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문서는 2011년 6월 2일,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과 현대비평론 수업에 사용된 발제문입니다. 무단 인용했다가 걸린 분이 깎인 학점은 제가 보상해드리지 않습니다. -_-;;
 


 
보편어론을 통해 본 한국의 근대
- 근대 국민국가는 이중 언어 체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나



목차

1. 서론
2. 상상의 공동체: 국민국가와 언어
 가. 폴리스와 로고스
 나. 국민국가의 형성 : 부정된 이중 언어 체제
 다. 후발 국가/식민지의 상황 : 지속된 이중 언어 체제
3. 메이지 일본의 영어 담론
 가.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
 나. 바바 타쓰이의 이중 언어 체제 비판
4. 해방 직후 한국의 영어 담론
 가. 미완의 독립, 미완의 근대국민국가화
 나. 불안정한 조선어
 다. 외국어 능통자와 매국노의 초상
5.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
 가. 광복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나. 세계주의적 국제어론
 다. 유토피아적 영어 공용어론 –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기
6. 결론
7. 참고자료




언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특별한 결속감을 만들며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제국주의 언어는 여전히 지방어이고 또한 많은 언어 중 특정한 지방어이다.
-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3, 173면.



1. 서론
 이 발표의 목적은 전광용의 소설과 복거일의 에세이를 통해 근․현대 한국에서의 영어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설명하는데 있다. 

 본 발표에서는 근대 한국과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전제하고자 한다. 첫째, 근대 동아시아 국민국가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개론적 설명이다. 본 발표의 2장에서는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전환이 이중 언어 체제의 극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둘째,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의 일본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소개이다. 제국 일본의 언어조차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전에는 확고한 실체를 가지지는 못했다. 본 발표의 3장에서는 일본에서의 영어 도입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어떠한 시도를 했는지 설명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실이 비단 한국 사회만의 특수상황이 아니라, 후발 근대국가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본 발표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4장과 5장에서는 근․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이 여전히 전근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는 외국어 능력이 매국노/기회주의자의 초상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5장에서는 탈민족주의자를 표방하는 복거일조차 제국주의적 언어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2. 상상의 공동체, 국민국가와 언어
 가. 폴리스와 로고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언어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때의 언어란 단순한 발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짐승도 입을 통해 소리를 낼 수 있지만 동물 애호가가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그것을 ‘언어’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어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서만이 비롯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어떤 자가 낸 소리를 ‘언어’로서 인식할 때 우리는 그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와 동등한 자리에 설 자격을 갖춘 자로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언어를 단순한 발성과 구분하여 로고스(λόγος, logos)라고 불렀다. 이 로고스가 가능한 자만이 시민권자로서, 곧 폴리스(πόλις, polis)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일에 관여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해 로고스로 인정받지 못한 말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자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인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 폴리스의 시민권자들이 로고스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때,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것은 ‘로고스’가 공동체 구성원을 형성하는 논리, 즉 누군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도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행위는 정치적 능력이 입증되는 감성의 경계를 추적하기 위한, 이를테면 무엇이 말이고 외침인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갈등이다.”[각주:1] 서로 다른 폴리스에 소속된 자는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한다. 역으로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하는 자들은 서로 다른 폴리스를 구성한다. 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에서 이중 언어 체제가 일반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나. 국민국가의 형성 : 부정된 이중 언어 체제
 전근대 봉건 국가는 신분제 질서 하에 운영되었다. 다시 말해 국가 안에 포함되되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정되지 않는, 이를테면 노예 같은 인간들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전근대 봉건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귀족․식자/평민․노예의 신분질서가 엄연한 이상 굳이 공통의 언어로 국가 내 구성원을 묶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전근대사회의 신분제 질서 하에서 이중 언어 체제는 딱히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전근대 국가의 상위 계급들은 자국의 하위 계급보다 동 문화권 내 타국의 상위 계급에 보다 친밀감을 느꼈고, 그것이 전근대사회의 초국가적 보편 문어의 형성에 기여했다. 전근대 유럽의 상위 계급은 유럽 보편 문어인 라틴어를 통해, 전근대 동아시아의 상위 계급은 동아시아 보편 문어인 한문을 통해 타국의 상위 계급과 교류함과 동시에 자국의 피지배인들과 자신들을 구분지었다. 근대 이전까지 자국어는 많은 경우 하위 계급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즉 보편 문어와 자국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제도 하에서는 전근대 국가와 같은 명백한 신분 질서가 인정되지 않는다. 한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동등한 ‘국민’으로서 묶일 것을 요구받았다. 즉, 국민국가는 전근대국가와 달리 하나의 폴리스로 묶여야 했다. 따라서 이중 언어 체제는 근대 국가의 문제 상황이 된다. 근대 국가의 공용어 담론, 곧 ‘국어(國語, National Language)’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거의 모든 구체제의 성과가 부정되는 와중에도 부르봉 왕조가 채택했던 라틴어 폐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던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각주:2] 서유럽에서의 근대화는 라틴어의 무력화를 통한 이중 언어 체제의 해체, 곧 초국가적 폴리스의 해체를 통한 단일 국가 체제의 완성이기도 했다.

 다. 후발 국민국가/식민지 : 지속된 이중 언어 체제
 동아시아의 후발근대국가/식민지에서는 근대화 문제가 유럽의 그것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후발근대국가/식민지가 근대 국가 제도를 완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진 제국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정에 기인했다. 비록 청 제국이 몰락함으로써 ‘중화(中和) 질서’가 붕괴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전근대적 국가간 위계질서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청 제국의 지위를 서구 근대 국가나 제국 일본이 대체했을 뿐 여전히 선진 제국을 의식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중화 질서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근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한문 관련 논쟁 – 이를테면 중국의 백화문 논쟁, 개화기 조선과 메이지 일본의 한문 전용/한문․자국어 혼용/자국어 전용론 논쟁 - 과 그 이후의 상황을 근대 서유럽의 라틴어 논쟁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문의 지위가 격하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전근대적 관념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후발국가/식민지는 서유럽 근대 국가들처럼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중화 질서의 쇠퇴로 인해 한문이 보편 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제도 자체는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근대 국민국가/국어 담론은 여전히 초국가적 폴리스/이중 언어 체제의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가 국가 내부에서 작동되었던 반면 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는 국가간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근대국가에서는 상위 계급만의 ‘보편 문어’가 아닌 국가 내 ‘공용어’로서의 외국어 도입론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근대의 보편 문어, 곧 제국의 언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체였다.


3. 메이지 초기 일본의 영어 담론
 가.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
 메이지 유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어의 지위는 일본 내에서조차 안정되지 못한 편이었다. 이는 전근대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문이 문어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구어(口語)에 대해 체계적인 어문학적 지식을 쌓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쉽게 말해 한문을 폐지한다고 해도 일본의 구어(口語)가 이를 대체할만한 문어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는 일본의 구어를 통한 언어적 공동체의 형성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국어’란 이러한 의심을 힘으로 부정하기 위하여 창조된 개념이라고조차 말할 수 있다.”[각주:3]

 메이지 초기 미국에 있던 모리 아리노리가 내놓은 영어 채용론은 이러한, 일본어의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나타난 주장이었다. 모리 아리노리(森有礼, 1847 ~ 1889)는 변리공사(辨理公使)로서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언어학자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William Dwight Whitney, 1827 ~ 1894)에게 보낸 1872년 5월 21일자 서한과 영문 저작 『일본의 교육』(Education in Japan, 1873)의 서문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영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하의 두 인용문은 각각, 휘트니에게 보낸 서한과 『일본의 교육』 서문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일본의 입말은 제국(帝國)의 인민의 점차 증대하는 필요에 적합하지 않으며, 음성 알파벳에 의하더라도 글말로서 충분히 유용한 것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그래서 우리들 중에는 시대의 보조를 함께 맞추려고 한다면, 풍부하고 널리 사용되는 유럽어 중 하나를 채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이제까지의 일본의 모든 학교는 수세기에 걸쳐서 중국어를 사용해왔다. 정말로 기묘하게도 우리들은 교육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언어에 의한 학교도 서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각주:4](강조는 인용자)
 일본에 있어서의 근대 문명의 발걸음은 이미 국민의 심부에까지 달해 있다. (……)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결코 우리들의 열도 밖에서는 사용되는 일이 없는 우리들의 빈곤한 언어는 영어의 지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 (……) 지식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지(知)적 민족은, 서양의 학문․예술․종교라는 귀중한 보고에서 주요한 진리를 획득하려 노력함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취약하고 불확실한 매체에 의존할 수는 없다.[각주:5](강조는 인용자)

 즉 모리는 ‘중국어(漢文)’에 침식되었던 ‘빈곤한’ 언어가 메이지 일본이 추구하던 바, 곧 근대 국민국가화라는 목적의 장애물이 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모리의 일본 언어 비판이 곧바로 일본어 폐지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모리는 영어가 ‘일본어’를 대체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한 적이 없었다. 또한 모리가 일본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던 영어는 제국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일본의 언어환경에 맞게 문법․정서법적으로 간략화함으로써 철저히 일본어화한 간이 영어(Simplified English)였다.[각주:6]

 모리가 주창한 간이영어론의 목적은 일본의 언어에서 한문의 영향을 제거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에 적합한 언어가 신생 근대국가 일본의 언어, ‘일본어’가 되게끔 하는데 있었다. 이는 메이지 초기 지식인이었던 모리가 종래 일본에서 쓰이던 구어를 ‘일본어’와 동일시하지 않았기에 때문에 나온 주장이었다.[각주:7]
 

 나. 바바 타쓰이의 이중 언어 체제 비판
 모리의 주장은 당대 일본 사회에서 소위 ‘일본어 폐지론, 영어 채용론’으로 이해되어 후대 일본 학자들의 비난을 샀다.[각주:8]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거의가 모리의 이후 세대, 즉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확립되고 일본의 구어를 일본어와 동일시하는 관점 또한 보편화 된 뒤에 나온 주장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당대인으로서는 바바 타쓰이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인 학자 중에서 모리의 주장에 대한 감정적 대응 이상의 학술적 비판을 내놓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리 아리노리의 논의가 영어권에서 영어로 처음 출판될 당시, 영국 유학생 바바 타쓰이(馬場辰猪, 1850 ~ 1888)라는 세 살 연하의 일본인이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영어 사용자였던 덕에 일본인으로서는 모리의 논의를 거의 최초로 접할 수 있었던 바바 타쓰이는 모리의 구어 일본어 비판에 대한 체계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영어로 『An 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日本語文典, 1873)라는, 최초의 일본어 문법서를 내놓은 것이다. 

 이 책에서 바바는 본문을 통해 구어 일본어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서문에서 영어를 일본의 공용어로 채택했을 때 생길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함으로써 모리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했다. 이중 전자는 모리의 주장을 완전히 접하지 못했던 바바가 모리 역시 영어의 문법․정서법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나온 시도였지만, 후자는 모리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이중 언어 체제의 폐해를 간파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바바는 역사상 어떤 민족이 자청하여 타민족의 언어를 채용한 적은 없었으며 “설령 어느 민족이 정복자의 강대한 힘에 굴하여 언어의 채용을 강요당하는 경우에도 그 민족이 몇 백 년 동안이나 써 왔으며 그 때문에 가장 편리한 자민족의 언어를 버리는 일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각주:9] 즉 모리의 주장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바는 그럼에도 영어 도입을 강행할 경우 일본에 일종의 이중 언어 체제를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고, 영어를 배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상층 계급과 그렇지 못한 하층 계급 간의 분리가 일어나리라 보았다. 모리의 서신 상대였던 휘트니가 모리의 주장에 대해 일본의 서구 문명 섭취를 위해서는 완전한 영어의 도입을 통한 영어/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을 상기해보면,[각주:10] 휘트니에 비해 바바 쪽이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한 훨씬 깊은 통찰을 했던 것이다.

 모리 아리노리와 바바 타쓰이의 주장에 한 가지 공통된 전제가 있다면, 이들의 주장에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거의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리 아리노리가 종래 일본에서 쓰이던 언어(한문/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통일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 반대편의 바바 타쓰이는 영어 도입이 영어/일본어라는 이중 언어 체제를 낳음으로써 역시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리라는 반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4. 해방 직후 한국의 영어 담론
가. 미완의 독립, 미완의 근대 국민국가화
 일본의 근대화가 ‘전근대 국가(막부 체제)→메이지 유신→근대 국민국가(일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전근대 국가(조선)→식민지 체제→근대 국민국가(한국)’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었던 근대 이행기 내지는 전근대/근대간 완충지대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생략되어 있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던 반면, 식민지 시대 내내 독립국에 대한 담론이 통제되었던 한국은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곧바로 근대 국민국가라는 제도와 맞닥뜨려야 했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전근대적 국가관을 충분히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 국민국가에 대해 사고해야 했다. 이는 식민지시기에 이미 조선인들 사이에서 전근대 조선 왕조가 인기를 잃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이 이미 문제시했던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과제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조선은 독립을 맞이하지만, 이것이 바로 조선에 새로운 독립국, 곧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광복 이후 남/북한 지역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한반도 지역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였다. 즉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본이 청으로부터 계승받았던 제국(帝國)의 지위를 미군정과 소군정이 계승한 셈이었다.

