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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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다치바나 다카시 (예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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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독서량과 도서 전용 건물인 고양이 빌딩의 주인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입니다. 『도쿄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로 유명세를 얻었고, 이외에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뇌를 단련하다』 등이 한국에서도 제법 인기를 얻었죠. 2010년에 와서까지 책이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나름 인기 저자라 하겠는데... 최근에 와서는 다소 인기가 떨어진 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 『知의 정원』이 그 인기 감소의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이전에 몇 권 보셨던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을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과거에 다른 책에서도 보여왔던 패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즉 문학에 대한 폄훼와 논픽션의 가치 옹호, 저자의 광범위한 독서를 통한 잡다한 지식의 나열이죠. 이 책에서는 거기에 공동 대담자인 사토 마사루의 추임새가 들어갔다는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저술이 현대의,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치바나 다카시의 문학관 자체가 썩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죠. 다치바나 다카시의 문학관이란 이런 겁니다. '픽션임을 전제하고서 보는 문학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들이 더 '재미'있으며 남을게 많다. 굳이 문학을 읽는다면 해당 사회의 교양이면서 그 사회의 정신 문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고전들을 읽어야 한다.' 즉 다분히 실용적인 문학관을 가진 사람인 겁니다.

그러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문학관은 다분히 피상적이라고 할 수 있죠. 문학을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 위주에 가깝게 보는 면이 있고, 픽션과 논픽션의 전달 방식 차이도 무시해버리죠. 지나치게 실용주의적이기도 하고요. 물론 지금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대로 논픽션이 더 유리할 겁니다. 논픽션에서는 확실한 데이터로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니까요. 그렇지만 문학은 데이터만으로는 담지 못하는 영역을 전달해냅니다.

왕년에 사르트르와 리카르두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가 좋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소설을 두고 "굶주린 아이들 앞에서 내 「구토」는 한 조각의 빵의 무게도 나가지 못한다."라고 개탄한 바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리카르두는 "문학은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배고픈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추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화답하죠. 문학이 현실 그 자체를 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통계 수치로는 알 수 없는 삶의 국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문학관이 과연 문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에 기반하느냐 하는 겁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자신의 말에 따르면 대학 시절까지는 문학만을 탐독하였는데, 직장 선배의 충고에 따라 논픽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해하는 문학 자체는 거개가 젊은 시절에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사람의 독서는 책을 후다닥 읽어 해치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생산적인' 독서는 논픽션에서야 유용하지만 문학에서까지 그렇지는 않죠. 같은 책이라도 처음 읽을 때와 두번째 읽을 때가 다릅니다. 그런데 독서량 및 장서량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어온 다치바나 다카시가 심도 있는 독서를 했으리라 보기는 어렵죠.

특히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고전 문학에 대해 늘어놓는 "썰"들을 보면 그게 더 확연해집니다. 앞서 말했듯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나마 고전 문학의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인데 - 물론 이 사람이 생각하는 '고전'의 범위는 일반 독자들의 그것에 비해 좀 더 까다롭습니다만 - 그게 다분히 실용주의적이면서도 얄팍한 편입니다. 때론 정말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발견되고요. 대담자인 사토 마사루 또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관점에 거의 동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 제 옆에 이 책이 없어 상세한 사례를 들 수 없는게 아쉽습니다만.

더욱이 이 책에서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들은 문학이 아닌 논픽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일본 근현대사와 관계된 내용입니다. 그나마 한국 사회와는 썩 관계가 없어보이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일본 독자들에게라면 모를까 한국 독자들에게는 크게 의미를 갖기 어렵죠. 게다가 그 구성도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을 마구잡이로 풀어내는 형태라 엄밀하다고도, 세련되었다고도 보기 어렵지요. 요컨대 분명 대중서인데도 특정 전공자들을 제외한 한국인 독자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왕에 했던 잡설들을 한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문학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책덕후 두 사람의 자기 지식 늘어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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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임종업 (청림출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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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쟁이'가 무엇인지 개념 정리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취재에 들어간 티가 역력한 책. 대체 이 책에서 소개하려 하는 '책쟁이'란 누구인가. 많은 책을 사들인 장서가인가, 많이 읽는 사람인가, 아니면 읽은 걸 토대로 어떠한 성과를 내놓는 사람인가? 이렇게 잡스럽게 소개할거면 하다못해 카테고리별로 정리라도 해주던가. 

