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1년 11월 23일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사 시간에 사용했던 발제문의 일부입니다. 소설과 시 파트는 다른 조원들이 맡아서 했기 때문에 제가 올릴 권리는 없겠고, 명백하게 제가 전담했던 서론·비평론·결론·참고문헌 일부만 제시합니다.
제목은 7·80년대 자유주의문학 전반을 훑은 것 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문학과지성사 계열 비평가들, 보다 정확하게는 김현의 견해를 전달하는데 치중해 있기 때문에 썩 좋은 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다니면서 또 언제 김현에 대한 발표를 해보겠나... 싶어서 마음 정리해내는 기분으로 일부러 김현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해댄 측면도 있고요.
블로그에서는 미주로 처리된 주석이 보기 좀 지저분하게 되어 있는데... 이건 a4 용지로 제출할 때는 깔끔하게 보기 위해 사용했던 각주 처리 방식이 블로그의 미주 처리 방식으로 옮겨지고 나선 상당한 꼴불견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발표 때와 달리 주석에도 이것저것 많이 써놨기 때문에 주석을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우실 텐데, 양해 바랍니다.
늘 그렇듯, 이 글을 베꼈다가 표절 시비에 걸려 점수가 깎이신다 한들, 제가 점수를 책임져드리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제목은 7·80년대 자유주의문학 전반을 훑은 것 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문학과지성사 계열 비평가들, 보다 정확하게는 김현의 견해를 전달하는데 치중해 있기 때문에 썩 좋은 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다니면서 또 언제 김현에 대한 발표를 해보겠나... 싶어서 마음 정리해내는 기분으로 일부러 김현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해댄 측면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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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이 글을 베꼈다가 표절 시비에 걸려 점수가 깎이신다 한들, 제가 점수를 책임져드리지는 않습니다.
7·80년대 자유주의문학
- 김현 비평론과 7·80년대 시·소설을 중심으로
목차
1. 서론
2. 역사적 배경
가. 60년대 말: 4․19 세대의 가시화
나. 70년대: 자유주의문학 동인 결성
다. 80년대: 신군부 체제와 87년 체제
3. 자유주의문학 비평
가. 4․19 세대론: 문지 동인의 아비투스
나. 억압에 대한 해방으로서의 문학
다. 전위문학론
4. 자유주의 소설
(생략)
5. 자유주의 시
(생략)
6. 결론
7. 참고문헌
가. 단행본
나. 논문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 김현, 『행복한 책읽기』中
1. 서론
이 발표에서는 7․80년대 한국 문단의 한 기류였던 자유주의문학의 담론과 작품이 형성되고 전개된 과정에 대해 다룬다. 7․80년대는 한국 문단에서 이른바 4․19 세대로 대표되는 신진 작가들이 기성 문단을 대체하고 문단 주류로 자리매김한 시기였으며, 문인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시대정신을 실현해야 하는 지식인의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던 시기였다.
본 발표에서는 70년대 이전 4․19 세대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후 김현을 위시한 《문학과 지성》(이하 문지) 동인을 중심으로 자유주의문학의 주요 담론을 설명하고 그 담론이 적용된 사례로서 구체적인 소설․시 작품을 들어 발표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다만 우리의 분석 대상이 기계적으로 7․80년대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는 7․80년대의 문학 담론이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다가,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로도 7․80년대적 문학 담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2. 역사적 배경
가. 60년대 말: 4․19 세대의 가시화
한국 현대사에서 4․19 혁명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인들이 4․19 혁명을 통해서 처음으로 구악(舊惡)을 청산해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의 몰락과 식민 체제 성립 및 독립, 그리고 분단체제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은 주체적으로 체제 변환을 이룩해내는 경험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4․19 혁명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명백히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이승만 정권이라는 구악을 몰아내고 새로운 체제를 성립시키는 귀중한 경험을 갖게 된다. 때문에 4․19 혁명은 당시 각계각층의 지지를 얻었다. 심지어 5․16 쿠데타 당시 군사혁명위원회조차도 4․19 혁명 정신 계승을 선언할 정도였다. 이렇듯 4․19 혁명 정신은 사상의 차이를 넘어 1960년대에 전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학계에서도 4․19 혁명에 호응해,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이른바 ‘4․19 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신세대’ 문인들이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문단 최대의 문단 권력으로 군림했던 창작과비평사(이하 창비),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의 동인들이다.