나. 불안정한 조선, 불안정한 조선어
 이런 정치적 상황 하에서 조선어의 지위는 대단히 불안정했다. 물론 해방 후 한반도에서 조선어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전후 문학 비평가 1세대였던 유종호(1935 ~ )는 해방 후 상황이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회고한다.[각주:11] 식민지 시대 조선어 사용이 엄금되던 학교에서 조선어가 사용되고 일본식 이름은 ‘본래의’ 조선식 이름으로 바뀌는 등 일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어에 대한 지지는 (아직 수립되지 못했던) 한반도 근대 국민국가의 언어에 대한 지지보다는 제국 일본의 잔재 청산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강했다. 아울러 해방 후 조선어 정책은 “식민지 이전의 ‘민족’이 지니고 있는(혹은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가치로의 귀환, 즉 정신적 차원에서의 귀환”, 즉 민족주의적/복고주의적 국가관의 복귀를 의미하기도 했다.[각주:12]

 또한 1948년 이후의 분단 체제 수립과 한국 전쟁을 통한 분단 체제의 확립을 거치면서 ‘조선어’라는 개념 또한 변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분단 이전의 ‘조선어’가 조선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국어(國語), 혹은 민족어(民族語)였다면 분단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국어’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어’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각주:13]

 일본어의 청산이 곧 식민지 이중 언어 체제의 완전한 해체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해방 후 조선어 열기의 이면에는 조선어라는 로고스와 연결되는 폴리스가 무엇인지 확실치 않았던 상황, 그리고 일본을 대신하여 주둔한 새로운 제국, 미국과 소련에 대한 열망이 숨어 있었다. 특히 미군정 지역에서는 영어가 공용어(Official language)로 쓰임으로써 사실상 영어/조선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각주:14]


다. 외국어 능통자와 매국노의 초상
 해방 후 영어의 지위를 다룬 소설들은 흔했다. 이를테면 염상섭의 「미스터 방」(1947)이나 김동인의 「망국인기」(1947 ~ 1948), 전광용의 「꺼삐딴 리」(1962)와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이런 작품들은 해방 후 일본과 일본어를 대신하여 한반도에 상륙한 미국/영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가 빚어낸 세태들을 다루었다.[각주:15]

 여기서 다룰 전광용(全光鏞, 1919 ~ 1988)의 단편 소설 「꺼삐딴 리」는 식민지 시대부터 한국 전쟁 이후의 조선-한국 사회를 살아온 외과 의사 이인국(李仁國) 박사의 생애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러시아어 ‘꺼삐딴(Капитан)’과 한국식 성 이(李)를 영어식으로 읽은 ‘리(Lee)’를 조합한 제목 「꺼삐딴 리」는 그 자체로 이인국 박사의 인생 경로를 대변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이인국 박사의 ‘매국노’ 내지는 기회주의자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자리에서는 늘 외국어 능력의 문제가 개입된다.

 환자도 일본말 모르는 축은 거의 오는 일이 없었지만 대의 관계는 물론 집안에서도 일체 일본말만을 써왔다. 해방 뒤 부득이 써 오는 제 나라 말이 오히려 의사 표현에 어색함을 느낄 만큼 그에게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략)
 “잠꼬대까지 국어로 할 정도가 아니면 이 영예로운 기회야 얻을 수 있겠소.” 하던 국민 총력 연맹 지부장의 웃음 띤 치하 소리가 떠올랐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은 아이들을 소학교로부터 일본 학교에 보낸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던 것인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스텐코프는 이인국 박사의 손은 부서져라 쥐면서 외쳤다.
 “꺼비딴 리, 스바씨보.”
 이인국 박사는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아진, 아진……오첸 하라쇼.”

 “닥터 리는 영어를 어디서 배웠습니까?”
 “일제 시대에 일본말 식으로 배웠지요. 예를 들면 ‘잣도 이즈 아 걋도’식으루요.”
 “그런데 지금 발음은 좋은데요. 문법이 아주 정확한 스텐더드 잉글리시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들을 때 문득 스텐코프의 말이 연상됐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 조상을 가진다는 브라운 씨는 알(R) 발음을 그렇게 나타내지 않는 것 같게 여겨졌다.
 “얼마 전부터 개인 교수를 받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인국 박사는 자기의 어학적 재질에 은근히 자긍을 느꼈다.

 외국어 능력이란 외국인, 곧 조선 사회에 당도한 새로운 제국(帝國)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자는 그 제국인들과 로고스를 공유함으로써 제국이라는 폴리스에 접촉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조선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어를 통해 경험한 바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자에게는 친일조차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꺼삐딴 리」가 보여주는 ‘영어/러시아어’ 능숙자에 대한 분노는 식민지 시대의 일본어 능숙자에 대한 감정에서 계승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꺼삐딴 리’ 이인국 박사의 외국어와 ‘미스터 방’ 방삼복의 외국어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인국 박사는 일본어․노어․영어를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하며, 언어 환경이 바뀐 뒤에도 잘 적응하며 상류층 지위를 유지하지만, 방삼복은 기초적인 어학 실력만으로 외국인들에 기생하여 살다가 우연한 실수로 인해 자신의 지위에서 쫓겨나 다시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차이는 외국어 학습력과 외국어로 인한 소득이 계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외국어 학습은 상류층에게 훨씬 용이했으며, ‘기회주의적’ 행태 역시 상류층에게 훨씬 용이했던 것이다. 

 기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조선어가 불안정한 상황, 나아가서는 조선이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출현한 인간형이다. 말하자면 조선이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데다가 조선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갖춰주지 못할 때, 조선 상위에 있는 – 즉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듯 보이는 - 제국에 접촉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그 접촉 수단은 일본어․소련어․영어, 곧 제국의 언어였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내면화했던, 혹은 내면화할 수 있었던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 중이던 조선-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전근대적․탈국가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었다. 


5.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
가. 광복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복거일(卜鉅一, 1946 ~ )의 영어공용어론과 관련하여 그의 개인사에서 주목할만한 대목이 있다면, 그가 해방 이후 세대였다는 점이다. 복거일은 해방 이후 태어나 -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 일본어 상용이라는 ‘원죄(原罪)’로부터 자유로웠다. 즉 광복 이전 세대의 문인들에 비해 민족 담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특징은 복거일이 민족주의적 친일 청산론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데서도 나타난다. 친일 행위가 청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친일 행위로서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각주:16] 비단 친일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복거일은 민족주의 자체를 일종의 폐쇄주의로 규정하며 한국 사회가 민족주의로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복거일에게 민족주의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의 속성을 띄며, “전체주의totalitarianism”과 쉽게 결합되는 제도로 이해된다.[각주:17]
 
 한편으로 복거일은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주 인근의 기지촌에서 자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원서들을 읽으며 문학 수련을 했었다. 다시 말해 복거일은 일본어로부터 자유로웠던 대신에 영어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성장했다. 소설가로서의 복거일을 발굴했던 김현이 “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각주:18]

 어쨌거나 복거일은 자신의 영어공용어론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행되었음을 전제한다.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앞서 소개한, 전체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한국 사회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족주의의 해체가 복거일류 영어공용어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민족주의를 해체한 후 세계 시민으로서 다른 세계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복거일의 입장에서 영어는 세계 시민들과의 교류 수단인 셈이다.

나. 세계주의적 국제어론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복거일이 영어를 ‘제국의 언어’가 아닌 ‘국제어’로 본다는 점이다. 즉 복거일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영어는 19세기 대영제국 시대의 영어와 다르다. 당시의 영어가 제국 내부, 혹은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소통을 위한 제국어였다면, 오늘날의 영어는 1세계 영어권 국가와 비영어권 국가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비영어권 국가간의 소통에도 사용되는 국제어이다. 즉, 영어가 가진 국제어로서의 힘은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나온다.[각주:19] 예를 들자면 중국어는 제2언어로서의 지분을 갖지 못했기에 국제어로서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영어가 국제어로 된 것은 자연적 현상”이며, “영어는 조만간 국제어에서 발전하여 세계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각주:20]

 복거일의 주장은 제1세계의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영어의 도입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는 모리의 서신 상대자였던 휘트니의 제안과 맞닿는다. 모리의 간이 영어론에 대해 휘트니는 차라리 완전한 영어를 수입하여 영어/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이루는 게 낫다고 했던 것이다.[각주:21] 그러나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은 이중 언어 체제도 부정한다는 점에서 휘트니의 제안과도 다르다. 적어도 휘트니는 민족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족어가 누리는 공용어의 위치를 국제어가 대신하게 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은 진화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일종의 언어진화론에 기반을 둔다. 그에 따르면 국제어가 민족어를 대체하는 상황은 자연 도태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각주:22]  “영어가 모든 사회들에서 공용어로 쓰이게 되면, 언어의 장벽으로 보호된 조그맣고 비효율적인 문학 시장들은 하나의 커다란 범지구적 시장이 될 것”이며, 도태되는 민족어에 집착하는 자는 ‘박물관 언어’만을 가지리라는 것이다.[각주:23]

 사실 복거일의 주장에 일말의 합리성조차 없지는 않다. 폐쇄된 사회에서의 폐쇄된 언어로 담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는 그의 지론에서 발전된 영어 공용화론은 실상 근대 국민 국가의 소속원들을 국경 안으로 가두지 말고 국경 너머와 접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에 대해 민족주의적 분노로 대응하는 것은 그리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이 공격하는 대상이야말로 바로 그런 민족주의적 분노이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영어 도입을 통해 한국인이 잃을 것은 감정적 손실일 뿐이라고, 약간은 자신의 반대자들을 조롱하는 어조로 말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복거일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분노로 접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복거일의 주장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다. 유토피아적 영어 공영어론 –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기
 첫째, 복거일의 이상이 실현 가능한가의 여부. 모리 아리노리의 영어론에 대한 바바 타쓰이의 반박에는 일본어를 영어로 교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미 기존에 자연스럽게 사용해오던 언어를 인위에 따라 타 언어로 교체하는 과정이 쉬울리 없으며, 그것이 결국 이중 언어 체제라는 문제적 상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에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긴 한다. 그러나 복거일은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복거일은 “그러나 그런 이중 언어bilingual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며 “정작 우리 시민들이 크게 치러야 할 것은 감정적 비용이다.”라고 주장한다.[각주:24] 이중 언어 체제는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과도기일 뿐, 이내 영어 공용어 체제로 전환되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어 격리English Divide’ 현상, 즉 가정의 재력에 따라 영어 습득 수준이 차이나는 현재 상황을 영어 공용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며, 자기 논지에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다.[각주:25] 복거일이 이야기하는 영어 공용의 수단은 기껏해야 “① 법, 공공기관의 서식, 도로표지, 상점의 안내문, 식당의 식단과 같은 정보들의 국영문 병용. ② 국지적 공용을 위한 실험적 사업들의 추진(경제특구나 무역자유항에서의 영어 공용, 영어 전용 학습 시설, 영어 강의 등). ③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에서의 영어 교육 심화. ④ 영어 방송의 확대.” 정도여서 영어공용어론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약해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자기 논지의 약점이 될만한 부분을 우회하고 있다고 할까.

 기실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은 한국어가 조선어에서 영어로 완전히 교체된 뒤의 상황을 상정한다. 그러나 그 완전한 교체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주장은 하나의 가설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가설’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어느 오래된 농담을 연상시킨다. 맨몸으로 무인도에 표류된 경제학자가 통조림을 발견하고서 말한다; “우리가 병따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나 현재 병따개를 갖지 못한 경제학자에게 통조림을 딴 뒤의 장밋빛 미래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까?

 둘째,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이 전제하는 세계주의/국제어주의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갖는가의 여부. 복거일의 세계주의/국제어주의는 폐쇄된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작다는 점, 그리고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통해 제1세계는 물론 제3세계의 비영어권 국가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복거일의 주장이 그 자신의 주장대로 제국주의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운지는 의심스럽다. 기실 복거일 자신부터가 ‘제3세계의 비영어권 국가’와의 소통에 썩 열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복거일이 사용하는 영어 자료들은 거의가 영미권에서 나왔으며, 타 언어에서 중역해온 자료까지 포함한다 해도 프랑스 등 제1세계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쇠멸한 만주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복거일은 “『케임브리지 도해 중국 역사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를 인용하고 만주어의 쇠멸을 『뉴욕 타임스』에서 보도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복거일이 한국어로 쓴 에세이에 집요하리만큼 영어를 병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대목은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이야기하는 복거일조차 실상 제국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6. 결론
 전근대 사회에서 언어 문제는 어떤 주체들에게 언어 능력을 부여할 것인가, 다시 말해 누구를 어떻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할 것이냐와 맞닿아 있었다. 이렇듯 언어가 포섭과 배제의 논리 하에 발동가능했던 것은 전근대 국가가 통일된 공동체일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발 근대국가/식민지에서 이중 언어 체제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근대국가에서는 국민 전체가 국어(國語)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후발 근대국가/식민지는 제국(帝國)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즉 후발 근대국가/식민지에 이르러 이중 언어 문제는 국민국가 담론과 결부되어,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어느 초국가적 공동체 혹은 제국과 관계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른바 영어‘공용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의 중심이었던 제국(帝國)의 초상은 오히려 영어공용어론에서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요구하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전광용의 소설에서 보이는 이중언어자에 대한 냉소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감정이라면, 복거일은 탈민족주의적 근대국가관에 바탕하여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복거일의 주장에서도 제국(帝國)의 초상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다. 복거일이 목표로 삼는 세계 시민/세계보편성에의 합일이 결국 제국 시민/제국적 보편성에의 편입을 의미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보다 주의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7. 참고자료
김현,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3.
복거일,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이상혁, 「‘한국어’ 명칭의 위상 변천과 그 전망」, 『국제어문』Vol.46, 국제어문어학회, 2009
이연숙 저, 고영진․임경화 역, 『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 소명출판, 2006.
이혜령, 「채만식의 〈미스터 방〉과 김동인의 〈망국인기〉, 해방 후 일본어가 사라진 자리」, 『내일을 여는 역사』Vol.32, 내일을 여는 역사, 2008.
자크 랑시에르 저, 유재홍 역,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1면.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1. 자크 랑시에르, 저, 유재홍 옮김,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1면. [본문으로]
  2. 이연숙 저, 고영진․임경화 역, 「머리말」, 『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 소명출판, 2006, 17면 참고. [본문으로]
  3. 이연숙, 앞의 글, 20면. [본문으로]
  4. 森有礼, 『森有礼全集』제1권, 宣文堂書店, 1972, 310면. 이연숙, 위의 책 29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5. 森有礼, 『森有礼全集』제3권, 宣文堂書店, 1972, 266면. 이연숙, 위의 책 32~33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이연숙, 「국어 이전의 일본어」, 위의 책, 30면. [본문으로]
  7. 이연숙, 위의 글, 33면. [본문으로]
  8. 이연숙, 위의 글, 26~29면. [본문으로]
  9. 馬場辰猪, 『馬場辰猪全集』제1권, 岩波書店, 1987, 213면. 이연숙, 위의 책, 40면에서 재인용. 위의 인용문은 『An 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초판 서문의 일부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민족’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휘가 영어 원문에서 어떤 표현을 번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약 바바 타쓰이가 Nation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었다면 중역된 인용구의 ‘민족’과는 다소 다른 맥락을 띄었을 수도 있다. Nation이라는 어휘는 19세기 후반의 일본에서 ‘민족’이라 번역되었지만, 일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바 없으며 전적으로 영어로 공부했던 바바 타쓰이가 그러한 번역에 동의했을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아쉽게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본 발표자의 단순한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본 발표자가 접한 인용문은 이연숙이 『馬場辰猪全集』제1권에서 발췌한 일역본을 『국어라는 사상』의 두 번역자가 한국어로 중역한 글이기 때문이다. 바바 타쓰이가 2판에서는 이 서문을 삭제해버린 까닭에 원문과 대조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 [본문으로]
  10. 이연숙, 위의 글, 31면. [본문으로]
  11.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100~112면. [본문으로]
  12.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267면. [본문으로]
  13. 이상혁, 「‘한국어’ 명칭의 위상 변천과 그 전망」, 『국제어문』Vol.46, 국제어문어학회, 2009, 176~179면. [본문으로]
  14. 이상혁, 위의 글, 175면. [본문으로]
  15. 이혜령, 「채만식의 〈미스터 방〉과 김동인의 〈망국인기〉, 해방 후 일본어가 사라진 자리」, 『내일을 여는 역사』Vol.32, 내일을 여는 역사, 2008, 150면. [본문으로]
  16. 복거일,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150~151면. [본문으로]
  17. 복거일,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78~81면. [본문으로]
  18. 김현, 「1988년 4월 8일」,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본문으로]
  19.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16면. [본문으로]
  20. 복거일, 「문학의 진화와 확산」,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03면. [본문으로]
  21. 이연숙, 앞의 글, 31면. [본문으로]
  22. 복거일, 위의 글, 102면. [본문으로]
  23. 복거일, 위의 글, 104~105면. [본문으로]
  24.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위의 책, 142~143면. [본문으로]
  25. 복거일, 위의 글, 147~148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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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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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해 읽었던 책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올해라곤 해도 아직 4일이 남은만큼 여기에 몇 권이 더 추가될지는 모르죠. 그렇지만 따로 코멘트를 달만한 책이 추가될것 같진 않기에, 미리 쓰고자 합니다. 목록만 제시했던 전년도와는 다르게 이번년에는 분야별로 주목할만한 책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였습니다.

