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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학(神學)은 교양일 수 있을까?
경제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반드시 그 학문의 전공자가 될 필요는 없다. 철학이나 정치학을 '교양 삼아' 공부한다고 해서 말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다만 그것을 왜 배우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뿐이다. 말하자면 신학이나 종교학이 아닌 여러 세속 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비전공자로서 해당 학문을 공부하는 행위에 대한 반발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하나의 '교양'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학문들, 특히 신학에 대해서는 이러한 관대한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나 비신앙인으로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장애물과 마주해야 한다.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예상했던 바와 맞지 않는 부분도 비신앙인을 곤혹스럽게 하지만 이는 어느 학문에서건 비전공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면하기 마련인 문제라고 이해할 수나 있다. 무엇보다도 그 비신앙인을 괴롭히는 부분은 '믿지도 않으면서 그걸 배워 뭐에 써먹겠느냐'는 냉소어린 시각이다. 세속 학문식으로 말하자면 '전공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전공 근본주의'를 전공자(신앙인)도 아닌 비전공자들이 부리는 셈이다.
나는 신에 대한 영역이 비단 해당 신앙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 어떤 문제이든지간에 이 땅의 인간과 무관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앙과 신학,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신에 대한 물음이 듣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세계, 신에 대한 관계이다. 신앙은 인간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투철한 신앙인일수록 자기 신앙에 근거하여 세상의 모든 일을 해석하고, 신앙을 자기 행동의 근거로 삼기 마련이다. 함석헌이나 장준하의 예가 그것이다.
탁월한 사회 운동가이자 한 종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그들의 세계관에서 기독교 신앙과 사회 운동에 대한 신념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 신자로서 사회 운동에 헌신했고, 운동에 대한 근거를 신에 대한 믿음에서 찾았다. '주께서 나의 정의로움을 보증하신다'. 사회운동가이자 신앙인이었던 그들에게 그만큼이나 큰 격려가 있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기독교의 신은 그 두 사람에게 비신앙인들은 갖지 못하는, 사회 운동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동기를 선사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분명 기독교 신앙인 전체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칸트의 발언을 생각해라. 그는 신앙이 인간으로 하여금 보편 윤리를 실천하고 나아가 보편 윤리 자체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또한 유효하다고 이야기했었다.
신앙이 세계관을 구성한다면 거기에서 비롯된 신학과 종교는 보다 현실적인 영역에서 신앙인과 사회를 연결시킨다. 종교는 그러한 신앙인들이 모인 사회 공동체로서 하나의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고, 신학은 신의 섭리가 지상과 관계맺는 방식을 학문의 형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준다. 신앙인들이 비신앙인들과는 고립된 세계에서 살지 않았듯이 비신앙인들 또한 신앙인들에게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한국 기독교사와 근현대
나는 종교를 신화나 의례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엘리아데의 종교학 이론에 단 한 번도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보다는 마르크스나 트뢸치가 종교현상의 본질을 훨씬 깊게 통찰했다고 믿는다. 종교의 진면목은 신화나 의례, 혹은 상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정치-경제-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관찰하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순결하게 고유한 종교의 영역이 있다고 믿지 않게 되었다. (책을 내면서, 5p)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는 한 종교의 역사를 세속적인 관점에서 증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이 책은 '기독교사'를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부터가 기독교 대신 '한국 근현대사'를 앞세우는 점을 상기해보라. 그것은 종교를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탈락시키지 않으려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저자의 글이 완벽하진 않다. 종교의 사회 공동체적 성격과 그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려다 보니 군데 군데 빈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기독교'를 이야기하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 지면은 거의 개신교, 그 중에서도 특정 종파의 내용에 치중된 점도 눈에 걸린다. 그러나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비추고자 한 원칙 자체는 책 내용 전체를 일관한다. 그 의의를 무시하기란 어렵다.
딴에는 신앙인 내부에서 기독교사를 이 정도나마 세속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복된 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도 어느 노 학자가 전후 남한 지역에 개신교가 빠르게 자리잡은 상황에 대하여 "기독교가 풍류도 등 한국 고유의 전통 사상과 합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따위의 황당한 분석을 내놓았던 사정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텍스트에서는 가장 비세속적이고 가장 신앙적인 상황조차도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개신교는 구한말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서구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가치 체계로 이해되었고, 근대적 가치관에 대한 조선인들의 이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900년대 초 선교사들이 발행했던 신문에서 상당한 지면을 종교적 내용이 아닌 '계몽'에 할애하였다는 점은 당대 개신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
1900년대에 평양에서 수행되었던 '대부흥운동'는 종교적 목적과 세속적 이해가 결합된 흥미로운 사례로서 제시된다. 수많은 비신자가 개종을 하고 많은 수의 신자들이 성령을 체험하는 등의 현상이 일어났던 이 자리만큼이나 종교적인 자리는 드물다. 그러나 조선인 참가자들은 영미권에서 일어났던 부흥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독교에서 죄란 신 또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맺어진 법이나 계약을 어기고, 그 결과로 신이나 인간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부흥운동 기간에 한국인 개종자들이 보였던 회개는 거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거나 개인의 행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3장 20세기 초 한국 교회부흥현상에 관한 재검토, 120~121p)
죄의 개념에 대하여 당시 대중은 다분히 세속적인 이해를 보여주지만, 그리 놀랄 아니다. 대중이 기독교를 접하기 전에 몸에 베였을 유학적 세계관은 본래 대단히 현세지향적이며 공동체지향적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죄라는 개념이 전하는 신을 통한 개인적 차원의 구원이라는 테마는 당시 대중에게 상당히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세계관의 보급은 종래의 유교에서 죄로 규정하지 않았던 항목들을 죄로 볼 수 있게 하였고, 이것이 '대부흥회'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셈이다.