이 4․19 세대론은 해당 세대 전반의 신진 작가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그 중 특정 그룹, 특히 문지 계열의 자유주의문학 동인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읽히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비평가 김현을 위시한 문지 그룹이 4․19 세대론의 전용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1 특히 김현은 1988년에 쓴 『분석과 해석』에서까지도 “나는 거의 언제나 4․19 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라며 4․19 세대론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2 이 말은 후배 평론가들 사이에서 거의 그대로 재생산됨으로써 ‘4․19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던 문지 동인들이 4․19 세대론에서 지위를 확보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3
나. 70년대: 자유주의문학 동인 결성
최초의 자유주의문학 동인 결성은 196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에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광남, 곧 김현의 주도로 결성된 ‘산문시대’를 시작으로 ‘사계’, ‘68문학’ 등의 동인이 형성되었다. 이 그룹들의 인적 구성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는데, 강호무와 최하림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서울대학교 출신의 외국문학 전공자들이었다.4 인적 구성의 협소함에서도 드러나듯 당시에는 몇몇 대학생들이 주도한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다. 이 동인들의 주요 인사들이 1970년의 문학 계간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함에 따라 자유주의문학 동인이 본격적인 세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자유주의문학 동인들이 학․석사 학위를 취득해 교단이나 평단에 진출하기 시작한 시점과도 얼추 맞아 떨어진다. 이때 자유주의문학 동인들에게 김현이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실제로 자유주의문학 진영에 대한 김현의 영향력을 가장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이른바 ‘4․19 세대론’이다. 문지 동인들의 담론은 거의 대부분 4․19 세대론을 매개로 설명할 수 있다. ‘4․19 세대론’은 7․80년대 문지 동인들이 가졌던 구별짓기 의식, 특유의 관념적․부르주아적 전위문학론 등 문지 동인들의 사고 전반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정일은 김현이 《문학과 지성》의 문학이념과 방법, 자유주의문학론의 독자성을 체계화하고 확립한 이론가였기에 80년대 자유주의문학론의 정신적 지주였다고까지 평가한다.5 80년대에 문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유주의문학론은 김현의 문학론을 김현 본인과 그 제자들이 정교화하고 체계화하는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6
다. 80년대: 신군부 체제와 87년 체제
우리가 문학사에서 7․80년대라고 하는 시대는 60년대 말의 4․19 세대 성립에서 6월 항쟁이 일어났던 87년까지를 의미한다. 즉 한국문학사의 7․80년대는 4월 혁명에 의해 열렸다가 6월 혁명에 의해 종식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 자유주의문학 동인에게 주요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으로는 5․18 민주화 운동과 신군부 체제의 성립, 그리고 ― 6․10 혁명을 통한 ― 87년 체제의 성립을 들 수 있다. 5․18은 문인들에게도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충격을 주어, 문인들이 군부 독재 정권이라는 거대악을 더욱 명백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신군부 정권에 의해 창비․문지 등 주요 계간지가 강제 폐간됨에 따라 한국문학계는 70년대의 ‘창비 vs 문지’ 구도에서 ― 물론 강제적으로 ― 벗어나게 되었다. 즉 창비와 문지가 양분하던 문단을 비슷한 성향의 동인지․무크지들이 대체함으로써7 ‘민족민중문학 vs 자유주의문학’ 시대가 열린 것이다.