제목이 굵게 표시된 책은 이전에 제 블로그나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자세한 서평을 썼던 책들입니다. 그런 책들은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서평에 대한 링크가 뜹니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아보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에 비해서는 좀 밋밋한 선정인 듯 싶어 아쉽군요.

이글턴『신을 옹호하다』강주헌, 모멘토
루카치『소설의 이론』김경식, 문예출판사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
보네거트『마더 나이트』김한영, 문학동네
보네거트『타임퀘이크』박웅희, 아이필드


총류
서평에서 잡다하게 쓰기는 했지만, 일본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굳이 찾아 읽을 필요 없는 책입니다.

종교
세 권 다 권할만 합니다. 다만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적 경향에 깊이 공감하시는 분이라면 꽤나 난감해하실 겁니다.
-
일단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는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개신교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다룬 책입니다. 구한말 '근대화'의 상징으로서의 교회, 북한과 교회(주로 감리교와 장로교)의 관계, 독재정권 시기 교회의 관점,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세력간의 결탁 문제 등... 단점도 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개신교 특정 종파에 치중된 느낌이 강한데다 교회의 긍정적 역할을 발굴하려다 보니 부정적 역할에 대한 서술이 다분히 축소된 경향이 있죠. 하지만 그런 영역을 감수하고도 볼 가치는 있습니다. 어쨌거나 종교에 대해 세속적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이 정도의 균형을 갖춘 책은 분명 드문 편이니까요.
-
사회주의적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현대의 자본주의적·사회주의적 무신론을 비판한 책입니다. 무신론이 어떤 논리적 허점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의 본래 가치를 어떤 식으로 왜곡하는지 비판한 책이죠. 그와 동시에 본래의 기독교적 신이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는지 그만의 시선으로 포착해냅니다. 그가 복원해내는 '소외된 자로서의' 하느님은 비신자의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을 때는 아직 비신자였지요. 다만 그 아름다움은 즐거움과 동시에 슬픔 또한 가져옵니다. 어쨌거나 현실의 교회 공동체에서 이글턴이 말하는 하느님을 찾기란 어려울 게 뻔하기 때문이죠.
-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성서 비평학에 의거한 보수주의 신학 비평서입니다. 가톨릭, 개신교 할 것 없이 기독교 신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그 근거는 많은 경우 성서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동성애를 정말 그런 식으로 취급했냐 하는 거죠. 흔히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의 근거가 되는 구절들을 집어다가 그것이 왜곡되게 이해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문학(이론)
  • 망구엘『독서일기』강수정, 생각의나무
  • 루카치『소설의 이론』김경식, 문예출판사
  • 복거일『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 복거일『수성의 옹호』문학과지성사
  • 황호덕『프랑켄 마르크스』민음사
  • SF판타지도서관《미래경》(2) SF판타지도서관
딱히 권할만한 책은 게오르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뿐입니다. 『소설의 이론』은 소위 '전기 루카치'를 대변하는 이론서로 평가되는 책으로, 루카치가 근대 문학의 기원과 그 성격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 책입니다. 근대 문학을 다루고자 하면서도 정작 이야기는 그리스 서사시에서부터 시작하는데다 독일 비평가들 특유의 비유적 표현으로 가득한 책이기 때문에 한두번 읽어서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근대 문학의 '리얼리즘'과 '장편 소설'의 속성에 대해서는 잘 규명한, 고전적 이론서라 할 수 있죠.
-
이외에 복거일의 책들은 그가 여러 곳에 기고했던 쪽글들을 모은 책인데, 문학에 관련된 글들만 찾아 읽을 것을 권합니다. 특히 『수성의 옹호』에 실린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와 같은 글이 권할만 합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전혀 읽을 가치가 없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망구엘이 여러 나라를 다니며 적은 여행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책에 대해서라면 차라리 과거에 나왔던 『독서의 역사』가 더 낫습니다.

문학(한국)
  • 김보영『멀리 가는 이야기』행복한책읽기
  • 김보영『진화신화』행복한책읽기
  • 김이환『집으로 돌아가는 길』이타카
  •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
  • 배명훈『안녕, 인공존재』북하우스
  • 앤솔러지『백만 광년의 고독』오멜라스
  • 앤솔러지『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
  • 장정일『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
  • 정보라『문이 열렸다』새파란상상
  • 정이현『너는 모른다』문학동네
  • 최제훈『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퀴르발 남작의 성』이 권할만 합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기왕에 장난끼 넘치는 언어유희를 장기로 삼아왔던 박민규가 정색하고서 진지한 이야기를 시도한 장편 소설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겠고요.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소한' 조롱들이 모여 한 개인에게 구조적 폭력으로 변화되는 과정과 그 폭력이 극복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다룬 소설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베스트로 뽑습니다.
-
『퀴르발 남작의 성』은 19세기 영국 고딕 문학의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쓴 8편의 단편을 모은 책입니다. 『드라큘라』, 『셜록 홈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프랑켄슈타인』 등을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한 소설들이죠. 특히 연작을 염두에 쓴 책은 아닌 듯 한데도 통일된 구성을 보인다는 점 또한 재밌습니다. 특히 첫 단편과 마지막 단편을 보면 그게 드러나는데... 아울러 이 책이 스스로를 작가와 독자, 세계 사이에 위치시키는 방식 또한 흥미롭죠.
-
이외에는 김보영의 『진화신화』에 실린 「0과 1 사이」라는 단편도 권할만 합니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나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도 견줄 수 있는 걸작 SF 단편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단편은 웹진 크로스로드에서 발표된 단편들을 묶은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라는 단편집에도 실려 있는데, 불행히도 이 책에는 김보영의 단편 외에 볼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구월의 이틀』과 『너는 모른다』는 권하지 않습니다. 전자는 보수주의자들을 풍자하고자 한 소설인데 그 정도가 과해서 독자들이 작가의 진의를 못알아볼 지경이고, 후자를 보느니 차라리 아침드라마를 보는게 더 낫습니다.

문학(중국)
  • 루쉰『루쉰 소설 전집』김시준, 을유문화사
딱히 권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영미)
  • (미상)『가윈 경과 녹색 기사』이동일, 문학과지성사
  • 딕  『유빅』한기찬, 문학수첩
  • 르 귄『날고양이들』김정아, 봄나무
  • 르 귄《서부 해안 연대기》이수현, 시공사
    • 1권『기프트』
  • 르 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미줄』최한림, 미래사
  • 르 귄《어스시》최준영/이지연, 황금가지
    • 5권『어스시의 이야기들』
    • 6권『또 다른 바람』
  • 르 귄《헤인 연대기》
    • 4권『어둠의 왼손』서정록, 시공사
  • 보네거트『갈라파고스』박웅희, 아이필드
  • 보네거트『고양이 요람』박웅희, 아이필드
  • 보네거트『마더 나이트』김한영, 문학동네
  • 보네거트『타임퀘이크』박웅희, 아이필드
  • 브래드버리『화성 연대기』김영선, 샘터
  • 브래드버리『화씨 451』박상준, 샘터
  • 스칼지『노인의 전쟁』, 이수현, 샘터
  • 앤솔러지『다른 늑대도 있다』정소연, 창비
  • 젤라즈니『드림 마스터』김상훈, 행복한책읽기
  • 젤라즈니《앰버 연대기》최용준, 예문
    • 1권『앰버의 아홉 왕자』
    • 2권『아발론의 총』
  • 젤라즈니『집행인의 귀향』김상훈, 북스피어
  • 파워스『낯선 조류』김민혜, 샘터
『마더 나이트』를 권할만 합니다. 평생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소재에 천착해온 커트 보네거트가 만년에 남긴 걸작이라 할 수 있죠. 보네거트 본인도 참전자였습니다. 포로병으로서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했었죠. 여하간 이 책은 종전 이후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된 나치 전범(주인공)을 중심으로 전쟁 당사자들의 심리 상황을 보여줍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이력에서도 짐작되듯 악인들의 평범성과 이중성에 대해 다루죠. 제게 유독 기억에 남는 대목은 이겁니다. 한 흑인이, 자신은 2차 대전 당시에 유색인종으로서 일본을 지지했다면서도 중국인은 혐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공이 여기에 대해 되물으니까 그 흑인이 대답하죠.

"누가 중국놈들 따위를 유색인종이랍디까?"

따로 글을 쓰진 않겠지만 같은 작가의 『타임퀘이크』도 아주 좋습니다. 『제5도살장』과 더불어, 작가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탁월하게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죠.

-
이외에 스릴러 소설을 찾으시는 분이라면 『유빅』과 『집행인의 귀향』도 괜찮습니다. 둘다 반전이 일품인 소설이죠. 『낯선 조류』도 괜찮은 해적물이긴 합니다. 특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에 준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영화의 팬들도 읽어볼만 하죠. 공식적으로는 4편의 원작이 이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미 1~3편에 다 써먹은 소설을 뭐 새삼스레 원작으로 삼겠다는건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다만 극중 해적들의 어조가 영 해적답잖게 번역되었고, 작가가 섬세하게 집어넣은 카리브해의 역사·종교·정치에 대한 주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프트』는 같은 작가의 『어스시』시리즈 1~3권을 생각하면 영 함량 미달의 소설이고... 『어둠의 왼손』이나 『화씨 451』, 『화성 연대기』 또한 SF 팬 사이에서는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지만 지금에 와서 읽기에는 다소 낡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젤라즈니의 중단편집 『드림 마스터』에는 작가가 사랑해마지 않는 '정체 불명의 다크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가 지겹도록 나옵니다. 어떤 의미에선 『앰버 연대기』도 이 연장선에 서 있죠.

문학(프랑스)
  • 뒤마『몬테크리스토 백작』오증자, 민음사
권할만 합니다. 쓸데없으리만큼 긴 장광설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설렁설렁 건너뛰어가며 읽으면 그야말로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불릴만한 흡입력을 보이죠. 후대의 복수극들은 대부분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아류작이라는 소릴 듣는데, 그럴만한 매력을 지닌 소설입니다.

문학(이탈리아)
  • 칼비노『반쪼가리 자작』이현경, 민음사 (재독)
  • 칼비노『존재하지 않는 기사』이현경, 민음사 (재독)
칼비노의 소설에는 화끈한 박진감이나 흡입력은 없지만 두고 두고 곱씹을만한 매력이 있죠. 『반쪼가리 자작』은 몸 자체가 두 개로 나뉘어서 한쪽에는 선한 인격이, 다른 한쪽에는 악한 인격이 담긴 자작의 이야기입니다. 마냥 선이 좋게만, 악이 나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악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담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몸이 없고 갑옷만으로 존재하는 '인간같지 않은 이상적인 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만 보면 두 소설 모두 '몸'이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요한 소재가 되는 셈이죠. 이 두 소설이 포함된 《우리 선조들》삼부작은 오래 전에 절판되어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올해에 위의 두 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재간됨으로서 모두 편하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학(러시아)
  • 불가코프『거장과 마르가리타』정보라, 민음사 (재독)
  • 앤솔러지『무도회가 끝난 뒤』박현섭/박종소, 창비
  • 체호프 『벚나무 동산』강명수, 지만지고전천줄
  • 크릴로프『끄르일로프 우화집』정막래, 문학과지성사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권할만 합니다. 러시아 매직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고도 할 수 있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컬트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요. 아마존 러시아문학 코너에서는 이 소설이 『전쟁과 평화』, 『죄와 벌』과 함께 판매순위 최고위를 다툴 정도입니다. 여하간 이 소설은 소비에트 정권 시절의 모스크바에 현현한 악마와 탄압받는 예술가, 고뇌하는 본디오 빌라도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합니다.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풍자, 불변하는 예술의 가치, 인간의 구원 가능성과 그 주체 등에 대한 주제들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죠. 다만 불가코프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을 참고했기 때문에(중세 유럽 민담, 당대 모스크바와 고대 예루살렘의 지명·인명 등) 소설만 봐선 그 참맛을 알기 어렵습니다. 시중에서 나온 책 중에선 문학과지성사판의 주석과 민음사판의 역자 해설이 이 부분을 가장 상세하게 해결해주는 편인데, 사실 그것만으론 많이 부족하죠.

