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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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달님이 추천해주셨던 작법서. 대부분의 외산 작법서들이 그러하듯 제목이 영 마음에 안들어서 몇 개월만에야 겨우 집어든 책이었다. 정작 사들고 나서도 시큰둥해하며 집어들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서론이야 어쨌건 본심은 '닥치고 써라'를 강조하는 재미없는 책이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결론이야 그랬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제법 감동적이었다.

요컨대 이 책에서 주문하는 제1사항은, 글을 쓰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스스로에게 더 솔직할 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는게 이 책의 요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에는 작법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종교 서적이나 자기계발서에 어울릴 법한 구절이 많다.

『글쓰기 만보』처럼 테크닉에 대한 부분만 꽉꽉 채운 책도 쓸만하지만, 이런 책도 제법 재밌다.

아래는 추석 연휴 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다시 읽다가 체크해두었던 구절들. 하나 하나 읽을 필요는 없고, 마음 가는 제목만 클릭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첫 마음, 종이와 연필

멈추지 말고 써라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삶을 사랑하라

왜 글을 쓰는가

음식에 대해 써 보라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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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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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이환 외 9인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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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과 마찬가지로 위 프로필의 '지은이' 부분을 고쳤다는건 다들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표제작 쓴 작가를 놔두고 왜 다른 작가를 메인 작가로 내세운단 말인가. 거 참...

지난 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앤솔러지가 출간되었다. 전작과는 달리 표제작을 선정했고, 포맷도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환상문학웹진 거울' 소속 작가진이 주축이라는 점만큼은 여전하다. 얼마 전에 '시작'에서 출간된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또한 거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담았다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적어도 창작 장르문학 단편에서만큼은 거울의 입지가 서서히 탄탄해져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거울 측에서 자체적으로 냈던 단편집들을 제외한다 해도 이걸로 거울 작가들이 주축인 단편집이 벌써 여섯 권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를 만났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U, ROBOT』) 최근 4,5년 사이에 정식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창작 SF&판타지 단편집이 열권 남짓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놀라운 수치다.

(물론,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 장르문학판의 작가 발굴 시스템이 뭔가 기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거다. 거울이 정말로 탄탄한 작가진을 갖춘 집단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비중이 쏠린다는건 사실 그렇게 바람직한 사태는 아니다.)

전체적인 평을 해보자면, 근래 메이저(?)에서 나온 거울 관련 앤솔러지 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경우와는 달리 대부분이 한두 해 전에 발표된 '최신' 작품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그 덕인지『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작품 간의 편차도 덜한 편이고...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수록된품들의 발표 연도는 2003년에서 2008년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북시의 관련 항목 참조) 

그런데 신기하게 이번 단편집에서는 결말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거의 없다. 미완성 작품이거나 편집 미스로 뒷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작품까지 있을 지경인데다 전반부는 정말 몰입해서 읽던 작품도 막판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보니... 원래 결말 맺기가 어렵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이 좀 괴팍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

※ 거울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게시물의 경우는 옆에 링크를 추가했다. 해당 게시물에 달렸던 리플 역시 참고해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지하철에서 한참 몰입해서 읽다가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 말미를 읽고는 속으로 '이건 뭐여!'하고 외쳤더랬다. 왜 이런 결말이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 전까지는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거울에 발표되었을 때 달렸던 어느 리플따나마 슬픈 작푸미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작품에 더이상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은림 「노래하는 숲」(2007)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eun&no=12
일전에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의 리뷰를 쓰면서 '비슷비슷한 작품을 내는 작가'라고 흉(?)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작품 또한 기존에 읽었던 작품과 연결지을 만한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 가령 '식물=여성성' - 절대 '고만고만'하다고 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지난 리뷰에서 내렸던 평가가 상당히 섣부른 것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신작도 아니고 2007년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사실 그 플롯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적은 소재로 좋은 작품을 쓰기란 더 어려운 법인지라...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결말을 거의 예상했으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이 단편선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

김보영「노인과 소년」(2009)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571
네이버를 통해 소개되었던 작품...이면서 그다지 네이버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 하여금 (정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들은 가입만 해놓고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얘들도 가끔은 쓸만한 짓을 하는군'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노인'과 '소년'의 대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선문답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그러고보니 작가가 헤세를 좋아한다던가.

김선우「천국으로 가는 길
베르나르 베르베르인가가 이미 써먹은 통에 참신성은 떨어지는 작품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끝나서는 안될' 부분에서 끝났다는게 아닐까. 박애진의 단편을 읽었을 때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의 '이건 뭐여!'. 다 읽고 나서도 혹시 편집 미스로 뒷 부분이 누락된 거 아닌가 싶어서 페이지 번호를 확인해봤을 정도다. 정말로, 만에 하나, 진실로 이게 완전한 버전이라면 뒷 부분을 좀 더 이어서 쓰라고 말하고 싶고.

김이환「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2006)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robby&no=10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몇 번 더 읽어봐야겠는데, 좀 자신은 없다.

정보라「은아의 상자
재밌게 읽긴 했지만 '은아의 편지' 부분부터는 급속도로 맥이 빠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좀 과격한 비유이긴 하지만 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에게 그간의 전모를 죄다 밝혀주는 그런 장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임태운「뮤즈는 귀를 타고
나비 효과와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한 단편인데, 사실 같은 소재라면 듀나의 「나비 전쟁」이 더 나았지 싶다. 이 작품도 재밌게는 읽기야 했지만... 여담으로, (항상 겪는 일은 아니지만) 임태운의 단편을 읽다 보면 한창 재밌게 읽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섹스 관련 장면 때문에 기분을 잡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게 절정에 달했던 「전설의 용 우리 마을에 오시네 Red Dragon is coming to town」때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 있어서 영 찜찜햇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취향 탓이긴 한데...

정지원「장미 정원에서」(2009)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sandmeer&no=5
'오빠'란 캐릭터의 '급격한' 성격 변화는 좀 황당했다. 바로 전까지는 주인공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다가 그 직후에 '널 보낼 순 없어' 하는 식이라니... 뭐 다 읽고 나면 나름 이해할 구석이 생기긴 하는데 여튼 그건 좀 걸렸던 부분이다. 거기만 제외하면 제법 준수한 단편.

정희자「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90년대 중후반부터 장르문학 관련 통신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면 향수를 자극할만한 요소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길게 갈 것 없이 차라리 중간 부분에서 끊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이영도「샹파이의 광부들」(2009)
「봄이 왔다」 때부터도 느꼈던 거지만 이영도는 도대체 왜 그리 반전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복거일이 『드래곤 라자』에 반전 없다고 까댔던 게 그렇게 상처였던 걸까? 엉성한 반전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작품의 생명을 깎아먹기 마련이라는 걸 모를리도 없을텐데 말이다. 결말부에 가서는 아예 그게 왜 반전인지 설명하기까지 하는 통에 보는 내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정 이영도의 단편을 싣고자 했다면 사실 이 작품보다는 전작인 「에소릴의 드래곤」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영도의 애독자들은 대부분 네이버를 통해 전작을 읽었겠지만, 사실 전작을 읽지 않았다면 깨나 재미가 떨어질 단편이 「샹파이의 광부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단편에서는 더스번 칼파랑이 왜 '좋은 남자'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영도쯤 되는 작가면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샹파이의 광부들」을 실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아직 출간 안된 전작을 내버려두고 굳이 이 작품을 수록한 것인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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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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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강지영 외 12인 (시작,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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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 서비스에는 지은이가 '강지영'으로만 되어 있다. 차마 저자들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진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 외 X인' 하는 식의 언급은 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 딱히 표제작이 없는 이런 책에서는 그 것도 사실 썩 적합한 방식은 못되지만, 어쨌거나 그게 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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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작가들이 주로 참여한 단편선이라는 점에서 얼핏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실 '거울 작가진이 참여한' 책이라곤 해도 두 책의 저자가 그리 많이 겹치지 않는지라 서로 비교하기는 좀 어렵기야 하지만서도.

이 책에 대해서는 대체 뭐라고 평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좀 더 낫기야 하다. 개중 굳이 베스트를 꼽아본다면 은림의 「낙오자」, 이수현의 「쓰레기들의 왕」, 임태운의 「이빨에 낀 돌개바람」정도를 들 수 있겠고. (저자 이름 순으로 배열) 허나 그 작품들도 진정 베스트라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들이 영 많은데다, 반대편에서는 거의 울화가 치밀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도 더러 섞인 판이니... 그런 작품들만 보자면 장르문학 리뷰어로도 제법 알려진 모 작가가 이 책을 거의 걸레짝 마냥 씹어댔다는게 딴에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싶을 정도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못쓴 글 때문에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 (by 콘라드, 판타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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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브라보,청춘!
이 작품을 읽고 난 다음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이 책의 편집자는 무슨 저의에서 이 작품을 맨 앞에 배치한 걸까 하고. 단편선과 음반의 유사성을 지적하지 않는다 해도 '첫 번째 작품'이라는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의미란 상당하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편선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마련인데, 그런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라기엔 상당히 민망한 단편이다. 캐릭터는 엉성하고, 반전도 반전 같지 않고, 메시지는 노골적으로 다 드러나 있고...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이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수록된 단편은 이보다 좀 더 나으리라 믿는다. 아니면 요 근래 낸 장편 소설이라도.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다!
 
배명훈「얼굴이 커졌다
요즘 들어서는 가능하면 특정 작품의 리뷰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하는 짓을 자제하려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이오네스코의 「무소」를 언급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같은 아이디어를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나로서는 해피 엔딩인 「얼굴이 커졌다」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최현숙(은림)「낙오자
은림의 단편들에서는 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일관된 스타일을 좇는다고도 볼 수 있겠고, 점점 그 완성도가 나아지는 걸 보면 역시 그렇게 보는게 맞겠지만, 줄곳 작품을 보는 입장에서는 사실 좀 질린다. 좀 더 색다른 방향으로 나가봐도 좋을 텐데.
  
