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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6/03 보편어론을 통해 본 한국의 근대 (5)
  3. 2009/01/23 작가들에 대한 가쉽 (통합) (12)
  4. 2008/02/29 3월을 위한 책 (2)
  5. 2008/01/31 <중세의 가을>과 김현
  6. 2007/12/21 2007년에 읽은 책 (5)



평론가 조영일의 트윗이다.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김현이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활동했던 평론가니 지금의 '젊은' 비평가가 보고 촌스럽다 여긴다 해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 비평가이던 시절 김현의 전략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는 조영일이 김현의 글을 두고 촌스럽다 운운하니 우습게 보일 수밖에. 

내 생각에 젊은 김현과 지금의 조영일은 거의 판박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김현이 문지 동인을 중심으로 '4·19 세대'를 자칭하며 이전 세대 비평가들을 비판했던 모습과 조영일이 daum '비평고원'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기성세대 비평가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4·19 세대론'은 자기 세대 비평가들에게 주체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나 되었지 조영일이 허구헌날 비판하는 '문단 제도' 타령은 그야말로 투정이라는 생각밖에 안들던데. 결국 똑같은 인정투쟁일 뿐이다. 아니, 써놓고보니 비교 대상이 되버린 문지 동인들에게 살짝 미안해지긴 한다. -_-;;

아울러 김현을 위시한 4·19세대가 르네 지라르, 미셸 푸코, 가스통 바슐라르 등 외국 비평가들의 이론을 소개하며 선배 비평가들과 맞설 수 있었다면 조영일은 가라타니 고진에게 자기 논리의 상당 부분을 의지한다. 조영일의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은 김현의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를까? 조영일의 '번역서'에 비해 김현의 '개론서'는 외국 비평가의 이론을 그런대로나마 자기 식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주체적(?)이기나 한데.

게다가 조영일의 신간인 『세계문학의 구조』를 읽어본 입장에서는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글을 쓰는 방식이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는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단 생각도 든다. 무슨 놈의 괄호 처리가 그리 많고 무슨 놈의 주석 처리가 그리 많은지. 논지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끔 좀 더 정돈해서 써줬으면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P. S.
 
그런데 이 양반은 『세계문학의 구조』에서 '뒤팽'을 '뤼팽'으로 잘못 쓴 사태에 대해 대체 언제 답변을 해줄 텐가. 이문열이 『불멸』에서 일본 근대사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마구 써댄 점을 비판한 양반이 막상 자기 책이 그런 오류를 저지른 점에 대해서는 제보를 해도 침묵해버리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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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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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는 2011년 6월 2일,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과 현대비평론 수업에 사용된 발제문입니다. 무단 인용했다가 걸린 분이 깎인 학점은 제가 보상해드리지 않습니다. -_-;;
 


 
보편어론을 통해 본 한국의 근대
- 근대 국민국가는 이중 언어 체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나



목차

1. 서론
2. 상상의 공동체: 국민국가와 언어
 가. 폴리스와 로고스
 나. 국민국가의 형성 : 부정된 이중 언어 체제
 다. 후발 국가/식민지의 상황 : 지속된 이중 언어 체제
3. 메이지 일본의 영어 담론
 가.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
 나. 바바 타쓰이의 이중 언어 체제 비판
4. 해방 직후 한국의 영어 담론
 가. 미완의 독립, 미완의 근대국민국가화
 나. 불안정한 조선어
 다. 외국어 능통자와 매국노의 초상
5.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
 가. 광복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나. 세계주의적 국제어론
 다. 유토피아적 영어 공용어론 –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기
6. 결론
7. 참고자료




언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특별한 결속감을 만들며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제국주의 언어는 여전히 지방어이고 또한 많은 언어 중 특정한 지방어이다.
-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3, 173면.



1. 서론
 이 발표의 목적은 전광용의 소설과 복거일의 에세이를 통해 근․현대 한국에서의 영어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설명하는데 있다. 

 본 발표에서는 근대 한국과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전제하고자 한다. 첫째, 근대 동아시아 국민국가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개론적 설명이다. 본 발표의 2장에서는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전환이 이중 언어 체제의 극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둘째,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의 일본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소개이다. 제국 일본의 언어조차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전에는 확고한 실체를 가지지는 못했다. 본 발표의 3장에서는 일본에서의 영어 도입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어떠한 시도를 했는지 설명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실이 비단 한국 사회만의 특수상황이 아니라, 후발 근대국가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본 발표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4장과 5장에서는 근․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이 여전히 전근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는 외국어 능력이 매국노/기회주의자의 초상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5장에서는 탈민족주의자를 표방하는 복거일조차 제국주의적 언어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2. 상상의 공동체, 국민국가와 언어
 가. 폴리스와 로고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언어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때의 언어란 단순한 발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짐승도 입을 통해 소리를 낼 수 있지만 동물 애호가가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그것을 ‘언어’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어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서만이 비롯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어떤 자가 낸 소리를 ‘언어’로서 인식할 때 우리는 그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와 동등한 자리에 설 자격을 갖춘 자로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언어를 단순한 발성과 구분하여 로고스(λόγος, logos)라고 불렀다. 이 로고스가 가능한 자만이 시민권자로서, 곧 폴리스(πόλις, polis)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일에 관여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해 로고스로 인정받지 못한 말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자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인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 폴리스의 시민권자들이 로고스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때,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것은 ‘로고스’가 공동체 구성원을 형성하는 논리, 즉 누군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도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행위는 정치적 능력이 입증되는 감성의 경계를 추적하기 위한, 이를테면 무엇이 말이고 외침인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갈등이다.”[각주:1] 서로 다른 폴리스에 소속된 자는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한다. 역으로 서로 다른 로고스를 공유하는 자들은 서로 다른 폴리스를 구성한다. 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에서 이중 언어 체제가 일반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나. 국민국가의 형성 : 부정된 이중 언어 체제
 전근대 봉건 국가는 신분제 질서 하에 운영되었다. 다시 말해 국가 안에 포함되되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정되지 않는, 이를테면 노예 같은 인간들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전근대 봉건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귀족․식자/평민․노예의 신분질서가 엄연한 이상 굳이 공통의 언어로 국가 내 구성원을 묶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전근대사회의 신분제 질서 하에서 이중 언어 체제는 딱히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전근대 국가의 상위 계급들은 자국의 하위 계급보다 동 문화권 내 타국의 상위 계급에 보다 친밀감을 느꼈고, 그것이 전근대사회의 초국가적 보편 문어의 형성에 기여했다. 전근대 유럽의 상위 계급은 유럽 보편 문어인 라틴어를 통해, 전근대 동아시아의 상위 계급은 동아시아 보편 문어인 한문을 통해 타국의 상위 계급과 교류함과 동시에 자국의 피지배인들과 자신들을 구분지었다. 근대 이전까지 자국어는 많은 경우 하위 계급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즉 보편 문어와 자국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제도 하에서는 전근대 국가와 같은 명백한 신분 질서가 인정되지 않는다. 한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동등한 ‘국민’으로서 묶일 것을 요구받았다. 즉, 국민국가는 전근대국가와 달리 하나의 폴리스로 묶여야 했다. 따라서 이중 언어 체제는 근대 국가의 문제 상황이 된다. 근대 국가의 공용어 담론, 곧 ‘국어(國語, National Language)’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거의 모든 구체제의 성과가 부정되는 와중에도 부르봉 왕조가 채택했던 라틴어 폐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던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각주:2] 서유럽에서의 근대화는 라틴어의 무력화를 통한 이중 언어 체제의 해체, 곧 초국가적 폴리스의 해체를 통한 단일 국가 체제의 완성이기도 했다.