인터뷰어들의 성향도 제각각이거니와 인터뷰 방식도 중구난방이다. 어떤 때는 장서량의 규모에 대해 설명했다가, 인터뷰어가 관심 두는 장르에 대해 떠들어댄 '강의'를 채록했다가, (오멜라스의 박상준 편집장 챕터에서는 무슨 SF 입문서 보는 줄 알았다) 때로는 인터뷰어들이 벌이는 책 관련 사업 홍보도 해줬다가... 가히 총체적 난국이다.

당초부터도 책 좀 많이 본다는 사람들의 가십거리라도 줏어들을까 생각하기나 했지 큰 기대는 안했지만서도 완전히 실망스럽다. 굳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필요도 없는 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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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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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달님이 추천해주셨던 작법서. 대부분의 외산 작법서들이 그러하듯 제목이 영 마음에 안들어서 몇 개월만에야 겨우 집어든 책이었다. 정작 사들고 나서도 시큰둥해하며 집어들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서론이야 어쨌건 본심은 '닥치고 써라'를 강조하는 재미없는 책이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결론이야 그랬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제법 감동적이었다.

요컨대 이 책에서 주문하는 제1사항은, 글을 쓰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스스로에게 더 솔직할 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는게 이 책의 요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에는 작법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종교 서적이나 자기계발서에 어울릴 법한 구절이 많다.

『글쓰기 만보』처럼 테크닉에 대한 부분만 꽉꽉 채운 책도 쓸만하지만, 이런 책도 제법 재밌다.

아래는 추석 연휴 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다시 읽다가 체크해두었던 구절들. 하나 하나 읽을 필요는 없고, 마음 가는 제목만 클릭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첫 마음, 종이와 연필

멈추지 말고 써라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삶을 사랑하라

왜 글을 쓰는가

음식에 대해 써 보라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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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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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황소자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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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이 책은 류비셰프라는 러시아 학자의 평전인가, 아니면 류비셰프의 독특한 시간 관리법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서인가? 적어도 출판사에서 의도한 건 후자 쪽이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정작 내용물은 전자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책의 상당 부분을 류비셰프라는 학자가 누구인지 설명하는데 소모한다는 점에서. 아마 이 책의 독자들이 가장 관심 가질 법한 시간 관리법에 대해서는 책의 중반쯤 가서야 언급되기 시작한다.

류비셰프가 한국에는 저서는 커녕 작은 글꼭지 하나 번역되어 들어온 바 없는 - 속된 말로 '듣보잡'인 - 학자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런 구성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1차 독자들이었을 러시아인들에게는 썩 좋은 평가를 듣진 못했을 듯 하다. 뻔히 다 아는 사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어디 흔한가.

류비셰프가 이 책에서 설명되는 대로 구소련 시절 엄청난 명성을 누렸던 학자라면. 학자로서의 류비셰프를 서술하는 부분도 상당히 과장이 섞인 어투로 설명하는 걸 보면 실제로는 류비셰프가 별 대접을 못 받는 학자이거나 작가가 전기 작가로서 좀 모자란 인물이거나 한게 아닐까 싶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출판사 측의 설명이 좀 미심쩍을 정도로.

문제의 시간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정리하면서 5분 단위로까지 세밀하게 측정하곤 했다는 그 정성이 감탄스럽긴 하나 거기서 끝이다. 그저 무엇을 어느 정도 했다는 식의 짤막한 기록만 나열된 노트에서 뭔가 깨닫기에는 영... 그의 시간관리법이 탁월하다기보다는 애초부터 류비셰프라는 학자가 집중력이나 끈기 따위를 타고 났다는 느낌이다. 이 책을 보고 어느 정도 자극을 받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대로 따라하기는 - 그리고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는 - 좀 어렵겠지 싶다.

P.S.
그러고보면 2004년에 반양장으로 출시된, 215쪽 분량의 책 가격을 12,000원이나 매겼다는 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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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패디먼 (지호,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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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에 읽었던 『독서의 역사』와 여러모로 비교할만한 책이다. 공통점은, 두 책 모두 '책덕후', 그러니까 골수 독서가들을 타겟으로 삼은 책들이라는 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식과 정서들이 우글거리는 책들이다.

