는 영어 도입이 영어/일본어라는 이중 언어 체제를 낳음으로써 역시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리라는 반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전근대적 국가관을 충분히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 국민국가에 대해 사고해야 했다. 이는 식민지시기에 이미 조선인들 사이에서 전근대 조선 왕조가 인기를 잃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이 이미 문제시했던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과제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조선은 독립을 맞이하지만, 이것이 바로 조선에 새로운 독립국, 곧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광복 이후 남/북한 지역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한반도 지역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였다. 즉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본이 청으로부터 계승받았던 제국(帝國)의 지위를 미군정과 소군정이 계승한 셈이었다.
환자도 일본말 모르는 축은 거의 오는 일이 없었지만 대의 관계는 물론 집안에서도 일체 일본말만을 써왔다. 해방 뒤 부득이 써 오는 제 나라 말이 오히려 의사 표현에 어색함을 느낄 만큼 그에게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략)“잠꼬대까지 국어로 할 정도가 아니면 이 영예로운 기회야 얻을 수 있겠소.” 하던 국민 총력 연맹 지부장의 웃음 띤 치하 소리가 떠올랐다.그 순간, 자기 자신은 아이들을 소학교로부터 일본 학교에 보낸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던 것인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스텐코프는 이인국 박사의 손은 부서져라 쥐면서 외쳤다.“꺼비딴 리, 스바씨보.”이인국 박사는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아진, 아진……오첸 하라쇼.”
“닥터 리는 영어를 어디서 배웠습니까?”“일제 시대에 일본말 식으로 배웠지요. 예를 들면 ‘잣도 이즈 아 걋도’식으루요.”“그런데 지금 발음은 좋은데요. 문법이 아주 정확한 스텐더드 잉글리시입니다.”그는 이 말을 들을 때 문득 스텐코프의 말이 연상됐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 조상을 가진다는 브라운 씨는 알(R) 발음을 그렇게 나타내지 않는 것 같게 여겨졌다.“얼마 전부터 개인 교수를 받고 있습니다.”“아, 그렇습니까?”이인국 박사는 자기의 어학적 재질에 은근히 자긍을 느꼈다.
기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조선어가 불안정한 상황, 나아가서는 조선이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출현한 인간형이다. 말하자면 조선이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데다가 조선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갖춰주지 못할 때, 조선 상위에 있는 – 즉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듯 보이는 - 제국에 접촉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그 접촉 수단은 일본어․소련어․영어, 곧 제국의 언어였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내면화했던, 혹은 내면화할 수 있었던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 중이던 조선-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전근대적․탈국가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족어가 누리는 공용어의 위치를 국제어가 대신하게 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은 진화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일종의 언어진화론에 기반을 둔다. 그에 따르면 국제어가 민족어를 대체하는 상황은 자연 도태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22 “영어가 모든 사회들에서 공용어로 쓰이게 되면, 언어의 장벽으로 보호된 조그맣고 비효율적인 문학 시장들은 하나의 커다란 범지구적 시장이 될 것”이며, 도태되는 민족어에 집착하는 자는 ‘박물관 언어’만을 가지리라는 것이다.23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에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긴 한다. 그러나 복거일은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복거일은 “그러나 그런 이중 언어bilingual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며 “정작 우리 시민들이 크게 치러야 할 것은 감정적 비용이다.”라고 주장한다.24 이중 언어 체제는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과도기일 뿐, 이내 영어 공용어 체제로 전환되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어 격리English Divide’ 현상, 즉 가정의 재력에 따라 영어 습득 수준이 차이나는 현재 상황을 영어 공용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며, 자기 논지에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다.25 복거일이 이야기하는 영어 공용의 수단은 기껏해야 “① 법, 공공기관의 서식, 도로표지, 상점의 안내문, 식당의 식단과 같은 정보들의 국영문 병용. ② 국지적 공용을 위한 실험적 사업들의 추진(경제특구나 무역자유항에서의 영어 공용, 영어 전용 학습 시설, 영어 강의 등). ③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에서의 영어 교육 심화. ④ 영어 방송의 확대.” 정도여서 영어공용어론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약해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자기 논지의 약점이 될만한 부분을 우회하고 있다고 할까.