 다. 후발 국민국가/식민지 : 지속된 이중 언어 체제
 동아시아의 후발근대국가/식민지에서는 근대화 문제가 유럽의 그것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후발근대국가/식민지가 근대 국가 제도를 완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진 제국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정에 기인했다. 비록 청 제국이 몰락함으로써 ‘중화(中和) 질서’가 붕괴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전근대적 국가간 위계질서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청 제국의 지위를 서구 근대 국가나 제국 일본이 대체했을 뿐 여전히 선진 제국을 의식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중화 질서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근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한문 관련 논쟁 – 이를테면 중국의 백화문 논쟁, 개화기 조선과 메이지 일본의 한문 전용/한문․자국어 혼용/자국어 전용론 논쟁 - 과 그 이후의 상황을 근대 서유럽의 라틴어 논쟁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문의 지위가 격하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전근대적 관념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후발국가/식민지는 서유럽 근대 국가들처럼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중화 질서의 쇠퇴로 인해 한문이 보편 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도 초국가적 보편 문어라는 제도 자체는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근대 국민국가/국어 담론은 여전히 초국가적 폴리스/이중 언어 체제의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가 국가 내부에서 작동되었던 반면 근대의 이중 언어 체제는 국가간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근대국가에서는 상위 계급만의 ‘보편 문어’가 아닌 국가 내 ‘공용어’로서의 외국어 도입론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근대의 보편 문어, 곧 제국의 언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체였다.


3. 메이지 초기 일본의 영어 담론
 가.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
 메이지 유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어의 지위는 일본 내에서조차 안정되지 못한 편이었다. 이는 전근대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문이 문어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구어(口語)에 대해 체계적인 어문학적 지식을 쌓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쉽게 말해 한문을 폐지한다고 해도 일본의 구어(口語)가 이를 대체할만한 문어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는 일본의 구어를 통한 언어적 공동체의 형성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국어’란 이러한 의심을 힘으로 부정하기 위하여 창조된 개념이라고조차 말할 수 있다.”[각주:3]

 메이지 초기 미국에 있던 모리 아리노리가 내놓은 영어 채용론은 이러한, 일본어의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나타난 주장이었다. 모리 아리노리(森有礼, 1847 ~ 1889)는 변리공사(辨理公使)로서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언어학자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William Dwight Whitney, 1827 ~ 1894)에게 보낸 1872년 5월 21일자 서한과 영문 저작 『일본의 교육』(Education in Japan, 1873)의 서문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영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하의 두 인용문은 각각, 휘트니에게 보낸 서한과 『일본의 교육』 서문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일본의 입말은 제국(帝國)의 인민의 점차 증대하는 필요에 적합하지 않으며, 음성 알파벳에 의하더라도 글말로서 충분히 유용한 것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그래서 우리들 중에는 시대의 보조를 함께 맞추려고 한다면, 풍부하고 널리 사용되는 유럽어 중 하나를 채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이제까지의 일본의 모든 학교는 수세기에 걸쳐서 중국어를 사용해왔다. 정말로 기묘하게도 우리들은 교육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언어에 의한 학교도 서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각주:4](강조는 인용자)
 일본에 있어서의 근대 문명의 발걸음은 이미 국민의 심부에까지 달해 있다. (……)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결코 우리들의 열도 밖에서는 사용되는 일이 없는 우리들의 빈곤한 언어는 영어의 지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 (……) 지식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지(知)적 민족은, 서양의 학문․예술․종교라는 귀중한 보고에서 주요한 진리를 획득하려 노력함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취약하고 불확실한 매체에 의존할 수는 없다.[각주:5](강조는 인용자)

 즉 모리는 ‘중국어(漢文)’에 침식되었던 ‘빈곤한’ 언어가 메이지 일본이 추구하던 바, 곧 근대 국민국가화라는 목적의 장애물이 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모리의 일본 언어 비판이 곧바로 일본어 폐지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모리는 영어가 ‘일본어’를 대체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한 적이 없었다. 또한 모리가 일본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던 영어는 제국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일본의 언어환경에 맞게 문법․정서법적으로 간략화함으로써 철저히 일본어화한 간이 영어(Simplified English)였다.[각주:6]

 모리가 주창한 간이영어론의 목적은 일본의 언어에서 한문의 영향을 제거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에 적합한 언어가 신생 근대국가 일본의 언어, ‘일본어’가 되게끔 하는데 있었다. 이는 메이지 초기 지식인이었던 모리가 종래 일본에서 쓰이던 구어를 ‘일본어’와 동일시하지 않았기에 때문에 나온 주장이었다.[각주:7]
 

 나. 바바 타쓰이의 이중 언어 체제 비판
 모리의 주장은 당대 일본 사회에서 소위 ‘일본어 폐지론, 영어 채용론’으로 이해되어 후대 일본 학자들의 비난을 샀다.[각주:8]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거의가 모리의 이후 세대, 즉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확립되고 일본의 구어를 일본어와 동일시하는 관점 또한 보편화 된 뒤에 나온 주장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당대인으로서는 바바 타쓰이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인 학자 중에서 모리의 주장에 대한 감정적 대응 이상의 학술적 비판을 내놓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리 아리노리의 논의가 영어권에서 영어로 처음 출판될 당시, 영국 유학생 바바 타쓰이(馬場辰猪, 1850 ~ 1888)라는 세 살 연하의 일본인이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영어 사용자였던 덕에 일본인으로서는 모리의 논의를 거의 최초로 접할 수 있었던 바바 타쓰이는 모리의 구어 일본어 비판에 대한 체계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영어로 『An 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日本語文典, 1873)라는, 최초의 일본어 문법서를 내놓은 것이다. 

