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외 9인 (해토, 2009년)
상세보기


시험 공부가 잘 되지 않으니 기분전환 삼아 서평이라도 써야겠다. 전체적으로는 판갤에 올렸던 글(링크)이 기반이다. 

-

이영도「별뜨기에 관하여
이영도의 SF 소설을 읽고는 한번도 만족해본 적이 없다. SF계의 클리셰들을 많이 가져다 쓴 티가 나서... (그나마 듀나처럼 클리셰를 잘 써먹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헤인 연대기》의 '연맹'을 연상시키는 조직에다가 앤시블까지 등장하던데, 이건 아무리 봐도 어슐러 K. 르 귄의 영향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영도가 SF쪽에서는 아직 자기 색을 모찾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듀나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표제작. 듀나 이름값이 아니면 그리 나쁘지 않은 단편이기야 한데... 마이크 레스닉의 「늙은 신들의 죽음」과 비슷하게 흘러가려나 싶더니 결말이 조금 어처구니 없게 끝나서 기분이 상했었다. 우주인 중 한 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다른 한 명을 위한 캐릭터였으리라. 자기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독백이라면 영 꼴이 이상하니까.

임태운「채널
재미없다. 대사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임태운 소설의 재미는 별 것 아닌 플롯을 재치있는 대사와 설명으로 맛깔나게 버무린다는 건데 이렇게 건성이어서야 곤란하다. 작가에겐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대강 쓴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전체적으로 좀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데커드' 형사는... 필립 딕일까, 로봇수사대 K캅스일까?
 
송경아「하나를 위한 하루
스토리야 별 것 없고 캐릭터에 기대는 소설인데... 핵심 인물 중 하나인 '형'의 성격이 그닥 일관되질 못하다. 권위적인듯 했다가 다정하고, 군림하는 듯 하다가도 그렇지 않고... 캐릭터의 성격이 변한다는게 아니라 그냥 튄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반부는 정말 괜찮은데 후반부가 별로. 엔딩도 거기서 끝맺어질 시점은 아니었다. 기왕 쓸 거라면 차라리 더 길게 이어가는게 나았을 텐데.

설인효「진짜 죽음
총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황 설정, 캐릭터들의 행동 양상, 결말 맺는 방식 등등... 임태운의 단편 이상으로 안일한 작품이다. 이 책 읽을 분들은 그냥 건너 뛰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노기욱「소울메이트
'과학이 당신의 사랑까지 해결해드리겠다!' 처음부터 이런 식의 프레이즈가 나오는 작품은 대개 결말도 결정되기 마련. 과연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확인하면서 끝난다. 나야 이런 결말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 결말을 끌어내는 방식은 좀 더 정교해야 했다.

판갤에서 이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누군가가 이 단편의 기반이 된 너비아니 씨의 엽편을 보여주었는데, 그 엽편 쪽의 완성도가 더 높았다. 좀 어거지로 끼어든다 싶었던 마지막 부분도 이 엽편에 실린 문단을 그대로 실으려다 보니 그리 되었던 모양. 또 너비아니씨는 '내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동치성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한번쯤 나왔어야 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김보영「0과 1 사이
같은 앤솔러지에 실린 작품 중 가히 최고 걸작. 이 작품이 실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앤솔러지는 값을 한다. 커트 보네거트나 테드 창이 이미 비슷한 소재로 작품을 내긴 했지만, 그들의 소설에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렇게 압도적인 비교 대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인 일이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문장들로 가득찬 좋은 작품.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야.
그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너희 나이 때엔 다 그런 거라는 말도,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도 하지 않겠어. 내게 그 말을 '하지 않는' 어른이 아무도 없다면, 그럴 수 있는 어른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내가 나이를 먹고 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어. 그 말에 담긴 무심함과 비겁함을, 어리석음을 아는 어른이 되겠어.
- 김보영「0과 1 사이」 中

이런 위로를 듣고서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몽 「차이니스 와이너리
괜찮은 작품이긴 한데... 뒷심이 많이 부족하다. 주인공이 귀국한 후를 좀 더 상세하게 풀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급하게 끝맺어버린 느낌이다. 마감에 쫓기기라도 했던 걸까?

김선우「양치기의 달
고백하건데, 김선우의 소설은 단 한번도 만족스럽게 읽은 적이 없다. 그래도 이 소설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지만. 외계 행성에서의 탐험을 다룬 소설에서는 독자가 실존하지도 않는 그 세계에 관심 가질만한 이유를 부여해야 하기 마련이다. 어슐러 K. 르 귄의 『로캐넌의 세계』가 걸작이란 소릴 듣는 건 그런 작업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이고.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작업에 성공했는지는 상당히 미지수. 한마디로 거기 사는 사람들이 어떤 인종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주인공도 영 매력적이지 않고. 생판 처음 만난 소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 그리 쉽게 확신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주인공이 절망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끼워맞춘 장면인듯 싶다. 그래서야 설득력은 떨어지고, 공감도 되지 않는다.

백상준「우주복」
처음 보는 작가이긴 한데... 나쁘진 않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로캐넌의 세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표절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썩 독창적이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 집」  (0) 2009/12/01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 2009/10/20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1) 2009/09/19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4) 2009/09/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58 관련글 쓰기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이환 외 9인 (황금가지, 2009년)
상세보기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과 마찬가지로 위 프로필의 '지은이' 부분을 고쳤다는건 다들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표제작 쓴 작가를 놔두고 왜 다른 작가를 메인 작가로 내세운단 말인가. 거 참...

지난 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앤솔러지가 출간되었다. 전작과는 달리 표제작을 선정했고, 포맷도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환상문학웹진 거울' 소속 작가진이 주축이라는 점만큼은 여전하다. 얼마 전에 '시작'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또한 거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담았다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적어도 창작 장르문학 단편에서만큼은 거울의 입지가 서서히 탄탄해져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거울 측에서 자체적으로 냈던 단편집들을 제외한다 해도 이걸로 거울 작가들이 주축인 단편집이 벌써 여섯 권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를 만났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U, ROBOT』) 최근 4,5년 사이에 정식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창작 SF&판타지 단편집이 열권 남짓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놀라운 수치다.

(물론,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 장르문학판의 작가 발굴 시스템이 뭔가 기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거다. 거울이 정말로 탄탄한 작가진을 갖춘 집단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비중이 쏠린다는건 사실 그렇게 바람직한 사태는 아니다.)

전체적인 평을 해보자면, 근래 메이저(?)에서 나온 거울 관련 앤솔러지 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경우와는 달리 대부분이 한두 해 전에 발표된 '최신' 작품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그 덕인지『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작품 간의 편차도 덜한 편이고...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수록된품들의 발표 연도는 2003년에서 2008년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북시의 관련 항목 참조) 

그런데 신기하게 이번 단편집에서는 결말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거의 없다. 미완성 작품이거나 편집 미스로 뒷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작품까지 있을 지경인데다 전반부는 정말 몰입해서 읽던 작품도 막판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보니... 원래 결말 맺기가 어렵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이 좀 괴팍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

※ 거울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게시물의 경우는 옆에 링크를 추가했다. 해당 게시물에 달렸던 리플 역시 참고해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지하철에서 한참 몰입해서 읽다가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 말미를 읽고는 속으로 '이건 뭐여!'하고 외쳤더랬다. 왜 이런 결말이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 전까지는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거울에 발표되었을 때 달렸던 어느 리플따나마 슬픈 작푸미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작품에 더이상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은림 「노래하는 숲」(2007)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eun&no=12
일전에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의 리뷰를 쓰면서 '비슷비슷한 작품을 내는 작가'라고 흉(?)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작품 또한 기존에 읽었던 작품과 연결지을 만한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 가령 '식물=여성성' - 절대 '고만고만'하다고 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지난 리뷰에서 내렸던 평가가 상당히 섣부른 것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신작도 아니고 2007년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사실 그 플롯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적은 소재로 좋은 작품을 쓰기란 더 어려운 법인지라...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결말을 거의 예상했으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이 단편선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

김보영「노인과 소년」(2009)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571
네이버를 통해 소개되었던 작품...이면서 그다지 네이버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 하여금 (정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들은 가입만 해놓고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얘들도 가끔은 쓸만한 짓을 하는군'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노인'과 '소년'의 대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선문답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그러고보니 작가가 헤세를 좋아한다던가.