다만 두 저자가 독자를 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굳이 비유한다면 거시사와 미시사, 혹은 정사와 야사의 차이랄까. 『독서의 역사』가 독서가들이 재밌어할 사실들을 소개한다면 『서재 결혼 시키기』들은 골수 독서가들이 공감할만한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전자가 역사상 유명한 책도둑에 대해 쓸 때, 후자는 책을 곱게 다루는 사람과 험하게 다루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쓰는 식이다.

물론 두 책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가를 따지는 건 미련한 일이다. 집필 의도도 그렇고 용도도 그렇고 서로 완전히 다르니까. 여유가 된다면,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권 다 사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2.

이런 책이 인터넷 서점의 반값 이벤트로 나왔다는 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렸다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허나 이 나라에 독서광의 정서에 공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생각해보면... 알라딘에 가보니 서평들이 제법 많긴 하더라만.

3.

뭐 여하간. 읽을만한 책이었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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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강성민의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에 언급된 걸 보고 찾아 읽은 책이었습니다. 사실 그 책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을 한번 일부러 찾아본 것인데, 나중에 사놓고 읽어보니 외려 이 책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실려 있는 기사 중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시간강사로 살아가기」를 가장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무려 2004년 5월에 나온 '학술지'니까 따지고 보면 퍽 낡은 글이어야 할 텐데 슬프게도 그렇지는 못하더군요.) 흥미롭게도 독일과 미국의 시간 강사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었는데... 뜻밖에도 외국 대학이라 해서 처지가 한국에 비해 썩 나은 것도 아니더군요. 물론 급여라던가 강사의 지위·대우 같은 기본적인 면에서 본다면 외국의 대학이 한국 대학에 비해 훨씬 낫기야 합니다.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잘 갖춰져 있으니까요. (특히 독일) 그러나 해외 대학의 강사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알게 되더랍니다.

독일의 경우 박사학위를 딴 뒤로도 '교수자격심사'를 한 번 더 걸쳐하는 까닭에 교수 자격을 얻는 것 자체를 얻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고 합니다. 게다가 학부 강의의 80% 정도를 강사들이 도맡아 하고 있음에도 고학력 인력이 워낙 많은 탓에 강사들이 별 대접을 못받는다 합니다. 한국에서는 학부 강의의 45% 정도를 강사들이 맡는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그 혹독함을 대략 짐작해볼만 하죠. 그 경쟁률 속에서 어찌어찌 교수로 임용되게 되면 나이가 대략 43세가 됩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학부 때부터 감안하면 거의 20년 가까이 공부해야 간신히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독일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 천재들은 30세 즈음에도 교수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천재'들의 경우고, 거기에 덧붙여 지금처럼 교수 임용 경쟁이 치열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가령 교수로 임용될 즈음해서 자신이 따르던 교수가 죽기라도 하면 그대로 대학을 떠나야 한다고 하죠. 후임으로 들어온 교수는 물론 자기 사람들만 챙기기 마련이니까, 억지로 대학에 남는다 해도 큰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고 나니 글 중에 교수 임용을 로또에 비유하는 것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겠다 싶더군요. 한편으로는 왜 그 많은 해외유학파 박사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귀국해서 한국 대학에서 근무하려 하는 이유가 대략 이해가기도...

그런가 하면 미국의 사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을 주더군요. 보통 한국 대학에서 20시간 어치의 임금을 받는다고 하면 대개 20시간의 강의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잖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대학에서는 4시간만 강의할 뿐입니다. 그럼 무슨 명목으로 16시간 분량의 강의료를 받느냐? 강의할 때 외에 연구실에서 하는 업무 같은 것도 강사의 업무로 인정을 해주는 것이죠. 거기다 비정규직 신분이기 때문에 썩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의 돈은 주더랍니다. (한국 대학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미국 대학에서는 박사 과정 학생이 학부 강의를 맡으면 등록금을 면제해준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죠.) 

한국 대학 강사와 미국 대학 강사의 처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도 하나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면서 고된 노동을 한다"고 투덜대던 미국 친구가 갑자기 "아, 그러고보니까 생각났는데, 한국에서는 대학강사 임금이 아주 낮아서 강사료만으로는 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얘길 유학생에게 들은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덩달아 나까지 불쌍하게 쳐다보며 연민을 표현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표정관리하기 곤란해진다.

글을 읽는 저까지도 표정관리하기가 곤란할 지경이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왜 휴학 전에 사석에서 만나던 강사님이 (제 전공이 한문 고적을 파야하는 것임에도) 거듭 미국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얼추 짐작을 하겠더군요. 썩 유쾌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요.

