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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7 『거장과 마르가리타』 번역본에 대한 잡설 (4)
으레 '2009년 10월 근황'에 넣으려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밖에 뺀 이야기-.

홍대화의 열린책들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끼워넣었다. 번역서 본문을 비교하는 대목부터 읽으면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본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형규 씨의 번역본이었다. 이 판본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여러 곳에서 많이 들었다. 역자 박형규 씨는 과거 1982년부터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번역하여 출간했던 사람이다 운운. 이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를 거쳐 1992년에 삼성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마지막으로 거의 14년간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새 번역본이 없다가 2005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드라마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이 드라마가 한국에 수입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게 되었다 운운. 거개는 벌거지님을 통해 접했던 정보들이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정보 중에는 이 번역본이 사실은 저작권 관련 사항조차 불명확한 일어 중역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 기억이 불확실하니 넘기도록 하고... 중역본들이 대개 그렇듯 매끄럽게 읽히는데 치중한 번역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이 판본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불가코프 전공자가 작업한 다른 번역본들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렇게 충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번역본이다. 2권 말미에 들어간 벌거지님의 서평은 꽤 훌륭했지만 번역에 들어간 정성 자체가 이리 부실해서야.

그 뒤에 접한 판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나온 김혜란의 번역본, 그리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홍대화의 번역본. 뒤의 두 판본은 이전에 나온 문예출판사 판에 비하면 정말 정성스럽게 제작된 판본이라 그저 감탄하면서 볼 뿐이다. 요 며칠간 나도 해외의 불가코프 팬 사이트를 뒤지며 나름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이 두 사람의 번역서에 달린 주석들은 상당 부분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작품 이해에는 거의 필수적인 주석들이어서, 문예출판사 판만 봤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를테면 2장에서 예슈아 하-노츠리가 유다 이스카리옷과의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박형규 역(45~46p, 1권)  김혜란 역(44~45p)  홍대화(49~50p, 上권)
  "그럼," 총독이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아느냐? 그와 얘기한 적이 있다면, 케사르에 대하여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있습니다." 죄수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저께 저녁 저는 성전 근처 가리옷 마을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인가?" 빌라도가 묘한 눈빛을 띄고 물었다.
 "매우 선량하며,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죄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저의 사상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으며 즐거이 저를 환영했습니다."
 "촛불까지 켜고……." 빌라도가 이를 악문 채로 죄수에게 말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예." 예슈아는 총독이 그토록 소상한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데 놀라면서 말했다." 그는 저에게 정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더군요."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을 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목소리에는 체념한 듯한 기분이 나타났다. 
  "그럼," 그가 말했다. "이 질문에 대답해봐라. 너는 키리아트에서 온 유다라는 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그자에게, 그러니까 만일 말을 했다면, 카이사르에 대한 무슨 말인가를 했느냐?"
 "그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엊그제 저녁 성전 옆에서 키리아트 시에서 온 유다라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시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초대하여 대접해주었습니다……."
 "그자도 선량한 사람이었겠지?"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듯이  이글거렸다.
 "무척 선량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죄수가 대답했다. "그는 제 생각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고, 매우 정성스럽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작은 불꽃들도 켜두었고……." 빌라도는 거의 입을 벌리지 않고 죄수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두 눈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렇습니다." 예슈아는 총독이 그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는 것에 다소 놀라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빌라도가 물었다. "아니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텐가?" 빌라도의 어조에는 이미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대답해라.」 그는 말했다. 「너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38라는 자를 아느냐? 말한 적이 있다면, 네가 카이사르에 대해 한 말은 참으로 어떠한 것이냐?」
 「일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수는 기꺼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저께 저녁 나는 기리앗 출신의 유다라고 하는 한 젊은이를 성전 옆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도시 아래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했지요…….」
 「그는 선한 사람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악마 같은 불꽃이 튀었다.
 「아주 선량하고 상냥한 사람이지요.」 죄수는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의 생각에 큰 관심을 보이고, 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맞이했습니다…….」
 「등불을 밝혔겠지…….」39 빌라도는 이를 악물고 죄수의 톤에 맞추어 말했다. 이때 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렇습니다.」 총독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면서 예슈아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어요 그는 그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지요.」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느냐?」 빌라도가 물었다.
 「혹은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이미 빌라도의 말투에는 기대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촛불', 혹은 '불꽃'에 대한 묘사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소 생뚱맞게 삽입된 부분이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총독이 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불을 켰다는 사실을 짐작한단 말인가? 별다른 주석을 제시하지 않는 박형규 역에서는 이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만, 김혜란 역과 홍대화 역에서는 미주와 각주를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의 율법은 누군가 종교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유혹'의 죄로 고소된 경우, 두 증인으로 하여금 벽 뒤에서 숨어 지켜보게 하고, 그 옆방에 피고인을 들어가게 하여, 피고인이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증인들이 그의 말을 듣게 했다. 그리고 이 때 피고인 곁에는 촛불 두 개를 켜두어, 증인들이 피고인의 얼굴을 분명히 알아보도록 했다. (김혜란, 619p)