김이환(콜린)「버지니아 울프는 없었다
모 게시판에서 다른 단편선에 대한 프리뷰를 썼을 때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더니 이름모를 누군가가 사실 이 작품은 2005년에 거울에서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과연 찾아보니 「버지니아 울프 가라사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 있었다. 아하. 이게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단편선에는 통신상에 발표되었을 때와는 그 제목이 다른 작품이 여럿 있다. 작가와 편집자, 둘 중 누구의 뜻이었을까? 여하튼. 상상력의 과잉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던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을 본 탓인지는 몰라도 이 단편은 상대적으로 밋밋한 인상을 준다. 구멍 속 세계를 묘사할 것 까지야 없지만 - 그랬으면 오히려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르고 - 좀 더 길게, 과격하게 나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김주영(赤魚)「지구의 중력은 안녕하시니?
『환상문학웹진 거울 외계인 단편선』에 실렸던 작품의 재수록. 당연히 외계인을 다룬 단편인데, 소재를 활용한 방식은 내 취향에 맞는다. 외계인에 대한 작품을 쓰랬더니 '진짜' - 혹은 '전통적인' - 외계인이 튀어나와버리는 건 좀 재미없잖나. 다만 완성도가 그리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아르코의 아내가 등장하는 부분은 작가가 주인공들의 '정체'를 너무 서둘러서 밝히려 했다는 인상을 주고...
 
임태운「이빨에 끼인 돌개바람
임태운의 단편은 사실 두어편 읽어봤을 뿐이지만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을 쓰려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코믹물로서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이다. 김보영이 거울 프로필에 실린 임태운의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소년 만화 주인공을 컨셉으로 잡았다'고 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일리있는 관찰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민정(가는달)「나하의 거울
액자형 구조로 된 예술가 소설...이라고 정의해야 할 텐데, 액자형 구조가 과연 필요했는지는 의문. 바깥 이야기는 아예 내던져버리고 본론인 예술가 쪽에만 집중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작품의 내용과 제목이 그리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나하'에 대해 초반에 잠깐 언급되었다가 엔딩 부분에 거울이 다시 등장하는 수준인데, 이래서야 이런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김지현(아밀, 루나벨)「방문자
이전에 방문자들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과 신부의 차이가 대체 뭘까?

김지원(Sandmeer)「시간을 팝니다
책에는 '정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지만 그거 필명 아니던가? 뭐 은림도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작품을 수록했으니 별 문제 될 것 없긴 한데 좀 의아하기야 하다. 
 
김두흠(아이)「1억 원
중반부는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종반부까지 보고 나면 '초반부는 대체 왜 들어갔던 건가' 고민하게 되는 소설. '아 시발 꿈'은 대략 좋지 않다.
  
이수현(Askalai)「쓰레기들의 왕
혹시 예전에 발표된 단편이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과연 거울에서 2003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그 때는 「쓰레기나라의 왕」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바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웹상에 올라왔던 작품을 대충 훑어보니 - 정말 대충! - 제목이 바뀌었을 뿐 내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듯 하여 영 아쉽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어도 작가가 '영웅으로의 재탄생'이란 테마를 다루고 싶어했던 티가 너무나도 역력한 작품이었던 지라. (후반부의 '교수'는 거의 해설역에 가깝다.) 사실 단편 소설이라기보다는 장편 소설의 서장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단편이고,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신작을 내는 주기가 워낙 느리다는걸 감안하면 역시 이 작품이 장편으로 확장되는걸 보기란 지난한 일 아닐까...

써놓고나서 '왜 이 작품에 대해서만 할 말이 이리 많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창작을 한다면 꼭 한번쯤 다뤘을 만한 - 아니 다루고 싶어할만한 - 테마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양미현(Raile)「파랑새
'서로 시간차를 두고 천사와 악마를 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동일인물이더라' 하는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출처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간 그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에게는 참신한 맛이야 좀 떨어지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이상민「댁의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퇴마록을 비롯한 현대 배경 퇴마물에 등장할 법한 장면을 뚝 떼다가 글로 옮겨놓은 작품. 다른 소설의 외전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과 연결되는 글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소재를 글로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강지영의 「브라보, 청춘!」이 보자마자 사람을 격노케 했던데 비해,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사람을 울분케 했던 작품.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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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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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자니 아직 황금가지 홈페이지가 살아있을 때 누군가가 "『어스시』시리즈 나머지는 언제 번역되나요?" 하고 질문을 올렸다가 - 아마도 이영도의 팬이 아닐까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 "그딴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드래곤 라자』 양장본이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리플을 얻어들은 걸 본 게 생각난다. 해당 리플을 실시간으로 본 게 아니라 다른 일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라 제때에 화를 내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그날 내내 기분이 꽤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내가 이영도의 팬 때문에 불쾌함을 맛봐야 했던 두 경험 중 하나로 꼽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뭐냐고? 음... 이영도가 한국문학사에서 따라올 위인이 없는 최고의 작가라고 강변하던 작가지망생과 키워를 벌였던 추억.)

지금 시점에서는 그 기억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문제의 그 팬이 그리도 떠받드는 이영도라면 절대 르 귄의 작품을 '그런 거'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부를 수도 없고. 이영도가 이 정도로 대놓고 빌려온 작가를 그 팬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우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스시』의 '진짜 이름'과 『눈마새』의 '신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까?) 예전 기억에서의 그 양반이 기껏해야 '철딱서니 없는 것' 정도였다면 지금은 '무례한 놈' 쯤으로 평가가 하향조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좋은 작품을 점점 더 많이 접할 수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평가는 점점 떨어져가는게... 정말이지 광신도는 장르를 불문하고 만인의 적이라는 게 진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독서 경험이다.

...라고 써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군.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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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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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의 본문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올라간 기사에서 확인해주세요.

여름 호러 특집 기사 자체는 이미 지난달 29일에 올라온 것을, 며칠 늦게 퍼다놓는다. 핑계를 삼자면, 지난 며칠간 지난 기사에 관심을 쏟을 정도가 되질 못했었다. (뒤늦게나마 글을 쓰게 된건 블로그를 1주일 넘게 버려놓았었다는게 뒤늦게 생각나서...)

거울 쪽에서 처음 청탁을 받았을 때부터 완성된 기사를 넘길 때까지 상당히 애를 먹였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원작, 즉 『오만과 편견』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기사를 쓰겠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나를 난감하게 했던 작품이었으니까.

기힉 자체는 재미있다.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한 고전을, 몇몇 문장만 뜯어고쳐서 좀비물로 바꿔놓겠다는 것인데, 리뷰에도 썼듯 꽤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나 자신도 고전을 활용한 작품들은 꽤 좋아하는 편인지라 상당히 기대를 갖고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처참할 정도의 졸작이었다. 원작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었던 섬세한 성격차는 할리우드 액션 활극에 걸맞도록 단순화되었고, 그 결과 이 소설이 원래 연애물로서 갖고 있던 성격은 거의 퇴색되어버렸다. 사실 원작인 『오만과 편견』(자신의 시대에 비해서는) 가히 선구적이라 할 정도로 재기발랄하며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과 그와 마찬가치로 여성의 지적 능력을 존중할 줄 아는 멋진 남성과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를 지켜보는 재미로 봤던 작품인데, 그런 캐릭터들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좀비 사냥꾼 두 마리로 변신하고 말았으니...  요컨대 원작의 명성은 최대한 빌리면서도 정작 원작에 대한 예의는 가장 지키지 않은 '패러디물'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거울에 보낸 서평은 '원작을 훼손한' 작가와 기획자에 대한 분노가 치덕 치덕된 글이 되고 말았으니... 사실 '여름 호러 특집'에 걸맞는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반성, 반성.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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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퍼언 연대기』를 읽던 무렵에 읽었던 책이니 사실은 꽤 전에 읽은 책이다. 마땅히 감상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에 비공개 상태로 해놓고서 간간히 한 두 작품의 단평을 추가하곤 해온 정도다. 그렇다고 쓸만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지만... 커그에서 테드 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내친김에 몇 자 덧붙여서 내놓는다.

  1. 바빌론의 탑」 (Tower of Babylon)
    바빌론의 탑 건설기. 기독교인이라면 꽤나 관심 가질만하겠으나, 나로서는 그저 그랬던 작품이다. 물론 탑에 대한 묘사 등,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제법 괜찮은 편이지만 그 이상의 공감은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 이해」 (Understand)
    테드 창 식의 이능력배틀물이라 보면 될까? 호쾌하고 스피디한 전개가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이수영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작가는 어느 장르에서건 제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3. 영으로 나누면」 (Division by Zero)
    수학 전공자들이라면 꽤 좋아하겠지만 수능 이후로 수학을 완전히 놨던 나로서는 그저 좌절의 대상일 뿐. '천재의 좌절'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지만, 묘사되는 재능을 이해할 수 없어서야 아무 소용이 없다.

  4.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다. 내가 편집자였어도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언어학 전공자에게 읽히면 색다른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지만, 그보다 나를 감탄케 했던 건 이 작품에서 테드 창이 주인공의 정서를 전달하는 솜씨였다. 1인칭과 3인칭을 번갈아 사용해가며 정교하게 절제된 슬픔을 끼워넣는 수완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뻔한 이야기이기에' 외려 완성미가 돋보이는 단편이란 것도 놀랍다. 모든 소설이 다 그렇지만 '뻔함'이라는 건 단편의 독 아니던가. 그런 걸 외려 장점으로 삼아버린 재주란 참... 김보영의 단편 「0과 1 사이」(링크)는 이 작품을 읽은 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 사실 이건 일전의 『U, ROBOT』 작가 간담회 때 직접 물어보려다가 괜한 오해를 주고 받게 될까 싶어 관뒀었다.