문학(터키)
  • 케말『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오은경, 문학과지성사
그냥저냥 읽을만합니다. 중편 소설 두 작품을 모은 책입니다. 과거의 전통이 현재의 인간을 어떻게 얽어매는지 다룬 소설들이죠. 명예살인을 다룬 표제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가 인상적입니다. 유사한 소재를 다룬 메리메의 「마테오 팔콘느」완 정반대로 나가죠. 두 소설에서 다루는 사건 자체는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와 정 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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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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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자료는 2010년 05월 14일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과 현대문학작가론 수업에 쓰인 발제문입니다. 발표는 저 외에 두 명의 학우와 함께 진행했고, 그 학우들이 쓴 부분은 대부분 삭제했습니다. 

타워, SF로 현실을 말하는 방법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 T.H.로렌스


(발표자 이름은 생략)


목차


1. 들어가며                                                                          

2. 작가 소개                                                                         

가. 약력                                                                           

나. 『타워』의 줄거리                                                              

3. 작가론 - 누가, 왜 배명훈을 읽는가?                                                

가. 배명훈은 왜 SF 작가인가?                                                      

나. SF라는 장르의 목적                                                            

4. 작품 분석                                                                         

5. 배명훈의 ‘빈스토크’                                                                

가. 타워의 의미                                                                    

나. 타워의 권력이 돌아가는 방식                                                    

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라. 타워의 주인에게 묻는다                                                         

6. 다중의 자율성에 거는 희망                                                         

7. 참고 자료                                                                         



1. 들어가며


배명훈의 『타워』는 쉽게 읽힌다는 의미에서 이번 수업 시간에 소개되었던 작품 중에서 가장 환영받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빈스토크라고 하는 가상의, 그러나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딱히 불편하지 않게 유쾌하게 진행되는 풍자와 유머들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본 발표에서는 배명훈이 소설 창작에 SF 기법이 사용된 맥락과 배명훈이 가상의 무대 건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작가 소개


가. 약력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우수논문상 수상). 그 어떤 창작 모임과도 연결되지 않은 채 혼자 글을 써오다가 학부 재학 중이던 2004년에 제출한 「테러리스트」가 ‘대학문학상’을 받으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당시 자신이 썼던 작품 중에서 가장 문단문학에 가까운듯한 작품을 냈는데도 심사평에서 SF 운운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의 소설이 SF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2005년 '스마트D'로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SF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당시 수상자 모임을 통해 SF 소설가 및 번역가인 정소연을 통해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소개받았으며, 이 웹진의 필진으로 활동하게 된게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지면과 동인지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7년에는 공동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를 통해 메이저 출간에도 본격적으로 끼게 된다. 잡지 『판타스틱』 등에 단편을 수록한 바 있다. 첫 소설집으로 연작소설집 『타워』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장편 소설 집필 중. 「에스콰이어」2007년 1월호 "The Newest: 200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중문화 예술의 첨병 14인"에 선정되었으며, 단편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나. 『타워』의 줄거리


(생략)


3. 작가론 - 누가, 왜 배명훈을 읽는가?


가. 배명훈은 왜 SF 작가인가?


약력에서도 확인되듯 배명훈은 그의 독자들에게 주로 SF 작가로 소개되었고, 그의 소설 또한 SF라는 틀 안에서 읽혀왔다. 작가 자신이 SF팬덤 내부에서 활동하면서도 스스로의 작품을 소위 ‘장르 소설’이라는 테두리로 이야기하려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특이한 요소라 할만하다. 따라서 배명훈의 소설을 SF라고 규정할 때, 『타워』는 대단히 기묘한 위치를 얻게 된다. 배명훈을 SF작가로 만든 것은 배명훈이 아니라 그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SF 독자들이 ‘한국 SF 작가’들에 대해 대체로 냉소로 일관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만하다. 80년대 초반부터 해외 원서를 구해다 읽으며 자생한 SF 독자들이 한국 작가를 ‘제대로 된’ SF 작가로 인정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었으며, 특히 문단 쪽에서 “SF적 상상력”을 차용하여 썼다는 작품들은 외려 SF독자들로부터 “그들은 SF를 모른다”며 조소를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각주:1] 그 정도의 폐쇄성을 보이던 SF 독자들이 한 작가를 문단 쪽과 한 마음이 되어 지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만하다. 배명훈과 같은 작가들이 문단과 기존 SF 팬덤 양측의 관심을 모으는 현 상황은 상당히 유념해볼만하다. 배명훈이 문단과 SF 팬덤의 경계지역에 서 있으며, 이들을 매개할만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 SF라는 장르의 목적


SF라는 장르에 대해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SF 독자들끼리도 SF란 장르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본토라 할만한 미국에서조차도 작가들이 “SF란 SF팬들이 ‘이건 SF야’라고 가리키는 것들”(프레드릭 폴), “SF란 우리가 SF라고 부르는 것”(데먼 나이트), 심지어는 “SF라고 출판되는 모든 책은 SF다”(노먼 스핀라드)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SF란 무엇이다-라고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각주:2] 다만 SF의 하위 분류 방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합의되는 바는 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오락물’로서의 SF이다. 영화 《스타워즈》와 같은 우주 활극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흔히 SF라고 하면 이러한 경향의 작품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정작 SF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작품들을 SF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태다. 미국의 하드 SF 작가 테드 창이 《스타워즈》류의 작품을 "우주선과 레이저가 등장하지만 핵심은 500년 전, 또는 1000년 전 쯤에 모험 이야기"라고 평가하면서 SF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두 번째는 ‘문학’으로서의 SF이다. SF가 결국은 문학이며 문학의 본질을 실현하는 장르라는 점에 주목하는 셈이다. 전자와의 차이점은 SF를 통해 ‘경이감’(Sence of Wonder)이라는 감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경이감이란 SF 독자들이 SF를 읽음으로서 세계가 종전과는 다르게 보이게 되는 순간, 기존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감성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을 이야기한다. 랑시에르가 ‘문학의 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며, 킁킁대는 동물로 취급되었던 사람을 말하는 존재로 만든다.”[각주:3]고 주장했던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경이감’에 대한 추구는 비단 SF만의 것이 아니다. 그 점에 대하여 SF는 SF만의 경이감이 ‘과학적 상상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과학이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통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훌륭한 SF 소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핵심은 여전히 ‘과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경이감’이다. 유전자 복제나 우주여행 같은 자연과학적 소재를 끌어다 쓴다 해도 그것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세계 인식의 변화, ‘경이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훌륭한 SF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문학적 SF'를 지지하는 작가/독자들의 입장이다. SF 또한 현재의 독자들에게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위한 문학양식이라는 것이다.[각주:4]

『타워』또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이 SF라고 해서 이 작품이 얼마나 참신한 무대를 마련했는가,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을 보였느냐에 주목하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만한 독법이 아니다. 빈스토크 타워가 정확히 몇 층짜리 건물인가, 현실에서도 구현 가능한 건물인가 따위의 문제는 이 소설에서 굉장히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빈스토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4. 작품 분석


사람들을 억압하는 완강한 권력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권력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때문에 저항할 대상도 분명하지 않은,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배명훈은 그 불명확한 대상이 주는 억압에 저항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부터는 각각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각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권력에 대한 대응법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생략)


5. 배명훈의 ‘빈스토크’


가. 타워의 의미


『타워』의 무대인 빈스토크에서 빚어지는 군상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타워』의 무대인 ‘빈스토크’를 곧 한국 사회의 풍자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도 온전히 타당해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건 모든 소설은 현실에 대한 은유를 담기 마련이다. ‘빈스토크’라는 무대 자체는 한국 사회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어떤 나라일 수도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읽어낼 뿐이다. 타워는 넓게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좁게는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공간이다.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와 그 내부의 권력관계를 지닌 사회라면 타워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타워'라는 모호한 제목 또한 그러한 점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나. 타워의 권력이 돌아가는 방식


물론 작품에서는 빈스토크 상류층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동원 박사 세 사람」에는 지도자층(시장과 정박사)의 성적 타락 및 돌고 도는 양주 선물을 통한 애매하고 미묘한 뇌물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 「자연 예찬」에는 언론인 및 지식인들의 비양심적인 침묵 및 청탁 비리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코스모마피아에 대한 선제공격 및 민간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 등 국제적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의회는 책임을 회피하고, 용역 업체의 직업군인의 생명권은 방기된다. 바벨탑 아닌 바벨탑, 선한 사람이 최소 열 사람 이상 거주하고 있음으로 인해 신으로부터 멸망을 유예 받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취급되던 공간(「샤리아에 부합하는」)이 바로 빈스토크 타워의 현재다.

시장이나 시의회를 비롯한 권력 상층부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를 책임져야 할 존재들임에도 국가의 안위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타워를 떠나려 하는, 한마디로 국가에 대한 권리만을 보장받을 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시장 전용 엘리베이터의 존재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아나버릴 인간들’ 「샤리아에 부합하는」, 시위대 승리 후엔 이미 지구 반대편에 가 있던 시장 「광장의 아미타불」)


“최 행정관님. 도대체 누가 최종 명령을 내렸죠?”

최신학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최종 명령권자는 당연히 의회였다. 상대인 코스모마피아가 국가는 아니므로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병력이 주둔해 있던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새로 파병 절차를 밟지도 않았다. 하지만 작전 개시 이면에는 분명히 정치권의 광범위한 승인 혹은 압력이 있었고, 보나마나 그 뒤에는 인공위성 관련 기업들의 어마어마한 이권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다.

(중략)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는 위치에 몸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 날. 그렇게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샤리아에 부합하는」, 타워 189-190p)


그러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모습들은 대부분 우리가 상류층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의 재현이다. 우리는 상류층이 마땅히 사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고 그에 대한 권리를 누리면서도 정작 책임을 지지 않는 사태에 대해 분노한다. ‘윗것들이 윗것답게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으로 요약될텐데, 이러한 인식에서는 배명훈 또한 독자들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앞서 나가지 않는다. 독자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명훈의 문제의식은 그러한 눈높이 맞추기, 권력에 대한 냉소적 풍자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구조, 시스템의 전체로 향한다.

권력의 사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은 비단 권력 상층부만이 아니다. 관료제 내의 중간 관리자들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중간 관리자들, 혹은 말단 직원들은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기계적으로 일을 진행시킨다.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의 주인공은 이유도 모른 채 상부의 명령에 따라 520층으로 군 병력을 이동시키면서 자신을 기계에 비유한다. 「광장의 아미타불」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기마경비대에서 일하면서 시위대를 진압하는 폭력 행사 - 코끼리, 최루탄을 섞은 물 폭탄 등등 - 에 거리낌 없이 참여한다.

권력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작중에서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먼지는 현대 시민들 또한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시스템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함에도 자신의 ‘먼지’ 때문에 침묵하고, 결과적으로는 부조리의 안정적인 고착화에 기여한다.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존재의 흔적. 초고층 문명의 사회계약은 누구든 털면 먼지가 나기 때문에 서로 털지 않는게 합리적이라는 암묵적 합의 위에서 이루어졌음. 그러나 이 사회계약이 법률상 책임까지 면제해주지는 못함. 예) 그러자 시 정부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먼지를 털었다.(「자연예찬」중에서)[각주:5]


요컨대 시스템의 억압은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무책임하기까지 한 권력 상층부에 의해서만 행해지지 않는다. 시스템의 약자들조차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각자의 방식에 따라 시스템을 지탱한다. 문제는 그 시스템 전체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타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그 소유주가 뚜렷하지 않은 권력이다.


시위대는 아미타브의 이름을 부르면서 컨테이너 가건물같이 생긴 방어선을 뚫고 정부 청사 쪽으로 몰려 들어갔어. 대승이었지. 하지만 그러면 뭐해. 빈스토크에 그런 난리가 날 때마다 늘 그랬듯이 시장은 그때쯤 지구 반대편에 가 있었는걸. 전략적으로는 별 의미 없는 승리였어. 전술적으로는 완승이었지만. 시위대가 그 싸움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거든.(p.184)


전근대의 왕조 사회나 독재 국가에서라면 시위대의 싸움에 저런 낮은 평가를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무렵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대상이 명확했다. 모든 권력은 중앙의 1인자에게 책임이 집중되었고, 그가 잘못했기 때문에 - 혹은 사악하기 때문에 - 시스템의 억압이 지속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폭군이나 독재자의 목을 치는 희생 제의를 통해 국가는 정화되고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빈스토크와 같은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책임 전가가 불가능하다. 사회 모순은 이제 더 이상 권력 상층부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정부에 그 책임을 물으려 하는 한, 그들의 투쟁은 정부 청사 진입 여부와 관계없이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요행히 시장을 사로잡는데 성공해서 정부를 전복하는데 성공한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유지되는 한 시장과 시의회는 몇 번이고 다시 구성될 테고, 그 권력 상층부를 지탱하는 관료제 조직 또한 재건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시스템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빈스토크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는 더 이상 어느 누구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판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시스템이 부여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미 우리도 시스템의 일부이다. 이러한 냉소적인 묘사들은 2000년대 작가들에 대한 정혜경의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작가들의 사유 속에는 그 누구도 자본주의적 네트워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깊은 허무주의가 깔려 있다. 이 허무주의는 현실 도피의 결과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데서 생겨났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각주:6]

 

그러나 배명훈은 정혜경이 말하는 ‘최근 작가들’과 같은 허무주의로 향하지 않는다. 시위대의 성과를 ‘전략적으로는 별 의미 없는 승리’였다고 평가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그려낸다. 「자연예찬」에서는 개인적 비리가 노출될 것을 감수하고서 결국 사회 비판을 하고 마는 작가를, 「타클라마칸 배달사고」에서는 경위야 어떻든 사막에 떨어진 조난자를 구해내는 네티즌들을, 「샤리아에 부합하는」에서는 수색영장을 받아내지 못하자 직접 난동을 부려서라도 빈스토크를 구해내려 하는 공무원이 나온다. 자기가 사랑하는 공간의 문제를 더 이상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려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나 ‘먼지’를 가졌기에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그 먼지를 가진 사람들이 뭐든 하지 않으면 세상은 아름다워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라. 타워의 주인에게 묻는다


왜 시장이나 시의회가 책임지지 않는 문제를 시민들이 책임져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이 공동체의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빈스토크 타워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최고 권력자인 시장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겠다. 타워의 권력 장의 중심에는 시장이 있으며, 의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시장은 권력만 있을 뿐 책임-주인의식-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 주인이 아니다.