 이 책에서 바바는 본문을 통해 구어 일본어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서문에서 영어를 일본의 공용어로 채택했을 때 생길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함으로써 모리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했다. 이중 전자는 모리의 주장을 완전히 접하지 못했던 바바가 모리 역시 영어의 문법․정서법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나온 시도였지만, 후자는 모리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이중 언어 체제의 폐해를 간파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바바는 역사상 어떤 민족이 자청하여 타민족의 언어를 채용한 적은 없었으며 “설령 어느 민족이 정복자의 강대한 힘에 굴하여 언어의 채용을 강요당하는 경우에도 그 민족이 몇 백 년 동안이나 써 왔으며 그 때문에 가장 편리한 자민족의 언어를 버리는 일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각주:9] 즉 모리의 주장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바는 그럼에도 영어 도입을 강행할 경우 일본에 일종의 이중 언어 체제를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고, 영어를 배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상층 계급과 그렇지 못한 하층 계급 간의 분리가 일어나리라 보았다. 모리의 서신 상대였던 휘트니가 모리의 주장에 대해 일본의 서구 문명 섭취를 위해서는 완전한 영어의 도입을 통한 영어/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을 상기해보면,[각주:10] 휘트니에 비해 바바 쪽이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한 훨씬 깊은 통찰을 했던 것이다.

 모리 아리노리와 바바 타쓰이의 주장에 한 가지 공통된 전제가 있다면, 이들의 주장에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거의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리 아리노리가 종래 일본에서 쓰이던 언어(한문/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가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통일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 반대편의 바바 타쓰이는 영어 도입이 영어/일본어라는 이중 언어 체제를 낳음으로써 역시 근대 국민국가 일본에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리라는 반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4. 해방 직후 한국의 영어 담론
가. 미완의 독립, 미완의 근대 국민국가화
 일본의 근대화가 ‘전근대 국가(막부 체제)→메이지 유신→근대 국민국가(일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전근대 국가(조선)→식민지 체제→근대 국민국가(한국)’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었던 근대 이행기 내지는 전근대/근대간 완충지대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생략되어 있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던 반면, 식민지 시대 내내 독립국에 대한 담론이 통제되었던 한국은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곧바로 근대 국민국가라는 제도와 맞닥뜨려야 했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전근대적 국가관을 충분히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 국민국가에 대해 사고해야 했다. 이는 식민지시기에 이미 조선인들 사이에서 전근대 조선 왕조가 인기를 잃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이 이미 문제시했던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과제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조선은 독립을 맞이하지만, 이것이 바로 조선에 새로운 독립국, 곧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광복 이후 남/북한 지역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한반도 지역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였다. 즉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일본이 청으로부터 계승받았던 제국(帝國)의 지위를 미군정과 소군정이 계승한 셈이었다.

나. 불안정한 조선, 불안정한 조선어
 이런 정치적 상황 하에서 조선어의 지위는 대단히 불안정했다. 물론 해방 후 한반도에서 조선어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전후 문학 비평가 1세대였던 유종호(1935 ~ )는 해방 후 상황이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회고한다.[각주:11] 식민지 시대 조선어 사용이 엄금되던 학교에서 조선어가 사용되고 일본식 이름은 ‘본래의’ 조선식 이름으로 바뀌는 등 일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어에 대한 지지는 (아직 수립되지 못했던) 한반도 근대 국민국가의 언어에 대한 지지보다는 제국 일본의 잔재 청산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강했다. 아울러 해방 후 조선어 정책은 “식민지 이전의 ‘민족’이 지니고 있는(혹은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가치로의 귀환, 즉 정신적 차원에서의 귀환”, 즉 민족주의적/복고주의적 국가관의 복귀를 의미하기도 했다.[각주:12]

 또한 1948년 이후의 분단 체제 수립과 한국 전쟁을 통한 분단 체제의 확립을 거치면서 ‘조선어’라는 개념 또한 변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분단 이전의 ‘조선어’가 조선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국어(國語), 혹은 민족어(民族語)였다면 분단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국어’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어’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각주:13]

 일본어의 청산이 곧 식민지 이중 언어 체제의 완전한 해체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해방 후 조선어 열기의 이면에는 조선어라는 로고스와 연결되는 폴리스가 무엇인지 확실치 않았던 상황, 그리고 일본을 대신하여 주둔한 새로운 제국, 미국과 소련에 대한 열망이 숨어 있었다. 특히 미군정 지역에서는 영어가 공용어(Official language)로 쓰임으로써 사실상 영어/조선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각주:14]


다. 외국어 능통자와 매국노의 초상
 해방 후 영어의 지위를 다룬 소설들은 흔했다. 이를테면 염상섭의 「미스터 방」(1947)이나 김동인의 「망국인기」(1947 ~ 1948), 전광용의 「꺼삐딴 리」(1962)와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이런 작품들은 해방 후 일본과 일본어를 대신하여 한반도에 상륙한 미국/영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문화적 헤게모니가 빚어낸 세태들을 다루었다.[각주:15]

 여기서 다룰 전광용(全光鏞, 1919 ~ 1988)의 단편 소설 「꺼삐딴 리」는 식민지 시대부터 한국 전쟁 이후의 조선-한국 사회를 살아온 외과 의사 이인국(李仁國) 박사의 생애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러시아어 ‘꺼삐딴(Капитан)’과 한국식 성 이(李)를 영어식으로 읽은 ‘리(Lee)’를 조합한 제목 「꺼삐딴 리」는 그 자체로 이인국 박사의 인생 경로를 대변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이인국 박사의 ‘매국노’ 내지는 기회주의자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자리에서는 늘 외국어 능력의 문제가 개입된다.

 환자도 일본말 모르는 축은 거의 오는 일이 없었지만 대의 관계는 물론 집안에서도 일체 일본말만을 써왔다. 해방 뒤 부득이 써 오는 제 나라 말이 오히려 의사 표현에 어색함을 느낄 만큼 그에게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략)
 “잠꼬대까지 국어로 할 정도가 아니면 이 영예로운 기회야 얻을 수 있겠소.” 하던 국민 총력 연맹 지부장의 웃음 띤 치하 소리가 떠올랐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은 아이들을 소학교로부터 일본 학교에 보낸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던 것인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 스텐코프는 이인국 박사의 손은 부서져라 쥐면서 외쳤다.
 “꺼비딴 리, 스바씨보.”
 이인국 박사는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아진, 아진……오첸 하라쇼.”