  5. 일흔두 글자」 (Seventy-Two Letters)
    골렘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바빌론의 탑」을 읽을 대도 그랬지만 과연 이게 SF가 맞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던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판갤의 베로스란 작자에게만큼은 절대 읽히고 싶지 않은 작품.

  6. 인류과학의 진화」(The Evolution of Human Science)
    이게 소설이긴 한 건가? 단편보다 더 짧은 엽편이라는 장르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대체...

  7.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
    천사 강림으로 인한 신의 은총이 죄다 신도들에게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 신심 깊은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반대로 장애를 낫게하는 등 - 이끌어낸다는 이야기. 기적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성인 컴플렉스'라는 단어로 나를 뜨끔하게 했던 작품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4월 4일자 근황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딱히 언급하진 않겠다)

    결말은 제목 그대로라 딱히 예상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다만 이영도가 「행복의 근원」이라는 단편에서 '행복의 근원은 불행'이라고 주장했던게 생각나서 조금 재미있었다는 정도.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두자면, 발표 자체는 「지옥은 신의 부재」 쪽이 3년 정도 이르지만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면 「행복의 근원」 쪽이 9개월 정도 이르다.

  8.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김상훈 씨는 애초에 이 단편의 제목을 '얼짱신드롬 - 다큐멘터리'로 번역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 중단편집이 처음 번역되서 나올 무렵에야 얼짱이라는 '신조어'가 한창 유행일 때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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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황소자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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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이 책은 류비셰프라는 러시아 학자의 평전인가, 아니면 류비셰프의 독특한 시간 관리법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서인가? 적어도 출판사에서 의도한 건 후자 쪽이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정작 내용물은 전자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책의 상당 부분을 류비셰프라는 학자가 누구인지 설명하는데 소모한다는 점에서. 아마 이 책의 독자들이 가장 관심 가질 법한 시간 관리법에 대해서는 책의 중반쯤 가서야 언급되기 시작한다.

류비셰프가 한국에는 저서는 커녕 작은 글꼭지 하나 번역되어 들어온 바 없는 - 속된 말로 '듣보잡'인 - 학자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런 구성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1차 독자들이었을 러시아인들에게는 썩 좋은 평가를 듣진 못했을 듯 하다. 뻔히 다 아는 사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어디 흔한가.

류비셰프가 이 책에서 설명되는 대로 구소련 시절 엄청난 명성을 누렸던 학자라면. 학자로서의 류비셰프를 서술하는 부분도 상당히 과장이 섞인 어투로 설명하는 걸 보면 실제로는 류비셰프가 별 대접을 못 받는 학자이거나 작가가 전기 작가로서 좀 모자란 인물이거나 한게 아닐까 싶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출판사 측의 설명이 좀 미심쩍을 정도로.

문제의 시간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정리하면서 5분 단위로까지 세밀하게 측정하곤 했다는 그 정성이 감탄스럽긴 하나 거기서 끝이다. 그저 무엇을 어느 정도 했다는 식의 짤막한 기록만 나열된 노트에서 뭔가 깨닫기에는 영... 그의 시간관리법이 탁월하다기보다는 애초부터 류비셰프라는 학자가 집중력이나 끈기 따위를 타고 났다는 느낌이다. 이 책을 보고 어느 정도 자극을 받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대로 따라하기는 - 그리고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는 - 좀 어렵겠지 싶다.

P.S.
그러고보면 2004년에 반양장으로 출시된, 215쪽 분량의 책 가격을 12,000원이나 매겼다는 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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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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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주의에 대하여

도갤에서 『파우스트』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겁을 주려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사전이 없으면 읽을 수 없다, 원서로 읽지 않으면 제맛을 느낄 수 없다 운운.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것도 일종의 떡밥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의견에도 물론 일리는 있다. 가령 트로이의 헬레네가 누군지도 몰라서야 파우스트나 황제 등이 왜 그리 그 고대 미녀에 집착하는 것에 공감하기란 불가능할테니까. 이해를 넘어 공감을 위해서는 적어도 『일리아스』에 대한 교양을 필요로 할 터이다.

허나 그 역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일리아스』를 처음 읽는 독자가 그 전에 『파우스트』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물론 『파우스트』를 읽을 때는 좀 어려워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감상을 토대로 『일리아스』는 좀 남다르게 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 경우 '배경 지식'은 『일리아스』가 아닌 『파우스트』다. 

요컨대 배경 지식'과 '독서 대상'의 관계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지어 말할 것이 못된다. 그들은 늘 상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의 말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물론 일정한 '테크트리'를 밟는게 여러모로 편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나 그것은 대개 공부 차원의 일이다. 문학 감상에서까지 그런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독서가 기술이 아닌 하나의 취미이며 오락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작품에 대한 경험들도 독자들마다 다르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왜. 그렇잖으면 『변신』을 읽기 전에 곤충도감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할 셈인가.

사실 『파우스트』가 읽기에 그렇게 빡빡한 작품도 아니다. 그리스신화에 대한 교양이 필요하다지만 고유명사들이나 구분할 줄 안다면 족하고 모른다 해도 주석을 통해 짚고 넘어가거나 정 모르겠다면 그냥 넘어가버려도 무방하다. 설령 독자가 정말 일자 무식이라 해도 괴테의 화려한 문장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고전이란 원래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P.S.

가만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도갤에서도 레벨이니 순서니 하는 걸 따지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온라인 게이머들을 생각나게 한다. 스킬 테크트리를 외우고, 커뮤니티에 어떤 스킬이 가장 좋은 스킬인지 묻는... 읽은 책이나 사들인 책의 숫자는 경험치라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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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패디먼 (지호,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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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에 읽었던 『독서의 역사』와 여러모로 비교할만한 책이다. 공통점은, 두 책 모두 '책덕후', 그러니까 골수 독서가들을 타겟으로 삼은 책들이라는 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식과 정서들이 우글거리는 책들이다.

다만 두 저자가 독자를 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굳이 비유한다면 거시사와 미시사, 혹은 정사와 야사의 차이랄까. 『독서의 역사』가 독서가들이 재밌어할 사실들을 소개한다면 『서재 결혼 시키기』들은 골수 독서가들이 공감할만한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전자가 역사상 유명한 책도둑에 대해 쓸 때, 후자는 책을 곱게 다루는 사람과 험하게 다루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쓰는 식이다.

물론 두 책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가를 따지는 건 미련한 일이다. 집필 의도도 그렇고 용도도 그렇고 서로 완전히 다르니까. 여유가 된다면,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권 다 사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2.

이런 책이 인터넷 서점의 반값 이벤트로 나왔다는 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렸다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허나 이 나라에 독서광의 정서에 공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생각해보면... 알라딘에 가보니 서평들이 제법 많긴 하더라만.

3.

뭐 여하간. 읽을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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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언 연대기 세트 (전3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맥카프리 (북스피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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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에 읽고서 뒤늦게 쓰는 감상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이 글에는 2월 초에 썼던 문장도 있다.

0.

사실 읽기 전부터도 내가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었다. 사실 드래곤에는 별 흥미를 못느끼게 된지도 꽤 오래 되었으니까. 드래곤 뿐만 아니라 에픽 판타지 장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북스피어에서 나온 책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반값 이벤트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좋아하는 출판사를 돕자는 핑계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작품을 집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게다. 반값 이벤트가 아니라 공짜 이벤트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다 읽기는 읽었지만, 작품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꺼번에 세 권을 사버렸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아마 1권부터 차근차근 보고자 했다면 2,3권을 사볼 일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근사한 오락물이라는데는 동의하지만 그냥 넘기기 민망한 요소들이 제법 눈에 많이 걸리니.

1.

작품에서 용기사들은 해당 세계관에서 자연 재해급 재앙인 사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과거에는 사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줌으로서 존경과 신망을 얻었었고. 다만 1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사포가 습격해온지도 근 400년이 지난 상황인지라 용기사의 권위고 뭐고 다 떨어진 상황이다.

이 지경이 되서도 용기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영주들이 자신들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1부 중반에 이르면 용기사들은 왕년의 권위를 되찾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왕년의 적이었던 사포의 귀환이다. 시대가 영웅을 다시 부른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용기사라는 집단이 작중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영웅적이며 존경할 만한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단히 봉건적이며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사포가 없기 때문에 영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노동을 거부하며 영주들에게 공물과 공녀들(여왕 드래곤의 파트너가 될 후보들)을 요구한다. 불만을 품는 영주들에게는 왕년에 용기사들이 수행했던 업적이나 용기사와 일반인들 사이의 '신분차'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나마 1부의 주인공 격인 플라르는 나은 편이고 2,3부로 갈수록 다른 용기사 몇몇도 권위주의적 모습을 벗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봤자다. 흡사 한국전쟁 참전자 출신 반공주의자들을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구시대인'에 이르면 뭐 별 달리 할 말도 없을 지경이고. (물론 이들은 명백히 부정적으로 묘사되기야 한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을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하니 스토리인들 궁금할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에 더 연관짓자면, 혈통주의의 흔적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용기사의 계급은 오로지 그 용기사의 파트너 드래곤에 따라 결정된다. 용기사 본인의 역량이 어떠하건 '황금 드래곤>청동 드래곤>갈색 드래곤>녹색 드래곤'의 서열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데 이 결정은 오로지 드래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거기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 용기사의 운명은 그저 타고날 뿐이다.

2.

사실 3부까지 다 읽은 후 권말의 서평에서 이 작품을 '페미니즘적 소설'이라고 평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었다. 읽는 내내 그런 식으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질 못했고, 되레 굉장히 마초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중편 「용의 간택」이 1967년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현대 독자들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아니다. 소설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려 한다는 - 이미 오른데다 그게 당연시되는 것도 아니고 - 정도로 감탄할 수 있는 시대야 이미 지나지 않았나.