김선우「천국으로 가는 길
베르나르 베르베르인가가 이미 써먹은 통에 참신성은 떨어지는 작품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끝나서는 안될' 부분에서 끝났다는게 아닐까. 박애진의 단편을 읽었을 때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의 '이건 뭐여!'. 다 읽고 나서도 혹시 편집 미스로 뒷 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싶어서 페이지 번호를 확인해봤을 정도다. 정말로, 만에 하나, 진실로 이게 완전한 버전이라면 뒷 부분을 좀 더 이어서 쓰라고 말하고 싶고.

김이환「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2006)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robby&no=10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몇 번 더 읽어봐야겠는데, 좀 자신은 없다.

정보라「은아의 상자
재밌게 읽긴 했지만 '은아의 편지' 부분부터는 급속도로 맥이 빠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좀 과격한 비유이긴 하지만 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에게 그간의 전모를 죄다 밝혀주는 그런 장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임태운「뮤즈는 귀를 타고
나비 효과와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한 단편인데, 사실 같은 소재라면 듀나의 「나비 전쟁」이 더 나았지 싶다. 이 작품도 재밌게는 읽기야 했지만... 여담으로, (항상 겪는 일은 아니지만) 임태운의 단편을 읽다 보면 한창 재밌게 읽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섹스 관련 장면 때문에 기분을 잡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게 절정에 달했던 「전설의 용 우리 마을에 오시네 Red Dragon is coming to town」때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 있어서 영 찜찜햇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취향 탓이긴 한데...

정지원「장미 정원에서」(2009)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sandmeer&no=5
'오빠'란 캐릭터의 '급격한' 성격 변화는 좀 황당했다. 바로 전까지는 주인공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다가 그 직후에 '널 보낼 순 없어' 하는 식이라니... 뭐 다 읽고 나면 나름 이해할 구석이 생기긴 하는데 여튼 그건 좀 걸렸던 부분이다. 거기만 제외하면 제법 준수한 단편.

정희자「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90년대 중후반부터 장르문학 관련 통신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면 향수를 자극할만한 요소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길게 갈 것 없이 차라리 중간 부분에서 끊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이영도「샹파이의 광부들」(2009)
「봄이 왔다」 때부터도 느꼈던 거지만 이영도는 도대체 왜 그리 반전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복거일이 『드래곤 라자』에 반전 없다고 까댔던 게 그렇게 상처였던 걸까? 엉성한 반전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작품의 생명을 깎아먹기 마련이라는 걸 모를리도 없을텐데 말이다. 결말부에 가서는 아예 그게 왜 반전인지 설명하기까지 하는 통에 보는 내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정 이영도의 단편을 싣고자 했다면 사실 이 작품보다는 전작인 「에소릴의 드래곤」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영도의 애독자들은 대부분 네이버를 통해 전작을 읽었겠지만, 사실 전작을 읽지 않았다면 깨나 재미가 떨어질 단편이 「샹파이의 광부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단편에서는 더스번 칼파랑이 왜 '좋은 남자'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영도쯤 되는 작가면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샹파이의 광부들」을 실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아직 출간 안된 전작을 내버려두고 굳이 이 작품을 수록한 것인지 참...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 2009/10/20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1) 2009/09/19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4) 2009/09/12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0) 2009/09/0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51 관련글 쓰기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강지영 외 12인 (시작, 2009년)
상세보기

※ 원래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 서비스에는 지은이가 '강지영'으로만 되어 있다. 차마 저자들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진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 외 X인' 하는 식의 언급은 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 딱히 표제작이 없는 이런 책에서는 그 것도 사실 썩 적합한 방식은 못되지만, 어쨌거나 그게 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거다. 

-

거울 작가들이 주로 참여한 단편선이라는 점에서 얼핏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실 '거울 작가진이 참여한' 책이라곤 해도 두 책의 저자가 그리 많이 겹치지 않는지라 서로 비교하기는 좀 어렵기야 하지만서도.

이 책에 대해서는 대체 뭐라고 평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좀 더 낫기야 하다. 개중 굳이 베스트를 꼽아본다면 은림의 「낙오자」, 이수현의 「쓰레기들의 왕」, 임태운의 「이빨에 낀 돌개바람」정도를 들 수 있겠고. (저자 이름 순으로 배열) 허나 그 작품들도 진정 베스트라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들이 영 많은데다, 반대편에서는 거의 울화가 치밀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도 더러 섞인 판이니... 그런 작품들만 보자면 장르문학 리뷰어로도 제법 알려진 모 작가가 이 책을 거의 걸레짝 마냥 씹어댔다는게 딴에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싶을 정도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못쓴 글 때문에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 (by 콘라드, 판타지 갤러리)


-

강지영「브라보,청춘!
이 작품을 읽고 난 다음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이 책의 편집자는 무슨 저의에서 이 작품을 맨 앞에 배치한 걸까 하고. 단편선과 음반의 유사성을 지적하지 않는다 해도 '첫 번째 작품'이라는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의미란 상당하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편선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마련인데, 그런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라기엔 상당히 민망한 단편이다. 캐릭터는 엉성하고, 반전도 반전 같지 않고, 메시지는 노골적으로 다 드러나 있고...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이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수록된 단편은 이보다 좀 더 나으리라 믿는다. 아니면 요 근래 낸 장편 소설이라도.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다!
 
배명훈「얼굴이 커졌다
요즘 들어서는 가능하면 특정 작품의 리뷰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하는 짓을 자제하려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이오네스코의 「무소」를 언급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같은 아이디어를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나로서는 해피 엔딩인 「얼굴이 커졌다」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최현숙(은림)「낙오자
은림의 단편들에서는 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일관된 스타일을 좇는다고도 볼 수 있겠고, 점점 그 완성도가 나아지는 걸 보면 역시 그렇게 보는게 맞겠지만, 줄곳 작품을 보는 입장에서는 사실 좀 질린다. 좀 더 색다른 방향으로 나가봐도 좋을 텐데.
  
김이환(콜린)「버지니아 울프는 없었다
모 게시판에서 다른 단편선에 대한 프리뷰를 썼을 때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더니 이름모를 누군가가 사실 이 작품은 2005년에 거울에서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과연 찾아보니 「버지니아 울프 가라사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 있었다. 아하. 이게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단편선에는 통신상에 발표되었을 때와는 그 제목이 다른 작품이 여럿 있다. 작가와 편집자, 둘 중 누구의 뜻이었을까? 여하튼. 상상력의 과잉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던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을 본 탓인지는 몰라도 이 단편은 상대적으로 밋밋한 인상을 준다. 구멍 속 세계를 묘사할 것 까지야 없지만 - 그랬으면 오히려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르고 - 좀 더 길게, 과격하게 나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김주영(赤魚)「지구의 중력은 안녕하시니?
『환상문학웹진 거울 외계인 단편선』에 실렸던 작품의 재수록. 당연히 외계인을 다룬 단편인데, 소재를 활용한 방식은 내 취향에 맞는다. 외계인에 대한 작품을 쓰랬더니 '진짜' - 혹은 '전통적인' - 외계인이 튀어나와버리는 건 좀 재미없잖나. 다만 완성도가 그리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아르코의 아내가 등장하는 부분은 작가가 주인공들의 '정체'를 너무 서둘러서 밝히려 했다는 인상을 주고...
 
임태운「이빨에 끼인 돌개바람
임태운의 단편은 사실 두어편 읽어봤을 뿐이지만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을 쓰려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코믹물로서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이다. 김보영이 거울 프로필에 실린 임태운의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소년 만화 주인공을 컨셉으로 잡았다'고 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일리있는 관찰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민정(가는달)「나하의 거울
액자형 구조로 된 예술가 소설...이라고 정의해야 할 텐데, 액자형 구조가 과연 필요했는지는 의문. 바깥 이야기는 아예 내던져버리고 본론인 예술가 쪽에만 집중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작품의 내용과 제목이 그리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나하'에 대해 초반에 잠깐 언급되었다가 엔딩 부분에 거울이 다시 등장하는 수준인데, 이래서야 이런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김지현(아밀, 루나벨)「방문자
이전에 방문자들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과 신부의 차이가 대체 뭘까?