하여간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산 '최신간'이 대략 2004년 5월에 나온 것을 보면 『모색 6호』를 보기란 어렵겠죠...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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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입
    300페이지도 넘는 분량에 색깔도 세가지나 쓰면서 정가를 3,500원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지난주에도 비슷한 크기의 (텍스트는 외려 더 적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9,800원에 샀던 전력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터미널의 서점에서 이 책을 집은 것도 실은 내용보다는 '그 가격으로 어떤 책을 낼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사실 책 편집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 어찌보면 책 가격에 낚인(?) 셈이다.
      
  2. 가격
    3,500원이라는 가격에 별다른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출판사 측에서 이 책으로 돈을 벌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거기에 인쇄소와 타 출판사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한다.) 즉, 출판계의 공익(公益)을 위해 업계에서 적자를 부담해가며 책을 펴낸 것이다. 굳이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묘한 감동을 주는 일임은 분명하다.
     
  3. 목차
    1. 제1부 한글 맞춤법
      제1장 총칙
      제2장 자모
      제3장 소리에 관한 것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5장 띄어쓰기
      제6장 그 밖의 것
      제7장 문장 부호
    2. 제2부 표준어 규정
      제1장 총칙
      제2장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제3장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3. 제3부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2장 표기 일람표
      제3장 표기 세칙
      제4장 인명, 지명의 표기 원칙
      제5장 기타 언어의 표기
    4. 제4부 열린책들 편집 및 조판 원칙
      제1장 열린책들 편집 원칙
      제2장 열린책들 조판 원칙
    5. 제5부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제1장 책에 대하여
      제2장 책 만들기
    6. 부록 1
      간기면 구성
      저작권 계약
      ISBN 부여 방법
      편집 체크 리스트
      편집 기초 지식 테스트
    7. 부록 2
      간행물 납본
      각종 추천 도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개정법)
       
  4. 편집
    이 책을 소개하는 몇몇 블로그를 가보니(우연인지, 모두가 번역자였다) 대체로 호평이었다. 원래는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하는 여러 규정들을 한곳에 - 그것도 제법 깔끔하게 - 묶어놨다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고 있었다. 하기사, 3부「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고 있는 언어만 해도 23종에 달하니 그 친절함에 감사할 법 하다.[각주:1] 4~5부에서 열린책들의 편집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도 초보 편집자라면 고마워할 대목이다. 특히 인쇄 용어를 언급할 때 혼 가케, 돈 뎅 같은 업계 은어를 함께 언급해주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혼 가케는 따로 터잡기sheetwise, 돈 뎅은 같이 터잡기half sheet을 의미한다고 한다)
  5. 논쟁
    사실 이 책은 편집 일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다. 그중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도 읽힐만한 부분이 3부의 「외래어 표기법」이다. 이 장에서 열린책들은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의 오랜 논란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외국의 고유명사를 어떤 발음으로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1988년에 문교부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고시한 후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의 미국식 표기를 지지하는 이들과 해당 국가의 원음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쟁이 20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열린책들에서는 3부의 도입부에 외래어 표기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놓고 있다. (아마 그 짧은 꼭지들이, 나같은 일반 독자들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읽힐 만한 부분일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린책들은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지지하는 쪽이라고 한다. 러시아문학에서는 '도스예프스'나 ' 등 원음에 가까운 표기를 선호해왔던 출판사로서는 의외스러운 일이다. 열린책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길긴 하지만 원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강조 표시는 인용자의 것이다.