 “닥터 리는 영어를 어디서 배웠습니까?”
 “일제 시대에 일본말 식으로 배웠지요. 예를 들면 ‘잣도 이즈 아 걋도’식으루요.”
 “그런데 지금 발음은 좋은데요. 문법이 아주 정확한 스텐더드 잉글리시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들을 때 문득 스텐코프의 말이 연상됐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 조상을 가진다는 브라운 씨는 알(R) 발음을 그렇게 나타내지 않는 것 같게 여겨졌다.
 “얼마 전부터 개인 교수를 받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인국 박사는 자기의 어학적 재질에 은근히 자긍을 느꼈다.

 외국어 능력이란 외국인, 곧 조선 사회에 당도한 새로운 제국(帝國)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자는 그 제국인들과 로고스를 공유함으로써 제국이라는 폴리스에 접촉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조선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어를 통해 경험한 바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자에게는 친일조차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꺼삐딴 리」가 보여주는 ‘영어/러시아어’ 능숙자에 대한 분노는 식민지 시대의 일본어 능숙자에 대한 감정에서 계승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꺼삐딴 리’ 이인국 박사의 외국어와 ‘미스터 방’ 방삼복의 외국어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인국 박사는 일본어․노어․영어를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하며, 언어 환경이 바뀐 뒤에도 잘 적응하며 상류층 지위를 유지하지만, 방삼복은 기초적인 어학 실력만으로 외국인들에 기생하여 살다가 우연한 실수로 인해 자신의 지위에서 쫓겨나 다시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차이는 외국어 학습력과 외국어로 인한 소득이 계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외국어 학습은 상류층에게 훨씬 용이했으며, ‘기회주의적’ 행태 역시 상류층에게 훨씬 용이했던 것이다. 

 기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조선어가 불안정한 상황, 나아가서는 조선이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출현한 인간형이다. 말하자면 조선이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데다가 조선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갖춰주지 못할 때, 조선 상위에 있는 – 즉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듯 보이는 - 제국에 접촉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그 접촉 수단은 일본어․소련어․영어, 곧 제국의 언어였다. 이인국 박사나 방삼복은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를 내면화했던, 혹은 내면화할 수 있었던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 중이던 조선-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전근대적․탈국가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었다. 


5. 현대 한국의 영어 담론
가. 광복 이후 세대, 탈민족주의자로서의 복거일
 복거일(卜鉅一, 1946 ~ )의 영어공용어론과 관련하여 그의 개인사에서 주목할만한 대목이 있다면, 그가 해방 이후 세대였다는 점이다. 복거일은 해방 이후 태어나 -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 일본어 상용이라는 ‘원죄(原罪)’로부터 자유로웠다. 즉 광복 이전 세대의 문인들에 비해 민족 담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특징은 복거일이 민족주의적 친일 청산론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데서도 나타난다. 친일 행위가 청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친일 행위로서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각주:16] 비단 친일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복거일은 민족주의 자체를 일종의 폐쇄주의로 규정하며 한국 사회가 민족주의로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복거일에게 민족주의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의 속성을 띄며, “전체주의totalitarianism”과 쉽게 결합되는 제도로 이해된다.[각주:17]
 
 한편으로 복거일은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주 인근의 기지촌에서 자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원서들을 읽으며 문학 수련을 했었다. 다시 말해 복거일은 일본어로부터 자유로웠던 대신에 영어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성장했다. 소설가로서의 복거일을 발굴했던 김현이 “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각주:18]

 어쨌거나 복거일은 자신의 영어공용어론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행되었음을 전제한다.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앞서 소개한, 전체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한국 사회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족주의의 해체가 복거일류 영어공용어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민족주의를 해체한 후 세계 시민으로서 다른 세계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복거일의 입장에서 영어는 세계 시민들과의 교류 수단인 셈이다.

나. 세계주의적 국제어론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복거일이 영어를 ‘제국의 언어’가 아닌 ‘국제어’로 본다는 점이다. 즉 복거일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영어는 19세기 대영제국 시대의 영어와 다르다. 당시의 영어가 제국 내부, 혹은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소통을 위한 제국어였다면, 오늘날의 영어는 1세계 영어권 국가와 비영어권 국가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비영어권 국가간의 소통에도 사용되는 국제어이다. 즉, 영어가 가진 국제어로서의 힘은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나온다.[각주:19] 예를 들자면 중국어는 제2언어로서의 지분을 갖지 못했기에 국제어로서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영어가 국제어로 된 것은 자연적 현상”이며, “영어는 조만간 국제어에서 발전하여 세계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각주:20]

 복거일의 주장은 제1세계의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영어의 도입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간이 영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는 모리의 서신 상대자였던 휘트니의 제안과 맞닿는다. 모리의 간이 영어론에 대해 휘트니는 차라리 완전한 영어를 수입하여 영어/일본어의 이중 언어 체제를 이루는 게 낫다고 했던 것이다.[각주:21] 그러나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은 이중 언어 체제도 부정한다는 점에서 휘트니의 제안과도 다르다. 적어도 휘트니는 민족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족어가 누리는 공용어의 위치를 국제어가 대신하게 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은 진화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일종의 언어진화론에 기반을 둔다. 그에 따르면 국제어가 민족어를 대체하는 상황은 자연 도태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각주:22]  “영어가 모든 사회들에서 공용어로 쓰이게 되면, 언어의 장벽으로 보호된 조그맣고 비효율적인 문학 시장들은 하나의 커다란 범지구적 시장이 될 것”이며, 도태되는 민족어에 집착하는 자는 ‘박물관 언어’만을 가지리라는 것이다.[각주:23]

 사실 복거일의 주장에 일말의 합리성조차 없지는 않다. 폐쇄된 사회에서의 폐쇄된 언어로 담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는 그의 지론에서 발전된 영어 공용화론은 실상 근대 국민 국가의 소속원들을 국경 안으로 가두지 말고 국경 너머와 접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에 대해 민족주의적 분노로 대응하는 것은 그리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이 공격하는 대상이야말로 바로 그런 민족주의적 분노이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영어 도입을 통해 한국인이 잃을 것은 감정적 손실일 뿐이라고, 약간은 자신의 반대자들을 조롱하는 어조로 말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복거일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분노로 접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복거일의 주장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다. 유토피아적 영어 공영어론 –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기
 첫째, 복거일의 이상이 실현 가능한가의 여부. 모리 아리노리의 영어론에 대한 바바 타쓰이의 반박에는 일본어를 영어로 교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미 기존에 자연스럽게 사용해오던 언어를 인위에 따라 타 언어로 교체하는 과정이 쉬울리 없으며, 그것이 결국 이중 언어 체제라는 문제적 상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에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긴 한다. 그러나 복거일은 이중 언어 체제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복거일은 “그러나 그런 이중 언어bilingual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며 “정작 우리 시민들이 크게 치러야 할 것은 감정적 비용이다.”라고 주장한다.[각주:24] 이중 언어 체제는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과도기일 뿐, 이내 영어 공용어 체제로 전환되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어 격리English Divide’ 현상, 즉 가정의 재력에 따라 영어 습득 수준이 차이나는 현재 상황을 영어 공용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며, 자기 논지에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다.[각주:25] 복거일이 이야기하는 영어 공용의 수단은 기껏해야 “① 법, 공공기관의 서식, 도로표지, 상점의 안내문, 식당의 식단과 같은 정보들의 국영문 병용. ② 국지적 공용을 위한 실험적 사업들의 추진(경제특구나 무역자유항에서의 영어 공용, 영어 전용 학습 시설, 영어 강의 등). ③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에서의 영어 교육 심화. ④ 영어 방송의 확대.” 정도여서 영어공용어론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약해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자기 논지의 약점이 될만한 부분을 우회하고 있다고 할까.