기실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은 한국어가 조선어에서 영어로 완전히 교체된 뒤의 상황을 상정한다. 그러나 그 완전한 교체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주장은 하나의 가설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가설’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어느 오래된 농담을 연상시킨다. 맨몸으로 무인도에 표류된 경제학자가 통조림을 발견하고서 말한다; “우리가 병따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나 현재 병따개를 갖지 못한 경제학자에게 통조림을 딴 뒤의 장밋빛 미래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까?
둘째,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이 전제하는 세계주의/국제어주의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갖는가의 여부. 복거일의 세계주의/국제어주의는 폐쇄된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작다는 점, 그리고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통해 제1세계는 물론 제3세계의 비영어권 국가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6. 결론
그러나 한편으로 후발 근대국가/식민지는 제국(帝國)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즉 후발 근대국가/식민지에 이르러 이중 언어 문제는 국민국가 담론과 결부되어,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어느 초국가적 공동체 혹은 제국과 관계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른바 영어‘공용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의 중심이었던 제국(帝國)의 초상은 오히려 영어공용어론에서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요구하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전광용의 소설에서 보이는 이중언어자에 대한 냉소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감정이라면, 복거일은 탈민족주의적 근대국가관에 바탕하여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복거일의 주장에서도 제국(帝國)의 초상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다. 복거일이 목표로 삼는 세계 시민/세계보편성에의 합일이 결국 제국 시민/제국적 보편성에의 편입을 의미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보다 주의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 자크 랑시에르, 저, 유재홍 옮김,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1면. [본문으로]
- 이연숙 저, 고영진․임경화 역, 「머리말」, 『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 소명출판, 2006, 17면 참고. [본문으로]
- 이연숙, 앞의 글, 20면. [본문으로]
- 森有礼, 『森有礼全集』제1권, 宣文堂書店, 1972, 310면. 이연숙, 위의 책 29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森有礼, 『森有礼全集』제3권, 宣文堂書店, 1972, 266면. 이연숙, 위의 책 32~33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이연숙, 「국어 이전의 일본어」, 위의 책, 30면. [본문으로]
- 이연숙, 위의 글, 33면. [본문으로]
- 이연숙, 위의 글, 26~29면. [본문으로]
- 馬場辰猪, 『馬場辰猪全集』제1권, 岩波書店, 1987, 213면. 이연숙, 위의 책, 40면에서 재인용. 위의 인용문은 『An 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초판 서문의 일부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민족’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휘가 영어 원문에서 어떤 표현을 번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약 바바 타쓰이가 Nation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었다면 중역된 인용구의 ‘민족’과는 다소 다른 맥락을 띄었을 수도 있다. Nation이라는 어휘는 19세기 후반의 일본에서 ‘민족’이라 번역되었지만, 일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바 없으며 전적으로 영어로 공부했던 바바 타쓰이가 그러한 번역에 동의했을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아쉽게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본 발표자의 단순한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본 발표자가 접한 인용문은 이연숙이 『馬場辰猪全集』제1권에서 발췌한 일역본을 『국어라는 사상』의 두 번역자가 한국어로 중역한 글이기 때문이다. 바바 타쓰이가 2판에서는 이 서문을 삭제해버린 까닭에 원문과 대조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 [본문으로]
- 이연숙, 위의 글, 31면. [본문으로]
-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100~112면. [본문으로]
-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267면. [본문으로]
- 이상혁, 「‘한국어’ 명칭의 위상 변천과 그 전망」, 『국제어문』Vol.46, 국제어문어학회, 2009, 176~179면. [본문으로]
- 이상혁, 위의 글, 175면. [본문으로]
- 이혜령, 「채만식의 〈미스터 방〉과 김동인의 〈망국인기〉, 해방 후 일본어가 사라진 자리」, 『내일을 여는 역사』Vol.32, 내일을 여는 역사, 2008, 150면. [본문으로]
- 복거일,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150~151면. [본문으로]
- 복거일,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78~81면. [본문으로]
- 김현, 「1988년 4월 8일」,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본문으로]
-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16면. [본문으로]
- 복거일, 「문학의 진화와 확산」,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03면. [본문으로]
- 이연숙, 앞의 글, 31면. [본문으로]
- 복거일, 위의 글, 102면. [본문으로]
- 복거일, 위의 글, 104~105면. [본문으로]
-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위의 책, 142~143면. [본문으로]
- 복거일, 위의 글, 147~148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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