더군다나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못마땅한 부분들이 많이 비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레사. 첫 중편인 「용의 간택」에서만 해도 상당히 정교한 성격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플라르를 만나면서부터 급격히 단순화된다. 여전히 현명하긴 하지만 성질은 예전같지 않아지고 그렇게 매력적인 면모도 보여주지 못한다. 말괄량이가 요조숙녀로 변하는 수준의 변화가 오는 건 물론 아니지만 상당히 허전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플라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굴다가 성관계를 맞은 뒤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 관계지 따지고 본다면 세련된 형태의 강간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런 장면을 두고도 여성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3.

그러고보면 이 작품이 무려 SF장르라고 이야기되는 모양이다. 번역도 김상훈 씨가 맡았고. 헌데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이 작품이 왜 SF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국내에 소개된 3부작만 본다면 『퍼언 연대기』는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이게 SF라면 《영웅전설》 시리즈(특히 가가브 트릴로지 이전)도 SF RPG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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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 마르칼 (북스피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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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7권을 거의 다 읽어간다. 여태 봤던 권 중에서는 가장 재미가 없다. 이는 순전히 7권에서 중심에 서 있어야 할 기사, 갈라하드의 몰개성 때문이다. 갈라하드에게서는 성배 탐색의 완료자라는 것 외의 어떠한 개성도 찾기 어렵다. 그 이전에 최고의 기사였던 사람들처럼 화려한 무훈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원탁의 다른 기사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최고의 영광을 채가는 등... (그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어떠한 증명도 없이 곧바로 최고의 기사임을 인정받는다!) 아서왕 전설이 기독교도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면서 억지로 삽입된 기색이 너무나 역력한 인물이랄까.

그의 등장을 기점으로 그 이전까지는 온갖 개성을 보이던 인물들도 죄다 단순화되어버린다. 가웨인은 태양신의 흔적을 잃고, 퍼시발은 원시인에서 기독교도가 되며 란슬롯도 최고의 기사라는 명예와 귀네비어 왕비에 대한 사랑을 잃는다. 남은 것은 그저 성배 탐색을 위한 신실한 기독교도 기사들 뿐. 이전 권에 비해 주석이 많이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적어도 성배 탐색에 관해서는 신화학자들보다 신학자들이 더 할 말이 많을 테니까.

뭐 그래서... 이번 권은 아서왕 전설이 아니라 그냥 흔해빠진 중세 모험담을 읽는 기분이다. 대강 읽고 모드레드가 분탕질 치는 8권으로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8권에서는 그놈의 지겨운 성배 탐색이 나오질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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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변론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앨런 M. 더쇼비츠 (이미지박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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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의 교수인 저자가 자신이 맡았던 소송들에 대해 다룬 책이다. 가격이 좀 비싼 감은 있지만 그래도 재미는 보장해주는 편. 책에 보니 하버드대에서 교재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수업 교재로 읽어낸 학생들도 재미를 느꼈을까 궁금하다. 뭐, 학점에 신경 쓸 일 없는 나로서는 그냥 재미있는 논픽션물일 뿐이었지만.

이 책의 번역자인 변용란 씨는 예전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여러 편 번역하기도 한 양반인데 역자 약력에는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고, 필시 이유가 있을 게다. 역자 본인이 번역 자체를 흑역사로 여긴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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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손낙구 (후마니타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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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새롭게 까발려지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땅값 - 특히 서울 땅값 - 은 엄청나게 오른다, 부동산 투기가 이 나라를 좀먹는다, 재벌들도 땅장사를 한다, 등등... 다만 이 책은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기만 하던 것들을 통계로서 증명해낸다. 그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할만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 기업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이유들을 흔히 '높은 임금'에서 찾곤 한다만 이 책의 설명을 따르면 그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중국에 비한다면 한국의 임금은 10배 정도 높지만 공장 용지 가격은 한국이 40배나 더 높다는 겁니다. 부동산 가격이 높으니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비용도 높기 마련이고... 임금 자체도 노동자가 벌어들인 소득이 상당 부분 주택 마련에 쓰인다는 걸 감안하면 근본 원인은 임금보다는 부동산 가격에 있다는게 이 책의 주장이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 거품을 주도하는게 대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쓴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대기업' 치고 건설사를 보유하지 않은 곳은 없으며 그 기업 자신이 가장 적극적인 부동산 투자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심지어 대기업들은 기업 경영을 통해 번 돈보다 부동산 돈놀음을 통해 번 돈이 더 많다 하니. 이 책에서 나오는 통계들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대기업들은 스스로가 인금 상승 요인을 만들고서 고임금의 '폐해'를 한탄한다는 말이 된다. 실로 재미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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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드「난독증을 말하냐

『드래곤 레이디』, 『사조영웅전』을 제외하곤 죄다 산 책들. 소설만 이 정도니까 비소설까지 합하면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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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레스키『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시리즈
1권만 읽었음. 이 시리즈를 다 읽지 못한건 순전히 미처 구입을 못했기 때문. 모든 종교문학이 이 정도의 위트와 재치를 지닐 수 있다면 세상은 꽤 근사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카톨릭 신자도, 공산주의자도 모두 웃으며 볼 수 있는 책.

김용 『사조영웅전』
고3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책. 하도 띄엄띄엄 보느라 책을 새로 잡으면 등장인물들 이름을 죄다 까먹기 일수였고, 결국 6권까지 보다가 포기. 재도전할 생각 없음. 

김용 『신조협려』 
김용 소설 중에서는 『신조협려』가 가장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길래 1~2권을 샀었음. 그 전 시대를 다룬 『사조영웅전』을 대충이나마 읽어봤으니 최소한 용어를 못알아먹진 않겠지 했으나... 초장부터 전작의 인물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에 GG. 『사조영웅전』을 다시 읽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포기. 

김철곤『드래곤 레이디』 
(으악_워터가이드_너마저.jpg) 이 소설을 추천받은 건 무려 워터가이드에서였다. 당시 Sabbath라는 개념인이 이 책을 두고 굉장한 명작이라며 칭찬해댔고, 거기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대여점에서 전권을 한꺼번에 대출. ...허나 내 취향에는 지독스럽게 안맞을 뿐더러 문장 또한 희안하기 그지 없었고, 결국 3권까지 보다가 포기. 가면 갈수록 좋아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때까지 내 정신이 버틸 것 같진 않아보였다. 나중에 게시판에서 Sabbath 씨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Sabbath 씨는 굉장히 의아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신입생 때 이미 『북페뎀』 장르문학 특집에 원고를 실을 정도로 극성인 판타지 팬덤이었던 (거기다 영미문학 취향) Sabbath 씨가 왜 김철곤 같은 작가에 흥미를 느꼈는가, 그 자체가 미스테리. 

김철곤『SKT』
(커그_너는_예상했다.jpg) 아직 커그에 대해 뭔가 잘 모르던 시절, 커그에서 만인이 명작이라며 추천해대던 SKT를 샀다. 사실 김철곤은 이전에 『드래곤 레이디』 때도 심하게 낚인 적이 있어서 추천을 받고도 몇 개월 동안 지켜봤는데, 그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천해대길래 산 책이었다. 하필 또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고 싶다는 일념 하에 서울 시내 대형 서점을 다 뒤져가며 샀는데... (하필 서점들마다 1권만 없었음) 캐릭터·플롯·세계관 등 모든 것들이 일본의 삼류 소년 만화에나 어울릴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는 건 일단 둘째치고, 문장부터가 워낙에 개판이라서 도저히 읽어줄 수 없었음. 그 작가에 실망했다는 걸 알면서도 낚인 나는 분노했고, 다시는 커그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라블레『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중세 프랑스 풍자문학의 최고봉! ...그러나 지저분한 유머가 많아서 내 취향에는 그닥. ...아니, 땅콩샌드 씨의 평을 보자면 꼭 취향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하고.

박상륭『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본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패러디 소설. 워터가이드에서 까불던 시절 누군가가 '오래도록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한 책이었음. 멋모르고 사긴 했으나 패러디 대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당췌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고, 결국 '독일문화의 이해'라는 교양수업까지 수강했으나 여전히 읽을 수 없었음. 철갤에서 검색해보니 니체 초심자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터 다짜고짜 읽으면 주화입마 걸리기 십상이라길래, 사실상 포기 상태. 

시구사와 케이이치『키노의 여행』 
중학교 때 친구의 권유로 읽었던 책. (참고로 이 친구는 당시 NT 노벨 마니아였고, 지금은 스스로 반쯤 쓰레기 취급을 하게 된 NT노벨들을 보며 한탄하는 처지) 나중에 고속버스 탈 일 있을 때 생각나서 1권을 사보기는 했으나 영 재미는 없었고, 지금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3권과 함께 컴퓨터 받침대로 쓰이는 중. 

에코 『장미의 이름』 
여러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소설이지만 차마 읽을 수 없었음. 이윤기의 번역이 문제인 건지 내 눈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문장부터 거부감이 파바박 드는 거엔 도리가 없으니... (이와 비슷한 현상은 황금가지 판 『반지의 제왕』에서도 경험)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이 책을 읽던 중에 동시에 읽던 『미학 오디세이』에서 내용 누설을 당하기도 해서 흥미가 약간 떨어진 상태. (진중권_너_이_색희.jpg) 

이경영『가즈나이트』(17세 이후) 
중학교 1학년 때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던 『가즈나이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도서관에 『가즈나이트』가 꽂혀 있는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 혹은 약간 뒤틀린 심정으로 - 집어들었으나... 펼쳐서 한 문장 보자마자 포기. 문장이 너무 개판이라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집어들었던 게 아마 4권이었던 걸로 기억. 후속작인 『이노센트』만 해도 최소한 '글 자체가 너무 개판이라 못 읽겠다' 수준은 아니던데 『가즈나이트』는 왜 그 모양이었는지. 