김지원(Sandmeer)「시간을 팝니다
책에는 '정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지만 그거 필명 아니던가? 뭐 은림도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작품을 수록했으니 별 문제 될 것 없긴 한데 좀 의아하기야 하다. 
 
김두흠(아이)「1억 원
중반부는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종반부까지 보고 나면 '초반부는 대체 왜 들어갔던 건가' 고민하게 되는 소설. '아 시발 꿈'은 대략 좋지 않다.
  
이수현(Askalai)「쓰레기들의 왕
혹시 예전에 발표된 단편이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과연 거울에서 2003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그 때는 「쓰레기나라의 왕」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바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웹상에 올라왔던 작품을 대충 훑어보니 - 정말 대충! - 제목이 바뀌었을 뿐 내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듯 하여 영 아쉽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어도 작가가 '영웅으로의 재탄생'이란 테마를 다루고 싶어했던 티가 너무나도 역력한 작품이었던 지라. (후반부의 '교수'는 거의 해설역에 가깝다.) 사실 단편 소설이라기보다는 장편 소설의 서장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단편이고,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신작을 내는 주기가 워낙 느리다는걸 감안하면 역시 이 작품이 장편으로 확장되는걸 보기란 지난한 일 아닐까...

써놓고나서 '왜 이 작품에 대해서만 할 말이 이리 많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창작을 한다면 꼭 한번쯤 다뤘을 만한 - 아니 다루고 싶어할만한 - 테마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양미현(Raile)「파랑새
'서로 시간차를 두고 천사와 악마를 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동일인물이더라' 하는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출처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간 그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에게는 참신한 맛이야 좀 떨어지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이상민「댁의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퇴마록을 비롯한 현대 배경 퇴마물에 등장할 법한 장면을 뚝 떼다가 글로 옮겨놓은 작품. 다른 소설의 외전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과 연결되는 글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소재를 글로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강지영의 「브라보, 청춘!」이 보자마자 사람을 격노케 했던데 비해,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사람을 울분케 했던 작품.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8 관련글 쓰기

어스시의 마법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상세보기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자니 아직 황금가지 홈페이지가 살아있을 때 누군가가 "『어스시』시리즈 나머지는 언제 번역되나요?" 하고 질문을 올렸다가 - 아마도 이영도의 팬이 아닐까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 "그딴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드래곤 라자』 양장본이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리플을 얻어들은 걸 본 게 생각난다. 해당 리플을 실시간으로 본 게 아니라 다른 일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라 제때에 화를 내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그날 내내 기분이 꽤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내가 이영도의 팬 때문에 불쾌함을 맛봐야 했던 두 경험 중 하나로 꼽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뭐냐고? 음... 이영도가 한국문학사에서 따라올 위인이 없는 최고의 작가라고 강변하던 작가지망생과 키워를 벌였던 추억.)

지금 시점에서는 그 기억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문제의 그 팬이 그리도 떠받드는 이영도라면 절대 르 귄의 작품을 '그런 거'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부를 수도 없고. 이영도가 이 정도로 대놓고 빌려온 작가를 그 팬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우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스시』의 '진짜 이름'과 『눈마새』의 '신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까?) 예전 기억에서의 그 양반이 기껏해야 '철딱서니 없는 것' 정도였다면 지금은 '무례한 놈' 쯤으로 평가가 하향조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좋은 작품을 점점 더 많이 접할 수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평가는 점점 떨어져가는게... 정말이지 광신도는 장르를 불문하고 만인의 적이라는 게 진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독서 경험이다.

...라고 써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군.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조만간.


'일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뭐지?  (0) 2009/09/18
『어스시의 마법사』와 이영도 팬덤에 대한 기억  (7) 2009/09/09
한국에 출간된 장르문학 관련 앤솔러지 목록 (미완?)  (4) 2009/06/01
서평  (0) 2009/04/23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7 관련글 쓰기


※ 이 리뷰의 본문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올라간 기사에서 확인해주세요.

여름 호러 특집 기사 자체는 이미 지난달 29일에 올라온 것을, 며칠 늦게 퍼다놓는다. 핑계를 삼자면, 지난 며칠간 지난 기사에 관심을 쏟을 정도가 되질 못했었다. (뒤늦게나마 글을 쓰게 된건 블로그를 1주일 넘게 버려놓았었다는게 뒤늦게 생각나서...)

거울 쪽에서 처음 청탁을 받았을 때부터 완성된 기사를 넘길 때까지 상당히 애를 먹였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원작, 즉 『오만과 편견』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기사를 쓰겠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나를 난감하게 했던 작품이었으니까.

기힉 자체는 재미있다.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한 고전을, 몇몇 문장만 뜯어고쳐서 좀비물로 바꿔놓겠다는 것인데, 리뷰에도 썼듯 꽤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나 자신도 고전을 활용한 작품들은 꽤 좋아하는 편인지라 상당히 기대를 갖고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처참할 정도의 졸작이었다. 원작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었던 섬세한 성격차는 할리우드 액션 활극에 걸맞도록 단순화되었고, 그 결과 이 소설이 원래 연애물로서 갖고 있던 성격은 거의 퇴색되어버렸다. 사실 원작인 『오만과 편견』(자신의 시대에 비해서는) 가히 선구적이라 할 정도로 재기발랄하며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과 그와 마찬가치로 여성의 지적 능력을 존중할 줄 아는 멋진 남성과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를 지켜보는 재미로 봤던 작품인데, 그런 캐릭터들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좀비 사냥꾼 두 마리로 변신하고 말았으니...  요컨대 원작의 명성은 최대한 빌리면서도 정작 원작에 대한 예의는 가장 지키지 않은 '패러디물'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거울에 보낸 서평은 '원작을 훼손한' 작가와 기획자에 대한 분노가 치덕 치덕된 글이 되고 말았으니... 사실 '여름 호러 특집'에 걸맞는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반성, 반성.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43 관련글 쓰기

추천 자체는 6월 말에 받았으면서도 하필 학교 도서관 정비 기간이 오는 바람에 조금 늦게 읽었던 작품. 간만에 많이 웃으며 읽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 들을 때는 예전에 읽었던 『처절한 정원』류의 전후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2차 세계 대전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전쟁 후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에 대해 조명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소설일 거라 여겼던 거다. (그래서 추천해주신 분께 그 소설도 읽어보시라 권해드렸었다) 하지만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처절한 정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처절한 정원』이 주목하는게 '남은 자'들이 지고 간 상처의 정체였다면,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그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 더 많은 초점을 두었다고 해야 할까. 

해서 이 소설을 평범한 전후 소설이라고 말해버리기엔 좀 그렇다. 어떻게 본다면 이 소설의 중심 소재는 '2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독서' 그 자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문학을 통해 인간성을 지켜나갔고, 지켜나가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책에는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이 독일군 점령 치하에서 찰스 램을 읽고,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인간성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내용을 보면서 문학의 힘 외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문학회에서 무수한 책을 읽으면서도 독일 작가들의 이름은 끝끝내 읽지 않는 이 기묘한 '저항'까지 포함해서.

문학애호가들은 비단 건지 섬의 주민들만이 아니다. 기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인다. 가령 주인공 줄리엣이 직원에게서 비밀을 캐낼 때는 한 손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든 채 위협하고 심지어 비열한 악당조차도 직접적인 욕설 대신 "혹시 오스카 와일드 같은 취미라도?"같은 세련된 야유를 택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처럼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웃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바꿔 말하자면 문학에 취미가 없는 한 별로 관심가질만한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찰스 램, 브론테 자매, 오스카 와일드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저자인 매리 앤 셰퍼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대강 짐작해볼만 하다. 미국인 작가가 영국 작가들에게 그리 많은 애착을 보이고 또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하기사 미국을 배경으로 2차 대전에 관한 소설을 쓴다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P.S.