당위적으로는, 타워에 사는 주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들이 투표권을 통해 타워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중에 나오는 빈스토크 시민들이야말로 빈스토크라는 무대,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주인됨은 주인의식, 다시 말해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권리다.

빈스토크 시민들이 보여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국가가 부여하는 ‘애국심’이나 권력욕 따위와는 무관한 영역에서 발휘된다. 오히려 빈스토크 시민들은 국가의 존재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대신 빈스토크 시민들의 내면에 가득찬 것은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무대, 빈스토크라는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다. 타워를 제2의 바벨탑이라고, 빈스토크를 소돔과 고모라로 보았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조차도 결국에는 타워를 멸망시키기 위한 폭탄을 기폭시키지 않았던 것에는 이들의 신앙이 약화되어서도, 빈스토크 정부에 회유되어서도 아니다. 이웃에 대한 애정이 이념과 종교조차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빈스토크 타워의 실제적 주인은 마땅히 타워에 대해 주인 의식, 주권 의식을 지닌 개인 혹은 집단이라야 한다. 타워를 ‘아름답게 만들 책임을 가진 사람’은 바로 타워라는 무대와 그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 자신들이다. 배명훈은 그러한 개개인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작중의 표현을 빌린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책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당신들이 정말로 이 세계를 사랑하고, 시스템이 문제라고 여긴다면 단순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더 이상 시스템의 문제를 부패한 권력층에게만 묻는 대신,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직접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먼지’를 신경쓰면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다면 시스템의 억압은 계속되기 마련이라는 것이 배명훈의 소설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다.

그는 여섯 개의 장을 관통하면서 수평파들의 폭탄 테러며 시민들의 반전 시위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언급만 한 채 대부분을 개개인들 각자의 판단과 양심적 행동에 맡긴다. 정부의 통제나 간섭 없이 자율적이고도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운영 체제는 대부분 시민들 개개인의 연합과 협력에 의한 것이다. 그것도 열의나 구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화된 시민들 각자의 ‘개인적 기호에 따른 판단’에 의한 것이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는 타워의 우편 시스템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 정부가 운영하는 엘리베이터에 의한 우편배달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타워의 시민들은 대부분 파란 우편함을 이용하는데, 이 우편함에 편지를 가져다 놓으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우편배달의 업무를 이행한다. ‘익명 사회에서 익명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나름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빈스토크는 개인을 신뢰한다.’

같은 장에서, 용역 회사 직원에 대해 정부가 구출을 방기하고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개개인들이었다. 사람들은 약간의 홍보만으로도 자발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해 실종된 민소를 찾는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선택은 선동적인 구호에 의한 것도, 민소에 대한 인류애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의 개인적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재미’는 결국 국가가 포기했던 구성원을 구해냈다. 그게 바로 국경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제 나름의 공동체의 힘이다.


병수는 잠이 확 달아났다.

“왜? 지금 이 시간에 이만 칠천 명이 어딨어? 한밤중에.”

“아, 어디 보자. 빈스토크에서 육천 명 조금 넘고, 우리나라에서 오천 명쯤 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접속했어요.”

“왜?”

“왜는 무슨 왜요? 그냥 찾는 거지.”

“그러니까 걔들이 왜? 뭔가 오류 생긴 거 아니야?”

“오류 같은 거 없어요. 뭐가 있어야 오류가 나죠. 사진하나 달랑인데. 은수 씨가 빈스토크에 돌린 편지가 번역이 돼서 외국으로 갔어요. 그래서 그냥 찾는 거예요, 그냥. 이유가 필요한가? 원래 인터넷에서 하는 일이 그렇잖아요. 그냥 해요, 그냥.”(「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타워 109p)


이밖에도 청탁 뇌물 수수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양심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 K, 무비판적으로 명령을 수용해 군을 이동시켰다가 520층 폭발 후 후회하는 남자 주인공 등을 통해 작가는 개개인의 선택에 대해 계속해서 ‘보여준다.’ 결국 마지막 순간 타워를 지켜내는 것은 샤흐리반 및 열다섯 군데의 가게 주인들의 선택이었다. 열다섯 사람 개개인의 선택은 타워의 멸망을 유예시킨다. 이를 통해 짐작하건데, 작가가 거대한 시스템을 혁파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개인의 정치’다. 개개인이 시스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하는 것, 그것만이 시민 개개인이 마땅히 지니고 행사해야 할 권력을 소유하고 시스템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생략)


「타워」는 익명성이 다분한 대중에게 희망을 건다. 이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아우또노미아의 ‘다중의 자율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민족 국가의 강화나 국가 권력 장악이라는 주권 형식 안에서의 혁명 전략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제나 같은 패턴의 반복이 거듭될 뿐이다.(독재자 다음의 독재자, 결함 다음의 같은 결함의 탄생) 국민 국가적 주권 형식 안에 권리를 양도하는 네이션=스테이트의 강화가 아니라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의 개화로서 민주주의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타워」는 여섯 장에 걸쳐서 권력이라는 것의 불합리성, 부실함, 허점에 대해 보여준다. 권력과,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적 시스템은 이러한 허약함으로 인해 단 한곳의 빈틈으로도 쉽사리 무너질 수 있을 만큼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배명훈은 바로 이러한 권력-시스템적 허약함을 인지하고, 다중의 자율성이 이 빈틈을 노려 언제든지 시스템을 전복시킬 수 있다는 데 희망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 K, 엘리베이터 기동 팀의 관리자, 아미타브를 맡은 용역 경비대원, 샤흐리반과 열 다섯명의 가게 주인들, 민소를 찾아 밤새도록 사진을 뒤진 전 세계 네티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율적 결정과 그로 인한 결과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시스템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6. 다중의 자율성에 거는 희망


배명훈의 소설에서는 적나라한 풍자도, ‘혁명’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의 압제에 따른 절망 또한 없다. 이 점에서는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인다. 기존의 한국 문단이 보여왔던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기법을 사용하여 옳지 못한 현실에 대해 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매우 닮았다. 그러나 그 기법의 활용법에 대해서는 두 소설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난쏘공』의 ‘행복구 낙원동’은 풍자는 있으되 유머는 가능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낙원동 주민들에게 있어 시스템의 억압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에, 도저히 그들을 상대로 웃어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행복구 낙원동은 이름과는 달리 절망만이 가득한 곳이다. 지식인 지섭은 시스템적 문제를 언급하며 노동자를 계몽하는 지식인과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동 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지섭과 같은 지식인층의 계몽에 각성한 난쟁이의 자식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시위에 나서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각주:7] 난쟁이의 첫째 아들이 사형당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난쏘공』에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투쟁하건 간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타워』의 ‘빈스토크 타워’는 풍자와 유머가 모두 가능한 공간이다. 배명훈의 유머러스한 말솜씨는 체제의 강고함을 묘사하면서도 체제의 허술함 또한 함께 보여준다. 빈스토크는 무책임한 권력이 터무니없는 힘을 휘두르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무책임’의 허술함 속에 지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타워』는 ‘권력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동원박사 세 사람」) 권력이 굉장히 엉성한 임기응변으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즉, 소설은 현실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억압하는 시스템의 구조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 권력의 구조를 파악하면 그 사회의 주인들이 자기 현실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거기에서 비롯된 희망이 빈스토크 타워를 지탱하는 힘이다.

배명훈은 전근대적 공동체의 상실과 개인의 파편화를 비관하지 않는다. 그런 비관은 굳이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소설을 읽기 이전에 현대인 누구나 지독하게 실감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 자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을 절망하고,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누군가(남)’을 조롱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익명 사회에서는 익명의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나름의 신뢰”(p.82)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우리의 조건이 이렇다면 변화는 이 조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배명훈이 꺼낸 카드가 바로 ‘웃음’이다. "조롱과 비웃음은 억압적 권위를 겨냥하는 무기이면서 만인을 유쾌하게 만“[각주:8]든다. 유머를 통해 권력이 지닌 권위를 벗겨내고 권력의 구조와 허위를 폭로한다.[각주:9]

배명훈이 웃음을 활용하는 방식은 바흐친이 주창한 ‘카니발’의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카니발이란 “대화와 공동체의 의식이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함께 참여케 함으로써 공동생활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폭력적 파괴의 형태인 혁명과 달리 카니발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며 반항의 유쾌한 몸짓이다.”[각주:10]라고 주장했다. 바흐친은 웃음의 장인 축제를 통해 모인 사람들이 체제와 억압에 대해 - ‘사유’하는 대신 - 비웃음으로서 그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웃음’의 기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바흐친의 시대에 비해 훨씬 파편화되고 시스템의 억압 또한 보다 막강해진 우리네 시대에 바흐친이 기대했던 것과 같은 카니발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 정체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 사회라기보다는 익명성 아래 침묵하는 개개인들의 군체에 가깝다. 거기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익명 사회에서는 익명의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나름의 신뢰’ 정도 밖에, 혹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군소 공동체 관계 뿐이다. 어차피 시스템 전체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하다면, 개인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면 그 정도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해주면 될 뿐이다. 즉,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꼬지만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타워』에서 드러나는 배명훈 식 화법이다.


7. 참고 자료


민유기,「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2008년 촛불신화의 역사적 의미」,『실천문학』2008년겨울호.

배명훈, 『타워』, 오멜라스, 2009.

연합뉴스, <네그리 : 제국, 다중, 그리고 아우또노미아>, 2003, 10, 02

자하, 「독점 인터뷰 - 작가 배명훈을 만나다 2/2」, 『환상문학웹진 거울』 73호, 2009.

자크 랑시에르, 유재홍 역,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정혜경, 「백수들의 위험한 수다」, 『문학과 사회 2005년 여름호』, 문학과지성사, 2005.

정화열, 박현모 역, 『몸의 정치』, 민음사, 2000.

  1. 배명훈 이전에 SF 독자들에게 인정받던 한국 SF 작가는 『비명을 찾아서』의 복거일과 듀나(이영수) 정도가 거의 유이했다. 그러나 이들은 SF작가이기 이전에 지독한 (해외) SF 독자였으며, SF 독자들의 외서 취향과 맞는 면이 많았다. 예컨대 듀나는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 시절부터 창작과 번역으로 유명했고, 복거일 또한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SF를 읽으며 성장했다. [본문으로]
  2. 특히 국내에서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용어(Fantasy & Science Fiction의 오역. 원래는 두 장르를 한데 묶어 부르던 이름이다)가 널리 퍼지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된 감이 없잖아 있다. [본문으로]
  3. 자크 랑시에르, 유재홍 역,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2p [본문으로]
  4. 이러한 점을 강조하다 보니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른바 뉴웨이브 운동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체로 좌파 성향의 작가들이 주도했던 뉴웨이브 진영은 종전의 SF가 주로 ‘자연과학적 상상력’을 추구해온 반면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을 통해서도 ‘SF적 경이감’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 이후로 페미니즘이나 좌우갈등, 인종차별주의 등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활발히 창작되었다. [본문으로]
  5. 배명훈, 「부록-타워 개념어 사전」, 『타워』, 오멜라스, 2009, 264p. [본문으로]
  6. 정혜경, 「백수들의 위험한 수다」, 『문학과 사회 2005년 여름호』, 문학과지성사, 2005, 174p. [본문으로]
  7. 이 시위대의 실패는 「광장의 아미타불」에서 등장하는 타워 시위대를 연상시킨다. [본문으로]
  8. 민유기,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2008년 촛불신화의 역사적 의미」, 『실천문학』 2008년 겨울호, 340쪽. [본문으로]
  9. 자하 “근데 또 보통 정치풍자 하는 분들은 글이 재미없거든요. 이야기가 없어요. 껍질만 있어요.” 명훈 “알라딘에 실은 인터뷰에 썼는데, 그냥 500층, 600층 이렇게 백 단위로 딱 떨어지면 풍자하긴 더 좋은데, 그럼 대안을 못 만든다는 거죠. 비웃기는 더 좋아요, 백 단위로 떨어지는 상징적인 숫자면. 근데 그 안에 사람을 살게 만들어야 하니까, 나는. 그래야…… 비판하고 나서 어쩔 건데? 하는 문제가 나오니까. 그래서 그걸 쓴 것 같고.” 자하, 「독점 인터뷰 - 작가 배명훈을 만나다 2/2」, 환상문학웹진 거울 73호, 2009. [본문으로]
  10. 정화열, 박현모 역, 『몸의 정치』, 2000, 81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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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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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세계문학총서

한국문학계의 거물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자기네 출판사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총서는 본래 문지가 아니라, 교보그룹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 회장이 세운 대산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전집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일개 출판사가 아니라 교보생명이라는 거대 기업을 등에 업은 문화 재단에서 공익 사업으로 내는 문학 총서인 셈이죠. 실제로 출판계에서 번역자에 대한 대우를 가장 후하게 쳐주는 기획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에 견줄만한 기획물이라면 국가기관인 학진에서 지원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고전명저번역총서》정도?