이문구『매월당 김시습』
작가들 가십거리를 다루며 이야기하기도 했던, 이문구의 베스트셀러(?) 『매월당 김시습』. 초장부터 쏟아지는 한학 고전들의 향연에 GG. 좀 더 내공을 쌓아서 재도전해볼 생각.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북폴리오) 
마틴 가드너 주석판 앨리스고, 양장 합본인 것을 모 인터넷 서점에서 50% 할인된 가격에 파는 걸 보고 희희낙락해서 구입. 하지만 이 책을 샀다는 걸 미스트 씨에게 자랑하자 미스트 씨는 번역자가 『해리포터』를 번역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었고, 충격과 공포 속에서 감히 읽을 엄두도 못내고 있음. 결국 이 책은 도서 창고 위키에 루이스 캐럴 관련 항목을 채우기 위한 참고 자료로 전락... 

키쿠치 히데유키『뱀파이어 헌터 D』
이건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출판사에게 문제가 있는 상황. 일본에서는 15권까지 출간된 소설을 7권까지만 내버리고서는 끊어버렸으니 별 도리가 있나. 중학생 때 번역으로나마 꽤 괜찮은 문장을 구사하는 글이라고 생각했고(알고 보니 소설의 번역자가 이 양반 팬클럽 회장이라더라 하는 썰도...) 지금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어를 익히지 않을 바에야... 해서 포기.

타니가와 나가루『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이건 『SKT』로 낚이기 전에 커그에서 추천받았던 책. 1권을 사 읽을 때는, 좀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오타쿠 코드를 억지로 끼워넣은 이런 글에 오타쿠들이 열광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1권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끝낸 듯 한데 대체 뭘로 후속권을 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 고속버스를 탈 일이 있을 때 간간히 사보곤 했으나 이미 갖고 있던 호감만 떨어뜨릴 뿐이었고, 결국 3권까지 사다 포기.

톨킨 『반지의 제왕』(황금가지 판)
뭘 모르던 꼬꼬마 시절에 부모님을 졸라 전권을 한꺼번에 구입했으나 압박스런 번역에 GG. 아무리 노력해도 2권까지밖에 읽을 수 없었음. 결국 『반지의 제왕』을 끝까지 다 읽은 건 씨앗판을 구입한 이후...

앤더슨『바다의 별』
여기저기서 극력 추천해대기도 했고, 본인도 모 웹진에 관련 서평을 올렸다가 이벤트에 당첨되기도 했지만, 사실 읽은 건 수록작인 「오딘의 비애」 뿐. 다른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바다의 별」은 아직 안 읽은 상태. 「오딘의 비애」를 정말로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바다의 별」이 졸작이기라도 하면 실망할까 싶어 보류 중. (결국 다 읽음)

하지은『얼음나무 숲』
(아_젠장_믿을_놈_하나_없구나.jpg) 커그에서 『SKT』로 장렬하게 낚인 뒤로는 남의 추천이라는 걸 굉장히 조심하곤 했으나 그 뒤로도 한 번 더 낚여야 했으니 그것이 바로 『얼음나무 숲』. 이 책은 커그 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추천해대길래 안심하고 샀었으나 역시나... 초장부터 세계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시작되는 것에다가 (이게 매력이 될 때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확실히 형편없다는 수준이었음)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 밋밋한 스토리 때문에 도저히 100페이지 뒤로 넘길 수 없었음. 나중에 다른 서평에서 \'인터넷 연재할 때는 배경음악 덕분에 감명 깊게 읽었으나 책에는 음악이 없어서 좀 감동이 덜했음\' 운운하는 문구를 보고 어안이 벙벙.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 승부를 보려 해야지 일러스트나 음악 따위의 도움을 받는다 한들 그게 소설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겠는가? 하기사 그렇게 믿는 인간들이 있기에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일 뿐인 나스 기노코 따위를 숭배하는 인간들도 나오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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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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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8일 2시 58분, 판갤에 올렸던 감상문(http://gall.dcinside.com/list.php?id=fantasy&no=937410)을 다듬은 글이다. 한번 썼던 글을 다시 손봐 올리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다만 별 도리가 없었다. 애당초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취중에 휘갈긴 잡문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서평을 들려주고 싶었던 어느 누군가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 이하 『양말 줍는 소년』은 『양줍소』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외계인』으로 표기한다.

내용 누설 없는 잡설 - 문근영 대통령에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김이환은 내게도 낯설지는 않은 작가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004년 말. '거울'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았을 때다. 메인 화면에 실린 기사 제목 중 가장 눈에 띄던 게 그의 단편 「문근영 대통령」이었다. 문근영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은 글은 재밌었다. 심지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당시 내가 그런 류의 문화를 처음 접했던 것도 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내게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김이환의 문장이었다. 담담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문장. 나는 그의 문장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지만.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콧대가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다는 상황 자체가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은 좀 사정이 나았지만 소설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정말 최악이었다. 해서 딴에 보면 내가 거울에서 「문근영 대통령」을 읽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만했다. 아쉽게도 다른 글들에는 그런 기적(?)이 미치지 못했던 것 뿐이고.

그래서 그의 글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출간작인 『양말 줍는 소년』(링크)을 통해서였다. 근 3,4년만의 재회. 다 읽고 나서야 작가에게 좀 미안해졌다. 이런 작품을 출간된지 4개월이나 늦게 샀단 말인가. (이렇게 귀여운 연인들을 보는 걸 4개월이나 늦추다니!) 해서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바로바로 사보마 하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 나왔다.

『양말 줍는 소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양줍소』보다 더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유쾌함과 순진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주는 캐릭터는 단 한 명 뿐이다. 축복받았다 할만한 인물은 딱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냥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는 유쾌함은 어떤 의미에선 장식이다. 위장이고, 허식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받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글을 구연 동화 보듯 순수한 마음으로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전제하자. 내 삶이, 『외계인』의 삶만큼 팍팍하진 않았다. 공감할 영역이 없었냐하면 불행히도 그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먼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거의 극복된 일들이다. 즐겁지는 않은 경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헤묵은 상처와 재회하는 게 즐거운 경험일리는 없다. 물론 이 소설은 남의 상처나 헤집어대며 느끼는 SM적 희열(?)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인물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됨과 몰이해들을 감싸주려 하는게 이 소설의 미덕이다. 작가가 적어도 「문근영 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추구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게 잘 표현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이번 소설에서는 그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 전작인 『양줍소』에서도 결말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외계인』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 듯 하다. 급작스런 결말, 그 와중에도 가엾었던 북극곰. 의아할 정도로 화사한 해피엔딩 속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거북함은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분명 읽을 때는 내 감정도 순조로웠는데. 어찌하여 결말에 와서 이리 헝클어지는 걸까.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허나 지금의 감상만 놓고 본다면 『외계인』에 대한 내 태도는 좀 어정쩡한 편이다. 


P. S.

그래서 이걸 당신에게 추천해도 좋을지는 좀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평가로 어슬렁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작가 홈페이지에서 다른 작품들을 읽었기도 해서, 내가 읽은 김이환 소설은 총 5편이다. 「문근영 대통령」, 「로보트」,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내 개인적인 순위를 매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1위 『양말 줍는 소년』
 2위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3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4위 「로보트」
 5위 「문근영 대통령」

이 정도로.

※ 이 아래 가려진 내용에는 『외계인』에 사용된 요소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내용을 미리 알면 재미없어지는 질 낮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라는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은 이쯤에서 인터넷 창의 X 버튼을 누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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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돌아온, '2008년에 읽은 책'

예전에 읽었던 걸 다시 읽은 책, 수험 서적(토플, 한자 등), 만화, 아직 밝힐 수 없는 책들은 제외. 도색잡지는 없으니 의심 마시라.

...그러고 나니 쓸 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건 우째서...



총류
교수신문『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1』생각의나무
목차(도서 창고 위키)
학술언론, 교수신문에서 연재되었던 번역 비평 특집 기사를 (1차로) 묶어냈던 책들이다. 이 책을 구입할 당시의 내게는 꽤 비싼 가격이었던지라(요즘에 와선 책의 가격에도 제법 무덤덤해졌다) 제법 고심한 뒤에 샀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고 난 직후에는 대만족. 한동안은 이 책에 실려 있는 번역 비평들을 신처럼 신봉하던 시절마저 있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지만, 번역서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들춰보게 되는 책이라는 것은 여전하다. 현재는 2권까지 출간.
모색 『계간 모색 5호 : 학문후속세대의 새로운 전망을 꿈꾼다』이후
리뷰(2008/09/06)
학문하며 산다는 것의 우울함을 가르쳐주었던 책... 그러고보니, 모 번역자가 로스쿨로 진학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인문학자의 길은 인생의 특정 시점에서 특정한 공간에 서 있어야만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게 생각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던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야르『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김병욱, 여름언덕
내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아직까지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올해 중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1월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 아니던가. (정말 의아해서 지난 글들을 뒤져보니, 두어번 언급하긴 했었다) 
열린책들『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열린책들
리뷰(2008/03/19)
정가는 3천원밖에 하지 않는 이 책이 중고 시장에서는 5만원도 넘게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거래가 성사되는 걸 본 적은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가격으로 팔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게다. 좋은 책이 일찍 절판되어버린 통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하나 영 마음이 편치는 않다. 