    (전략) 이러한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된다. 이미 이 표기법은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푸틴>을 <뿌찐>이라고 굳이 표기하는 데에 관념적인 만족감 외에 어떤 이점이 있다고 생각되지 앟는다.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반대하는 입장은 논리적으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이 발음 기호 [k, p, t]에 <ㅋ, ㅌ, ㅍ>를 대응시키는 간편한 방법을 따르고 있다. 원칙적으로 발음 기호만 주어진다면 그 이상은 알 필요 없다. 그러나 된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여기에 해당 언어의 <국적>을 파악해서 발음 정보를 변형시키는 2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발음 기호 [k]가 영어, 독일어라면 <ㅋ>, 프랑스어, 혹은 스페인어라면 <ㄲ>를 대응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에서 [k]가 언제나 <ㅋ>보다 <ㄲ>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고 간단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국적에 따른 된소리 표기를 고집할 경우, 몇 가지 정황에 비추어 한두 개의 언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어의 파열음을 된소리로 적어야 한다(남구 국가 전부, 동구 국가 전부, 스칸디나비아 일부). 그렇다면 영어와 독일어 정도만 남는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쁠라똔, 쏘끄라때스, 까이싸르>라고 해야 한다. 
    셋째, 관념적으로 <격음 언어>에 속할 것 같은 영어나 스웨덴어에도 경음 발음이 존재한다(영어에서 <s> 뒤에 오는 파열음, 영어의 유성 자음, 스웨덴어의 <t, ck> 발음). 그러나 이 발음들이 <경음주의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넷째,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의 수도 Tirana가 <티라나>인지 <띠라나>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일단 티라나라고 쓰고 알바니아어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면 띠라나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인가. (중략)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된소리를 한글로 적어 보려는 것과 같은 표기법은 <쏘끄라떼스>, <쁠라똔>에 오면서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고 본다. 기원전 4세기 아티카 방언의 된소리 여부를 누가 판정할 것인가. 이미 <원음주의>라고 보기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는 <국적주의>를 이렇게 전(全) 역사 시대로 확장 적용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로 얻어지는 실익은 무엇인지 의문이다. (후략)


    비단 업계 관련 인사가 아니더라도 번역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글꼭지를 하나 더 소개한다. 알라딘의 로쟈님이 쓴 「라스콜리니코프의 표기에 대하여」다.
     
  6. 덧글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총 방문자 수가 아직 네 자릿수였는데, 올리고 보니 그 사이에 다섯 자리로 성큼 올라섰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라 따로 포스팅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 번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스팸 머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은(는) 훼이크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햇수로 3년간 운영했던 미니홈피의 총 방문자 수도 아직 네 자리 수인데 블로그로는 3개월만에 10,000을 넘고 보니 그냥 멍해지는군요. 스팸머신에 의한 조회수가 9,000쯤 된다 하더라도 다른 1,000분은 정말로 이 블로그를 클릭해서 들어와주신 분들이라는 이야기겠지요. 소심한 블로거에게는 그것도 큰 기쁨입니다.
  1.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독일어, 라틴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세르보크로트아트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체코어, 타이어, 포르투칼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이상 가나다 순.) [본문으로]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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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외국 작가의 작법서를 번역해오는 출판사들에게는 한 가지 법칙이 있지 않나 싶다. 가능한한 선정적으로 옮겨라! 정도의. 외국 작가들의 작법서 치고 그 원제를 정확히 살리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On Writting>, 딘 쿤츠의 <How To Write Best Selling Fiction>, 로널드 토비아스의 <20 Masters Plots>이 그 예다. 각각 <유혹하는 글쓰기>,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란 제목을 달고 소개되었다. 아무래도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낚이기' 십상이다. 그렇게 바꾼 제목 치고 원제보다 책의 내용을 잘 함축한 경우가 드문 탓에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을 읽으며 느꼈던 것도 대강 그런 것이었다. 책을 제법 재미있게 - 그리고 의미있게 - 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과장된 제목을 사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뒤늦게 인기 몰이를 시작한 - 그렇다곤 해도 벌써 10년이지만 - 작가의 이름을 빌리고 싶었던 것인지... 94년도에는 같은 책이 <논문 작성법 강의>라는 다소 심심한 제목을 달고 나왔던 걸 보면 그런 경향이 없진 않을 듯 하다. 출판사의 사정은 이해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다.
     
  3.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이 - 제목과는 달리 - 3분 요리 마냥 뚝딱 논문을 써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는 논문 작성자를 향한 여러 가지 조언들이 담겨 있지만, 대개는 지엽적이며 부차적인 것이다. 그나마도 초판연도에서 30년이나 지난 통에 의미를 잃은 조언들도 제법 된다. (저자 서문에서는 '이 책에 그런 기술들을 기대하지 마라'고 미리 경고하기까지 한다.) <논문 잘 쓰는 방법>이란 제목을 통해 마케팅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저자의 의도를 살리는데는 실패한 셈이다.
     
  4. 사실 <논문 잘 쓰는 방법>의 진짜 의의는 움베르토 에코는 독자로 하여금 '나는 어떤 주제의 논문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쟁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문제지만, 논문 쓰기에서는 의무감과 부담감 때문에 종종 잊혀지는 그것 말이다.
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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