 기실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은 한국어가 조선어에서 영어로 완전히 교체된 뒤의 상황을 상정한다. 그러나 그 완전한 교체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주장은 하나의 가설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가설’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어느 오래된 농담을 연상시킨다. 맨몸으로 무인도에 표류된 경제학자가 통조림을 발견하고서 말한다; “우리가 병따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나 현재 병따개를 갖지 못한 경제학자에게 통조림을 딴 뒤의 장밋빛 미래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까?

 둘째, 복거일의 영어공용어론이 전제하는 세계주의/국제어주의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갖는가의 여부. 복거일의 세계주의/국제어주의는 폐쇄된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작다는 점, 그리고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통해 제1세계는 물론 제3세계의 비영어권 국가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복거일의 주장이 그 자신의 주장대로 제국주의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운지는 의심스럽다. 기실 복거일 자신부터가 ‘제3세계의 비영어권 국가’와의 소통에 썩 열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복거일이 사용하는 영어 자료들은 거의가 영미권에서 나왔으며, 타 언어에서 중역해온 자료까지 포함한다 해도 프랑스 등 제1세계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쇠멸한 만주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복거일은 “『케임브리지 도해 중국 역사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를 인용하고 만주어의 쇠멸을 『뉴욕 타임스』에서 보도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복거일이 한국어로 쓴 에세이에 집요하리만큼 영어를 병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대목은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이야기하는 복거일조차 실상 제국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6. 결론
 전근대 사회에서 언어 문제는 어떤 주체들에게 언어 능력을 부여할 것인가, 다시 말해 누구를 어떻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할 것이냐와 맞닿아 있었다. 이렇듯 언어가 포섭과 배제의 논리 하에 발동가능했던 것은 전근대 국가가 통일된 공동체일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발 근대국가/식민지에서 이중 언어 체제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근대국가에서는 국민 전체가 국어(國語)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후발 근대국가/식민지는 제국(帝國)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즉 후발 근대국가/식민지에 이르러 이중 언어 문제는 국민국가 담론과 결부되어,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어느 초국가적 공동체 혹은 제국과 관계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른바 영어‘공용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적 이중 언어 체제의 중심이었던 제국(帝國)의 초상은 오히려 영어공용어론에서 특정 계급만이 아닌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요구하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전광용의 소설에서 보이는 이중언어자에 대한 냉소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감정이라면, 복거일은 탈민족주의적 근대국가관에 바탕하여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복거일의 주장에서도 제국(帝國)의 초상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다. 복거일이 목표로 삼는 세계 시민/세계보편성에의 합일이 결국 제국 시민/제국적 보편성에의 편입을 의미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보다 주의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7. 참고자료
김현,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3.
복거일,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이상혁, 「‘한국어’ 명칭의 위상 변천과 그 전망」, 『국제어문』Vol.46, 국제어문어학회, 2009
이연숙 저, 고영진․임경화 역, 『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 소명출판, 2006.
이혜령, 「채만식의 〈미스터 방〉과 김동인의 〈망국인기〉, 해방 후 일본어가 사라진 자리」, 『내일을 여는 역사』Vol.32, 내일을 여는 역사, 2008.
자크 랑시에르 저, 유재홍 역,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1면.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1. 자크 랑시에르, 저, 유재홍 옮김,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09, 11면. [본문으로]
  2. 이연숙 저, 고영진․임경화 역, 「머리말」, 『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 소명출판, 2006, 17면 참고. [본문으로]
  3. 이연숙, 앞의 글, 20면. [본문으로]
  4. 森有礼, 『森有礼全集』제1권, 宣文堂書店, 1972, 310면. 이연숙, 위의 책 29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5. 森有礼, 『森有礼全集』제3권, 宣文堂書店, 1972, 266면. 이연숙, 위의 책 32~33면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이연숙, 「국어 이전의 일본어」, 위의 책, 30면. [본문으로]
  7. 이연숙, 위의 글, 33면. [본문으로]
  8. 이연숙, 위의 글, 26~29면. [본문으로]
  9. 馬場辰猪, 『馬場辰猪全集』제1권, 岩波書店, 1987, 213면. 이연숙, 위의 책, 40면에서 재인용. 위의 인용문은 『An Elementary Grammar of the Japanese Language』초판 서문의 일부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민족’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휘가 영어 원문에서 어떤 표현을 번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약 바바 타쓰이가 Nation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었다면 중역된 인용구의 ‘민족’과는 다소 다른 맥락을 띄었을 수도 있다. Nation이라는 어휘는 19세기 후반의 일본에서 ‘민족’이라 번역되었지만, 일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바 없으며 전적으로 영어로 공부했던 바바 타쓰이가 그러한 번역에 동의했을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아쉽게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본 발표자의 단순한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본 발표자가 접한 인용문은 이연숙이 『馬場辰猪全集』제1권에서 발췌한 일역본을 『국어라는 사상』의 두 번역자가 한국어로 중역한 글이기 때문이다. 바바 타쓰이가 2판에서는 이 서문을 삭제해버린 까닭에 원문과 대조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 [본문으로]
  10. 이연숙, 위의 글, 31면. [본문으로]
  11.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100~112면. [본문으로]
  12. 최지현, 「해방기 ‘조선어’와 민족의 기억」, 『한국어문학연구』Vol.50,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8, 267면. [본문으로]
  13. 이상혁, 「‘한국어’ 명칭의 위상 변천과 그 전망」, 『국제어문』Vol.46, 국제어문어학회, 2009, 176~179면. [본문으로]
  14. 이상혁, 위의 글, 175면. [본문으로]
  15. 이혜령, 「채만식의 〈미스터 방〉과 김동인의 〈망국인기〉, 해방 후 일본어가 사라진 자리」, 『내일을 여는 역사』Vol.32, 내일을 여는 역사, 2008, 150면. [본문으로]
  16. 복거일, 「친일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철학과 현실』Vol.53, 철학문화연구소, 2002, 150~151면. [본문으로]
  17. 복거일, 「전체주의 사회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78~81면. [본문으로]
  18. 김현, 「1988년 4월 8일」,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본문으로]
  19.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16면. [본문으로]
  20. 복거일, 「문학의 진화와 확산」, 『수성의 옹호』, 문학과지성사, 2010, 103면. [본문으로]
  21. 이연숙, 앞의 글, 31면. [본문으로]
  22. 복거일, 위의 글, 102면. [본문으로]
  23. 복거일, 위의 글, 104~105면. [본문으로]
  24. 복거일, 「언어 시장의 자유화」, 『수성의 옹호』, 위의 책, 142~143면. [본문으로]
  25. 복거일, 위의 글, 147~148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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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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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판입니다. 올해 1월 20일부터 7월 24일까지 여러 차례에 거쳐 올렸던 항목들을 모두 통합했고, 각 항목에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간혹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너무나 널리 퍼져서 굳이 출처를 달 필요가 없는 항목에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말따나마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작가 이름을 두들겨보기만 해도 나오는 내용이니까요.

