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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6 《미래경》(일본 SF 특집) (2)

거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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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판타지도서관에서 출간한 무크지 《미래경》2호에 대한 서평이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88호에 기사로 실렸으니, 본문은 그쪽에서 읽어 주십사 부탁드린다. 서평 대상이 된 책에 대한 말은 기사 안에서 다 했으니 따로 덧붙일 말이 없고, 여기서는 글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해 부록. 서평 기사 하나 써놓고 잔말을 길게 쓰자니 퍽 우습기는 한데,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스스로에게 그만큼 중요한 글이었던 탓이다.





1.

기사에서도 지나가듯 언급되긴 했지만 이번에 서평의 대상으로 삼았던 2호 이전에 나왔던 《미래경》1호, 스타 트렉 특집도 읽었었다. 작년 여름에 열렸던 와우북 페스티발 당시 SF&판타지도서관 부스 자원봉사자로 일했다가 도서관장님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다. 받은 책이라 읽긴 읽었지만 내게 큰 의미를 가지긴 어려운 책이었다. 특집 기사였던 《스타 트렉》 특집의 비중이 상당히 컸는데, 해당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특집 전체를 건너뛰고 나니 읽을 기사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스타 트렉》시리즈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던 무수한 SF/판타지 계열 작가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면 내 태도도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한다. 여하간 이 책에서는 소설가/번역가 인터뷰들만 관심있게 읽었을 뿐, 썩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이 책을 선물받아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미래경》2호에 대한 글을 썼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으리라 생각한다. '공짜 책 선물'에 대한 부채감과 수록된 기사들에 대한 실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2호에 대한 기대는 내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번 리뷰의 대상이 된 《미래경》2호는 지난 8월 1일에 명동에서 열렸던 2010 SF&판타지 페스티벌에서 구입했지만 실제 기사는 9월 말에야 마무리지어졌다. 글 한편 쓰는데만 거의 두 달이 걸렸으니, 원래 내가 글을 좀 더디게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개중에서도 퍽 오랜 시간을 들인 편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따랐다.

2.

잡지에 대한 평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나는 잡지 비평이 그 외의 단행본에 대한 작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두명의 기획자 아래 여러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단편집에 대한 평이 한 명의 작가에 의한 장편 소설과 다른 형태를 띌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이다.

단편집에 대한 평을 각각의 단편에 대한 평 묶음으로 구성한다면 평 작업 자체는 수월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평은 책 한 권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제공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평자의 작업이 어디까지나 '단편집'에 대한 평인 한, 수록된 단편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곤란하다. 여러 작가의 단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는 기획 의도에 대해 접근해야만이 책 전체에 대한 상을 제공할 수 있다. 잡지평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특히 《미래경》과 같은 무크지들은 그 기획의도가 단편집들보다도 훨씬 분명하게 독자들 앞에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평자로서는 도저히 그것을 간과할 수 없다.

서평의 목차가 《미래경》2호의 수록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심지어 아예 소개되지 않은 기사까지 있었던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미래경》이라는 잡지 전체, 나아가 그 잡지를 가능케 하는 외연인 팬덤의 장르 담론에 대해 쓰고자 했기 때문에 서평에서 기사들을 소개하는 순서도 그에 맞게 조정되어야 했다. 적어도 평자로서의 내게는 기사들의 면면보다 그러한 기사들을 생산하고 또 무크지라는 형태로 묶게 하는 환경들이 보다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3.

기사 작성에 들어가서는 글에 사용된 논리들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가령 SF문학사 관련 기사들에 대한 내 평의 기본 골자는 문학사 기술에는 그 문학사의 면면을 이루는 사회적 맥락, 작가, 작품들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학사 작업에 그러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문학사 비평 작업과 그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의 조건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 《미래경》기사, 나아가 내 서평 전체는 그러한 논리에 얼마나 충실한가? 물론 흔히들 이야기하듯 축구 비평을 하기 위해 꼭 축구 선수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 평자가 이미 아마추어 축구 선수 내지는 축구 선수 지망생이라면 조금은 다른 윤리 기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 서평에서 지적했던 문제점들의 상당수가 과거 내 자신의 한계였음에야.