두번째 문단을 쓸 때 생각났던 대목. 유럽에서 집필된 전후소설에는 유독 '전쟁 중에도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다. 이 소설에서만도 그런 인물들이 수두룩. 한국의 전후 소설에서는 대부분 전쟁 생존자들을 구질구질한 전쟁의 피해자 정도로 그리려는데 만족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좀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네들의 2차 세계 대전보다 우리네의 한국전쟁이 더 처절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2차 세계 대전은 기본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이었고, 스페인 정도를 제외한다면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은 나라는 많지 않으니까. 이념 구도에 따라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도 살육 잔치를 벌여야했던 우리네의 실정을 감안하면, 유럽 같은 '깔끔한' 전후 소설을 기대하는게 무리일런지...도 모른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0) 2009/09/02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0) 2009/07/12
《Fantastique》(2009년 봄)  (0) 2009/06/03
『당신 인생의 이야기』  (1) 2009/06/0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27 관련글 쓰기


2월 초, 『퍼언 연대기』를 읽던 무렵에 읽었던 책이니 사실은 꽤 전에 읽은 책이다. 마땅히 감상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에 비공개 상태로 해놓고서 간간히 한 두 작품의 단평을 추가하곤 해온 정도다. 그렇다고 쓸만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지만... 커그에서 테드 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내친김에 몇 자 덧붙여서 내놓는다.

  1. 바빌론의 탑」 (Tower of Babylon)
    바빌론의 탑 건설기. 기독교인이라면 꽤나 관심 가질만하겠으나, 나로서는 그저 그랬던 작품이다. 물론 탑에 대한 묘사 등,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제법 괜찮은 편이지만 그 이상의 공감은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 이해」 (Understand)
    테드 창 식의 이능력배틀물이라 보면 될까? 호쾌하고 스피디한 전개가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이수영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작가는 어느 장르에서건 제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3. 영으로 나누면」 (Division by Zero)
    수학 전공자들이라면 꽤 좋아하겠지만 수능 이후로 수학을 완전히 놨던 나로서는 그저 좌절의 대상일 뿐. '천재의 좌절'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지만, 묘사되는 재능을 이해할 수 없어서야 아무 소용이 없다.

  4.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다. 내가 편집자였어도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언어학 전공자에게 읽히면 색다른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지만, 그보다 나를 감탄케 했던 건 이 작품에서 테드 창이 주인공의 정서를 전달하는 솜씨였다. 1인칭과 3인칭을 번갈아 사용해가며 정교하게 절제된 슬픔을 끼워넣는 수완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뻔한 이야기이기에' 외려 완성미가 돋보이는 단편이란 것도 놀랍다. 모든 소설이 다 그렇지만 '뻔함'이라는 건 단편의 독 아니던가. 그런 걸 외려 장점으로 삼아버린 재주란 참... 김보영의 단편 「0과 1 사이」(링크)는 이 작품을 읽은 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 사실 이건 일전의 『U, ROBOT』 작가 간담회 때 직접 물어보려다가 괜한 오해를 주고 받게 될까 싶어 관뒀었다.

  5. 일흔두 글자」 (Seventy-Two Letters)
    골렘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바빌론의 탑」을 읽을 대도 그랬지만 과연 이게 SF가 맞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던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판갤의 베로스란 작자에게만큼은 절대 읽히고 싶지 않은 작품.

  6. 인류과학의 진화」(The Evolution of Human Science)
    이게 소설이긴 한 건가? 단편보다 더 짧은 엽편이라는 장르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대체...

  7.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
    천사 강림으로 인한 신의 은총이 죄다 신도들에게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 신심 깊은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반대로 장애를 낫게하는 등 - 이끌어낸다는 이야기. 기적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성인 컴플렉스'라는 단어로 나를 뜨끔하게 했던 작품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4월 4일자 근황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딱히 언급하진 않겠다)

    결말은 제목 그대로라 딱히 예상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다만 이영도가 「행복의 근원」이라는 단편에서 '행복의 근원은 불행'이라고 주장했던게 생각나서 조금 재미있었다는 정도.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두자면, 발표 자체는 「지옥은 신의 부재」 쪽이 3년 정도 이르지만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면 「행복의 근원」 쪽이 9개월 정도 이르다.

  8.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김상훈 씨는 애초에 이 단편의 제목을 '얼짱신드롬 - 다큐멘터리'로 번역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 중단편집이 처음 번역되서 나올 무렵에야 얼짱이라는 '신조어'가 한창 유행일 때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ntastique》(2009년 봄)  (0) 2009/06/03
『당신 인생의 이야기』  (1) 2009/06/02
『타임 패트롤』  (2) 2009/04/30
『파우스트』  (0) 2009/03/25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88 관련글 쓰기

거울에 올라온 기사 보러가기

지난해 11월 초 거울 편집장님에게서 거울 필진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었다. 제의를 수락했던 것도 그 무렵. 그러니까 저 서평은 스카웃(?) 제의를 받은지 장장 6개월만에 내놓은 결과인 셈이다.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기도 했다. (작품이 부족해서건 내가 부족해서건) 서평으로 보낼만한 다른 책을 도무지 찾지 못한데다 2월에서야 《타임 패트롤》시리즈를 다 읽었으니까.

허나 그 뒤로도 두 달을 더 놀 정도의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건 아니다. 기왕 이렇게 보낼 글이라면 차라리 2월 초에 보내는게 좋았으리라. 어쩌면 2권을 읽고 난 시점에서 - 서평 이벤트로 소모해버리는 대신 - 2권만을 중점으로 다룬 원고를 보내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고. 

아래는 거울에 보낸 서평에서는 빼버린 단평들이다. 사실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소식을 올렸어야 정상일 텐데, 이 단평들을 정리하다 보니 며칠 늦어버렸다.



타임 패트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타임 패트롤Time Patrol」(1955)
시리즈의 첫 작품. 같은 시리즈에서 사용되는 세계관이나 시간 여행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는 큰 인상을 주지 않지만 시리즈 전체로 보면 이런 작품이 하나쯤은 꼭 필요하다. 즉,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재미는 별로 없다. 다만 셜로키언이라면 맨스 에버라드와 그의 동료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으로 갔다가 만난 탐정을 보고 실소할 수밖에 없으리라. 정확히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니라 읽을 때도 설마 했지만, 역시나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쥬 격으로 등장시켰던 듯 하다. 작가가 셜록 홈즈 팬클럽 회원이었다 하니, 거의 확신범.

왕과 나Brave to be a King」(1959)
키루스 대왕 시절의 페르시아 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 2권에 수록된 「오딘의 비애」만큼이나 타임 패러독스를 크게 활용한 작품이다. 타임 패트롤 소속의 역사학자가 고대 페르시아로 넘어갔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키루스 대왕이 되어버렸더라... 하는 이야기. 사실 썩 편한 심정으로 읽었던 작품은 아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루스 대왕 시대에서 벗어나 원래 아내의 품으로 돌아간 뒤에도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된 섹스 파트너를 생각하는 지저분한 사내의 비극에 공감하기란 영... 차라리 반쯤악역으로 등장하는 페르시아 귀족의 처지가 더 애처로웠다. 글쎄. 문제의 '키루스 대왕'이 그의 시간대에서는 14년간 고대 페르시아에 머물며 그 삶에 적응해야 했다는 걸 감안해야 할까?

지브롤터 폭포에서Gibraltar Falls」(1975)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연애물. 단편의 주인공인 노무라의 심리 묘사가 제법 근사하긴 하지만... 다소 중량감 떨어지는 소품에 가깝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맨스 에버라드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딘의 비애」를 위한 실험작 쯤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 「사악한 게임」에 이어 15년 만에 나온 단편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당시 이 단편을 접한 팬들이 얼마나 맥빠져 했을지 짐작할만 하다. 그 점만 아니라면 꽤 빼어난 단편인데.