로마법에 따르면 숨겨 놓은 증인들이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밝히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대화, 상권 50p)

유다가 예수를 초대하면서 촛불을 켰다는 사실은 결국 이 때 이미 유다가 예슈아 하-노츠리(곧 예수)를 팔아넘기고자 했다는 뜻이고, 본디오 빌라도가 이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는 건 그러한 사실을 본디오 빌라도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뜻한다. 주석이 없는 다른 판본에서는, 본인이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은 이상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대목이다.

기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저자 자신이 살았던 당대, 스탈린 정권 치하의 러시아에 대한 풍자 소설일 뿐만 아니라 성경, 중세 파우스트 전설 등 숱한 배경지식들이 녹아난 소설이기도 하다. 결국 작품들이 품고 있는 맥락들을 집어내지 못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충실한 주석이 곁들여진 번역본들의 가치가 단연 높을 수밖에 없다.

남은 문제라면 기왕에 나온 두 주석본 중 어떤 책의 주석이 더 탁월하느냐의 여부가 되겠는데... 사실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인용한 구절에서는 김혜란 역의 주석이 훨씬 상세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홍대화 역에서 훨씬 상세하거나, 아예 홍대화 역에만 실린 주석도 적지 않다. 정말 재미있는 건, 두 번역본 모두 같은 원서와 같은 주석서를 참고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1990년에 출간된 불가코프 전집과 2007년에 출간된 벨로브롭체바의 주석서) 일단 쉽게 확인 가능한 차이라면 문학과지성사판은 주석을 미주로 달아 죄다 책 뒤로 밀어냈고, 열린책들판은 각주로 달아 그 때 그 때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정도.

물론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러시아문학 특유의 독자적인(?) 인명 표기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고...

결국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을 까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 번역본도 나름 번역사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일단 2006년에 이 번역본이 재간되고 나서 최근 들어 갑자기 문학과지성사판이니 열린책들판이니 하는게 번역되기 시작했고, 모 출판사에도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는 하니 말이다. 번역 자체의 수준이야 어떻든 불가코프 번역 붐(?)을 일으킨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할까? 그렇다곤 해도 문예출판사의 번역본만 보겠다고 하면 썩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모 출판사에도 2007년에 번역 원고가 넘어갔다고 들었다. 언제 나올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번역자 분이 소설가로서는 내 나름 주목하는 분이기도 해서 제법 궁금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원고가 2007년에 넘어갔다 하니 문학과지성사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고보다는 주석이 상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뭐 모 출판사에서 현직 교수인 이상섭 씨가 번역한 『아서 왕의 죽음』조차 2005년에 원고를 받아놓고서는 올해 말에 낸다니 만다니 하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과연 언제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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