80년대적 ‘민족민중문학 vs 자유주의문학’ 구도는 87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는다. 이는 80년대 말 한국 내부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정세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80년대 한국 문학계에서 오갔던 담론들이 많은 경우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즉 6월 혁명 이후 민주화 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때마침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상황 등은 문학계에서 ‘불온’ 사상이 어느 정도 해금되고 이념 대립이 점차 해소되기 시작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 80년에 폐간되었던 문예지들도 ― 단 《문학과 지성》은 《문학과 사회》라고 제호를 바꿔서 ―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대부분 복간되었다. 하지만 복간된 문예지들이 왕년의 사회적 위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이는 문인들이 억압된 사회 하에서 누리던 사회적 위상이 민주화 이후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즉 독재 정권 시기 문인들은 상대적으로 억압이 극심했던 다른 지성계를 대신해 ‘지식인’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과제 내지는 당위를 갖고 있었는데,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로는 그러한 당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87년 체제의 성립이 7․80년대적 자유주의문학 동인의 즉각적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소위 ‘문지 4K’로 대표되는 문지 주류 비평가들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8 ‘문단 주류’로서의 문지의 몰락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문지의 시작과 끝이었던 김현이 공교롭게도 1990년에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문지 내부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90년대 초반부터 민음사나 문학동네 등의 상업주의적 문학 출판사들이 새로운 문단 권력으로 성장함에 따라 문지와 창비가 왕년의 권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3. 자유주의문학 비평
가. 4․19 세대론: 문지 동인의 아비투스9
(1) 한글세대론 - 전후비평과의 구별짓기
모든 세대론은 다른 세대와의 구별짓기를 전제한다. 4․19 세대를 자처한 7․80년대 비평가들은 4․19 세대론을 통해 전후비평과 스스로를 철저하게 구분 지으려 했다. 일례로 김현은 이미 1962년에 기존 문단을 통해 등단했으면서도 기성 문단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문학을 담을 수 없다고 여기는 등 기성 문단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4․19 세대 문인들은 기성세대의 삶에서 드러났던 '고통스러운 역사'와 '우월한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 곧 한국인들의 과거와 현재에서 묻어나는 비루함을 청산해야 한다고 여겼다. 50년대의 휴머니즘문학 조차 구체적 인간이 아니라 ‘서구적 보편인’을 기준으로 한 추상적인 문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0 4․19 세대는 이것을 기성 문단과의 결별로서 해결하고자 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지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첫째, 자신들이 한국 최초의 한글세대라는 점. 5․60년대에 활동했던 기성 작가들은 기실 일본어의 잔재를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가령 전후비평 세대에 속했던 문학비평가 유종호는 ‘국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배우던 학교에서 갑자기 ‘조선어’를 쓰고 ‘조선어’를 배우게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해방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술회한 바 있다.11 이와 달리 김현을 비롯한 4․19 세대는 해방 이후 온전히 ‘한국어’로만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다. 이는 다시 말해 4․19 세대가 한국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자유로워진 첫 세대임을 의미했다, 즉 4․19 세대에 이르러 온전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문인들이 처음 탄생한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어로 문학 교육을 받은 세대의 작가․비평가들이 기성 문단의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문학이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해냄은, 문학을 통해 모국어의 영역을 넓혀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 점을 들어 김현은 4․19 세대가 “우리가 아는 한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2 이는 물론 기성 문인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나 김현이 평론집을 헌정했던 30년대의 ‘이상’, 그리고 <문지> 동인들이 훗날 중요한 문학적 성과로 평가했던 50년대의 김수영 역시 ‘이중 언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3
둘째, 이전에 비해 고등교육 수혜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 4․19 세대보다 이전 세대에 속하는 이어령조차 “선배 기성 문인 중에 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14 그런데 문지 4․19 세대가 받았던 고등교육이란 대개 외국문학 전공을 의미했다. 즉 4․19 세대는 전후 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첫 외국문학 전공 세대이기도 했다. 물론 4․19 세대 이전에도 유종호처럼 외국문학을 전공한 비평가들은 있었지만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4․19 세대의 출현 이후였다. 창비 진영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한 백낙청 등의 학자들이 활동했지만 문지 소속 문인들 중에서는 대학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상일이 정리한 70년대 문지 신인 발굴 현황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15
총 19명의 신인 중에서 불과 3명만이 국문학 전공자인 현상은 동시대 문단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였다.16
이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수입해온 해외 담론들은 4․19 세대가 상대적으로 그러한 소양이 부족했던 기성 문인들에 대항할 무기가 되어주었다. 미셸 푸코, 가스통 바슐라르, 르네 지라르 등 오늘날까지도 한국 지성계의 교양처럼 자리 잡은 프랑스인 학자들 상당수가 이렇게 소개되었다.