철학
김상봉『도덕교육의 파시즘』길
도갤에선가 우연히 알게 되어 읽었던 책. TV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책 치고는 제법 딱딱하지 싶더라만, 그래도 읽을만 하다. 주제 자체가 워낙 심각하고 중요하니까. 모 웹진에 서평을 보내려고 골랐던 책이기도 하다. (늦게 쓰는 바람에 결국 싣지는 못했지만. 이번달에는 다른 원고를 보낼 예정이다.)
신동준『공자와 그의 제자들』한길사
리뷰(2008/06/30)
얄롬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시그마프레스
이훈진『편집성 성격장애』학지사
확실히 그런 시절이 있긴 했다. 혹여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안좋게 보진 않을까, 못마땅히 여기지 않을까, 내쳐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때가. 물론 그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쉽사리 떨쳐내기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급기야 선택한 것이 심리학을 공부하는 거였다. 차라리 내 현재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걸 극복하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원래 의도했던 것은 얻지 못했다.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편집성 성격장애'와 내 증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제법 도움을 얻기도 했다. 증세가 같지 않다는 것에 - 다시 말해 내가 앓는 것이 '병' 수준은 아니라는 것에 - 안심했으니까.

종교
이강엽『신화』연세대학교
연세대 문학의 기본개념 총서... 신화의 개념과 그 요소에 대해 다룬 책이다. 작년에 읽었던 『신화의 역사』보다는 좀 딱딱하긴 해도, 신화학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데는 굉장히 쓸만한 책이지 싶다. 특히 「신화와 현대문화」 챕터를 보고 나선 같은 총서의 『현대문화와 신화』도 이 저자가 집필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이 정도의 퀄리티만 유지된다면 '문학의 기본 개념' 총서의 미래도 밝으련만.
이윤기『뮈토스 1』고려원
언제 읽었는지는 고사하고 내용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 산 책도 다 안읽었으면서 무턱대고 새로 책을 사 모으고, 다른 책을 살 명분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읽어내던 시절의 흔적.
정재서『이야기 동양 신화 1』황금부엉이
새로 산 책도 다 안읽었으면서 무턱대고 새로 책을 사 모으고, 다른 책을 살 명분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읽어내던 시절의 흔적.(2)
김산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휴머니스트
리뷰(2008/12/21)
김지방『정치교회』교양인
리뷰(2008/12/22)

경제학
우석훈『88만원 세대』레디앙
리뷰(2008/04/26)
우석훈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88만원 세대』의 핀트를 약간 바꿔서 20대 젊은이들이 힘든 건 그들이 못났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책을 썼다면 책이 훨씬 잘팔렸을 거다'라고 주장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웃기시네. 우석훈이 문장만 좀 더 근사하게 뽑아내는 사람이었어도 책이 두 배는 더 잘팔렸을 거다. 사실 이 정도로 엉망인 문장을 봐야 한다는 건 거의 재앙에 가깝다. 『괴물의 탄생』은 이보다는 훨씬 낫더라.
우석훈『괴물의 탄생』개마고원
"경제학자로서 현재의 위기에 어떤 해결책을 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전제했던 책. 그 결론에는 썩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자세 자체는 퍽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인문학자가 비슷한 어조로 글을 쓰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장하준『사다리 걷어차기』형성백, 부키
글 자체는 흥미로운데 이상스레 영 읽히지는 않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우상을 떠받드는 이들을 조금은 더 똑똑하게 가소로워할 수 있게 해준 책.
샤피로『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공혜진, 서돌
adios777 형님이 추천해 주셨던 책. 그러고보면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뭘 하시는지...

법학
김두식『헌법의 풍경』교양인
법학 교양서. 그냥 법조계 전반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사담 형식으로 푼 책이다. 그런 책에 『헌법의 풍경』이라는 제목은 좀 과하지... '전관예우'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밀하게 쌓아올려진다는 사실을 안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임종인外『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
사실 이 책도 서평을 쓰려고 준비는 해뒀었는데 결국 쓰질 못했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는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책인데도 정작 글은 쓰질 못했으니...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과 맞서야 하는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를 알려준 책이었다. 총과 마약으로 무장한 건달들보다도, 펜과 명함으로 치장한 와이셔츠 군단이 훨씬 마피아에 가깝다는 걸 가르쳐준 책이기도 하고...
조국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
제목'은' 훌륭하다. 허나 굳이 말하자면 개론서 성격을 띄는 책에 '~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건 좀 과한 처사가 아닐지. 나온지 제법 되는 책인지라(2001년) 내용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게 없다만 그내용을 '생각보다는' 쉽게 풀어내는 데 놀랐다. 조국 교수는 그저 잘생긴 얼굴로 유명한 교수 정도로 알고 있었다만 이만하면 다른 저술에도 관심가져볼만 하다 싶을 정도였다.

교육학
강성민『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
살림지식총서. 좋은 책이긴 했다만 『모색』에 비하면 좀 충격이 덜하긴 했다. 분량 자체가 워낙 짧은 책이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서도.
Bain 『What the best college teachers do』Harvard Univ.
밤 중에 하릴 없이 TV 채널을 돌려보다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멘터리... 거기서 참고 문헌으로 제시되었던 책이다. 알고 보니 그때쯤 유행하던 소위 '긍정의 힘'이라는 게 교육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가 다룬 책이었다. 좀 호기심이 생겨서 일부러 원서를 구해다 보긴 했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책을 덮을 때까지 다큐멘터리를 통해 짐작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는 부분은 없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반성하긴 한다. 과연 이 책의 출판사가 "Havard Univ."가 아니었다면 굳이 원서를 구입했겠는가 하고) 

문학(총류)
고장원『SF의 법칙』살림
살림지식총서. 책 초반에 SF의 역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평소 절대 SF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보곤 잠시 책을 덮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쥘 베른보다도 앞선 시대에 속하는 작가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책을 산건가 싶어서. 끝까지 읽고 나니 그렇게 나쁘지도, 어렵지도 않은책도 아니었다만 초장에 당했던 떨떠름한 기억은 영 지우기 어렵다. 그런 식으로까지 자신의 가치를 부풀려야 하는 걸까. SF라는 장르는.
린드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박혜숙『소설의 등장인물』연세대학교
연세대 문학의 기본개념 총서. 제목에 충실한 책이다. 등장인물의 개념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에 꽤 좋았던 책. 물론 정말 심도있는 논의야 전문적인 비평서들을 뒤져야 하겠지만, 이만하면 책값은 한 셈이다.
에코 『논문 잘쓰는 방법』김운찬, 열린책들
리뷰(2008/02/28)
안정효『글쓰기 만보』(메멘토)
번역으로도 유명한 작가의 작법서. 해서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했었다만 그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했다며 잘 안하려 하는 것에 약간은 실망하기도... (물론 이해는 한다) 출판사에서는 글쓰기 전반에 대한 참고서인양 광고를 해대서 샀는데 정작 읽어보니 '소설' 창작에 대한 글이었다. 음... 확실히 그 분야에서는 제값할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더이상 소설 창작에는 관심 갖지 않게 된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윤오영『수필 문학 입문』태학사
작법서. 도갤에 어떤 이가 도서 추천을 부탁하자('남에게 안알려주고 자기만 읽던 책이 있다면?') 다른 도갤러가 답한 책이었다. 호기심에 한 번 사서 봤는데... 제법 괜찮다. 
이태준『문장강화』이형택, 창작과비평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가. 책 자체가 워낙 낡아서 그럴 테지만 『수필 문학 입문』이나 『글쓰기 만보』에 비하면 그닥.., 아, 인터넷 서점에서의 가격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우월하더라만.
지라르『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김치수外, 한길사
작고한 비평가 김현이 무척이나 좋아했다던 평론가... 덕분에 한국 문단에서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알려졌고, 제법 큰 영향도 끼쳤다고 하는데, 김현의 팬을 자처하는 내가 이 평론가를 접한 건 올해에 들어서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 대부분을 읽지 않았던 것에 상당히 자신없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놀라우리만큼 만족스럽다. 세상에. 비평이 이리 재미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적과 흑』의 경우는 지라르의 설명이 워낙 훌륭해서 중간에 참지 못하고 『적과 흑』을 사서 읽은 다음에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었을 정도다. 그가 제시했던 '욕망의 삼각형'이라는 이론도, 근본적으로는 그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훨씬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학(앤솔러지)
김이환外『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황금가지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다만 문장에 개재된 김보영 씨의 단편 「스크립터」(링크)를 보고는 기겁해하며 황급히 주문했더랬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절대 책값 아까워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스크립터」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단 말씀. 수록된 작품들이 대개 작가의 데뷔작이거나 초기작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까. 그래도 「초록 연필」같은 단편도 건졌으니 손해는 안봤다 싶지만.
박민규外『앱솔루트 바디』해토
저자 중 한 분에게서 선물받은 책... 딱히 그 분과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열었던 이벤트에 운좋게 당첨된 것 뿐이다. 사실 수록된 작품들이 그렇게 괜찮다는 인상은 받질 못했다.
이문열『세계명작산책』살림
예전에 이 책을 두고 '이문열이라는 이름에 이를 박박 갈면서도 어쨌든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에 출간된 세계명작 앤솔러지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 높은 앤솔러지가 아닐까. 물론 선정자의 정신나간 취향이 드러나긴 한다. 가령 1권 「사랑의 여러 빛깔」에는 정작 제대로 된 로맨스 작품이 거의 없고, 2권 「죽음의 미학」에는 초장부터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나간 단편 「우국」이 수록되어 있는 식으로.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정말 최정상급의 앤솔러지인 것만큼은 분명...