대부흥회라는 행사가 선교사들을 비롯한 교인들의 철저한 계획하에 기획되었고, 그 기독교 세계관의 보급 또한 대부흥회같은 거대한 종교 체험이 아니라 거기에 자극받은 한국 교인들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분석 또한 주목해볼만 하다. 신의 역사함은 이렇게 인간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초기에는 사회운동의 수단으로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수용사는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상황이 갈리고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반목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 특히 1906년과 192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 기독교가 급격히 계몽적 색채를 잃으면서부터이다. 이후 사회주의가 기존에 한국 기독교에 의해 수행되었던 계몽을 수행하게 되면서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종교 비판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기독교 내부에서 다양한 반향이 이어지면서 기독교 진영은 다양한 정치적 색채를 가진 집단으로 구분된다.
초기 북한 정권과 기독교 목사들과의 유착 관계는 한국 기독교와 한국 사회주의의 관계를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로서 유념해볼만 하다. 김일성 자신이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본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단에서 자랐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초기 북한 정권의 종교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건국 당시에는 북한 정권에 여러 기독교(주로 감리교 계열) 목사들이 참여하였고, 이어진 반종교 정책도 러시아나 중국의 사례에 비하면 '비교적' 온건했다. 북한의 종교 정책은 '신앙은 인정하나 (국가에 반하는) 종교는 금지한다'로 요약된다. 신앙 자체는 인정하나 신앙인들의 반국가행위는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기독교와의 유착 관계를 정리하고 '주체사상'의 길을 걷지만, 이 주체사상 또한 기독교 교리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음이 지적된다.
북한 정권을 적그리스도로서 규정하는 보수 기독교의 선언에만 매몰된다면 김일성 정권의 성격에 대해 명확하게 짚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보수 기독교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신학적 판단만이 아닌 세속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서도 찾아야 한다. 기독교 좌파, 기독교 우파, 그 안에서도 나뉘는 복음주의 좌파와 복음주의 우파 등의 구분은 신학에 대한 이해 이전에 세속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 진영은 그 가치관에 따라 신학을 서로 다른 방식에서 이해하는 집단의 집합에 가깝다. 기독교 진영은 기독교 좌파라 칭할만한 기독교 사회주의자부터 극우적 근본주의자까지 다양한 입장을 보인다. 심지어 '복음주의'조차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복음주의는 다양한 비종교적 요소와 결합하여 복음주의적 여성주의, 복음주의 좌파 등 다양한 진영을 형성해낸다. 성경이라는 권위에 의존하기는 매한가지면서도 그 적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 타당한 분석이 아니다.
이러한 분화 현상은 성경이라는 권위 자체가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다양한 견해의 집합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성경의 독자들이 성경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학적 해석의 차이보다는 성경 읽기를 유도했던 당대 상황에 대한 고민들이 그러한 다양한 성경 읽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3. 신앙인의 세계와 비신앙인의 세계는 다르지 않다.
맹자는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듣는다."고 하였다. 요 임금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순에게 양위했다는 고사에 대해 한 말이다. 『맹자』「만장장구」에 그 기록이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모든 사람들이 양위를 환영하며 순 임금을 따랐다고 하는데, 맹자는 당대의 통념이었던 장자 승계와 대치되는 이 고사를 '하늘이 시킨 것'이었다며 지지한다. 물론 맹자에게 하늘은 곧 백성과 동의어가 된다.
유일신 신앙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이었던 유학자들의 하늘(天) 관념은 물론 기독교의 유일신 세계관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백성의 뜻을 '하늘'의 뜻과 동일시했던 세계관 자체는 대단한 시사점을 준다. 섭리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이해할 때 비로소 종교적 세계관과 비종교적 세계관이 하나가 된다.
신앙이 사회 공동체나 사회 담론에서 일정 영역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상, 비신앙인 또한 신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비신앙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단지 신앙인들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뿐이다. 그것은 우리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우리 자신에게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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