김현을 비롯한 문지 계열 비평가들이 한글세대를 자처했음을 감안해본다면 이들이 외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외국 비평 담론에 의존하는 경향 자체는 문지 계열 비평가들이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했던 기성 문단에도 있었다. 다만 문지 계열 비평가들은 외국 비평 담론을 무조건적으로 답습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두고자 했다.17
김현의 예에서 드러나듯 문지 계열 비평가들 역시 외국 담론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들은 당대의 한국 사회에 걸맞는 담론을 들여오고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석하려 함으로써, 혹은 그렇게 하려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성 문단의 경향과 차이를 두려 했다. 이를테면 김현이 바슐라르를 통해 한국문학사를 쓰려 했다던지,18 “1980년초의 폭력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르네 지라르의 속죄양 이론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19 다만 그렇다고 해서 김현이 비판했던 ‘새것 콤플렉스’로부터 김현을 비롯한 문지 비평가들이 과연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는 이견이 따른다.20
(2) 탈혁명적 4․19 세대론 - 창비 동인과의 대결 의식
사실 문지 계열의 4․19 세대는 1960년 당시 대학 신입생을 전후로 한 연배였던 탓에 4․19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다. 이는 4․19에 대한 문지 계열 문인들의 회고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대학 4학년이었던 김병익은 “4월 19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방관했”고, 1학년이었던 김승옥은 “선배들이 가자고 앞장서서 몰고 나가니까 멋모르고 따라나갔”다.21 다시 말해 문지 진영의 비평가들은 결코 4․19 세대론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었다. 비평가 염무웅이 김현류의 4․19 계승론에 대해 “민족문화운동이 좀 더 적자”라고 말한 것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22
그럼에도 문지 계열 비평가들이 4․19 세대를 자처했던 것은 창비로 대표되는 민족민중문학 진영 또한 문지 계열 비평가들이 극복해야 했던 ‘기성 문단’으로 속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동일·구중서·백낙청 등 창비 진영의 비평가들은 문지 진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신진 비평가’들이었지만, 문지 진영보다 몇해 앞서 참여문학론적 비평의 기틀을 잡았고, 기존의 전후세대 비평가들과는 또 다른 제도권을 창출해내고 있었다.
창비 동인이 신진문단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인 문지 동인들은 전후 세대 비평가와 더불어 창비를 비롯한 참여문학 계열 비평가들을 동시에 의식해야 했다. 실상 계간지 《문학과 지성》만 해도 창비 계열에 반대되는 자유주의문학을 위한 장으로서 출범했다. 김병익도 “김현이 참여파 쪽에서는 《창작과비평》이 있는데 우리는 아무 매체가 없지 않느냐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어요.”라고 증언한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23 다시 말해 문지 동인은 4․19 세대론을 통해 4․19 혁명을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해석함으로써 창비와의 대결 구도를 성립시키고자 한 것이다. 다만 4․19의 주동 세력이지 못했고 이념적으로도 4․19의 혁명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문지 비평가들은 4․19에서 민주화 운동 내지 민주 혁명이 아닌 다른 의미를 발굴해내야 했다.24 김현 등이 4․19에 이른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비평가 황국명은 창비 대 문지의 대결론이 문지 측의 “양자의 문학적 역량과 비중을 동일한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전술이며, 『창비』/『문지』의 관계를 우월/열세의 구도로 바라보려는 평단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역사와 현실을 배경화하는 『문지』의 자율성론을 향한 도덕적 비난에 대한 압박감을 역설적으로 해소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25
비평가 황국명은 창비 대 문지의 대결론이 문지 측의 “양자의 문학적 역량과 비중을 동일한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전술이며, 『창비』/『문지』의 관계를 우월/열세의 구도로 바라보려는 평단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역사와 현실을 배경화하는 『문지』의 자율성론을 향한 도덕적 비난에 대한 압박감을 역설적으로 해소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25
또한 김현은 혁명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서도 소위 참여문학론에 대해서 상당히 냉소적인 시각을 보여왔다. “참가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종의 열등 의식을 갖도록”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26 같은 글에서 김현은 작가로서의 혁명 참여와 혁명가로서의 혁명 참여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즉 “사르트르는 ‘앙리 마르탱 사건’ 때문에, ‘로젠버그 부처 사건’ 때문에, 헝가리 사건 때의 그의 발언 때문에 작가인 것은 아니다. 그는 「벽」을 썼고, 『자유의 길』을 썼기 때문에 작가인 것이다.”27
나. 억압에 대한 해방으로서의 문학
(1) 문학의 비체제성·탈제도성