한국문학
강명관外『공부의 즐거움』위즈덤하우스
공부 좋아하기로 유명한 명사들을 모아둔 건 좋은데, 그래놓고서 시킬 짓이 '난 어떻게 성공했소' 하는 식의 자기자랑밖에 없었을까? 그저 목차에서 필진들의 이름을 확인해두었다가 그들의 저서를 하나씩 읽어보는게 더 내실있는 독서가 되리라.
김훈 『남한산성』학고재
일전에도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지만 김훈만큼이나 내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가는 드물다. (링크) 굳이 꼽자면 이영도 정도나 들 수 있을까. 여하간 이 사람에게서 소설가로서의 가능성을 접게 된 건 『개』 때부터였다고 기억한다. 해서 『남한산성』이 발표되었을 때도 좀 심드렁한 심정으로 들으며 주문했었다. 글쎄. 물론 『개』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언론에서 호들갑 떨던 것처럼 '끝내주는' 글은 아니었다. 그저 그냥 그대로 가면 밥은 안 굶고 살만하겠다 싶은 정도랄까...
기형도『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작년에 휴학하기 전, 숙소 인근의 모 서점에 들렀다가 그냥 나오기가 마땅치 않아 짚히는대로 사들고 온 책이었다. 정작 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몇 번 들춰보다 만 상태로 묵혀두다 올해 들어서야 읽은 것인데... 그냥 괜히 샀지 싶었다. 여전히 시는 내 분야가 아니니 평가할 부분은 아니지만 산문은... 글쎄다. 비범한 시재(詩材)를 확인하기엔 영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김수영『김수영 전집』민음사
「시」 편은 진작에 생일 선물로 받아서 읽었었고, 올해 읽은 책은 「산문」편이었다. 시인의 외모 때문인가.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필치를 예상했거늘 정작 그의 필치는 수더분하기 그지 없었으니... 비유하자면 '젖은 88 라이트'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물론 그런 느낌도 나쁘지 않더랬다. 확실히 좋은 시인은 좋은 산문을 쓸 줄 안다. 『김수영 전집』을 읽다 알게 된 사실 하나. 김수영이 번역했다고 알려진 작품 중에서 적어도 한 작품은 그가 직접 번역한게 아니다.
김이환『양말 줍는 소년』황금가지
리뷰(2008/06/26)
나승규『해한가』시드노벨
꽤 오래전부터 쓰겠다고 설레발쳐댔으면서도 결국 나는 이 소설의 리뷰를 올리는데 실패했다. 써놓은게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써놓은게 A4 7페이지 분량. 나머지로 계획했던게 4,5페이지 쯤 남았긴 하지만, 지금 상태로도 업로드하기에 부족한 분량은 아니다. (심히 허접할 거라는게 문제지...). 글쎄. 이 소설에 대한 내 입장 변화는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읽을 때는 굉장히 몰입했으면서도 읽고 나서는 사정없이 후드려까댔고, 그러면서도 장문의 리뷰를 썼다. 그러다 이글루스 등지에 『해한가』리뷰가 수두룩하게 올라오게 되면서부터는 나도 그냥 시들해졌고... 앞으로도 그 미완성 원고가 완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가끔 사람들이 "왜 서평 안써요?"하고 놀릴 때나 이야기하게 되겠지.
듀나 『용의 이』북스피어
다 읽긴 읽었으되... 작가로서의 듀나는 서서히 하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평양 횡단특급>에서 그가 구사하던 군더더기 없고 정갈한 문체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가 쓰는 글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지지만 그만큼 씁쓸함도 늘어간다. 그건 그렇고 듀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안다는데, 신비주의 전략도 이제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듀나가 자신의 비밀을 비싸게 팔 수 있는 시기는 지난 듯 한데.
정은궐『해를 품은 달』시공사
그놈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판평대...때문에 읽어야 했던 작품. 로맨스 소설은 전혀 읽어보질 않았던 지라 내심 걱정했다가, 의외로 잘 읽히는 것에 신기해하며 읽었었다. (최근에 『타임 패트롤』을 읽으면서도 느꼈었지만, 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내 자신의 적응력을 지나치게 낮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꼴에 전공자랍시고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한문 경구들에 감탄하기도 했고.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중국문학
풍몽룡『동주 열국지』김구용, 솔
리뷰(2008/02/28)
오승은『서유기』서울대, 솔
리뷰(2008/06/05)
포송령『요재지이』김혜경, 민음사
청나라 때 엮인 중국 괴기담 모음집. 뜻밖에 골때리는 이야기가 많다. 예컨대 주인공 사내가 여행을 하던 중에 왠 미소년이 자기를 꼬시길래 관계를 맺었는데 주인공 사내의 '그것'이 엄청난 대물이었던지라 미소년이 뒷구멍으로 피를 쏟아냈다는 이야기라던가... 이처럼 외설적인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이야기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던 작품. 이런 원전에서 기껏 《천녀유혼》같은 로맨스물이나 뽑아낸 걸 보면 참... 

영미문학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최용준, 시공사
리뷰(2008/01/22)
마리니外『드라큘라』이병수, 이룸
피귀르 미틱 총서 13번. 흡혈귀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룬 책이다. 물론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스토커의 『드라큘라』. 꽤 흥미로운 책이다. 다른 책도 이 정도라면 피귀르 미틱 총서를 다 사는 것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스토커『드라큘라』이세욱, 열린책들
정보(도서 창고 위키)
영화나 만화 등 곁다리 작품들로만 접해오다 올해 들어서야 겨우 원전을 읽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다. 한 편의 근사한 작품이 후대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알려준 작품. 
애덤스『워터십다운의 열한마리 토끼』햇살과나무꾼, 사계절
출근 중에 읽다가 몇 번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게 만들었던 소설. 띠지의 광고 문구가 과장 광고로 보이지 않은 경우도 정말 오랜만이다.
앤더슨『타임 패트롤』김상훈&이정인, 행복한책읽기
리뷰(2008/12/22)
1권은 좀 심드렁하게 읽었다만 2권에선 정말 기절초풍해하며 읽었었다. 원 세상에 내가 SF소설에 이렇게 빠져드는 날이 올 거라고는...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정영목, 민음사
리뷰(2008/05/22)
위벌리『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박중서, 뜨인돌
이래저래 호평을 많이 듣기도 했다만, 50년이나 지나서도 읽힐만한 글은 아니지 싶다. 딱 1950년대 미국에서나 공감을 살만한 그런 정치적 유머가 담긴 책이라 해야 하나.
톨킨 『북극에서 온 편지』김상미, 씨앗을뿌리는사람
간만에 Yes24에 들어갔다가 무려 50% 할인 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어이 없어하며 사온 책일 게다. 세상에 아무리 출판계가 어렵다 해도 그렇지 톨킨의 책이 그런 대접을 받는 걸 그대로 넘기기는 어렵다.
홀드스톡『미사고의 숲』김상훈, 열린책들
번역자로서의 김상훈 씨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책...

독일문학
호프만『악마의 묘약』박계수, 황금가지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묵은 책이 아닐까 싶다. 2004년에 샀던 책을 2008년에야 읽었으니. (정말 생각 없다 싶을 정도로 책을 무작정 사모으던 시절이라, 우리 집 서가에는 아직도 그 시절에 사놓고 못 다 읽은 책들이 여러 권 된다) 그닥 신통찮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이런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

프랑스문학
스탕달『적과 흑』김붕구, 범우사
지라르의 비평 때문에 읽게 된 책. 그 전에 한 번도 읽은 바 없고 한 번도 들은 바 없었건만, 지라르의 비평 속에서 이 소설은 정말 재밌어보였다! 과연, 나로서는 상당히 호의를 두고 읽을만한 소설이었다. 한 때 플로베르를 흉내내어 "쥘리앙 소렐은 바로 나다!"라고 외치고 다니던 시절마저 있었으니... 허나 역시 재미로 따지면 비평보다도 덜했던게 사실.
아미엘『아미엘의 일기』김욱, 바움
어디에선가 '평생 고독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막장 인생을 보낸 남자의 일기'라는 설명을 듣고는 사서 본 책이다. 상당히 기대(?)를 갖고 사봤다만, 결과는 그저 그랬다. 그 전에 『최강전설 쿠로사와』나 『죄와 벌』 같은 작품들을 읽었던 탓인가도 모르겠으나, 글만 봐선 뭐 심드렁할 따름인지라. 물론 그의 인생 자체는 우울하기 그지 없지만. 그러고보면 프레데릭 아미엘은 평생 '1만 7천 페이지의 일기'를 남겼다는데 국내에 출간된 책은 어찌 500페이지가 좀 안되는 '얄팍한' 책 뿐인가. 필시 발췌본일 텐데, 거기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는 출판사가 괴씸할 다름이다.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이세욱, 문학동네
리뷰(2008/02/28)
사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보다는 『세계명작산책』에 실린 「사빈느」가 훨씬 근사했었다.

러시아문학
도스토예프스키『분신 / 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열린책들
서간체 연애 소설. 예전에 본 중역본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놀랐엇다. 그 판본에서는 서로 좀 더 노골적이고 '연인' 같은 분위기도 더 컸었다. 그에 비하면 열린책들 판본은 좀 무뚝뚝하게 옮겨진 편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여자 쪽에서 전해오는 '어릴 때 좋아했던 가정교사'가 더 기억에 남는다. 질척질척하고 음울하고 슬픈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홍대화, 열린책들
리뷰(2008/03/17)
조유선編『도스또예프스끼 읽기 사전』열린책들
알라딘 중고샵에서 놀다가 우연히 발견하곤 덥썩 물어온 물건. '도서 창고 위키'의 러시아문학 파트는 이 사전이 없었다면 거의 채워지질 못했을 게다.

역사
츠바이크『광기와 우연의 역사』안인희, 휴머니스트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적 장면을 극화한 단편 모음 정도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하기사 시오노 나나미의 책도 일단은 역사서라고 하는 판국이니...
플루타르코스『플루타르코스 영웅전』천병희, 숲
다 좋은데 편집 미스. 『그리스를 만든 영웅들』에서「테미클레토스 전」끝부분이 뭉텅 잘려나가고 없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가격을 비싸게 매기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런 건 좀 용납하기 어렵다. 출판사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항의하려 해도 영 찾을 수 없으니...