본 문서를 쓰는데 주로 도움 받았던 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WikipediaI(영문판)
- 엔젤하이로 위키
- 하우미스테리
- 도서갤러리
- Djuna의 영화 낙서판

어쨌든 이번 갱신을 마지막으로, 이 문서는 더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잘못된 내용을 제보해주면 가끔 수정은 하겠죠.

여담으로... 이 문서는 본디 제가 도서 정보 위키 사이트(http://booksea.pe.kr/ )를 운영하던 중에 나온 산물이기도 합니다. 이 문서에 실린 정보들은 저 위키에서도 검색 가능하고, 업데이트가 된다면 아마 그 쪽에서 이루어지겠죠. 시간 나면 가끔씩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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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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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80229001

...이라기에는 좀 빈약하지 않나 싶은데, 지난 두달간 워낙에 책을 사재껴댄 탓이 크다. (참고 : 1월을 위한 책) 사실은 책이 좀 덜 오기도 했는데, 주말을 끼고 오는 통에 그에 대해서는 월요일에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읽기 전에 쓰는 글이라지만 실물을 보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실물을!)

1.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개인적으로는 유종호 교수가 김현만큼이나 소중한 평론가이다. 그는 대학 신입생 시절의 내게, 문학에 대한 가르침을 내리는 몇 안되는 평론가였던 것이다. 나는 김현을 통해 소설을 배웠고, 유종호를 통해 시를 배웠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뒤늦은 구매가 아닌가도 싶다. 민음사에서 낸 유종호 전집이 있었건만, 내가 두어해간 관심을 주지 못한 사이에 절판되어버렸던 것이다. (한동안 내 메신저 닉네임이 민음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주문할 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펼쳐놓고 보니 책에 가장 먼저 실려 있는 글(「주체적 독자를 위하여」)은 나로서도 퍽 익숙한 글이었다. 내가 평론가 유종호를 처음 만났던 글이었던 것이다.
 

2. 김수영, 김수영 전집 2 : 산문(민음사)


재작년 생일 때 동아리 선배로부터 <김수영 전집 1 : 시>을 받았었다. 간만의 책 선물이라 반가워하면서도 내심 산문 편이 아닌 것을 아쉬워했었는데, - 역시나 시는 어렵다! - 결국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산문 편을 구입한 것이다. 막 도착한 것이라 자세히 보진 못하고 말미의 「'불온성'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만 대강 훑는데, 첫 머리에 박힌 명제가 확 하고 와닿는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 전의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에서 나왔던 것인데, 깊이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 
 

3. 김   현,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문학과지성사) 


구매 사유만 놓고 보자면 <시란 무엇인가>에서 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소리들을 하게 되리라. 차이가 있다면,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에 대해 쓰기가 좀 더 까다롭다는 것 뿐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 문학의 위상」을 이미 다른 책으로 갖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내가 그저 김현의 글을 읽고 싶어했다면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문학사회학>만을 샀어도 충분한 일이었으리라. 더욱이 가격대만 보자면 이 쪽이 훨씬 더 저렴한 것이다) 말하자면 멀쩡히 돈 아낄 수 있는 것을 두고 부러 비싼 선택을 한 셈인데, 별로 아깝지는 않다. 애초에 '팬'이라는 작자들의 심리는 경제적 합리성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한 것 아니던가.
문학사회학」챕터를 조금 읽다 생각이 든 것인데, 어쩌면 나는 그냥 국어국문과로 진학하는 것이 더 나았었을지도 모르겠다. 문학사회학은, 문학으로서 문·사·철을 꿰뚫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가 아닌가!
 

4.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로마가 만든 영웅들(숲 : 천병희 역)

 
편역인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그리스·라틴 문학을 원전으로 번역해주는 이는 천병희 선생 한 분 뿐이니 이나마도 감지덕지할 일이긴 하지만. 이번 권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마르쿠스 카토 전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전
가이유스 그락쿠스 전
카이사르 전
안토니우스 전
이다. 역시 가장 기대되는 거라면 카이사르 편.


5. 모리 카오루, 엠마 8-9(북박스 : 김완 역)


엠마 본편(1-7권)을 상당히 인상깊게 봤었다. 작품이 주되게 사용하고 있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이라는 소재는 퍽 낡은 것이지만, 19세기 영국이라는 배경 아래서는 제법 근사하게 어울린다. 신데렐라 스토리가 온전히 사랑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시대는 그 때 뿐이리라.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말 그대로의 판타지가 되고, 현대로 올라오면 통속극이 되어버릴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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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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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체가 '촌스럽고' 여백이 많이 남는 걸 보니 89년 초판 당시의 조판을 그대로 가져다 쓴 모양이다. 민음사나 문학과지성사 같은 유서깊은(?) 출판사에서 낸 고전들에 종종 있는 일인데, 볼 때마다 늘 '당했다'는 느낌 뿐이다. 외환위기 전에 2만 5천이나 되는 책을 내면서 활자조차 바꾸지 않고 표지만 바꾼 것은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산 게 파본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유독 인쇄 상태도 나쁜 듯 하고. '문학과지성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일이다. 김현 전집에서 보여주던 만큼의 정성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투덜거리며 건성건성 페이지를 넘겨보는데 역자 후기의 첫머리에 김현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흠칫하고 말았다. 그제야 역자의 약력을 보니 서울대 불문과 사람이다. 오호라… 문지 내에서 '서울대 불문과'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더니. 역자의 말을 믿는다면 번역 자체도 김현의 호의와 관심 때문에 시작한 일인 모양인데 - 그래서인지 김현에 대한 수사들이 좀 과하지 싶기도 하다 - 김현이 언제 중세사에 관심을 가졌었던가 싶다.