김현은 『한국 문학의 위상』(1977)에서 문학에 관한 몇 가지 명제를 내놓는다. 문학은 써 먹을 수가 없다; 문학은 써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을 써 먹는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문학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28 이 명제들은 '문학은 꿈이며, 그렇기 때문에 비체제적'이라는 또 다른 명제와 함께 김현이 쓴 모든 글을 관류하는 대원칙이라 할 수 있다. 김현은 사망하기 불과 한달 전에 쓴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소감에서까지 이 대원칙을 재확인한다. “문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학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더 뜨겁게 인간의 모든 문제를 되돌아보게 합니다.”29
문학은 그 자체로는 인간에 대한 억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김현은 바로 그렇기에 ‘써먹을 수 없는’, 곧 인간 억압의 도구로서 사용되지 못하는 문학이 억압의 바깥에서 그 외연을 감싸 억압의 모습을 폭로함과 동시에 억압 없는 쾌락을 제시한다고, 그럼으로써 인간이 억압 없는 세계를 꿈꾸게 한다고 보았다. 요컨대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30
문학이 써먹을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유효할 수 있다는 김현의 명제는 매체 자체를 억압하는 여러 조건들, 특히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문학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발전된다. 이를 계승한 문지의 문학 이념은 한 마디로 “‘고전적 자유론에 바탕을 둔 ’정신의 자유로운 조작 또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31
김현이 말한 억압이란 단지 독재 정권으로 인한 억압적 분위기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자유주의문학’은 민족민중문학의 억압적 성격을 겨냥한 개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지 동인들은 창비 동인, 곧 민족주의 좌파 문인 그룹들이 지향하던 좌파 문학 담론의 억압적 성격을 폭로함으로써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했다. 김현은 사르트르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좌파 이론가들의 경직성을 지적한 바 있고32 김치수(金治洙, 1940~)도 창비 동인의 고군분투가 “그러나 그 싸움의 격렬함 때문에 문학 작품을 정치와 사회에 종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우리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며 문지 창간을 정당화했다.33 실제로 민족민중문학 진영이 ‘민족’ 내지는 ‘민중’이라는 집단적 주체를 내세우는 한편 개인의 소외 현상에 대해서는 다소 눈을 감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류의 자유주의문학론이 과거의 카프문학, 참여문학, 민중민족문학 등에 의해 ‘억압’되었던 개인이라는 주체, 또는 일상 등의 미시서사를 부활시켰다는 의미부여 또한 가능하다.34
문학의 자율성을 위해 문학을 가로막는 모든 억압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 곧 문학의 비체제성․탈제도성을 강조하는 김현의 주장은 일견 급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김현의 문학론은 억압의 해체 이후 문학이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했다. “문학은 꿈이다.”와 같은 널리 알려진 명제들은 김현이 실상 다분히 관념적이면서도 모호한 수준의 문학 담론밖에 이야기하지 못하는 얕은 비평가였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김현의 초월주의적인 문학관은 80년대에 그 제자들의 이데올로기 해체론 내지는 문학적 자원주의로 계승되었다.35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전위문학론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그들 역시 김현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 문학 엘리트주의
위의 서술에서 드러나듯 실상 김현의 문학론에는 다분히 문학 엘리트주의적 요소가 깔려 있었다. 문학만이 인간에게 억압에 대한 저항을 환기시킨다는 주장은 다분히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한 폄훼, 그리고 그러한 예술 장르에 매몰되어 있는 대중에 대한 멸시를 전제했다. 김현이 대중을 소비사회와 매스미디어에 놀아나는 존재로 보았다는 사실은 여러 군데에서 확인된다. 이를테면 “대중은 대중 매체가 만들어낸 대중 문화 시대에 능동적인 주체자의 구실을 맡지 못하고, 수동적인 향유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그 대중이 자신의 문화 역량에 대한 자신을 아직 못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와 같은 주장이 그것이다.36
이러한 측면은 특히 영화에 대한 김현의 부정적인 생각에서 잘 드러난다. 김현이 프랑스문학 전공자인데다 스스로도 영화를 즐겨보았지만 영화라는 매체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영화를 통해 서구 문명이 제3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값싸면서도 가장 치명적인 방식으로 파고든다고, 그리고 서구에 대한 쓸만한 비판 하나 제기하지 못하게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김현은 서구 영화에 대한 평을 남길 때마다 그 배후에 있는 서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을 전후로 하여 다분히 냉전적 분위기를 반영한 영화들이 흥행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 영화는 미국 정책의 드러난 변이이다.”라고 진단하는 식이다.37
또한 영화를 비롯한 문화 상품들은 그 생산과정에서 자본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갖게 한 원인이었던 듯 싶다. 자본이 개입되는 문화 상품은 매체 내외의 검열 ― 외부의 검열만이 아니라 자기 검열까지 포함 ― 을 거쳐 생산되며 결국 관객/독자들에게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물론 김현이 만화 비평을 쓰기도 하는 등 짐짓 타 예술 매체에 개방적인 듯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만화 장르에 대한 김현의 호의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만화 장르에 대한 김현의 관심은 그가 기존에 갖고 있었던 미술 장르에 대한 관심, 혹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본래는 만화에 부정적이었던 김현이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문자 그대로 거의 한 문장도 이해해낼 수 없었던” 프랑스 만화를 접한 이후였으며, 자신의 프랑스문학 비평 지식을 총동원해서 만화를 분석하려 시도한 뒤 고작해야 ‘만화는 대중 예술이 아닌 대중들의 예술’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38