기획 자체도 공모 형식으로 한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죠. 즉 번역자들이 이러이러한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응모를 해오면 심사를 해서 그 중에 선정을 해 번역을 의뢰합니다. 이렇다 보니 번역에 들어가는 공 자체도 타 출판사의 판본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인 것이죠. 이를테면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 이 총서 외에도 열린책들의 홍대화역이나 문예출판사의 박형규 역이 존재합니다만, 작가인 미하일 불가코프의 작품을 전공한 사람이 맡은 판본은 이 총서의 김혜란 역이 유일합니다. 주석을 비롯한 곁다리 자료들만 봐도 번역에 들어간 공력이 엄청나게 차이난다는걸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문제가 뭔고 하니... 이 전집의 기본 명작이 '문학사적 가치가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 명작'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지요. 물론 의의가 깊은 일이기야 한데, 덕분에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워낙 생소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만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기도 어렵고요. 이 총서의 책들 대부분이 워낙에 안팔리는 것도 아마 그런 사정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문학에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언젠가는 이 총서를 한번쯤 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 초기작에서는 이 총서가 흰색 표지에 제목만 덜렁 달아놓은, 무척 촌스러운 장정을 했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 나온 책들은 무척 깔끔하고 보기 좋은 장정으로 바뀌었더군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얼마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전집인데... 사실 저는 접해본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유명 소설가 김영하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등 이리저리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 같은 출판사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소설가 김연수에게 번역하게 했던게 생각나서 좀 재밌었습니다 - 좀 더 두고 볼 일이지요. 『파우스트』처럼 예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좀 더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나왔던 책을 전집에 편입시킨 경우도 있던데, 기왕 나왔던 책은 어떻게 될런지 좀 걱정되는게 사실입니다.


민음 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의 베스트셀러. 가장 널리 팔리는 전집이죠. 도서 관련 커뮤니티에서 번역본에 관련한 질문만 들어오면 무조건적으로 이 전집을 추천하는 광경도 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전집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워낙 많이 팔리는 전집이다 보니 부정적인 반응도 그만큼이나 많이 나오는 거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이른바 '세계명작' 즉 너무 잘 알려지다 못해 뻔하기까지 한 작품이 워낙 많다는 것이죠. 무려 200권이나 넘어가는 문학전집이고 보니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가끔은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요.

게다가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번역... 물론 문학전집의 특성상 좋은 번역도 있고 나쁜 번역도 있기 마련입니다만 민음사의 경우는 사실 그리 곱게 보이지 않더군요. 업계 매출 1,2위를 다투는 대형 출판사이면서도 역자에 대한 대우가 워낙 박하기로 유명해서, 마냥 번역자만 욕하기도 뭐하다는 게 가장 크지요. 왕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그대로 가져와 출간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특히 『중국신화전설』 같은 경우는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던 책을 다시 내면서 주석과 본문 일부를 뚝 떼어먹었기로 유명합니다. 이런 판단을 설마 번역자 혼자서 했을리는 없죠. 소위 '보급판'이라는 미명 아래 출판사 측에서 저지른 짓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그런 황당한 사건을 목도하고 나면 사실 이 전집이 그렇게 곱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그렇다곤 해도 이 전집만의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200권을 넘어가는 방대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전집이다 보니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좋고, 뭣보다 가격이 엄청나게 싸거든요. 정가조차 7,000원밖에 안하는 책도 상당히 많습니다.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하면 한 권에 5,000원이 안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이래저래 주머니 사정 어려운 독자들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이라 할까요.


 《범우 비평판 세계 문학선

왕년에 많이들 봤던 세계문학전집. '훌륭한 작품을 양질의 번역에 싼 값으로 공급한다'라는 컨셉을 내세웠던 전집이고, 딴에는 《Mr.Know 세계문학》의 선배격(?)인 전집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으로 나왔던 번역서 중 김붕구의 『적과 흑』 번역을 비평가 김현이 제법 호평했던게 기억에 남는군요. 이 외에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했다는 전설로 유명한 영문학자 김병철 선생도 이 출판사의 매니아로 유명했고... 다만 이 전집 자체는 워낙 구닥다리가 되어놔서 지금에 와서는 별로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취향 자체가 좀 옛스러운(?) 분들이 주로 찾으시죠. 게다가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처럼 여전히 이 전집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여럿 되니 아주 무시해버리기엔 아까운 전집입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Mr.Know 세계문학

얼마 전에 제가 이 전집에 대한 정보를 올렸었는데... 《Mr.Know 세계문학》이 《열린책들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글자 크기나 행간 등은 그대로고 표지와 가격만 바뀌었다더군요. 물론 전집의 라인업도 다소 달라지긴 했습니다. 원래 전집으로 내질 않았던 『미사고의 숲』같은 소설이 새로 전집에 포함되었고, 열린책들의 베스트셀러라 할 도끼 소설들도 여럿 포함되었죠. 아예 새로 번역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만 이거야 두고 볼 일이죠. 다만... 기존에 단권이나 두권 분량으로 냈던 책을 두 권 내지 세 권으로 추가 분권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가뜩이나 양장으로 바뀌면서 오른 책값이 훨씬 더 올랐습니다. 열린책들이 정말로 저가정책을 포기했구나 싶어서 영 씁쓸했더랬죠.

뭐 늦은 말이긴 합니다만 《Mr.Know 세계문학》은 흔해빠진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도 자기 색을 갖춘, 상당히 괜찮은 문학전집이었더랬죠. 출판사 자체가 초기부터 '관련 언어 전공자에 의한 완역본'을 컨셉으로 밀고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 전집의 라인업 또한 기존의 전집들에 비하면 상당히 참신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장르문학 팬덤에게는 SF나 판타지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작품으로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 깊은 일이었죠. 이 외에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을 소개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해서, '고전'에 질린 독자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썩 괜찮은 전집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번역서 특유의 희안망측한 고유명사 표기(특히 러시아문학)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열린책들이 워낙에 판본 장난을 잘 쳐서 그렇지 전집 자체는 제법 쓸만하다는 이야기지요.


 《월드북

동서문화사에서 내는 책인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런 책이 여전히 시장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 아닐까 합니다. 물론 동서문화사가 한창 활약하던 시절(그러니까 사상계사의 뒤를 이어 동인문학상을 인수하던 시절)에는 이 출판사에서 내는 중역본들도 나름의 의의가 있었습니다. 워낙 책이 부족하던 시절이니까요. 이 출판사에서 냈던 《ACE88》등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그런 사정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중역본이니 완역본이니 하는걸 따지기 이전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지금이야 굳이 번역도 이상한 이 출판사의 책을 사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보다 훌륭한 번역서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싸다곤 해도 이런 책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출판사 자체도 좀 이상한 소문이 많이 들리던 곳이죠. 90년대에 백과사전을 출간하면서 직원들을 사정없이 착취했다는 둥... 이 출판사 사장이 보여온 정치적 행보도 영 못미더운게 사실입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

출판사의 나이로 따지면 범우사(1966~)보다도 훨씬 오래된 을유문화사(1945~)의 전집. 얼핏 기억하기로 이 전집 이전에도 을유문화사에서 낸 전집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질 않는군요. 여튼 지금 소개하는 전집 자체는 2008년에 출간되기 시작한 전집입니다. 사실 저로서도 이 문서 준비하면서 새삼스럽게 기억했다 뿐 직접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는 전집인데... 찾아보니 출판사에서 50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전집이라는군요. 그만큼 출판사에서도 나름 정성을 기울였던 모양인데, 물론 저는 직접 읽어본 바가 없으니 평가야 생략. 다만 최근에 크래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를 내놓은 건 굉장히 이채롭더군요. 번역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책인데 나와줘서 굉장히 기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했더랬습니다. 좌우간 귀추를 주목해볼만한 전집이라는 점은 확실하지요.


 《펭귄 클래식

세계적으로 유명한 '펭귄 클래식' 전집의 한국어판이긴 한데... 그 모양새가 좀 이상합니다. 본래 펭귄 클래식은 저작권이 풀린 고전들을 - 모양새를 포기하는 대신 - 염가에 판매한다는 기획을 내세웠던 전집이지요. 책을 서점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판다는 판매 전략을 최초로 도입했던 전집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어판은 요게 '값이 싼 것도 아니오 장정이 고급스러운 것도 아닌' 요상한 꼴이 되었습니다. 펭귄 클래식 답지 않은 고급화 전략을 꾀하면서도 그게 좀 어설프게 되었달까요. 저도 읽어본 게 얼마 없어서 판단은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겉모양새만 보면 어째 찜찜... 한 것도 사실입니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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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은 2009년에 읽은 책. 만화나 과제 도서는 제외했다.

사실 '2009년에 읽은 책'을 말하기엔 조금 이른 때이기야 하다. 내 독서 패턴 상 월 말쯤 되면 이왕의 목록에 못해도 7,8권쯤은 더 추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해 독서 현황을 정리한다는게 하루 이틀로 될 일도 아니고 하니 일단 공개부터 해서 기정사실화한 다음 차차 수정해나갈 생각이다.

예년과는 달리 각 작품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는 일일히 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왕에 이 블로그나 거울 웹진, 북시 위키 등에 썼던 해당 작품 관련 글들을 링크하고자 하니 해당 작품에 대한 내 코멘트가 궁금한 분들은 그 링크를 찾아보면 되겠다. 제목에 링크된 것은 블로그에 썼던 '서평'이고, 그 뒤에 괄호쳐진 '(북시)', '(거울)' 등의 링크들은 해당 공간에 썼던 글들을 지칭한다. '(잡글)'은 그 작품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썼던 잡설을 이야기한다. 아예 따로 그 작품에 대해서 언급한 경우만 링크했고, '근황' 류의 글에 넣었던 코멘트는 링크하지 않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처럼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가도 그 성과를 북시 위키 등으로 집약시킨 경우에는 '최종 버전'만을 소개했다. 

'올해의 베스트 5'는 현재로서는 다음과 같다. 제시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머나먼 바닷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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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캐넌의 세계(환상문학전집 5)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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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엘리자베스 문 (북스피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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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하일 불가코프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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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아서 클라크 (시공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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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도원 『유학과의 짧은 만남』문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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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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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2009년 10월 근황'에 넣으려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밖에 뺀 이야기-.

홍대화의 열린책들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끼워넣었다. 번역서 본문을 비교하는 대목부터 읽으면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본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형규 씨의 번역본이었다. 이 판본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여러 곳에서 많이 들었다. 역자 박형규 씨는 과거 1982년부터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번역하여 출간했던 사람이다 운운. 이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를 거쳐 1992년에 삼성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마지막으로 거의 14년간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새 번역본이 없다가 2005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드라마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이 드라마가 한국에 수입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게 되었다 운운. 거개는 벌거지님을 통해 접했던 정보들이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정보 중에는 이 번역본이 사실은 저작권 관련 사항조차 불명확한 일어 중역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 기억이 불확실하니 넘기도록 하고... 중역본들이 대개 그렇듯 매끄럽게 읽히는데 치중한 번역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이 판본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불가코프 전공자가 작업한 다른 번역본들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렇게 충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번역본이다. 2권 말미에 들어간 벌거지님의 서평은 꽤 훌륭했지만 번역에 들어간 정성 자체가 이리 부실해서야.

그 뒤에 접한 판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나온 김혜란의 번역본, 그리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홍대화의 번역본. 뒤의 두 판본은 이전에 나온 문예출판사 판에 비하면 정말 정성스럽게 제작된 판본이라 그저 감탄하면서 볼 뿐이다. 요 며칠간 나도 해외의 불가코프 팬 사이트를 뒤지며 나름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이 두 사람의 번역서에 달린 주석들은 상당 부분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작품 이해에는 거의 필수적인 주석들이어서, 문예출판사 판만 봤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를테면 2장에서 예슈아 하-노츠리가 유다 이스카리옷과의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박형규 역(45~46p, 1권)  김혜란 역(44~45p)  홍대화(49~50p, 上권)
  "그럼," 총독이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아느냐? 그와 얘기한 적이 있다면, 케사르에 대하여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있습니다." 죄수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저께 저녁 저는 성전 근처 가리옷 마을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인가?" 빌라도가 묘한 눈빛을 띄고 물었다.
 "매우 선량하며,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죄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저의 사상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으며 즐거이 저를 환영했습니다."
 "촛불까지 켜고……." 빌라도가 이를 악문 채로 죄수에게 말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예." 예슈아는 총독이 그토록 소상한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데 놀라면서 말했다." 그는 저에게 정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더군요."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을 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목소리에는 체념한 듯한 기분이 나타났다. 
  "그럼," 그가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너는 키리아트에서 온 유다라는 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자에게, 그러니까 만일 말을 했다면, 카이사르에 대한 무슨 말인가를 했느냐?"
 "그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엊그제 저녁 성전 옆에서 키리아트 시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시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초대하여 대접해주었습니다……."
 "그자도 선량한 사람이었겠지?"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듯이  이글거렸다.
 "무척 선량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죄수가 대답했다. "그는 제 생각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고, 매우 정성스럽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작은 불꽃들도 켜두었고……." 빌라도는 거의 입을 벌리지 않고 죄수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두 눈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렇습니다." 예슈아는 총독이 그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는 것에 다소 놀라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텐가?" 빌라도의 어조에는 이미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대답해라.」 그는 말했다. 「너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38라는 자를 아느냐? 말한 적이 있다면, 네가 카이사르에 대해 한 말은 참으로 어떠한 것이냐?」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꺼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저께 저녁 나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라고 하는 한 젊은이를 성전 옆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도시 아래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했지요…….」
 「그는 선한 사람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악마 같은 불꽃이 튀었다.
 「아주 선량하고 상냥한 사람이지요.」 죄수는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의 생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맞이했습니다…….」
 「등불을 밝혔겠지…….」39 빌라도는 이를 악물고 죄수의 톤에 맞추어 말했다. 이때 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렇습니다.」 총독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면서 예슈아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는 그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지요.」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혹은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말투에는 기대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촛불', 혹은 '불꽃'에 대한 묘사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소 생뚱맞게 삽입된 부분이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총독이 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불을 켰다는 사실을 짐작한단 말인가? 별다른 주석을 제시하지 않는 박형규 역에서는 이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만, 김혜란 역과 홍대화 역에서는 미주와 각주를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의 율법은 누군가 종교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유혹'의 죄로 고소된 경우, 두 증인으로 하여금 벽 뒤에서 숨어 지켜보게 하고, 그 옆방에 피고인을 들어가게 하여, 피고인이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증인들이 그의 말을 듣게 했다. 그리고 이 때 피고인 곁에는 촛불 두 개를 켜두어, 증인들이 피고인의 얼굴을 분명히 알아보도록 했다. (김혜란, 619p)

로마법에 따르면 숨겨 놓은 증인들이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밝히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대화, 상권 50p)

유다가 예수를 초대하면서 촛불을 켰다는 사실은 결국 이 때 이미 유다가 예슈아 하-노츠리(곧 예수)를 팔아넘기고자 했다는 뜻이고, 본디오 빌라도가 이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는 건 그러한 사실을 본디오 빌라도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뜻한다. 주석이 없는 다른 판본에서는, 본인이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은 이상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대목이다.