생각난김에 <중세의 가을>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 <행복한 책읽기>를 뒤져보니 러시아 문학과 관련하여 18,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서구 취향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88.4.1) 러시아 귀족들의 피아노 교습, 오페라 관람, 프랑스 어 사용, 구애 방법의 선택이 서구적임을 지적하는 따위를 두고 김현에게 서양사 취향이 있다 근거삼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불문학자인 그가 달리 어디에서 그와 관한 교양을 쌓았을 것인가.

P.S. 1

역시 <중세의 가을>은 교환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글자가 흐린 것 때문이 아니라(어차피 판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도 없다) 겉표지가 찢겨 있는 것 탓이다. 아마 책 창고에서 끄집어내다 잘못하여 찢긴 모양이다. 책 상태에 대해서는 어지간하면 신경 쓰지 않는 주의지만, 찢긴 부위가 하필 책장에 꽂아놓으면 대번에 눈에 띄는 자리라 어쩔 수가 없다. 문학과지성사 정도면 파본이 하나쯤 더 나온단들 별 타격도 없을 거고. (<용의 이>파본을 그냥 안고 말았던 북스피어 때와는 다르다, 북스피어와는!)

P.S. 2

<중세의 가을> 관련 언급을 찾다가 눈에 띄는 말을 발견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 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김치수의 말이라는데, (88.3.12) 그냥 넘겨 듣기엔 영 아쉬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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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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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알게 된 블로그를 뒤지다가 이런 글(2006년에 읽은 책들)을 발견했다. 생각나는 김에 나도 인터넷 서점과 도서관 기록을 뒤져가며 정리한다.
 
만화책을 제하고 보니 권수로는 약 140권 정도고 개중에서도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책들만 추려놓고 보니 또 의외로 얼마 되지 않는다. 하기사 왜 읽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것도 여럿 되는 판이니...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최근의 2,3달에 집중되어 있는 걸 보면 올해는 정말 어지간히도 안읽었던 모양이다. 물론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더 남았으니 더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한 두 권 차이일 테니 지금 당장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그 블로그의 주인장께서는 월별로 정리하셨지만 내 경우는 이런 사정으로 인해 종류별로 정리해볼 생각이다. 다 읽지 못했거나 생각을 정리해내지 못한 책들은 대부분 제외했다.



<비평>

김병익『지식인됨의 괴로움』문학과지성
<한국문학의 위상>을 읽고 난 다음 감동에 젖어 문지 스펙트럼의 목록을 뒤적이다 골랐던 책. 김현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도 상당히 기대를 했었는데... 글의 내용은 둘째치고 엄청나게 비문이 쏟아지는 통에 도통 읽어낼 수가 없었다. 왜 김현이 전설적 평론가로 기억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책. 그런 의미에서라면 돈 낭비만도 아닌 것일까?

김현 『한국문학의 위상』문학과지성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샀던 책이다. 날짜로 봐서는... 아마 3번째쯤이 아니었을까? 주변의 문학자들에게 무던히도 권했고 스스로도 여러 권 사서 선물하기도 했었으니. 비록 8편의 글만 실린 짧은 책이긴 하지만 어느 평론서보다도 감동(동감이 아니라)하며 읽었던 책이다. 그와 같은 평론가가 또 언제 나올런지…

김현 『행복한 책읽기 / 문학 단평 모음』문학과지성
김현이 남긴 일기를 묶은 책. 짧고 정갈한 문장들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내공들에 감탄했더랜다. 출간 시기가 오래되다 보니 시의성이 점점 떨어져간다는 지적도 있긴 하나 개인의 독서록으로서 이처럼 사람을 감탄하게 하는 책도 참 드물다.


<소설>
김애란『달려라 아비』창작과비평
올초 현문연에서 세미나를 해서 읽었던 책인데... 별 재미는 없었다. 당시에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이렇다할 만한 게 없었던 탓일런지. 지금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김철곤『SKT 1
커그 오덕들에게 단단히 낚.였.다. 이런 글을 '문장력이 탄탄한' '명작'이라고 추천하는 이들의 취향이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 책을 사려고 서울 시내 대형 서점들을 다 뒤지고 다녔던 것만 생각하면 스스로가 한심해질 지경이다. 가히 올해의 Worst.

김훈 『남한산성』학고재
예상했던 대로 김훈의 신작은 <자전거 여행>에서 이야기하는 소재를 들고 온 글이었다. 사실상 <칼의 노래> 때부터 그의 장편은 죄다 <자전거 여행>에서 언급했던 것들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니... 물론 그 중에는 <개>처럼 그 글꼭지들을 재탕한 수준인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다시 사극으로 돌아온 걸 보니 반갑기만 하다. 다음에는 퇴계나 조광조라도 들고 와주면 좋을 텐데.

듀나 『대리전
재치있는 글들이 많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전작인 <태평양 횡단 특급>에 비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에 그의 신작이 발매되었던데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제목만 봐서는 상당히 끌리는 글이 많았지만.

마르칼『아발론 연대기 1-8』
내가 신화원형비평에 조예가 없어서였을까? 아발론 연대기를 읽는 것은 내게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무심코 지나갔을 수도 있는 장면과 요소들의 숨은 의미를 가르쳐주는 주석들에 얼마나 감사하게 되던지... 책을 읽으며 환희에 찬 감정을 느끼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읽던 <샤를마뉴 황제의 전설이 무성의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가히 올해의 Best.

방지나外『그림자의 왕 1』
국산 장르 문학을 읽은지가 하도 오래된지라 스스로가 걱정되어 구입했던 책.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난다.

불핀치『샤를마뉴 황제의 전설』범우사
번역이 이렇게 엉망일 줄이야... 인명을 비롯한 고유 명사부터가 엉망으로 번역되어 있는 걸 보니 "차라리 내가 공부해서 번역하고 만다"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영어 공부의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SKT와 함께 올해의 worst 후보.

애덤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세상
부산의 모 여중생으로부터 합본을 구입했다. 처음의 세 편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으나 나머지 두 편은 별로. 영국식 풍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 힘들지 않을까?