사악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1960)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키기 위해 타임 패트롤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던 중국인들을 저지한다는 내용의 단편이다. 요컨대 역사의 개변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타임 패트롤이 역사의 개변을 직접 만들어낸다는 글이기도 하다. 거울에 보낸 서평에서도 비슷하게 언급하긴 했지만, 2,3세계권 국가의 독자들이라면 영 탐탁찮게 읽었을만한 작품. 주인공인 맨스 에버라드는 중국인들의 문명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전달되어서 유럽인이 개입되지 않는 강대국이 생겨나기라도 하면 어떻하겠냐며 나바호 인디언 동료를 설득하는데, 글쎄다. 읽던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심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현대 미국인 독자 입장에서야 그게 대재앙일지 몰라도 우리네야 그런 심정에 공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맨스 에버라드를 비롯한 타임 패트롤의 입장은 그렇게 함으로서 훗날 아메리카 지역에서 일어나게 되는 온갖 학살을 지원한다는 말도 되고. 직접적인 참여는 아니지만 방관과는 또 다른, 간접적 지지가 아닌가. 작가가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보수주의자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케 한 단편이다.

델렌다 에스트Delenda Est」(1955)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스피키오가 한니발을 물리치지 못했다면?'이라는 의문에 대한 단편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그저 가설을 설명하는 선에서 끝내는게 일반적이지만 이 단편은 정말 그렇게 역사가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타임 패트롤 대원들이 우리가 아는 역사로 되돌려놓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세기에도 켈트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세계란 흥미로웠지만, 작품의 길이에 비하면 밀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 싶다. 「사악한 게임」과 비교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덜 불공정할지언정 재미 자체는 영 그렇더라는 이야기다.

바다의 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오딘의 비애The Sorrow of Odin the Goth」(1983)
북유럽 신화의 오딘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분명 자신이 쓰려 하는 장르와 활용하려 하는 소재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선행될 때만이 나올 수 있는 걸작이다. 뜻밖에도 변변찮은 상 하나 받지 못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 《타임 패트롤》 시리즈 안에서 본다면 「왕과 나」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거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중편에 대해서는 예전에 거울에서 이야기한 바 있으니 이하 생략. 그 글을 쓸 때와는 현재 내 사정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만큼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링크)

바다의 별Star of the Sea」(1991)
표제작이긴 하나, 「오딘의 비애」를 먼저 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성에 안찰 수밖에 없겠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딘의 비애」의 여성용 버전이라는 느낌이 강한지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타임패트롤 시리즈 3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Ivory, and Apes, and Peacocks」(1985)
솔로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정작 솔로몬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델렌다 에스트」 시절만 해도 어떻게든 역사적 인물(즉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을 등장시키더니 이 때쯤 되면 역사적 위인을 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도 떨쳐낸게 아닐지. 물론 솔로몬 시대라는게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민감한 소재라는 것도 감안해야겠고. 당대의 예루살렘과 티레 시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부분은 재미있게 읽었고, 맨스 에버라드가 만난 소년도 눈에 듸는 캐릭터였다만 사실 시간여행물로서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B+ 정도의 느낌?

몸값의 해The Year of the Ransom」(1988)
스페인인 피사로가 잉카 왕을 잡고 인질극을 벌일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다른 단편들에서도 간간히 역사 개변을 시도하며 악역으로 출연했던 '고양주의자'들이 재출연하지만 스페인인 기사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통에 이 단편에서의 비중은 낮다. 잘쳐줘봐야 중간보스급이고 실상은 '쟈코' 역일 뿐. 만일 타임 패트롤 시리즈가 영화화된다면 「몸값의 해」가 가장 먼저 손꼽힐 테고, 포스터에는 맨스 에버라드와 이 기사의 사진이 가장 크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 인생의 이야기』  (1) 2009/06/02
『타임 패트롤』  (2) 2009/04/30
『파우스트』  (0) 2009/03/25
『퍼언 연대기』  (0) 2009/03/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07 관련글 쓰기

1
[국내도서] 멋진 징조들 - 그리폰 북스  
닐 게이먼테리 프래쳇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 시공사 | 2003년 9월 
13,000원 → 6,500원(5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평점  마이리뷰(25) 구매자40자평(1) | 세일즈포인트 : 2,122 
수령예상일 : 지금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습니다.





 알라딘 독자분들에게만 드리는 큰 혜택 BIG3! 추첨을 통해 닌텐도 DS, 에이트리 전자사전, 가죽 북커버를 드립니다! 

『멋진 징조들』이 재간되었다. 이미 수년 전에 절판된 작품을 출판사 측에서 알라딘에서 하는 반값 이벤트 참가용으로 잠깐 재간한 듯 하다. 중고책 장사치들이 이상하리만큼 높게 프리미엄이 붙이곤 해서 (5만원에서 8만원 정도) 장르문학 팬덤들을 애태우던 책인데, 이번 재간 덕에 그 목마름이 상당 부분 가실 듯 하다. 장르문학 진영에서 본다면 알라딘 반값 이벤트 최대의 성과가 아닐지.

도갤과 행책 게시판에서 듣기로는 한시적 재간에 그치지 않고, 아예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이 나올 모양이다. 물론 번역자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실은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해도 기획 자체가 뒤엎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아직 '풍문' 이상으로 믿을만한 건 못된다. 허나 성사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08 관련글 쓰기

파우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문학동네, 2006년)
상세보기

교양주의에 대하여

도갤에서 『파우스트』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겁을 주려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사전이 없으면 읽을 수 없다, 원서로 읽지 않으면 제맛을 느낄 수 없다 운운.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것도 일종의 떡밥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의견에도 물론 일리는 있다. 가령 트로이의 헬레네가 누군지도 몰라서야 파우스트나 황제 등이 왜 그리 그 고대 미녀에 집착하는 것에 공감하기란 불가능할테니까. 이해를 넘어 공감을 위해서는 적어도 『일리아스』에 대한 교양을 필요로 할 터이다.

허나 그 역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일리아스』를 처음 읽는 독자가 그 전에 『파우스트』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물론 『파우스트』를 읽을 때는 좀 어려워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감상을 토대로 『일리아스』는 좀 남다르게 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 경우 '배경 지식'은 『일리아스』가 아닌 『파우스트』다. 

요컨대 배경 지식'과 '독서 대상'의 관계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지어 말할 것이 못된다. 그들은 늘 상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의 말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물론 일정한 '테크트리'를 밟는게 여러모로 편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나 그것은 대개 공부 차원의 일이다. 문학 감상에서까지 그런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독서가 기술이 아닌 하나의 취미이며 오락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작품에 대한 경험들도 독자들마다 다르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왜. 그렇잖으면 『변신』을 읽기 전에 곤충도감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할 셈인가.

사실 『파우스트』가 읽기에 그렇게 빡빡한 작품도 아니다. 그리스신화에 대한 교양이 필요하다지만 고유명사들이나 구분할 줄 안다면 족하고 모른다 해도 주석을 통해 짚고 넘어가거나 정 모르겠다면 그냥 넘어가버려도 무방하다. 설령 독자가 정말 일자 무식이라 해도 괴테의 화려한 문장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고전이란 원래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P.S.

가만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도갤에서도 레벨이니 순서니 하는 걸 따지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온라인 게이머들을 생각나게 한다. 스킬 테크트리를 외우고, 커뮤니티에 어떤 스킬이 가장 좋은 스킬인지 묻는... 읽은 책이나 사들인 책의 숫자는 경험치라도 되는 걸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임 패트롤』  (2) 2009/04/30
『파우스트』  (0) 2009/03/25
『퍼언 연대기』  (0) 2009/03/12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86 관련글 쓰기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 아니 돌아올 -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영화제 개최 기간 내내 장르문학 북페어도 함께 여는 모양이다. 계간 《판타스틱》의 주간으로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 모양이다. 혹여 잊어버릴까 싶어 미리 기록해둔다. (그때쯤이면 나도 가볼 가능성이 제법 높다.) 도서 할인행사도 열 모양이다. 참여한다는 출판사들을 하나 하나 짚어보면...


이렇게 골때리는 일이 있나. 알고 보니 2007년도 기사를 보고 잘못 보고 적은 글이었다. 이 출판사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니 글은 그대로 남겨두겠지만 , 이 출판사들이 반드시 참여하진 않는다는걸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더보기

'도서 >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멋진 징조들』의 한정 재간...  (0) 2009/04/27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장르문학 북페어  (6) 2009/03/17
SF Readers Wiki의 부활...  (0) 2009/03/07
헌책방 답사기  (3) 2009/03/0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89 관련글 쓰기

퍼언 연대기 세트 (전3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맥카프리 (북스피어, 2007년)
상세보기

※ 몇 주 전에 읽고서 뒤늦게 쓰는 감상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이 글에는 2월 초에 썼던 문장도 있다.

