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이란 대개 사람이 없는 집을 말하고, 그 사람이란 으레 주인을 뜻하기 마련이다. 이 집의 주인은 사랑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랑은 주인을 잃고 사랑에 갇힌 것이다. 그 '주인'이 누구냐에 대한 해석은 시인이 문을 어느 방향에서 잠궜느냐에 따라 갈린다. 방 밖에서 잠궜다면 시인 스스로가 사랑을 떠난 것이고, 방 안에서 잠궜다면 그주인이 떠나 의미가 없어진 사랑과 시인이 '빈집'에 갇힌 것이다. 어느 쪽이건 사랑이 버려졌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집이란 모름지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빨리 허물어져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폐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집이 버텨낸 세월과 관계없이 다 쓰러져가는 모양새를 떠올리는 것도 버려진 집의 운명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빈 집에 버려진 사랑의 운명 또한 자명하다. 주인의 손길이 닿질 않아 폐가가 되어가는 집 속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 썩어갈 것이다.
슬픈 일 아닌가.
P.S.
글을 쓴 지 한참 지나도 마이글에 올라오질 않길래 의아해 했는데, 글을 '비공개' 상태로 두었던 모양이다. 늦게나마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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