기타
김욱동『번역인가 반역인가』문학수첩
번역 테크닉에 대해 가르쳐주는 책. 김욱동 씨가 번역한 책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영어 공부하는데 제법 도움은 되겠다 싶었다. 영어 공부가 뜸한 요즈에 와선 잘 안보는 책.
바우텔『무기의 역사』박광순, 가람기획
순전히 판작안 때문에 사봤던 책. 내가 밀덕후는 못되는구나 하는 것만 자각하고 끝났을 뿐이다.
줄레조『아파트 공화국』길혜연, 후마니타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실패한 주거 모델로 치부되는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에서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규명한 책. 지지세력이 필요했던 군부 정권과 귀족적 삶·재산 증식을 원했던 중산층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통찰은 날카롭다. 앞으로 한국의 '~방' 문화(찜질방, 노래방, 피시방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이라 하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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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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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회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김지방 (교양인,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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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사회과학 서적을 사 모으던 시절에 봤던 책. ISBN 기호도 그렇고, 내 서가에서도 '종교' 파트에 분류되기는 한다만 사실은 사회과학, 개중에서도 사회학으로 분류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다음 도서 정보에서도 정치/사회 서적으로 분류되는 걸 보면 국립중앙도서관 쪽이 유별난건지도 모르겠다) 

그 구성원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교회는 신앙 조직이라고만 규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세속적인 조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교회의 문제는 단지 교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아직은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듯 하지만, 이런 제목을 단 책들이 슬슬 나오는 걸 보면 희망을 가져볼만 하다.

다만 이 책이 제목에 어울리는 깊이나 날카로움을 보여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개적인 내부비판'의 한계랄까. '교회에 다니는, 국민일보 기자'인 저자에게 가능할 그 지점까지만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사람'이 '이런 책'을 낸 것에 감탄하면서도 결국 '이런 책'을 쓰고 만 것에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저, 책의 내용이 대부분 자기 반성과 희망 발굴을 향하는 것 때문에 그리 느끼는 것일런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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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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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단상(2)

일기/독서 2008/12/04 15:34
문장력이 괜찮은 책의 문제점 : 읽을 때는 걸작인데 읽고 나면 평작

요즘 『파우스트』를 읽는 중에 떠올린 문구긴 하지만, 그보다는 김훈의 글에 맞을 법한 말이지 싶다. 얼마 전에 김훈에 대한 냉소적인 글을 봐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지만. (나귀「김훈의 굴욕인가...?」) 원래부터가 나는 김훈의 최근 행보에 그닥 호의적이지 못했으니까.

사실 김훈에 대한 평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 좀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그가 아직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으니까. 그 때만 해도 김훈에 대한 내 입장은 '꽤 괜찮은 글을 쓰지만 글줄로 출세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작가' 정도였다. 김훈의 문체는 취향을 많이 타는 데다 자주 보면 질리기 쉬우니까. 아무리 문장력이 탁월하다지만 알맹이 없는 글만 반복해서야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기대하긴 어렵잖은가. 나만 해도 김훈이 『개』를 썼을 무렵에 그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거뒀으니까. (나중에 나온 『남한산성』도 사기는 샀다만 이왕의 실망감을 완전히 거둘 정도는 아니었다. 외려 '역사서를 폼나는 문장으로 적당히 문질러내 팔면 밥은 먹고 살 작가'라는 시니컬한 평만 추가하게 되었을 뿐.)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느니 노벨상 수상감이니 하는 평단의 격찬을 듣게 되니 놀랄 밖에. 요새 김훈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걸 보면 좋아했던 작가의 몰락을 슬퍼해야 하는지 원래 그가 받았어야 했을 위치로 돌아온 것에 안도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원래 그 정도'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음이야 편하겠는데 글쎄... 소설로는 『칼의 노래』, 산문으로는 『자전거 여행』 이후로 특출난 글솜씨를 보여주지 못하는 걸 보고 나귀 님의 말씀대로 급추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아래는 예전에 썼던 김훈 관련 글들.

『개』(클릭)



김훈 단상(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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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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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강성민의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에 언급된 걸 보고 찾아 읽은 책이었습니다. 사실 그 책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을 한번 일부러 찾아본 것인데, 나중에 사놓고 읽어보니 외려 이 책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실려 있는 기사 중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시간강사로 살아가기」를 가장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무려 2004년 5월에 나온 '학술지'니까 따지고 보면 퍽 낡은 글이어야 할 텐데 슬프게도 그렇지는 못하더군요.) 흥미롭게도 독일과 미국의 시간 강사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었는데... 뜻밖에도 외국 대학이라 해서 처지가 한국에 비해 썩 나은 것도 아니더군요. 물론 급여라던가 강사의 지위·대우 같은 기본적인 면에서 본다면 외국의 대학이 한국 대학에 비해 훨씬 낫기야 합니다.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잘 갖춰져 있으니까요. (특히 독일) 그러나 해외 대학의 강사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알게 되더랍니다.

독일의 경우 박사학위를 딴 뒤로도 '교수자격심사'를 한 번 더 걸쳐하는 까닭에 교수 자격을 얻는 것 자체를 얻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고 합니다. 게다가 학부 강의의 80% 정도를 강사들이 도맡아 하고 있음에도 고학력 인력이 워낙 많은 탓에 강사들이 별 대접을 못받는다 합니다. 한국에서는 학부 강의의 45% 정도를 강사들이 맡는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그 혹독함을 대략 짐작해볼만 하죠. 그 경쟁률 속에서 어찌어찌 교수로 임용되게 되면 나이가 대략 43세가 됩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학부 때부터 감안하면 거의 20년 가까이 공부해야 간신히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독일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 천재들은 30세 즈음에도 교수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천재'들의 경우고, 거기에 덧붙여 지금처럼 교수 임용 경쟁이 치열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가령 교수로 임용될 즈음해서 자신이 따르던 교수가 죽기라도 하면 그대로 대학을 떠나야 한다고 하죠. 후임으로 들어온 교수는 물론 자기 사람들만 챙기기 마련이니까, 억지로 대학에 남는다 해도 큰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고 나니 글 중에 교수 임용을 로또에 비유하는 것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겠다 싶더군요. 한편으로는 왜 그 많은 해외유학파 박사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귀국해서 한국 대학에서 근무하려 하는 이유가 대략 이해가기도...

그런가 하면 미국의 사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을 주더군요. 보통 한국 대학에서 20시간 어치의 임금을 받는다고 하면 대개 20시간의 강의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잖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대학에서는 4시간만 강의할 뿐입니다. 그럼 무슨 명목으로 16시간 분량의 강의료를 받느냐? 강의할 때 외에 연구실에서 하는 업무 같은 것도 강사의 업무로 인정을 해주는 것이죠. 거기다 비정규직 신분이기 때문에 썩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의 돈은 주더랍니다. (한국 대학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미국 대학에서는 박사 과정 학생이 학부 강의를 맡으면 등록금을 면제해준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죠.) 

한국 대학 강사와 미국 대학 강사의 처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도 하나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면서 고된 노동을 한다"고 투덜대던 미국 친구가 갑자기 "아, 그러고보니까 생각났는데, 한국에서는 대학강사 임금이 아주 낮아서 강사료만으로는 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얘길 유학생에게 들은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덩달아 나까지 불쌍하게 쳐다보며 연민을 표현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표정관리하기 곤란해진다.

글을 읽는 저까지도 표정관리하기가 곤란할 지경이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왜 휴학 전에 사석에서 만나던 강사님이 (제 전공이 한문 고적을 파야하는 것임에도) 거듭 미국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얼추 짐작을 하겠더군요. 썩 유쾌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요.

하여간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산 '최신간'이 대략 2004년 5월에 나온 것을 보면 『모색 6호』를 보기란 어렵겠죠...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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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집은 전공 관련 교양 서적. 한길 그레이트북스를 통해 『춘추 좌전』을 번역하기도 했던 신동준 씨의 책이다. 사실 『춘추 좌전』은 이야기만 들었고 다른 책에 대해서는 전혀 듣질 못했으니, 신동준 씨의 책은 이번으로 처음 접한 것이다.


학술·교양 서적을 찾을 때 일단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필자의 이력이다. 저자의 전공이나 학교, 학파에 따라 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의 전공이 한학이 아닌  정치학이라는 것은 굉장히 뜻밖스런 일이었다. 저자가 고등학생 때부터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던 비범한(?) 이력을 갖고 있고,  책 자체도 정치학적 성격이 강하기는 하나 비전공자가 책을 - 그것도 수 권이나 - 낼 정도라니... 그 열정이 새삼스럽긴 하다.

'정치가로서의 공자에 주목했다!'라는 서평에 혹해 구입한 것인데... 글쎄. 사실 어찌 평해야 할지 감이 잘 안잡힌다. 확실히, 학자 이미지가 강한 공자에게서 정치가 이미지를 발굴해낸 것은 재미있게 읽히긴 했다. 유학의 통치학적 속성이야 수업을 통해서도 이미 배우긴 했지만, 이 정도로 강조하는 분을 본 적은 없으니까.

허나 장점만큼 단점도 적지 않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유가 경전에 대한 기존의 해석에 대한 입장이 지나치리만큼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야사적 성격이 강한 「공자세가」를 의심하는 것이야 그리 이상할 것은 아니다. 허나 거기에 대한 반론의 증거가 대부분 '그럴리 없다'는 식의 심증에 그쳐서야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자신의 잘못과 타인의 잘못에 이중잣대를 들이대선 안된다고.(혈구지도, 絜矩之道)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일까. 아마 그럴 게다. 하지만 내가 본 게 약장수의 장광설에 불과하다는 느낌은 여전히 지우기 어렵다. 내가 필요했던 건 의사의 진단서였는데.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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