기사에서는 짐짓 SF에 대한 확고한 견해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 내가 그러한 관점들을 갖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좁디 좁은 '이 바닥'의 특성상 SF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오래 전부터 SF에 대한 여러가지 담론들을 주워들었다곤 하지만 실상 내가 SF를 진지한 관찰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 자체가 아주 최근, 구체적으로는 대략 2008년 초부터인 것이다. SF에 대한 내 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보다도 훨씬 이후의 이야기이다.

가령, 내 SF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공교롭게도 서평에서 다룬 기사들 중 하나를 쓴 정소연님이었다. 지난해에 정소연님이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진행했던 《사회문학으로서의 과학소설》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SF관은 쳬계적이지도, 일관되지도, SF가 아닌 다른 문학에 대한 관점들과도 연결되지 못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야 비로소 내가 그 이전에 쌓았던 문학적 교양과 SF에 대한 관심사를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미래경》 서평에서는 정소연님처럼 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이들의 글을 마치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도 되는양 평가하는 위치에 놓였던 것이다.

또한 내 평 작업 자체가 과연 나 자신을 제외한 가치 있는 작업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기사에서는 이 잡지를 읽고 평을 쓴 이가 얼마나 되느냐며 반쯤 조롱하는 투로 말하기도 했었지만, 그런 문제 때문은 아니다. 내가 기사의 기본 전제로 삼았던 것 중 하나인, 'SF 팬덤'이 과연 실재하며, 그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냐의 여부가 보다 큰 문제였다.

그 기사의 주된 비평 대상은 기사를 썼던 이들이나 기획자가 아니라 그들이 활동했던 SF 팬덤 전체였다. 그런데 'SF 팬덤'이라는게 과연 실존하는 집단인가의 문제는 완성된 기사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한 부분이다. 내가 보고 접한 SF독자들을 토대로 특징을 뽑아내긴 했지만, 사실 기사에서 언급되는 독자들이 '팬덤'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의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또 그렇다 하더라도 그 집단이 SF 독자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가지는지는 답할 수가 없다. 기사를 쓰는 내내 혹시 전체 SF 독자들 중에서도 아주 소수에 속하는 SF팬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실재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소수의 독자들만을 타겟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해주겠지만, 기사에 대한 피드백이 매우 적은 현실적 요건상, 내가 거기에 대한 증언을 들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4.

기사가 올라간 뒤에도 기사에 대한 고민은 끊이질 않았다. 기사의 수록처인 웹진 측에 기사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기사가 올라가기 전까지 편집진과 나 사이에 오갔던 이야기들을 까발릴 필요는 없겠지만, 최종 형태에 대해서는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미래경 기사가 왜 국내소설 파트에 올라간 것일까?

무크지 《미래경》이 국내 소설을 중점으로 다루는 단행본이라면 국내 소설 파트에 올라가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는 있다. 국내 소설이 아닌 '국내 문학'이 파트명이었다면 보다 쉽게 납득했겠지. 그러나 《미래경》은 기본적으로 잡지이며, 소설만이 아닌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를 포괄해서 다루고자 하는 담론지다. 이런 책에 대한 서평 기사를 웹진의 국내소설 파트에 소개하는게 과연 적절한 일일까? 사실 《미래경》2호는 일본 SF 특집이기까지 해서 더더욱이나 국내소설과는 거리가 있고, 내 기사에서는 아예 잡지에 수록된 창작 소설에 대한 평 자체를 싣지 않았는데도. 이 기사를 싣고자 했다면 오히려 비소설 파트 쪽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한다.

0.

기사의 서론 부제인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 소설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에서 따왔다. 서구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에 자기들을 위한 왕국을 건설하고 싶어했던 두 부랑자의 운명을 다룬 소설이다. 결론의 부제였던 '황제를 위하여'는 이문열의 장편 소설 『황제를 위하여』에서 따왔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도참서에 예견된 위대한 왕이 될 재목이라 믿었던 제왕병 환자에 대한 작품이다. 결론의 대부분을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늙은 황제들의 도시」챕터에서 따온 인용구가 대신하기 때문에 이쪽을 연상했을 독자들이 많겠지만, 실제 내가 그 소제목을 달면서 떠올렸던 이는 이문열의 제왕병 환자 쪽이다.

서론의 부제와 결론의 부제를 합쳐서 기사의 제목을 '왕이 되고 싶었던 황제를 위하여'라고 지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번잡하기만 하고 알아볼 사람도 적을 듯 하여 관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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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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