오승은『서유기 1-10』서울대서유기연구회, 솔
~했어요 "~했답니다" 투의 번역 때문에 내내 아동 문학 읽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사실 번역 이전에 지루한 전개 때문에 도통 재미를 못느꼈지만. 가뜩이나 '삼장법사 납치 -> 요괴 퇴치'의 단조로운 전개에다 그 해결방식 또한 '☆☆승리의 손오공☆☆' 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강림!'이니 글에 무슨 긴장감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서유기보다 삼국지를 더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문열『이문열 세계명작산책 3 : 성장과 눈뜸』살림
이문열의 세계명작단편 선집 중 성장 소설만 모아놓은 편. 원래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문열이 가장 많은 찬사를 보낸 <토니오 크뢰거>만큼은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하여간 그놈의 장광설만 나오면 뇌가 꼬이는 기분이니…

이문열『젊은 날의 초상
이걸 올해 내가 읽었다니 놀라울 뿐. 기억나는 것으로만 세 번은 거듭해서 읽은 것 같은데... 3부 연작이지만 대학시절을 그린 2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 지적 허영을 떨다 망신 당하곤 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던 것인데 주변에 물어보니 그들 역시 그 부분에서 공감을 느꼈다 한다.

이영도『피를 마시는 새 1-8』
나온지는 오래 되었으되 사기는 한참만이다. 연재할 때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정작 출간본으로 나온걸 보니 도통 흥미가 가질 않는다. 하기사 연재 때도 특정 인물이 죽고 나서는 좀 맥빠진 기분으로 읽었지만. 이미 도서관을 통해서도 한 번 더 읽었으니 나머지 권들을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좌백 『생사박
워낙에 위명(?)이 대단하여 잔뜩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물론 작품의 잘못은 아니리라. 하지만 다시 읽으라 하면 좀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


『<역사>』

뒤비外『사생활의 역사 4』
매우 훌륭한 문화사 자료집. 정말 돈만 있으면 나머지 네 권도 다 사고 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인들이 병만 나면 요양 여행을 떠나던 이유'와 '피아노가 가냘픈 여성의 상징이 된 이유'를 알게 된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렁청진『변경』더난출판사
평전이라기보다는 그저 '삼국지 경영학' 류의 책이라 보는게 더 적합하리라. 한고조를 비롯해서 제갈량이나 이사 등 쟁쟁한 인물들을 평가하고 있는데 이 책을 살 돈으로 차라리 <사기 열전>을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암스트롱『신화의 역사
좋은 책이다. 김현의 <한국 문학의 위상> 이후로 평론 대상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잘 느낄 수 있었던 책은 참 오랜만이다. 신화학 분야의 입문서라고 하는데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전공에 관계없이 한 번쯤 읽을만한 글이 아닌가 싶다.

조영래『전태일 평전』돌베개
좋은 책이긴 하나 지나치게 낡았다. 아무리 저자가 사망했다곤 하나 90년 이후 한 번의 개정을 거치지도 않았던 건 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지하에서 몰래 윤전기로 찍어내야 하던 시절이야 서술의 부실함이 다소 인정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이 책을 그대로 팔려 한다는 건 좀 문제가 아닐런지.

키건 『2차세계대전사』류한수
사실 군사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역사에 대한 내 관심 자체가 기술사나 전쟁사보다는 문화사나 학술사에 더 치중한 탓이다. 아마 번역자 류한수의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책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자체도 없지 않았을까? (존 키건이 전쟁사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인건 나중에야 알았으니)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책을 산 건 순전히 역자와 출판사에 대한 '후원'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이 책의 가치에 대해 평가할 입장이 되진 못한다. 책을 볼 때도 서론의 1차 대전 요약과 2차 대전의 문화사적 배경을 서술하는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하필 그 때 <콜 오브 듀티2>를 하게 되는 바람에 - 그러고보면 FPS 장르라면 학을 떼던 내가 어쩌다 그 게임을 잡게 되었을까? - 좀 관심을 두고 있었던 동부 전선도 영 부실하게 나와서…  <전쟁의 역사>도 그렇지만 영미권(특히 영국)의 역사가들은 동부전선이나 태평양 전선의 서술에 영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이해는 하면서도 좀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철학>
   『經書』성균관대학교출판부
올해 초에 대학 중용 스터디를 하면서 샀던 책.  사서 영인본을 한 권으로 묶어낸 책이다. 아주 세밀한 주석까지는 읽지 못하지만 주자 주까지는 그래도 원활히 읽을 수 있다. 사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정도는 기본으로 둬야 하는게 아닐지? (시중 인터넷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지만 학교 출판부 홈페이지를 통해서라면 20% 할인가로 살 수 있다.)

   『大學 中庸 部諺解』학민출판사
<경서>가 다 좋은데 활자가 지나치게 작아 필기하기에는 영 꽝이었다. 그 까닭에 불편해하다 어떤 선배가 훨씬 큼직한 이 책을 보는 걸 보곤 눈여겨 보다 헌책방에서 구입했다. 그 선배의 책과는 달리 책에 흘려쓴 한문 필기들이 마구마구 적혀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다른 선생님께 알아 보니 한학으로 유명한 고려대 모모 선생의 책이랜다. (정확히는 그 복사본인 모양) 하필 좋은 책이 나같은 얼치기에게 들어온 것이니... 행운에 감사하면서도 내 능력 부족을 한탄할 따름.

성백효『大學中庸集註』전통문화연구회
대학과 중용 원문과 주자 주의 번역서. 이방면의 번역서 중에 가장 오역이 적은 책이라고 하는데...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을 '大學의 道는 明明德에 있고 親民에 있으며 至善에 머무름에 있다'는 식으로 번역하는 식이니(기억나는대로 치는 거라 정확하지는 않다) 오역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백효『論語集註』전통문화연구회
논어 원문과 주자 주의 번역서. 고등교육재단 시험 준비하면서 봤던 책이다. 설명은 위와 같다.

성백효『孟子集註』전통문화연구회
논어 원문과 주자 주의 번역서. 고등교육재단 시험 준비하면서 봤던 책이다. 설명은 위와 같다.

홍원식外『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
'왜 동양학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한 젊은 학자들의 원고를 모은 책. '그냥 대충 공부 하다 보니 되었다'는 식의 글이 태반이라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문학자들과는 달리 우리네 철학자들은 참으로 글을 못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

풍우란『중국철학사(상)』까치
신영복 선생의 <강의> 정도가 최고의 입문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울 뿐. <강의> 정도는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에 비하면 하루살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권도 사야 하건만 일단은 (상)권도 리뷰조차 다 쓰지 못한 상황이라 당장은 미루고 있다. 얼른 읽다 만 소설들을 치워야 이걸 읽지...

『<기타>』
진중권『시칠리아의 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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