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거장과 마르가리타』팬질을 했으니 내친김에 내 전문 영역이 아닌 데까지 한번 나가보자.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영미권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소재로 한 곡들이 생각보다 많다. 본국인 러시아에서는 이런 곡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일단은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곡들을 이야기해보...려고 몇 곡 유튜브에서 검색해봤는데 마음에 드는 곡이 많지 않다. 싹 다 지우고 한 곡만 남겨놓는다.

프란츠 페르디난드 - Love And Destroy(2004)




스코틀랜드 밴드인 프란츠 페르디난드의 Love And Destroy(2004). 마녀로 분한 마르가리타가 모스크바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을 따온 노래이다. 그 흥겨운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드는 곡.

프란츠 페르디난드 - Love ANd Destroy (가사)


요건 라이브 버전...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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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호테님의 블로그(라 만차의 성채)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기에 이자리에 인용해 소개한다. 故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와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영화 이해에 대해 나눈 대화를 녹취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영화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작품 감상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인만큼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글이리라.

원문이 지나치게 길어 글을 그대로 복사해올 수는 없고, 정은임 씨의 요약을 토대로 약간의 주석(?)만 덧붙이고자 한다. 바쁜 독자에게는 차라리 그게 더 나은 선택이 되리라.

(원문은 다음 링크 참조. 사실 원문 자체도 상당히 근사한 지라 원문을 읽을 것도 권하고 싶다 :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열가지 방법 / 정성일)

1. 영화는 두번째로 볼 때부터 재밌어진다.
→ 책은 거듭해서 읽으라.

이 말을 하면서 정성일 씨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영화광의 단계는 3단계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한 영화 두 번 보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 쓰기, 세 번째 단계는 영화 찍기, 이것이 최고의 단계라고 합니다"라는 것인데, 함께 음미해볼만한 부분이다.

2. 자막을 끝까지 읽기.
→ 저자, 제목 외에 출판사도 면밀히 살피라.

자막을 끝까지 보다 보면 출연 배우 말고도 참여 스텝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것 역시 영화를 풀어내기 위한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장르나 감독, 주연 배우진으로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곤 하던 것을 스텝 분야까지 확장해보라는 제안일 뿐이니까.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것을 흉내낼 수 있다. 특히 전공 서적이나 외국 문학 분야에서 그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번역자의 경력이나 출판사의 성향 등에 대해 익혀두면 책을 선택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비주류 학자가 쓴 개론서를 선택하거나 오역이 많은 판본을 고르는 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한 감독의 뒷 영화를 보고 앞 영화를 다시 생각하기.
→ 같은 저자가 쓴 유사한 주제의 책을 검토하라.

한 작품의 가치를 짐작하기가 어려울 때 권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령 영화(책)를 보면서'정말 이걸 감독(작가)이 의도했을까?'라고 의심했던 주제가 후속작에서 반복된다면, 그 작품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으리라.

4.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기.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관점'과 '기법'이 무엇인지 분석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 역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문학 뿐만 아니라 학술 서적 독서에도 대입해볼 수 있는 이야기.

5. 영화에 숨어 있는 감독의 뜻을 집어내기. (영화는 영화 이상으로 존경하라)

관객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예술의 하나로서 대하지 못하고 그저 대중영화 - 곧 '킬링타임용' 매체 - 로만 여기는 편견을 지적한 말이다. "에이, 설마 영화감독들이 거기까지 생각했을라고......" 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반대의 조언도 가능하다. (이 조언은 9번에서 나온다) 원작자의 의도를 우상시하는 것 역시 원작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못지 않게관객(독자)의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구와 짝을 맞추자면 "이런 해석은 원작자가 의도한 것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인데, 결국 원작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해석을 막기 때문에 별로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순 없다. 원작자는 A를 의도했다고 해도 독자가 A'라는 메시지를 얻었다면, 그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창조적 오독'이라는, 다소 불성실해보이는 말도 그래서 근거를 얻을 수 있다)

6. 명장면을 쇼트 바이 쇼트 하기.
→ 중요한 부분을 장면 단위로 끊어서 분석하기

4번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는 발언. 4번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를 파악할 것을 주문한다면, 6번의 조언은 특정 장면에 세세히 파고 들 것을 권하고 있다.

7. 번역은 믿지 말 것.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말. 오역이나 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번역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내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문학의 경우는 물론이고 학술 서적도 그런 경우가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특히 원작이 그 유려한 문장을 높이 평가 받은 바 있는 작품의 경우 번역을 통해 그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버트란드 러셀이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작가가 그렇다.

8.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번 볼 것.

1번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조언. 사실상 중복되는 조언에 가깝다. '자신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숙했나를 발견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특히 문학 작품의 경우는 독자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감상이 좌우되기 때문에, 가장 귀담아들을만한 조언이라 하겠다.

9. 평론은 참고서라고 생각할 것.

설령 그 어떤 권위자에 의한 평론이라 해도, 결국은 그 평론가의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지 작품 해석에 대한 절대적 지침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10. 영화는 그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관객여러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입니다.

9번과 연결지을 수 있는 말. 흔히 관객(독자)는 자신의 감상을 평론가나 원작자의 그것에 비해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며, 작품의 해석자로서 자신감을 가지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만큼은 정성일 본인의 말을 인용하는게 나으리라.

감독이 여러 가지 의미를 숨겨 놓고 복잡한 문화 현상을 다루며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함축성을 영화에 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관객이 못 읽어 낼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관객의 잘못이 아니라 감독의 잘못입니다. 채플린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가난한 자들의 꿈을 담고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화평론가들은 아주 복잡하게 딥 포커스의 공간과 미디엄 쇼트의 영화적인 화면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격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 필요없이 그저 어떤 영화 관객들도 그것이 그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어떤 용어로 표현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누구나 느끼곤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그 그 자체로 역사를 지니게 되고 역사를 통해 누적됨으로써 일정한 지식 없이는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론가는 바로 그것을 읽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읽기를 통해 더 다양하고 더 풍부하고 더 건전한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영화 감독들이 관객들에게 진정 바라는 일일 겁니다.


정성일           정은임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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