김현은 문화가 대중을 체제 안으로 포섭시키는 것과, 그 문화가 문학에 영향을 끼치는 사태를 우려하였다. 결국 김현이 말한 억압이란 소비 사회가 대중들에게 요구하는 무비판적 수용/태도였다. 이 때문에 김현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나아가 문학판에 상업주의적 경향이 짙어지는 풍토에 대해서도 경계하고자 했다. “재미있게 쓴다는 것은 공식 문화권내에 있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벗어나는 해방감과 그것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권고를 동시에 행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아기자기하게 타협하는 기술이다. 잘 팔리는 대중물이란 그러므로 미리 주어진 해답을 갖고 있으면서도 문제를 제시하는 척하는 나쁜 놀이이다.”39
김현은 문학의 ‘대중들의 예술’화, 곧 상업주의 문학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70년대의 대표적인 상업 소설 작가 최인호는 김현에 얽힌 상당히 인상깊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본래 자신은 문지 계열의 비평가들에게 촉망 받는 신예 작가로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별들의 고향』(1973)이 흥행을 하자 김현은 최인호에게 대중 작가가 되어 문단을 떠나던지 자신들의 편에 서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는 것이다.40 즉 김현은 문학이 대중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다시 말해 대중 영합적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김현이 생각했던 문학 주체는 주체성과 자의식을 갖춘 ‘한 명의 시민’이었지 무리에 휩쓸려다니는 대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전위문학론
(1) 문학적 다원주의
앞서 설명했듯 자유주의적 4․19 세대 비평가들은 전후 문단이나 동시대 민족민중문학 진영에 대해서는 상당한 대결 의식을 품었지만, 그에 반해 (자신의 성향에 맞는) 당대 문학, 특히 신인 작가들에 대단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대취해서 귀가한 새벽에마저 신간 서적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전설까지 남긴 김현부터가 여러 차례 신인 작가에 대한 목마름을 표현하면서41 전위문학이 “익숙한 세계를 시나 소설 속에서 다시 발견하기 위해 시나 소설에 달려드는 독자들을 실험시나 실험소설은 창조적으로 배반한다.”라고 의미부여를 한 바 있다.42 즉 독자들에게 세계에 대한 낯선 견해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역할이라고 본 것이다. 곧 김현에게 전위는 신진 작가의 특권이기만을 넘어서서 문학 자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였다. 어떻게 보면 김현은 전위문학보다는 문학을 통해 나타난 전위를 사랑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한글세대론’ 또한 넓게는 이러한 전위문학론에 포함되면서, 이후 서술할 ‘감수성의 혁명’과도 연결된다.
전위문학에 대한 김현의 인식은 김현 동시대의 문지 비평가들이나 후속 세대인 권성우의 이른바 ‘문학적 다원주의’로 계승되었다.43 김병익은 다원주의를 “문화활동의 여러 부면들이 상호존중의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상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부면 안에서도 생각과 방법과 목표가 다르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각의 지향을 확대해나가는 것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44 이것은 자유주의문학관에서 ‘나쁜 문학’으로 간주되는 상업주의문학이나 관제문학을 제외한 모든 ‘좋은 문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의미했다.45
문제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문학’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자유주의문학 비평론의 기틀을 잡은 김현에게서부터 나타는 문제였다. 즉 문학에 대한 현존하는 억압의 해체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그 이후의 문학에 대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현의 논의를 이어 받은 비평가들 또한 ‘인간 지성에 대한 모든 억압이 해체되어 자유가 보장된다면, 그것은 무분별한 혼란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온 설명이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좋은 문학’ 등의 모호한 유토피아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주의문학론이 물론 인간 정신의 자유를 최우선적 가치로 보는 자유주의론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정치적 전략이기도 했기 때문에 비롯된 한계다. 즉 자유주의문학 진영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출현하는 ‘새로운 문학’들을 사실상 거의 무차별적으로 포섭함으로써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을 써왔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담론은 ― 특히 80년대로 갈수록 ― 민족민중문학 담론의 안티테제화 되어가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 역할에 집착했던 결과가 자유주의문학 담론 자체에 거시적 통찰이 부족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요컨대 김병익 등의 ‘문학적 다원주의’론은 문지 진영이 담론 전쟁에서 패배해 가는 과정에서 억지로 내놓았던 허깨비 같은 이상(유토피아)이었다.
