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웹 서핑을 하다 보면, 디씨에 대한 평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찌질이들의 집합소다, 다짜고짜 반말이다, 생산성 없이 잡담이나 지껄이며 놀 뿐이다, 괜히 남의 사이트 가서 훼방 놓기 좋아한다 등등... 물론 판갤(판타지 갤러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딱히 '타 사이트 비방'을 회칙으로 내건 곳이 아닌 이상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악동' 판갤에 대한 원성을 토하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처럼 판갤이 '사건(사고)'을 많이 치는 시즌이라면 특히나.

  2. 물론 판갤에 대한 악평들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디씨'의 기본 속성들은 다 갖춘 데다 - 이를테면 반말 사용이나 욕설 같은 것 - 타 사이트에 대한 높은 공격성까지 지니고 있으니, 판타지 팬덤들이 판갤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판갤에 여러 차례 습격당했던 커그[각주:1]나 시드 노벨[각주:2] 같은 커뮤니티가 특히 그렇다.) 자기들끼리 놀 때도 매너란 찾아볼 수 없고, 남의 집에 와서 깽판놓기를 좋아하기까지 하는 이웃에 무한정 애정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3. 그러나 판갤에 대한 이러한 불만들이 완전히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판갤 내부의 반말, 욕설 사용 등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사실 게시판에서 서로 반말을 쓰는 것이 디씨 안에서야 크게 두드러지는 현상이 아니지만, '예의 바른 커뮤니티'에 익숙한 이들은 이 대목을 두고 판갤의(혹은 디씨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투덜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수하는 상호 존댓말과 판갤의 상호 반말은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에는 그 대전제에 '상호 동등'의 원칙이 깔려 있다. 서로 반말을 쓰는 행위 역시 이 원칙을 전제로 한다. 다른 커뮤니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중학생 네티즌 A와 30대 변호사 네티즌 B는 서로 동등한 판갤러일 뿐이며, 말을 트고 놀 뿐이다. 겉으로는 무례해보이더라도 추구하는 바는 '존댓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존댓말을 하건 반말을 하건, 그것은 결국 커뮤니티의 선택사항이지 개념, 무개념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4. '멀쩡히 잘 지내다가' 판갤에 습격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미안하지만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진 않다. 판갤이 이유 없이 습격을 감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리딩판타지'[각주:3]에서 일으킨  '뷁커드빠 600플 낚시'[각주:4] 사건은 비록 이영도 팬덤에 대한 공격처럼 이루어지긴 했지만 사실 한번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까였던 커그는 그 폐쇄성과 친 오타쿠·동인녀 성향으로 인해 다소 점잖은 팬덤 사이에서조차 조심스럽게 이야기되던 커뮤니티였고, 환상처단자 표절 의혹[각주:5]이나 이글루스 광고 블로그 논쟁[각주:6]을 일으켜 최근에 대대적으로 까였던 시드 노벨의 경우는 도대체 누가  더 문제인지 모를 지경이다.

    냉정히 생각해보라. 판갤이 문제였는가?

  5. 그럼에도 왜 판갤의 이미지는 여전히 '찌질이'일 뿐인가.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판갤에 대한 선입견이다. 외부인들은 판갤에서 좋은 자료가 나온다 해도 그것을 '진흙 속의 진주', '시궁창 속에서도 가끔 나오는 개념' 정도로 치부한다. 즉, 자신들이 알고 있는 '찌질한 디씨'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판갤러들은 예외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설령 판갤이 아무리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해도 판갤의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의 머릿속에서 판갤은 이미 '찌질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판타지 커뮤니티 중에서 판갤(사실은 디씨 전체)에게만 이상하리만큼 가혹하게 적용되는 '생산성의 논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판갤(혹은 디씨)를 '하릴없이 노는 백수·찌질이들의 놀이터'라고 여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개념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진다 한들 판갤러의 대부분이 그냥 그저 그런 디씨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커뮤니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커뮤니티건 귀담아들을만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고, 대개는 잡담(판갤 식으로는 뻘글)이나 쓰는 라이트 유저가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자기 커뮤니티의 '비생산성'에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판갤이 거의 신성화되다시피 하던 이영도 작품의 표절 문제를 지적하고(그것이 옳든 그렇지 않든) 시드 노벨의 이면을 까발리며, 사재를 털어 여섯 번 넘게 판단대(판타지 단편 대회)를 열었다. 그들이 욕하던 그 찌질이들이 말이다. 그 '찌질이'들이 판타지 팬덤 전체에 하나둘씩 기여들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P.S.

 본문은 판갤을 중심으로 썼지만 사실 디씨에 대한 편견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비단 판갤뿐이 아니다. 디씨인사이드가 아직 카메라 리뷰 사이트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을 무렵부터 함께 해온 '유서깊은' 갤러리들(각종 사진 갤러리 등)는 그 이용자층부터가 스갤 막갤 등과 전혀 다르지만, '디씨인사이드'라는 이름 때문에 이상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보다는 좀 덜 억울할 도서갤, 과학갤 등의 개념갤도 마찬가지. 안다 하는 사람들도 그곳을 디씨의 청정 지역 정도로 치부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디씨의 자유로운 풍토와 개념갤들의 탄생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디씨의 개념갤들을 보고 진흙 속의 진주, 시궁창 속의 보석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진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진흙이 없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1. <비상하는 매>의 홍정훈, <카르세아린>의 임경배 등의 소위 '1세대 작가'들 여럿이 모여 만든 작가 커뮤니티. 그 이후로 끊임없이 작가들을 흡수해 공룡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본문으로]
  2. 한국형 라이트 노벨을 표방하고 출범한 라이트노벨 브랜드. 공모전도 개최하고 있다. [본문으로]
  3. DRC가 사라진 지금으로서는 네이버의 '피눈물을마시는새' 카페와 함께 이영도 팬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사이트. [본문으로]
  4. 뷁빠 600플 대첩이라고도 한다. 평소 이영도 팬덤들이 다른 판소 작가들을 무시하고 이영도만을 추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판갤러 뷁커드빠가 대표적 이영도 팬덤 사이트인 리딩판타지를 크게 낚은 사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사실 D&D룰을 표절한 소설이 아니냐'는 것이 그 내용이었으니 낚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600플은 물론 뷁커드가 '낚은' 리플의 숫자이다. [본문으로]
  5. 시드 노벨에서 출간한 <환상처단자>가 White Wolf 사의 TRPG 룰인 WoD의 주요 설정 및 세계관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판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한동안 판갤, 시드 노벨, 이글루스 도서 밸리를 시끄럽게 하다가 현재는 시드 노벨과 White Wolf 양 사의 문제로 넘어간 상태이다. 자세한 것은 판갤러 우라늄의 포스트(http://gdzergling.egloos.com/910431)를 참조. [본문으로]
  6. 이글루스 도서 밸리에 별 영양가도 없는 시드 노벨 글이 많은 것에 불만을 품은 도서 밸리 이용자들과 판갤러들이 그 원흉으로 시드 노벨이 개설했던 광고용 블로그를 지목하면서 일어난 논쟁. 이글루스 약관에는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니 명백히 약관 위반이기도 했다. 앞서 소개된 두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시드 노벨 측에서는 판갤러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으로 IP 차단을 먹이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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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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