0.

사실 읽기 전부터도 내가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었다. 사실 드래곤에는 별 흥미를 못느끼게 된지도 꽤 오래 되었으니까. 드래곤 뿐만 아니라 에픽 판타지 장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북스피어에서 나온 책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반값 이벤트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좋아하는 출판사를 돕자는 핑계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작품을 집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게다. 반값 이벤트가 아니라 공짜 이벤트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다 읽기는 읽었지만, 작품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꺼번에 세 권을 사버렸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아마 1권부터 차근차근 보고자 했다면 2,3권을 사볼 일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근사한 오락물이라는데는 동의하지만 그냥 넘기기 민망한 요소들이 제법 눈에 많이 걸리니.

1.

작품에서 용기사들은 해당 세계관에서 자연 재해급 재앙인 사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과거에는 사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줌으로서 존경과 신망을 얻었었고. 다만 1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사포가 습격해온지도 근 400년이 지난 상황인지라 용기사의 권위고 뭐고 다 떨어진 상황이다.

이 지경이 되서도 용기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영주들이 자신들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1부 중반에 이르면 용기사들은 왕년의 권위를 되찾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왕년의 적이었던 사포의 귀환이다. 시대가 영웅을 다시 부른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용기사라는 집단이 작중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영웅적이며 존경할 만한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단히 봉건적이며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사포가 없기 때문에 영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노동을 거부하며 영주들에게 공물과 공녀들(여왕 드래곤의 파트너가 될 후보들)을 요구한다. 불만을 품는 영주들에게는 왕년에 용기사들이 수행했던 업적이나 용기사와 일반인들 사이의 '신분차'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나마 1부의 주인공 격인 플라르는 나은 편이고 2,3부로 갈수록 다른 용기사 몇몇도 권위주의적 모습을 벗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봤자다. 흡사 한국전쟁 참전자 출신 반공주의자들을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구시대인'에 이르면 뭐 별 달리 할 말도 없을 지경이고. (물론 이들은 명백히 부정적으로 묘사되기야 한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을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하니 스토리인들 궁금할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에 더 연관짓자면, 혈통주의의 흔적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용기사의 계급은 오로지 그 용기사의 파트너 드래곤에 따라 결정된다. 용기사 본인의 역량이 어떠하건 '황금 드래곤>청동 드래곤>갈색 드래곤>녹색 드래곤'의 서열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데 이 결정은 오로지 드래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거기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 용기사의 운명은 그저 타고날 뿐이다.

2.

사실 3부까지 다 읽은 후 권말의 서평에서 이 작품을 '페미니즘적 소설'이라고 평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었다. 읽는 내내 그런 식으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질 못했고, 되레 굉장히 마초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중편 「용의 간택」이 1967년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현대 독자들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아니다. 소설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려 한다는 - 이미 오른데다 그게 당연시되는 것도 아니고 - 정도로 감탄할 수 있는 시대야 이미 지나지 않았나.

더군다나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못마땅한 부분들이 많이 비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레사. 첫 중편인 「용의 간택」에서만 해도 상당히 정교한 성격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플라르를 만나면서부터 급격히 단순화된다. 여전히 현명하긴 하지만 성질은 예전같지 않아지고 그렇게 매력적인 면모도 보여주지 못한다. 말괄량이가 요조숙녀로 변하는 수준의 변화가 오는 건 물론 아니지만 상당히 허전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플라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굴다가 성관계를 맞은 뒤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 관계지 따지고 본다면 세련된 형태의 강간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런 장면을 두고도 여성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3.

그러고보면 이 작품이 무려 SF장르라고 이야기되는 모양이다. 번역도 김상훈 씨가 맡았고. 헌데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이 작품이 왜 SF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국내에 소개된 3부작만 본다면 『퍼언 연대기』는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이게 SF라면 《영웅전설》 시리즈(특히 가가브 트릴로지 이전)도 SF RPG 아닐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우스트』  (0) 2009/03/25
『퍼언 연대기』  (0) 2009/03/12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77 관련글 쓰기

아발론 연대기 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 마르칼 (북스피어, 2005년)
상세보기

『아발론 연대기』 7권을 거의 다 읽어간다. 여태 봤던 권 중에서는 가장 재미가 없다. 이는 순전히 7권에서 중심에 서 있어야 할 기사, 갈라하드의 몰개성 때문이다. 갈라하드에게서는 성배 탐색의 완료자라는 것 외의 어떠한 개성도 찾기 어렵다. 그 이전에 최고의 기사였던 사람들처럼 화려한 무훈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원탁의 다른 기사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최고의 영광을 채가는 등... (그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어떠한 증명도 없이 곧바로 최고의 기사임을 인정받는다!) 아서왕 전설이 기독교도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면서 억지로 삽입된 기색이 너무나 역력한 인물이랄까.

그의 등장을 기점으로 그 이전까지는 온갖 개성을 보이던 인물들도 죄다 단순화되어버린다. 가웨인은 태양신의 흔적을 잃고, 퍼시발은 원시인에서 기독교도가 되며 란슬롯도 최고의 기사라는 명예와 귀네비어 왕비에 대한 사랑을 잃는다. 남은 것은 그저 성배 탐색을 위한 신실한 기독교도 기사들 뿐. 이전 권에 비해 주석이 많이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적어도 성배 탐색에 관해서는 신화학자들보다 신학자들이 더 할 말이 많을 테니까.

뭐 그래서... 이번 권은 아서왕 전설이 아니라 그냥 흔해빠진 중세 모험담을 읽는 기분이다. 대강 읽고 모드레드가 분탕질 치는 8권으로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8권에서는 그놈의 지겨운 성배 탐색이 나오질 않으니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언 연대기』  (0) 2009/03/12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85 관련글 쓰기



"그렇습니다. 제국은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제국이 자신의 상처에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모험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언뜻언뜻 보이는 행복의 흔적들을 자세히 찾아나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측정해 보는 겁니다. 폐하의 주위가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으시다면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셔야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다리를 묘사한다.
"그런데 다리를 지탱해주는 돌은 어떤 것인가?"
쿠빌라이 칸이 묻는다.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르코가 대답한다.
쿠빌라이는 말없이 생각에 짐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묻는다.
"왜 내게 돌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내게 중요한 건 아치 뿐이지 않은가?"
폴로가 대답한다.
"돌이 없으면 아치도 없습니다."


이런 책을 한달음에 읽는 것만큼 미련스런 독서도 없을 게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발론 연대기』(7)  (0) 2009/03/12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68 관련글 쓰기


※ 1월 8일 2시 58분, 판갤에 올렸던 감상문(http://gall.dcinside.com/list.php?id=fantasy&no=937410)을 다듬은 글이다. 한번 썼던 글을 다시 손봐 올리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다만 별 도리가 없었다. 애당초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취중에 휘갈긴 잡문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서평을 들려주고 싶었던 어느 누군가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 이하 『양말 줍는 소년』은 『양줍소』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외계인』으로 표기한다.

내용 누설 없는 잡설 - 문근영 대통령에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김이환은 내게도 낯설지는 않은 작가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004년 말. '거울'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았을 때다. 메인 화면에 실린 기사 제목 중 가장 눈에 띄던 게 그의 단편 「문근영 대통령」이었다. 문근영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은 글은 재밌었다. 심지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당시 내가 그런 류의 문화를 처음 접했던 것도 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내게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김이환의 문장이었다. 담담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문장. 나는 그의 문장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지만.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콧대가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다는 상황 자체가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은 좀 사정이 나았지만 소설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정말 최악이었다. 해서 딴에 보면 내가 거울에서 「문근영 대통령」을 읽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만했다. 아쉽게도 다른 글들에는 그런 기적(?)이 미치지 못했던 것 뿐이고.