(2) 감수성의 혁명
김현은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몹시 좋아한 인물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술자리에서 중언부언하는 인물만은 몹시 싫어했다. 중언부언은 문학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같은 일화는 김현을 비롯한 문지 비평가들이 ‘새로운 언어’에 상당히 집착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상적인 일화이다.
‘산문시대’ 동인들은 산문시대 창간호에서 “태초와 같은 어둠”, 곧 기성문단을 “새로운 언어의 창조로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는 ‘새로운 언어’로써 전후세대를 초극하겠다는 미적 자율성론으로 구체화되어 70년대 문지의 비평적 근거가 되었다.46
그것은 이른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의제 속에서도 표현된다. 문지 편집 동인들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는 그들이 전공했던 학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언어를 문학의 환유로서 바라본다는 관점에서는 공통된 견해를 보였다.47 곧 이들에게 문학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 상업주의와 관제주의를 포함한 ― (새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을 담아내는 언어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어떤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어떤 상상력과 감수성을 담아냈는지를 중요하게 보고자 했다. 가령 김현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1987)에 대한 평에서 “그의 소설은 쥬네트가 곁다리 텍스트라고 부른 텍스트의 곁다리를 제대로 읽어야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라는, 다소 엉뚱하고도 참신한 평을 남기고 있다.48 그만큼이나 언어라는 매개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하의 장에서 언급될 실제 작품 사례들을 통해서도 자유주의문학 비평가들은 이 작가들의 언어 미학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 점은 이른바 한글세대론의 시발점이 된 「무진기행」에서부터 7,80년대 자유주의소설의 끝물이라 할 수 있는 『비명을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문학 진영이 호평했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원래 발제문의 비평 파트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다른 조원이 쓴 소설 파트의 복거일론에 덧붙인 내용이 있어 그것을 추가로 가져온다. 아래의 한 문단과 그 주석이 그 글이다.
복거일의 등단작 『비명을 찾아서』(1987)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첫째, 이 작품은 아무런 경력도 없던 신인 작가의 소설임에도 등단을 거치거나 신문 연재를 거친 작가의 책만을 내주던 문단의 관례를 깨고 문단 주류 중 하나인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둘째, 과학 소설(SF)의 하위 장르인 대체역사소설이라는, 당시의 한국문학계로서는 생소했던 기법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당시로서는 완벽히 ‘새로운 문학’이었던 이 작품은 앞서 이야기했던 전위문학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49
(중략)
※원래 발제문의 비평 파트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다른 조원이 쓴 소설 파트의 복거일론에 덧붙인 내용이 있어 그것을 추가로 가져온다. 아래의 한 문단과 그 주석이 그 글이다.
복거일의 등단작 『비명을 찾아서』(1987)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첫째, 이 작품은 아무런 경력도 없던 신인 작가의 소설임에도 등단을 거치거나 신문 연재를 거친 작가의 책만을 내주던 문단의 관례를 깨고 문단 주류 중 하나인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둘째, 과학 소설(SF)의 하위 장르인 대체역사소설이라는, 당시의 한국문학계로서는 생소했던 기법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당시로서는 완벽히 ‘새로운 문학’이었던 이 작품은 앞서 이야기했던 전위문학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49
(중략)
6. 결론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7․80년대 한국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7․80년대의 자유주의문학은 1960년대 중후반 4․19 세대가 출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4․19 세대론은 태생부터가 다분히 자유주의문학 진영의 문단 내 지위 확보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 기획된 측면이 강하며, 이러한 성격은 특히 자유주의문학 진영이 전후 세대 문인보다는 동시대 민족민중문학 진영을 더 의식하게 됨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 이들이 내세운 문학의 비체제성․탈제도성, 혹은 새로운 문학에 대한 추구 또한 그들의 도시 거주 부르주아적 위치에서 나온 전략적 차원이 강하다.
