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입
300페이지도 넘는 분량에 색깔도 세가지나 쓰면서 정가를 3,500원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지난주에도 비슷한 크기의 (텍스트는 외려 더 적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9,800원에 샀던 전력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터미널의 서점에서 이 책을 집은 것도 실은 내용보다는 '그 가격으로 어떤 책을 낼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사실 책 편집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 어찌보면 책 가격에 낚인(?) 셈이다.
- 가격
3,500원이라는 가격에 별다른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출판사 측에서 이 책으로 돈을 벌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거기에 인쇄소와 타 출판사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한다.) 즉, 출판계의 공익(公益)을 위해 업계에서 적자를 부담해가며 책을 펴낸 것이다. 굳이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묘한 감동을 주는 일임은 분명하다.
- 목차
- 제1부 한글 맞춤법
제1장 총칙
제2장 자모
제3장 소리에 관한 것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5장 띄어쓰기
제6장 그 밖의 것
제7장 문장 부호 - 제2부 표준어 규정
제1장 총칙
제2장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제3장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 제3부 외래어 표기법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2장 표기 일람표
제3장 표기 세칙
제4장 인명, 지명의 표기 원칙
제5장 기타 언어의 표기 - 제4부 열린책들 편집 및 조판 원칙
제1장 열린책들 편집 원칙
제2장 열린책들 조판 원칙 - 제5부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제1장 책에 대하여
제2장 책 만들기 - 부록 1
간기면 구성
저작권 계약
ISBN 부여 방법
편집 체크 리스트
편집 기초 지식 테스트 - 부록 2
간행물 납본
각종 추천 도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개정법)
- 제1부 한글 맞춤법
- 편집
이 책을 소개하는 몇몇 블로그를 가보니(우연인지, 모두가 번역자였다) 대체로 호평이었다. 원래는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하는 여러 규정들을 한곳에 - 그것도 제법 깔끔하게 - 묶어놨다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고 있었다. 하기사, 3부「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고 있는 언어만 해도 23종에 달하니 그 친절함에 감사할 법 하다.1 4~5부에서 열린책들의 편집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도 초보 편집자라면 고마워할 대목이다. 특히 인쇄 용어를 언급할 때 혼 가케, 돈 뎅 같은 업계 은어를 함께 언급해주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혼 가케는 따로 터잡기sheetwise, 돈 뎅은 같이 터잡기half sheet을 의미한다고 한다)
- 논쟁
사실 이 책은 편집 일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다. 그중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도 읽힐만한 부분이 3부의 「외래어 표기법」이다. 이 장에서 열린책들은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의 오랜 논란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외국의 고유명사를 어떤 발음으로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1988년에 문교부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고시한 후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의 미국식 표기를 지지하는 이들과 해당 국가의 원음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쟁이 20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열린책들에서는 3부의 도입부에 외래어 표기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놓고 있다. (아마 그 짧은 꼭지들이, 나같은 일반 독자들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읽힐 만한 부분일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린책들은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지지하는 쪽이라고 한다. 러시아문학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나 뿌쉬낀' 등 원음에 가까운 표기를 선호해왔던 출판사로서는 의외스러운 일이다. 열린책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길긴 하지만 원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강조 표시는 인용자의 것이다.
(전략) 이러한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된다. 이미 이 표기법은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푸틴>을 <뿌찐>이라고 굳이 표기하는 데에 관념적인 만족감 외에 어떤 이점이 있다고 생각되지 앟는다.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을 반대하는 입장은 논리적으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문교부 고시 외래어 표기법이 발음 기호 [k, p, t]에 <ㅋ, ㅌ, ㅍ>를 대응시키는 간편한 방법을 따르고 있다. 원칙적으로 발음 기호만 주어진다면 그 이상은 알 필요 없다. 그러나 된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여기에 해당 언어의 <국적>을 파악해서 발음 정보를 변형시키는 2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발음 기호 [k]가 영어, 독일어라면 <ㅋ>, 프랑스어, 혹은 스페인어라면 <ㄲ>를 대응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에서 [k]가 언제나 <ㅋ>보다 <ㄲ>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고 간단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국적에 따른 된소리 표기를 고집할 경우, 몇 가지 정황에 비추어 한두 개의 언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어의 파열음을 된소리로 적어야 한다(남구 국가 전부, 동구 국가 전부, 스칸디나비아 일부). 그렇다면 영어와 독일어 정도만 남는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쁠라똔, 쏘끄라때스, 까이싸르>라고 해야 한다.
셋째, 관념적으로 <격음 언어>에 속할 것 같은 영어나 스웨덴어에도 경음 발음이 존재한다(영어에서 <s> 뒤에 오는 파열음, 영어의 유성 자음, 스웨덴어의 <t, ck> 발음). 그러나 이 발음들이 <경음주의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넷째,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의 수도 Tirana가 <티라나>인지 <띠라나>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일단 티라나라고 쓰고 알바니아어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면 띠라나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인가. (중략)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된소리를 한글로 적어 보려는 것과 같은 표기법은 <쏘끄라떼스>, <쁠라똔>에 오면서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고 본다. 기원전 4세기 아티카 방언의 된소리 여부를 누가 판정할 것인가. 이미 <원음주의>라고 보기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는 <국적주의>를 이렇게 전(全) 역사 시대로 확장 적용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로 얻어지는 실익은 무엇인지 의문이다. (후략)
비단 업계 관련 인사가 아니더라도 번역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글꼭지를 하나 더 소개한다. 알라딘의 로쟈님이 쓴 「라스콜리니코프의 표기에 대하여」다.
- 덧글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총 방문자 수가 아직 네 자릿수였는데, 올리고 보니 그 사이에 다섯 자리로 성큼 올라섰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라 따로 포스팅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 번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스팸 머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은(는) 훼이크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햇수로 3년간 운영했던 미니홈피의 총 방문자 수도 아직 네 자리 수인데 블로그로는 3개월만에 10,000을 넘고 보니 그냥 멍해지는군요. 스팸머신에 의한 조회수가 9,000쯤 된다 하더라도 다른 1,000분은 정말로 이 블로그를 클릭해서 들어와주신 분들이라는 이야기겠지요. 소심한 블로거에게는 그것도 큰 기쁨입니다.
-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독일어, 라틴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세르보크로트아트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체코어, 타이어, 포르투칼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이상 가나다 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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