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정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8/06 8월 4일 카페 마리 참관기
0. 서문

이 글은 8월 4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명동의 카페 마리에서 있었던 일을 담은 이야기다. 글의 상당수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에 기초하기 때문에 '수기'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수기'라는 제목을 붙일 수는 없다. 나는 현장에서 철저한 목격자이자 방관자였지, 참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 맞붙었던 사람들의 기록도 찾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 용역과 살 한번 맞대본 적 없는 사람이 남기는 기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 글에서 시행업체 쪽은 '용역'으로,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세입자측'이라고 부르겠다. 세입자 측에는 전철연을 비롯한 어떠한 단체들도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잡대연맹' 같은 단체가 없지는 않았고 경인교대총학생회 명의의 천막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딱히 어떤 단체가 주도권을 쥐지는 않았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세입자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 트위터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개인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1. 카페 마리 문제 개관

카페 마리는 서울 명동3구역 대로변에 소재한 가게다. 을지로3가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역세권이며 바로 맞은편에는 국세청이, 건물 뒤편에는 명동성당이 있다. 문제는 2010년 4월 이 지역이 금융특화지구 개발을 위한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발생했다. 재개발을 하자니 당연히 기존 건물들을 부숴야 하겠는데, 이 협상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건물주들은 그럭저럭 합당한 보상을 받고 손을 털었지만, 세입자들은 고작 370만~17,00만원을 제시받았다. 개발업자 측의 주장에 따르면 중구청이 선정한 감정평가기관이 책정한 금액을 제시했다고 했지만, 임대료 한달치나 될지조차 의심스러운 돈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하자면,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근처 상가에 가게 하나 얻는데 월세만 600만원이 들어간다. 건물에 입주할 때 지불해야 했을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없었다. 이런 불합리한 처분에 세입자들은 반발했고, 카페 마리를 중심으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카페 마리는 홍대 두리반처럼 가게 한 곳이 아닌 명동3구역이라는 철거 지역 전체를 대변하는 공간이었다.

뒤늦게 기사를 검색해보니 최소 6월 중순부터 세입자들과 용역 업체가 대치해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용역 업체가 중장비를 동원한 철거 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본 내용도 아니니까 생략하겠다.

2. 8월 4일 오전 – 역점거

8월 4일 오전 4시 30분, 200여명의 용역들이 마리를 급습하여 점거했다. 법원의 조정 명령을 받은 데다 중구청이 중재자로 나선 상황이었기에 세입자측에서도 방심했었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건설업체에 항의했지만 건설업체 측은 "용역업체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세입자측은 마리 주변 인도 및 차도 일부를 점거하여 포위 상태에 들어갔다. 당시 용역 인원은 약 50명. 상황 자체는 용역들이 농성하고 세입자측이 공성을 준비하는 형태였다. 이후 소소한 갈등 사태가 빚어지며 오후 7시까지의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3. 8월 3일 오후 – 소강 상태

나는 오후 4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그날 아침 광주에서 올라온 D형이 마리에서 만나자고 했고, 나도 D형을 볼 겸 한가하게 나선 참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고, 마리 주변으로 망가진 집기들이 잡다하게 놓여 있었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세입자측이 그 집기들에 기대어 몸을 쉬고 있었다. 도착했을 당시 나는 마리 내부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마리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용역들이었다. 이틀간의 대치는 세입자측과 용역들은 외관만으로는 거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추레하게 바꿔놓았다.

비가 너무 심하게 오자 우산을 사기 위해 근처 상가들을 둘러보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황이었고, 골목 구석의 구멍가게 하나만이 영업 중이었다. 가게가 하나 더 있기는 했다. 마리 바로 앞에 있던 구멍가게. 대개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대체 이런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가게 사장님도 세입자 측을 지지하는 듯 했다. 음료수 냉장고에는 고기(확실치 않음)과 물만이 가득했고, 전기 코드를 세입자 측에 내주어 무료로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었다. 이후 문화제가 열렸을 때 가게 문을 열고 문화제를 들으시기도 했다.

4. 8월 4일 저녁 - 문화제

당초 오후 7시부터 문화제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용역들이 식사를 시작한데다―용역들은 식사 중에는 사소한 충돌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오전의 습격 때 세입자 측의 장비 대부분이 파손당했기 때문에 장비의 보급도 필요했다. 당초 계획보다 40~60분 정도 늦게 시작된 문화제는 연대 발언이 한창 이어지다가 공연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집회 진행 경험이 거의 없어 보이는 학생이 사회자를 맡은 탓에 진행 자체는 상당히 어설펐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획단은 문화제 마지막 행사인 단편선의 공연이 마무리되는 10시 반에 탈환에 나서자는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은 용역의 귀를 피해 면대면으로 알음알음 전달되었다.

5. 8월 4일 저녁 - 탈환 시도

오후 10시 반, 클로징 공연을 마친 단편선의 "들어갑시다."라는 말을 신호로 세입자 측의 탈환 시도가 시작되었다. 선봉의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세입자 측의 건물 내부로 진입하자 용역은 맹렬하게 저항했다. 용역이 테이블을 부러뜨려 만든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려다가 세입자 측에게 제지당하기도 했고 임산부가 용역에게 떠밀려 쓰러지는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몸이 떨렸고, 베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으로 트위터에 중계를 시작했다. 머릿속에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마리 주변에 선 십수명의 사람들 또한 정신없이 핸드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세입자 측은 "용역깡패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용역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50여명의 인원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구호는 정말로 절절했다. 뒤에 빠져 있던 나도 들으며 심장이 떨릴 정도였으니까 안의 용역들은 더욱 무서웠을 것이다. 외부 계단 쪽으로 밀려난 용역 중 한 명은 '용역깡패'라는 수사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다가 "나도 이렇게 좆같이 살기 싫다!"며 울부짖기도 했다. 다른 용역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만류했으나 소용없었다.