그래서 그의 글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출간작인 『양말 줍는 소년』(링크)을 통해서였다. 근 3,4년만의 재회. 다 읽고 나서야 작가에게 좀 미안해졌다. 이런 작품을 출간된지 4개월이나 늦게 샀단 말인가. (이렇게 귀여운 연인들을 보는 걸 4개월이나 늦추다니!) 해서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바로바로 사보마 하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 나왔다.

『양말 줍는 소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양줍소』보다 더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유쾌함과 순진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주는 캐릭터는 단 한 명 뿐이다. 축복받았다 할만한 인물은 딱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냥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는 유쾌함은 어떤 의미에선 장식이다. 위장이고, 허식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받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글을 구연 동화 보듯 순수한 마음으로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전제하자. 내 삶이, 『외계인』의 삶만큼 팍팍하진 않았다. 공감할 영역이 없었냐하면 불행히도 그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먼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거의 극복된 일들이다. 즐겁지는 않은 경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헤묵은 상처와 재회하는 게 즐거운 경험일리는 없다. 물론 이 소설은 남의 상처나 헤집어대며 느끼는 SM적 희열(?)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인물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됨과 몰이해들을 감싸주려 하는게 이 소설의 미덕이다. 작가가 적어도 「문근영 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추구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게 잘 표현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이번 소설에서는 그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 전작인 『양줍소』에서도 결말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외계인』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 듯 하다. 급작스런 결말, 그 와중에도 가엾었던 북극곰. 의아할 정도로 화사한 해피엔딩 속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거북함은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분명 읽을 때는 내 감정도 순조로웠는데. 어찌하여 결말에 와서 이리 헝클어지는 걸까.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허나 지금의 감상만 놓고 본다면 『외계인』에 대한 내 태도는 좀 어정쩡한 편이다. 


P. S.

그래서 이걸 당신에게 추천해도 좋을지는 좀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평가로 어슬렁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작가 홈페이지에서 다른 작품들을 읽었기도 해서, 내가 읽은 김이환 소설은 총 5편이다. 「문근영 대통령」, 「로보트」,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내 개인적인 순위를 매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1위 『양말 줍는 소년』
 2위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3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4위 「로보트」
 5위 「문근영 대통령」

이 정도로.

※ 이 아래 가려진 내용에는 『외계인』에 사용된 요소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내용을 미리 알면 재미없어지는 질 낮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라는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은 이쯤에서 인터넷 창의 X 버튼을 누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작렬!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2009/02/05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2) 2009/01/09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51 관련글 쓰기

김훈 단상(2)

일기/독서 2008/12/04 15:34
문장력이 괜찮은 책의 문제점 : 읽을 때는 걸작인데 읽고 나면 평작

요즘 『파우스트』를 읽는 중에 떠올린 문구긴 하지만, 그보다는 김훈의 글에 맞을 법한 말이지 싶다. 얼마 전에 김훈에 대한 냉소적인 글을 봐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지만. (나귀「김훈의 굴욕인가...?」) 원래부터가 나는 김훈의 최근 행보에 그닥 호의적이지 못했으니까.

사실 김훈에 대한 평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 좀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그가 아직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으니까. 그 때만 해도 김훈에 대한 내 입장은 '꽤 괜찮은 글을 쓰지만 글줄로 출세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작가' 정도였다. 김훈의 문체는 취향을 많이 타는 데다 자주 보면 질리기 쉬우니까. 아무리 문장력이 탁월하다지만 알맹이 없는 글만 반복해서야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기대하긴 어렵잖은가. 나만 해도 김훈이 『개』를 썼을 무렵에 그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거뒀으니까. (나중에 나온 『남한산성』도 사기는 샀다만 이왕의 실망감을 완전히 거둘 정도는 아니었다. 외려 '역사서를 폼나는 문장으로 적당히 문질러내 팔면 밥은 먹고 살 작가'라는 시니컬한 평만 추가하게 되었을 뿐.)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느니 노벨상 수상감이니 하는 평단의 격찬을 듣게 되니 놀랄 밖에. 요새 김훈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걸 보면 좋아했던 작가의 몰락을 슬퍼해야 하는지 원래 그가 받았어야 했을 위치로 돌아온 것에 안도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원래 그 정도'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음이야 편하겠는데 글쎄... 소설로는 『칼의 노래』, 산문으로는 『자전거 여행』 이후로 특출난 글솜씨를 보여주지 못하는 걸 보고 나귀 님의 말씀대로 급추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아래는 예전에 썼던 김훈 관련 글들.

『개』(클릭)



김훈 단상(클릭)


'일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들에 대한 가쉽 (통합)  (12) 2009/01/23
김훈 단상(2)  (0) 2008/12/04
아이 깜짝아...  (0) 2008/11/17
《판타스틱》의 휴간...  (6) 2008/10/2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37 관련글 쓰기

목차
0. 서문
1. 문학
2. 역사
3. 종교·신화
4. 군사
5. 문장
6. 웹사이트
7. 기타·대기

본래대로라면 본 안내서에서 문학 챕터를 개설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본디 작가에게 있어 명작이란,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의 명작을 원하는 것이라면 본 안내서보다 훨씬 적합한 곳에서 추천 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 안내서에서는 판타지적 상상력의 원형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 - 따라서 특히 판타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유의미하게 읽힐 - 작품들 일부만을 싣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 색깔있는 항목은 클릭시 '북시' 위키의 해당 항목으로 날아감. 게시물 주소는 

http://booksea.pe.kr/index.php/판작안

[편집]1.1 에픽 서사시

서사시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그렇기에 후대의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문학 장르이다. 『파우스트』나 『신곡』과 같은 수많은 고전들은 그 밑바탕이 된 신화와 서사시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거니와, 특히나 판타지 장르는 유독 서사시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가령 신화상의 인물과 전승, 아이템 따위를 차용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편집]1.2 아서왕 전설

오늘날 아서왕 전설은 동양의 삼국지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동양에서 삼국지가 다양한 변형과 재창작을 통해 동양 문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듯, 아서왕 전설 또한 무수한 모습으로 서양문학사에 다양한 족적을 남겨 왔다. 하다못해 기사도 문학만 하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아서왕 전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리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판타지 문학에서의 '기사'라는 존재도 지금과 같은 품격을 지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아서왕 전설의 전통은 서양 뿐만 아니라 우리네의 전통이기도 한 것이다.

[편집]1.3 기사도 문학

[편집]1.4 중국·인도 전설

[편집]1.5 신화·전설·서사시를 차용·변형한 작품들

이들은 오랜 구전문학 전통의 계승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인류사 초기의 걸작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들은 이들 작품들에 녹아들어 또다른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편집]1.6 호러픽 판타지

[편집]1.7 이세계와의 조우

[편집]1.8 톨킨 판타지

[편집]1.9 에픽 판타지

[편집]1.10 가상세계 건설(유토피아 문학)

[편집]1.11 가상세계 건설(디스토피아 문학)

[편집]1.12 동물 판타지

[편집]1.13 풍자문학

[편집]1.14 앤솔러지(한국)

※ 앤솔러지 항목 참조.

[편집]1.15 미분류

아직 분류를 끝내지 못한 작품들. 적당한 카테고리가 있다면 옮겨주길 바랍니다.

[편집]1.16 참고 자료

본 항목을 작성하는데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도움이 되었던 자료, 혹은 게시물의 목록. 각 항목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데 도움받은 자료들은 각 항목에 별도로 게재했고, 초기에 참고한 자료들의 경우는 간혹 제외된 것들이 있다.