기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자 자신이 살았던 당대, 스탈린 정권 치하의 러시아에 대한 풍자 소설일 뿐만 아니라 성경, 중세 파우스트 전설 등 숱한 배경지식들이 녹아난 소설이기도 하다. 결국 작품들이 품고 있는 맥락들을 집어내지 못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충실한 주석이 곁들여진 번역본들의 가치가 단연 높을 수밖에 없다.

남은 문제라면 기왕에 나온 두 주석본 중 어떤 책의 주석이 더 탁월하느냐의 여부가 되겠는데... 사실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인용한 구절에서는 김혜란 역의 주석이 훨씬 상세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홍대화 역에서 훨씬 상세하거나, 아예 홍대화 역에만 실린 주석도 적지 않다. 정말 재미있는 건, 두 번역본 모두 같은 원서와 같은 주석서를 참고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1990년에 출간된 불가코프 전집과 2007년에 출간된 벨로브롭체바의 주석서) 일단 쉽게 확인 가능한 차이라면 문학과지성사판은 주석을 미주로 달아 죄다 책 뒤로 밀어냈고, 열린책들판은 각주로 달아 그 때 그 때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정도.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러시아문학 특유의 독자적인(?) 인명 표기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고...

결국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을 까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 번역본도 나름 번역사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일단 2006년에 이 번역본이 재간되고 나서 최근 들어 갑자기 문학과지성사판이니 열린책들판이니 하는게 번역되기 시작했고, 모 출판사에도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는 하니 말이다. 번역 자체의 수준이야 어떻든 불가코프 번역 붐(?)을 일으킨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할까? 그렇다곤 해도 문예출판사의 번역본만 보겠다고 하면 썩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모 출판사에도 2007년에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 들었다. 언제 나올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번역자 분이 소설가로서는 내 나름 주목하는 분이기도 해서 제법 궁금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원고가 2007년에 넘어갔다 하니 문학과지성사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고보다는 주석이 상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뭐 모 출판사에서 현직 교수인 이상섭 씨가 번역한 『아서 왕의 죽음』조차 2005년에 원고를 받아놓고서는 올해 말에 낸다니 만다니 하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과연 언제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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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돌아온, '2008년에 읽은 책'

예전에 읽었던 걸 다시 읽은 책, 수험 서적(토플, 한자 등), 만화, 아직 밝힐 수 없는 책들은 제외. 도색잡지는 없으니 의심 마시라.

...그러고 나니 쓸 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건 우째서...



총류
교수신문『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1』생각의나무
목차(도서 창고 위키)
학술언론, 교수신문에서 연재되었던 번역 비평 특집 기사를 (1차로) 묶어냈던 책들이다. 이 책을 구입할 당시의 내게는 꽤 비싼 가격이었던지라(요즘에 와선 책의 가격에도 제법 무덤덤해졌다) 제법 고심한 뒤에 샀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고 난 직후에는 대만족. 한동안은 이 책에 실려 있는 번역 비평들을 신처럼 신봉하던 시절마저 있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지만, 번역서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들춰보게 되는 책이라는 것은 여전하다. 현재는 2권까지 출간.
모색 『계간 모색 5호 : 학문후속세대의 새로운 전망을 꿈꾼다』이후
리뷰(2008/09/06)
학문하며 산다는 것의 우울함을 가르쳐주었던 책... 그러고보니, 모 번역자가 로스쿨로 진학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인문학자의 길은 인생의 특정 시점에서 특정한 공간에 서 있어야만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게 생각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던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야르『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김병욱, 여름언덕
내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아직까지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올해 중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1월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 아니던가. (정말 의아해서 지난 글들을 뒤져보니, 두어번 언급하긴 했었다) 
열린책들『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열린책들
리뷰(2008/03/19)
정가는 3천원밖에 하지 않는 이 책이 중고 시장에서는 5만원도 넘게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거래가 성사되는 걸 본 적은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가격으로 팔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게다. 좋은 책이 일찍 절판되어버린 통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하나 영 마음이 편치는 않다. 

철학
김상봉『도덕교육의 파시즘』길
도갤에선가 우연히 알게 되어 읽었던 책. TV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책 치고는 제법 딱딱하지 싶더라만, 그래도 읽을만 하다. 주제 자체가 워낙 심각하고 중요하니까. 모 웹진에 서평을 보내려고 골랐던 책이기도 하다. (늦게 쓰는 바람에 결국 싣지는 못했지만. 이번달에는 다른 원고를 보낼 예정이다.)
신동준『공자와 그의 제자들』한길사
리뷰(2008/06/30)
얄롬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시그마프레스
이훈진『편집성 성격장애』학지사
확실히 그런 시절이 있긴 했다. 혹여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안좋게 보진 않을까, 못마땅히 여기지 않을까, 내쳐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때가. 물론 그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쉽사리 떨쳐내기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급기야 선택한 것이 심리학을 공부하는 거였다. 차라리 내 현재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걸 극복하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원래 의도했던 것은 얻지 못했다.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편집성 성격장애'와 내 증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제법 도움을 얻기도 했다. 증세가 같지 않다는 것에 - 다시 말해 내가 앓는 것이 '병' 수준은 아니라는 것에 - 안심했으니까.

종교
이강엽『신화』연세대학교
연세대 문학의 기본개념 총서... 신화의 개념과 그 요소에 대해 다룬 책이다. 작년에 읽었던 『신화의 역사』보다는 좀 딱딱하긴 해도, 신화학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데는 굉장히 쓸만한 책이지 싶다. 특히 「신화와 현대문화」 챕터를 보고 나선 같은 총서의 『현대문화와 신화』도 이 저자가 집필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이 정도의 퀄리티만 유지된다면 '문학의 기본 개념' 총서의 미래도 밝으련만.
이윤기『뮈토스 1』고려원
언제 읽었는지는 고사하고 내용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 산 책도 다 안읽었으면서 무턱대고 새로 책을 사 모으고, 다른 책을 살 명분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읽어내던 시절의 흔적.
정재서『이야기 동양 신화 1』황금부엉이
새로 산 책도 다 안읽었으면서 무턱대고 새로 책을 사 모으고, 다른 책을 살 명분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읽어내던 시절의 흔적.(2)
김산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휴머니스트
리뷰(2008/12/21)
김지방『정치교회』교양인
리뷰(2008/12/22)

경제학
우석훈『88만원 세대』레디앙
리뷰(2008/04/26)
우석훈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88만원 세대』의 핀트를 약간 바꿔서 20대 젊은이들이 힘든 건 그들이 못났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책을 썼다면 책이 훨씬 잘팔렸을 거다'라고 주장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웃기시네. 우석훈이 문장만 좀 더 근사하게 뽑아내는 사람이었어도 책이 두 배는 더 잘팔렸을 거다. 사실 이 정도로 엉망인 문장을 봐야 한다는 건 거의 재앙에 가깝다. 『괴물의 탄생』은 이보다는 훨씬 낫더라.
우석훈『괴물의 탄생』개마고원
"경제학자로서 현재의 위기에 어떤 해결책을 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전제했던 책. 그 결론에는 썩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자세 자체는 퍽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인문학자가 비슷한 어조로 글을 쓰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장하준『사다리 걷어차기』형성백, 부키
글 자체는 흥미로운데 이상스레 영 읽히지는 않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우상을 떠받드는 이들을 조금은 더 똑똑하게 가소로워할 수 있게 해준 책.
샤피로『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공혜진, 서돌
adios777 형님이 추천해 주셨던 책. 그러고보면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뭘 하시는지...

법학
김두식『헌법의 풍경』교양인
법학 교양서. 그냥 법조계 전반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사담 형식으로 푼 책이다. 그런 책에 『헌법의 풍경』이라는 제목은 좀 과하지... '전관예우'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밀하게 쌓아올려진다는 사실을 안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임종인外『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
사실 이 책도 서평을 쓰려고 준비는 해뒀었는데 결국 쓰질 못했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는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책인데도 정작 글은 쓰질 못했으니...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과 맞서야 하는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를 알려준 책이었다. 총과 마약으로 무장한 건달들보다도, 펜과 명함으로 치장한 와이셔츠 군단이 훨씬 마피아에 가깝다는 걸 가르쳐준 책이기도 하고...
조국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
제목'은' 훌륭하다. 허나 굳이 말하자면 개론서 성격을 띄는 책에 '~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건 좀 과한 처사가 아닐지. 나온지 제법 되는 책인지라(2001년) 내용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게 없다만 그내용을 '생각보다는' 쉽게 풀어내는 데 놀랐다. 조국 교수는 그저 잘생긴 얼굴로 유명한 교수 정도로 알고 있었다만 이만하면 다른 저술에도 관심가져볼만 하다 싶을 정도였다.

교육학
강성민『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
살림지식총서. 좋은 책이긴 했다만 『모색』에 비하면 좀 충격이 덜하긴 했다. 분량 자체가 워낙 짧은 책이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서도.
Bain 『What the best college teachers do』Harvard Univ.
밤 중에 하릴 없이 TV 채널을 돌려보다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멘터리... 거기서 참고 문헌으로 제시되었던 책이다. 알고 보니 그때쯤 유행하던 소위 '긍정의 힘'이라는 게 교육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가 다룬 책이었다. 좀 호기심이 생겨서 일부러 원서를 구해다 보긴 했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책을 덮을 때까지 다큐멘터리를 통해 짐작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는 부분은 없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반성하긴 한다. 과연 이 책의 출판사가 "Havard Univ."가 아니었다면 굳이 원서를 구입했겠는가 하고) 

문학(총류)
고장원『SF의 법칙』살림
살림지식총서. 책 초반에 SF의 역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평소 절대 SF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보곤 잠시 책을 덮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쥘 베른보다도 앞선 시대에 속하는 작가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책을 산건가 싶어서. 끝까지 읽고 나니 그렇게 나쁘지도, 어렵지도 않은책도 아니었다만 초장에 당했던 떨떠름한 기억은 영 지우기 어렵다. 그런 식으로까지 자신의 가치를 부풀려야 하는 걸까. SF라는 장르는.
린드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박혜숙『소설의 등장인물』연세대학교
연세대 문학의 기본개념 총서. 제목에 충실한 책이다. 등장인물의 개념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에 꽤 좋았던 책. 물론 정말 심도있는 논의야 전문적인 비평서들을 뒤져야 하겠지만, 이만하면 책값은 한 셈이다.
에코 『논문 잘쓰는 방법』김운찬, 열린책들
리뷰(2008/02/28)
안정효『글쓰기 만보』(메멘토)
번역으로도 유명한 작가의 작법서. 해서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했었다만 그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했다며 잘 안하려 하는 것에 약간은 실망하기도... (물론 이해는 한다) 출판사에서는 글쓰기 전반에 대한 참고서인양 광고를 해대서 샀는데 정작 읽어보니 '소설' 창작에 대한 글이었다. 음... 확실히 그 분야에서는 제값할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더이상 소설 창작에는 관심 갖지 않게 된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윤오영『수필 문학 입문』태학사
작법서. 도갤에 어떤 이가 도서 추천을 부탁하자('남에게 안알려주고 자기만 읽던 책이 있다면?') 다른 도갤러가 답한 책이었다. 호기심에 한 번 사서 봤는데... 제법 괜찮다. 
이태준『문장강화』이형택, 창작과비평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가. 책 자체가 워낙 낡아서 그럴 테지만 『수필 문학 입문』이나 『글쓰기 만보』에 비하면 그닥.., 아, 인터넷 서점에서의 가격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우월하더라만.
지라르『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김치수外, 한길사
작고한 비평가 김현이 무척이나 좋아했다던 평론가... 덕분에 한국 문단에서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알려졌고, 제법 큰 영향도 끼쳤다고 하는데, 김현의 팬을 자처하는 내가 이 평론가를 접한 건 올해에 들어서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 대부분을 읽지 않았던 것에 상당히 자신없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놀라우리만큼 만족스럽다. 세상에. 비평이 이리 재미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적과 흑』의 경우는 지라르의 설명이 워낙 훌륭해서 중간에 참지 못하고 『적과 흑』을 사서 읽은 다음에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었을 정도다. 그가 제시했던 '욕망의 삼각형'이라는 이론도, 근본적으로는 그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훨씬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학(앤솔러지)
김이환外『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황금가지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다만 문장에 개재된 김보영 씨의 단편 「스크립터」(링크)를 보고는 기겁해하며 황급히 주문했더랬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절대 책값 아까워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스크립터」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단 말씀. 수록된 작품들이 대개 작가의 데뷔작이거나 초기작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까. 그래도 「초록 연필」같은 단편도 건졌으니 손해는 안봤다 싶지만.
박민규外『앱솔루트 바디』해토
저자 중 한 분에게서 선물받은 책... 딱히 그 분과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열었던 이벤트에 운좋게 당첨된 것 뿐이다. 사실 수록된 작품들이 그렇게 괜찮다는 인상은 받질 못했다.
이문열『세계명작산책』살림
예전에 이 책을 두고 '이문열이라는 이름에 이를 박박 갈면서도 어쨌든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에 출간된 세계명작 앤솔러지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 높은 앤솔러지가 아닐까. 물론 선정자의 정신나간 취향이 드러나긴 한다. 가령 1권 「사랑의 여러 빛깔」에는 정작 제대로 된 로맨스 작품이 거의 없고, 2권 「죽음의 미학」에는 초장부터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나간 단편 「우국」이 수록되어 있는 식으로.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정말 최정상급의 앤솔러지인 것만큼은 분명...