6. 8월 5일 정오 - 경찰 투입

수십 차례의 신고 끝에 처음 출동한 경찰 병력은 정복 입은 경관 두 명. 그러나 상황이 용역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감에 따라 경찰 병력은 60여명으로 증원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대치 상황 내내 근처 길가에 2열 종대로 서서 대기 중이었다. 용역들이 내부 화장실까지 밀려 세입자 측이 거의 탈환하기 직전까지 도달했을 때 한 용역이 세입자 측을 향해 소화기를 분무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행동에 나선 경찰은 마리 입구의 세입자 측을 몰아내고 입구를 점거했다. 이로서 전선은 건물 내외로 갈렸다. 건물 내부에는 세입자 측 상당수와 화장실에 내몰린 용역 10여명이, 건물 외부에는 역시 세입자 측 상당수와 소수의 용역이 대치했다.

경찰은 입구 점거 이후 어떠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소속 및 직책을 밝히라는 세입자 측의 요구에도 불응했다. 원래 경찰은 시민이 소속과 직책을 물을 시 이를 분명히 밝혀야 하며, 경찰 복무 규정에 따르면 경찰이 이에 불응할 시 시민 역시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 어쨌거나 경찰이 투입된 상황에서 더 이상의 폭력 사태는 이어지지 않았고, 서로 말만 주고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건물 외부의 세입자 측은 경찰 앞에 앉아서 제2의 문화제를 열기 시작했다. 전학련 소속 한 학생이 자발적으로 사회자로 나서 발언하기 시작하자 외부의 용역들이 폭언을 쏟으며 훼방을 시도했지만 건물 안의 세입자 측도 구호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고, 차량의 앰프를 동원해 민가를 방송하기 시작하자 용역의 훼방은 상당 부분 무력화되었다.

건물에 진입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세입자 측과 용역은 화장실문을 경계선으로 대치했다. 지친 용역들은 더 이상의 물리적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대신 말로 전의를 북돋으려 했다. 여성 비하적 발언을 비롯한 여러 개드립이 쏟아졌고, "쟤들은 왜 돈도 안받고 이 짓을 할까?" 하는 물음에 다른 용역이 "학교에서 봉사 시간을 주는 모양이다."라는 나름의 해답(?)을 내놓기도 했다.

용역들이 들어간 화장실은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기가 매우 습하고 덥고 탁했다. 그 상황에서 담배까지 피워댔으니 용역들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을 것이다. 거기서 만난 어떤 이는 "(용역들이 점거하기 전에) 화장실도 아니고 그냥 내부에 다섯시간 있었던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지경이었는데 쟤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이 용역들이 점거하는 동안 변기까지 막혔기 때문에 용변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용역 입장에서 외부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게 용변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가 경찰이 "그릇에 싸서 내보내라"는 해답(?)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나와 주변 사람들은 화장실에 반입되는 물에 설사약을 타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며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7. 8월 5일 새벽 - 후퇴

새벽 두시쯤 체력 고갈로 견디지 못한 나와 D형은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대민이 형이 있는 일산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택시가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왜 그런가 했는데, 대민이 형과 밖에서 삼겹살을 먹고 난 다음 대민이 형 집에 들어갔을 때 의문이 풀렸다.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자 D형의 옷에서 엄청난 악취가 났던 것이다. 그는 최전선에서 용역들과 몸을 부딪혔고 내부 농성에도 참여했으므로 나와 달리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택시 기사가 엄청 괴로웠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이틀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수십명이 있었던 용역들은 더욱 괴롭지 않았을까 하면서.

몸을 씻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내내 D형은 계속해서 트위터를 주시했다. 우리가 빠져나온지 두세시간이 지났을 무렵 용역들이 재점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날이 밝은 후 중구청의 잠정적 공사 중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1층은 세입자측이 자유롭게 사용하기로 건설업체와 합의봤다는 소식이 들어왔지만, 그 때의 D형은 몹시 우울해했다. 그는 내게 "서울에 대학이 대체 몇 개인데 (대학도 몇 개 없는) 광주에서 무슨 일 났을 때 동원되는 인원과 별 차이도 없느냐"라고 물었다. 할 말이 없었으므로 97년 연대 사태 이후 서울 지역 학생 운동권도 많이 사그라들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꺼낼 수 없었다.

8. 8월 5일 정오 - 후일담

날이 밝은 후 우리는 포털 사이트들에 들어갔다. 네이버는 확인조차 안했고, 다음과 네이트에 떴는지만 봤다. 몇 개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지만 인원수나 사실 관계가 잘못된 내용이 몇 가지 눈에 띄었고, 댓글들도 씁쓸한 내용이 많았다. 나를 탄식케 했던 내용은 마리 문제에 삐딱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리 문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댓글이었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십분의 일이라도 마리에 달려와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직접 투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서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일기 >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4일 카페 마리 참관기  (0) 2011/08/06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333 관련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