'추천도서목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작안 : 문학 ver. 08.10.27  (14) 2008/11/13
판작안 : 기타·대기 ver 08.10.17  (0) 2008/10/17
판작안 : 웹사이트 ver 08.10.17  (0) 2008/10/17
판작안 : 작문 ver 08.10.17  (0) 2008/10/17
Posted by 최진석
TAG 《뱀파이어 연대기》, 《아발론 연대기》, 『1984』, 『가르강튀아』, 『갈매기의 꿈』, 『개미』,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장과 마르가리타』, 『걸리버 여행기』, 『광기의 산맥에서』, 『귀환병 이야기』, 『금지된 섬』, 『길가메쉬 서사시』, 『끝없는 이야기』, 『나무 위로 올라간 고양이』, 『니벨룽겐의 노래』, 『닐스의 모험』, 『데카메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드라큘라』, 『라마야나』, 『롤랑전』, 『마하바라타』, 『멋진 신세계』, 『모모』, 『미사고의 숲』, 『바람의 안쪽』, 『반지의 제왕』, 『백년 동안의 고독』, 『베오울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별을 쫓는 자』, 『보르헤스 단편 전집』, 『보이지 않는 도시들』, 『봉신연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산해경』,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 『샬롯의 거미줄』, 『서유기』, 『성배의 탐색』,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수신기』, 『스튜어트 리틀』, 『신곡』, 『신들의 사회』, 『실마릴리온』, 『아라비안 나이트』, 『아서왕의 죽음』, 『아이네이스』, 『아이반호』, 『악마의 묘약』, 『양말 줍는 소년』, 『어스시의 마법사』, 『얼음과 불의 노래』, 『에다』, 『오뒷세이아』, 『오디세이아』, 『오즈의 마법사』,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요재지이』, 『우리들』, 『우울과 몽상』, 『워터십 다운』, 『원탁의 기사』, 『월든 투』,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유리알 유희』, 『유토피아』, 『은하철도의 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리아스』, 『장미 이야기』, 『쟈마찐』, 『정글북』,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카자르 사전』, 『키리냐가』, 『태양의 나라』, 『태평광기』, 『파르치팔』, 『파우스트』, 『팡타그뤼엘』, 『프랑켄슈타인』, 『피터 팬』, 『향수』, 『호빗』, 『화씨 451』, 『후린의 아이들』, 간보, 괴테, 김민영, 김이환, 단테, 도서, 뒤비, 라게를뢰프, 라블레, 라이스, 러브크래프트, 레스닉, 로리스, 르귄, 린드그렌, 마르칼, 마르케스, 마틴, 말로리, 모어,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미야자와 겐지, 바움, 바크, 배리, 버튼, 베르길리우스, 베르베르, 보르헤스, 보카치오, 불가코프, 불핀치, 브래드버리, 셸리, 스위프트, 스콧, 스키너, 스토커, 스티븐슨, 안능무, 에메, 에셴바흐, 엔데, 오승은, 오웰, 와일드, 이방, 이수영, 젤라즈니, 쥐스킨트, 창작, 추천 도서 목록, 카도노 코우헤이, 카잔차키스, 칼비노, 캄파넬라, 캐럴, 키어넌, 키플링, 톨킨, 파비치, 판갤, 판타지, , 포송령, 허중림, 헉슬리, 헤세, 호메로스, 호프만, 홀드스톡, 화이트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10 관련글 쓰기





현실세계와 환상세계에 대한 갈등이라는 소재를 근사하게 소화해낸 작품. 사실 그것보다는, 간만에 동화풍 판타지를 봤다는 게 더 반가웠지만.

물론, '양줍소'가 『끝없는 이야기』(미하엘 엔데)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김민영)과 같은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다면 상당히 회의적이긴 하다. 『끝없는 이야기』에 비하면 그 성찰의 수준이 깊지 못하고,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에 비하면 몰입도가 - 즉 재미가 - 떨어지는게 사실이니까. 특히 결말 부분이 지나치게 허술했던 것도 '양줍소'의 점수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그만하면 무난하긴 했지만, '무난한 엔딩'에 만족해버리기에는 그 전까지 보여줬던 소설의 훌륭함이 지나치게 크다.)

그래도 이만 하면 근래 출간된 한국 창작 소설 중에서는 - 다른 곳에서 평이 좋은 『얼음나무 숲』(하지은)이나 『라크리모사』(윤현승)를 읽어보진 못했으니 '최고'라고까진 단언하지 못하겠지만 -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라 평하기 손색 없을 듯 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금가지의 기획력 하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기회였달까.


그런데 정말 다른건 다 놔두고, 표지 하나는 정말 근사하게 뽑았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8/12/12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서유기』  (0) 2008/06/05
『카탈로니아 찬가』  (0) 2008/05/2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93 관련글 쓰기

『서유기』

도서/문학 2008/06/05 15:5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이 자랑하는 4대 기서의 하나이자, 중국 3대 환상 소설 중 하나이다. 유·불·선의 3대 동양 철학이 완벽에 가깝게 어우러져 깊이를 더한다."

판작안에 실려 있는, 『서유기』에 대한 코멘트다. 정확히는 「벌거지 팬터지 목록」에 적혀 있던 멘트를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다 읽고 나니 저 말이 참 새삼스럽다. 하기사, 주제는 유교에, 소재는 불교, 구성은 도교로 꾸며진 셈이니 제법 그럴싸한 말이지 싶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유기』가 그 세계관이나 캐릭터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이란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감탄할 부분은 거기서 끝이라는 이야기다. 제아무리 훌륭한 설정과 캐릭터들이 있다 한들 '삼장법사 납치 - 손오공의 구출 시도 - 신(神)들의 마무리'의 원패턴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엔 질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툭하면 신들이 나와서 손쉽게 일을 해결해주니 극적 긴장감이라는건 눈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 요는, 아무리 참신한 설정과 기발한 캐릭터들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서사가 엉망이어서야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 한국에서는 삼장법사 일행이 여행을 하는 '천축 원정기' 부분이 인기가 좋지만 중국에서는 그 전의 초기 부분이 외려 인기가 좋다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손오공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특히 사오정에 이르면 이건 숫제 짐꾼과 구분이 안될 지경이니, <날아라 슈퍼보드>의 그 개성넘치는 사오정을 봤던 입장에서는 저으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록 <삼국지>

중국 도교적 세계관의 방대함을 맛보고 싶다면, 차라리 『산해경』 같은 책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하루.


P. S.

그런데 왜 내가 진작에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말 줍는 소년』  (0) 2008/06/26
『서유기』  (0) 2008/06/05
『카탈로니아 찬가』  (0) 2008/05/22
『죄와 벌』  (0) 2008/03/17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77 관련글 쓰기

카탈로니아 찬가(세계문학전집 46) 상세보기
조지 오웰 지음 | 민음사 펴냄
<1984년>과 <동물농장>의 저자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영감을 주었던 스페인 내전과, 아나키즘의 실험 무대였던 1936년의 바르셀로나에 대해 생생히 기록한 소설. 스페인 내전은 헤밍웨이, 말로 등 전 세계 지식인들을 불러 모았으며,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을 마련한 사건이다. 이 역사적 현장에서 오웰 역시 통일노동자당(POUM)의 민병대로 참전한다. 이 작품은 정의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양심의 기록이며,

한줄 감상 : 이따위로 구질구질한 '혁명전쟁'도 있었단 말인가! 

허기사 프랑스 혁명 때의 군상에 비하면 차라리 '소박하고 순진한'  스페인인들이 낫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스탈린 정권의 행실이란 그야말로 역겹기 그지 없다. 본래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소련까지 파시스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중간에 누군가가 조지 오웰에게 했다는 말이 인상깊다.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도 사기입니다." 그 말이 이 전쟁의 성격을 대변한다.

책을 읽고 나서는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라는 제목이 슬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도 그에서 기인한다. 혁명의 이상을 위해 뛰어들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지만 결국에는 촌극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위한 찬가. 그러므로 이 찬가는 차라리 애가(哀歌)에 가깝다.


덧말
역자에 대해 지나친 선입견을 가진 것일까? 어째 좀 불편해 보이는 번역이 눈에 간혹 띈다. 가령 처음에는 '왕당파'로 번역되던 것이 갑자기 '군주제주의자'로 번역된다던가 하는 것. (오웰이 서로 다른 단어를 썼으려나...) 딱 한 번 등장하는 '공화제주의자'라는 말은 얼추 짐작은 가는데 무슨 뜻인지 확실히 와닿지 않고. 허기사 공화제주의자나 공화주의자나 번역어로서는 거기서 거기겠다만.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유기』  (0) 2008/06/05
『카탈로니아 찬가』  (0) 2008/05/22
『죄와 벌』  (0) 2008/03/17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1) 2008/02/28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74 관련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