한국문학
강명관外『공부의 즐거움』위즈덤하우스
공부 좋아하기로 유명한 명사들을 모아둔 건 좋은데, 그래놓고서 시킬 짓이 '난 어떻게 성공했소' 하는 식의 자기자랑밖에 없었을까? 그저 목차에서 필진들의 이름을 확인해두었다가 그들의 저서를 하나씩 읽어보는게 더 내실있는 독서가 되리라.
김훈 『남한산성』학고재
일전에도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지만 김훈만큼이나 내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가는 드물다. (링크) 굳이 꼽자면 이영도 정도나 들 수 있을까. 여하간 이 사람에게서 소설가로서의 가능성을 접게 된 건 『개』 때부터였다고 기억한다. 해서 『남한산성』이 발표되었을 때도 좀 심드렁한 심정으로 들으며 주문했었다. 글쎄. 물론 『개』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언론에서 호들갑 떨던 것처럼 '끝내주는' 글은 아니었다. 그저 그냥 그대로 가면 밥은 안 굶고 살만하겠다 싶은 정도랄까...
기형도『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작년에 휴학하기 전, 숙소 인근의 모 서점에 들렀다가 그냥 나오기가 마땅치 않아 짚히는대로 사들고 온 책이었다. 정작 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몇 번 들춰보다 만 상태로 묵혀두다 올해 들어서야 읽은 것인데... 그냥 괜히 샀지 싶었다. 여전히 시는 내 분야가 아니니 평가할 부분은 아니지만 산문은... 글쎄다. 비범한 시재(詩材)를 확인하기엔 영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김수영『김수영 전집』민음사
「시」 편은 진작에 생일 선물로 받아서 읽었었고, 올해 읽은 책은 「산문」편이었다. 시인의 외모 때문인가.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필치를 예상했거늘 정작 그의 필치는 수더분하기 그지 없었으니... 비유하자면 '젖은 88 라이트'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물론 그런 느낌도 나쁘지 않더랬다. 확실히 좋은 시인은 좋은 산문을 쓸 줄 안다. 『김수영 전집』을 읽다 알게 된 사실 하나. 김수영이 번역했다고 알려진 작품 중에서 적어도 한 작품은 그가 직접 번역한게 아니다.
김이환『양말 줍는 소년』황금가지
리뷰(2008/06/26)
나승규『해한가』시드노벨
꽤 오래전부터 쓰겠다고 설레발쳐댔으면서도 결국 나는 이 소설의 리뷰를 올리는데 실패했다. 써놓은게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써놓은게 A4 7페이지 분량. 나머지로 계획했던게 4,5페이지 쯤 남았긴 하지만, 지금 상태로도 업로드하기에 부족한 분량은 아니다. (심히 허접할 거라는게 문제지...). 글쎄. 이 소설에 대한 내 입장 변화는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읽을 때는 굉장히 몰입했으면서도 읽고 나서는 사정없이 후드려까댔고, 그러면서도 장문의 리뷰를 썼다. 그러다 이글루스 등지에 『해한가』리뷰가 수두룩하게 올라오게 되면서부터는 나도 그냥 시들해졌고... 앞으로도 그 미완성 원고가 완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가끔 사람들이 "왜 서평 안써요?"하고 놀릴 때나 이야기하게 되겠지.
듀나 『용의 이』북스피어
다 읽긴 읽었으되... 작가로서의 듀나는 서서히 하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평양 횡단특급>에서 그가 구사하던 군더더기 없고 정갈한 문체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가 쓰는 글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지지만 그만큼 씁쓸함도 늘어간다. 그건 그렇고 듀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안다는데, 신비주의 전략도 이제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듀나가 자신의 비밀을 비싸게 팔 수 있는 시기는 지난 듯 한데.
정은궐『해를 품은 달』시공사
그놈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판평대...때문에 읽어야 했던 작품. 로맨스 소설은 전혀 읽어보질 않았던 지라 내심 걱정했다가, 의외로 잘 읽히는 것에 신기해하며 읽었었다. (최근에 『타임 패트롤』을 읽으면서도 느꼈었지만, 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내 자신의 적응력을 지나치게 낮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꼴에 전공자랍시고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한문 경구들에 감탄하기도 했고.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중국문학
풍몽룡『동주 열국지』김구용, 솔
리뷰(2008/02/28)
오승은『서유기』서울대, 솔
리뷰(2008/06/05)
포송령『요재지이』김혜경, 민음사
청나라 때 엮인 중국 괴기담 모음집. 뜻밖에 골때리는 이야기가 많다. 예컨대 주인공 사내가 여행을 하던 중에 왠 미소년이 자기를 꼬시길래 관계를 맺었는데 주인공 사내의 '그것'이 엄청난 대물이었던지라 미소년이 뒷구멍으로 피를 쏟아냈다는 이야기라던가... 이처럼 외설적인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이야기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던 작품. 이런 원전에서 기껏 《천녀유혼》같은 로맨스물이나 뽑아낸 걸 보면 참... 

영미문학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최용준, 시공사
리뷰(2008/01/22)
마리니外『드라큘라』이병수, 이룸
피귀르 미틱 총서 13번. 흡혈귀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룬 책이다. 물론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스토커의 『드라큘라』. 꽤 흥미로운 책이다. 다른 책도 이 정도라면 피귀르 미틱 총서를 다 사는 것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스토커『드라큘라』이세욱, 열린책들
정보(도서 창고 위키)
영화나 만화 등 곁다리 작품들로만 접해오다 올해 들어서야 겨우 원전을 읽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다. 한 편의 근사한 작품이 후대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알려준 작품. 
애덤스『워터십다운의 열한마리 토끼』햇살과나무꾼, 사계절
출근 중에 읽다가 몇 번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게 만들었던 소설. 띠지의 광고 문구가 과장 광고로 보이지 않은 경우도 정말 오랜만이다.
앤더슨『타임 패트롤』김상훈&이정인, 행복한책읽기
리뷰(2008/12/22)
1권은 좀 심드렁하게 읽었다만 2권에선 정말 기절초풍해하며 읽었었다. 원 세상에 내가 SF소설에 이렇게 빠져드는 날이 올 거라고는...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민음사
리뷰(2008/05/22)
위벌리『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박중서, 뜨인돌
이래저래 호평을 많이 듣기도 했다만, 50년이나 지나서도 읽힐만한 글은 아니지 싶다. 딱 1950년대 미국에서나 공감을 살만한 그런 정치적 유머가 담긴 책이라 해야 하나.
톨킨 『북극에서 온 편지』김상미, 씨앗을뿌리는사람
간만에 Yes24에 들어갔다가 무려 50% 할인 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어이 없어하며 사온 책일 게다. 세상에 아무리 출판계가 어렵다 해도 그렇지 톨킨의 책이 그런 대접을 받는 걸 그대로 넘기기는 어렵다.
홀드스톡『미사고의 숲』김상훈, 열린책들
번역자로서의 김상훈 씨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책...

독일문학
호프만『악마의 묘약』박계수, 황금가지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묵은 책이 아닐까 싶다. 2004년에 샀던 책을 2008년에야 읽었으니. (정말 생각 없다 싶을 정도로 책을 무작정 사모으던 시절이라, 우리 집 서가에는 아직도 그 시절에 사놓고 못 다 읽은 책들이 여러 권 된다) 그닥 신통찮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이런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

프랑스문학
스탕달『적과 흑』김붕구, 범우사
지라르의 비평 때문에 읽게 된 책. 그 전에 한 번도 읽은 바 없고 한 번도 들은 바 없었건만, 지라르의 비평 속에서 이 소설은 정말 재밌어보였다! 과연, 나로서는 상당히 호의를 두고 읽을만한 소설이었다. 한 때 플로베르를 흉내내어 "쥘리앙 소렐은 바로 나다!"라고 외치고 다니던 시절마저 있었으니... 허나 역시 재미로 따지면 비평보다도 덜했던게 사실.
아미엘『아미엘의 일기』김욱, 바움
어디에선가 '평생 고독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막장 인생을 보낸 남자의 일기'라는 설명을 듣고는 사서 본 책이다. 상당히 기대(?)를 갖고 사봤다만, 결과는 그저 그랬다. 그 전에 『최강전설 쿠로사와』나 『죄와 벌』 같은 작품들을 읽었던 탓인가도 모르겠으나, 글만 봐선 뭐 심드렁할 따름인지라. 물론 그의 인생 자체는 우울하기 그지 없지만. 그러고보면 프레데릭 아미엘은 평생 '1만 7천 페이지의 일기'를 남겼다는데 국내에 출간된 책은 어찌 500페이지가 좀 안되는 '얄팍한' 책 뿐인가. 필시 발췌본일 텐데, 거기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는 출판사가 괴씸할 다름이다.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이세욱, 문학동네
리뷰(2008/02/28)
사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보다는 『세계명작산책』에 실린 「사빈느」가 훨씬 근사했었다.

러시아문학
도스토예프스키『분신 / 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열린책들
서간체 연애 소설. 예전에 본 중역본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놀랐엇다. 그 판본에서는 서로 좀 더 노골적이고 '연인' 같은 분위기도 더 컸었다. 그에 비하면 열린책들 판본은 좀 무뚝뚝하게 옮겨진 편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여자 쪽에서 전해오는 '어릴 때 좋아했던 가정교사'가 더 기억에 남는다. 질척질척하고 음울하고 슬픈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홍대화, 열린책들
리뷰(2008/03/17)
조유선編『도스또예프스끼 읽기 사전』열린책들
알라딘 중고샵에서 놀다가 우연히 발견하곤 덥썩 물어온 물건. '도서 창고 위키'의 러시아문학 파트는 이 사전이 없었다면 거의 채워지질 못했을 게다.

역사
츠바이크『광기와 우연의 역사』안인희, 휴머니스트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적 장면을 극화한 단편 모음 정도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하기사 시오노 나나미의 책도 일단은 역사서라고 하는 판국이니...
플루타르코스『플루타르코스 영웅전』천병희, 숲
다 좋은데 편집 미스. 『그리스를 만든 영웅들』에서「테미클레토스 전」끝부분이 뭉텅 잘려나가고 없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가격을 비싸게 매기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런 건 좀 용납하기 어렵다. 출판사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항의하려 해도 영 찾을 수 없으니...

기타
김욱동『번역인가 반역인가』문학수첩
번역 테크닉에 대해 가르쳐주는 책. 김욱동 씨가 번역한 책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영어 공부하는데 제법 도움은 되겠다 싶었다. 영어 공부가 뜸한 요즈에 와선 잘 안보는 책.
바우텔『무기의 역사』박광순, 가람기획
순전히 판작안 때문에 사봤던 책. 내가 밀덕후는 못되는구나 하는 것만 자각하고 끝났을 뿐이다.
줄레조『아파트 공화국』길혜연, 후마니타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실패한 주거 모델로 치부되는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에서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규명한 책. 지지세력이 필요했던 군부 정권과 귀족적 삶·재산 증식을 원했던 중산층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통찰은 날카롭다. 앞으로 한국의 '~방' 문화(찜질방, 노래방, 피시방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이라 하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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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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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체가 '촌스럽고' 여백이 많이 남는 걸 보니 89년 초판 당시의 조판을 그대로 가져다 쓴 모양이다. 민음사나 문학과지성사 같은 유서깊은(?) 출판사에서 낸 고전들에 종종 있는 일인데, 볼 때마다 늘 '당했다'는 느낌 뿐이다. 외환위기 전에 2만 5천이나 되는 책을 내면서 활자조차 바꾸지 않고 표지만 바꾼 것은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산 게 파본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유독 인쇄 상태도 나쁜 듯 하고. '문학과지성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일이다. 김현 전집에서 보여주던 만큼의 정성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투덜거리며 건성건성 페이지를 넘겨보는데 역자 후기의 첫머리에 김현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흠칫하고 말았다. 그제야 역자의 약력을 보니 서울대 불문과 사람이다. 오호라… 문지 내에서 '서울대 불문과'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더니. 역자의 말을 믿는다면 번역 자체도 김현의 호의와 관심 때문에 시작한 일인 모양인데 - 그래서인지 김현에 대한 수사들이 좀 과하지 싶기도 하다 - 김현이 언제 중세사에 관심을 가졌었던가 싶다.

생각난김에 <중세의 가을>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 <행복한 책읽기>를 뒤져보니 러시아 문학과 관련하여 18,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서구 취향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88.4.1) 러시아 귀족들의 피아노 교습, 오페라 관람, 프랑스 어 사용, 구애 방법의 선택이 서구적임을 지적하는 따위를 두고 김현에게 서양사 취향이 있다 근거삼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불문학자인 그가 달리 어디에서 그와 관한 교양을 쌓았을 것인가.

P.S. 1

역시 <중세의 가을>은 교환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글자가 흐린 것 때문이 아니라(어차피 판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도 없다) 겉표지가 찢겨 있는 것 탓이다. 아마 책 창고에서 끄집어내다 잘못하여 찢긴 모양이다. 책 상태에 대해서는 어지간하면 신경 쓰지 않는 주의지만, 찢긴 부위가 하필 책장에 꽂아놓으면 대번에 눈에 띄는 자리라 어쩔 수가 없다. 문학과지성사 정도면 파본이 하나쯤 더 나온단들 별 타격도 없을 거고. (<용의 이>파본을 그냥 안고 말았던 북스피어 때와는 다르다, 북스피어와는!)

P.S. 2

<중세의 가을> 관련 언급을 찾다가 눈에 띄는 말을 발견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 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김치수의 말이라는데, (88.3.12) 그냥 넘겨 듣기엔 영 아쉬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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