7․80년대의 이른바 자유주의 소설․시에서는 작품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문학 내적인 차원에 대한 천착이 확인된다. 물론 자유주의 문학 비평가들이 그러했듯, 자유주의적 성향의 소설가들이나 시인들 또한 당대 상황에 대한 관찰은 게을리하지 않지만, 동시대 민족민중문학에 비해서는 당대 현실에 대해 다분히 관념적이거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7․80년대 자유주의 문학은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로도 기존 작가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명맥을 이어갔지만,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상업주의 문학 출판사들의 득세 하에 어느 정도의 지분 하락은 면할 수 없었다. 이것을 한 비평가는 상업주의 문학에 대한 “비제도권 문학의 상징이자 군부독재 치하의 탄압 대상으로 그 투쟁의 대가로 대중적 명망성을 얻은 『창작과 비평』과, 자유주의적 분위기로 다소 모호한 회색의 보호색을 띈 지식인적 기능에 충실하며 상업주의 열풍 속에서도 최소한 문학예술의 미학적 성곽만은 고수하려는 『문학과 사회』”의 패배였다며 자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50
7. 참고문헌
※ 본인이 사용한 것만을 기재.
※ 본인이 사용한 것만을 기재.
가.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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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지성사, 1992,
───,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 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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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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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민, 「공감의 비평, 그 내적 모순 ― 김현의 비평에 대하여」, 『우리문학연구』Vol.23, 우리문학회, 2008.
하상일, 「김현의 비평과 『문학과지성』의 형성과정」, 『비평문학』No.27, 한국비평문학회, 2007.
───, 「전후비평의 타자화와 폐쇄적 권력지향성」, 『한국문학논총』Vol.36, 한국문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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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각주
- 윤지관, 「세상의 길: 4․19 세대의 심층」, 최원식·임규찬 엮음, 『4월혁명과 한국문학』, 창작과비평사, 2002, 254쪽. [본문으로]
- 김현, 「책머리에」, 『분석과 해석/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전망』. 문학과지성사, 1992, 13쪽. [본문으로]
- 창비 계열의 비평가 염무웅(廉武雄, 1941~)은 이런 풍토에 대해 당초에는 매우 탐탁찮아했다는 회고를 한 바 있다. “그 김현이 쓴 글을 보니까 4․19에 대한 일종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어요. 그것을 후배 평론가들이 자주 인용합디다. “내 글은 4․19에 뿌리가 있고, 거기에서 한걸음도 나아간 바가 없다.” 이런 요지인데, 처음에 김현 글을 읽었을 때는 나는 약간 의아스러웠어요. 김현이 평론가로서 뛰어나지만 4․19를 자기 사유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동감하기 어려웠거든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김현의 일종의 예술주의와 4․19의 비판정신은 상반된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러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사실은 4․19에는 4․19를 정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김병익․김승옥․염무웅․이성부․임헌영․최원식, 「좌담: 4월혁명과 60년대를 다시 생각한다」, 최원식․임규찬 엮음, 『4월혁명과 한국문학』, 2002, 59~60쪽. [본문으로]
- [본문으로]
- 하정일, 「자유주의문학론의 이념과 방법 ― 김현과 ‘문지’ 계열을 중심으로」, 『실천문학』Vol.22, 실천문학사, 1991, 14쪽. [본문으로]
- 위의 글, 20쪽. [본문으로]
- “이미 7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동인지 『반시』가 있었지만, 『실천문학』, 『시와 경제』『오월시』『목요시』『시운동』『문학의 시대』『우리 세대의 문학』『언어의 세계』『삶의 문학』『분단시대』『지평』 등 대부분의 동인지, 무크가 1980년 신군부의 권력 장악 이후 등장하였다.” 김성수․이주미, 「1980년대 동인지․무크 문학의 운동성」, 『국제어문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국제어문학회, 2004, 43쪽. [본문으로]
- 초기 문지는 소위 ‘문지 4김(金)’ 혹은 ‘문지 4K’라 불렸던 네 명의 비평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김현․김치수․김병익․김주연이 그 멤버인데, 이들은 대부분 1070년대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김현(71년, 서울대학교 불문과), 김치수(79년,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김주연(75년, 숙명여자대학교 독문과). 김병익만이 이들과 다른 길을 걸었는데, 그는 1975년에 창사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대표로 재직하다가 2000년에 퇴임한 이후 인하대학교 국문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문지 4K은 2006년에 마지막으로 김주연이 교직에서 은퇴함에 따라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본문으로]
- Habitus.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이다. 한 집단이 공유하고 체화하는 생활양식으로, 같은 아비투스를 공유하는 집단은 다른 아비투스를 공유하는 다른 집단과 자신들을 ‘구별짓기’하려 한다. 사회적 지위․계급․로컬 문화 등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특성을 갖는 개념이기에, 개인에 한정되어 발휘되는 ‘개성’과는 의미가 다르다. [본문으로]
- 고봉준, 「세대론의 이중전략과 감수성의 혁명」, 『오늘의 문예비평』Vol.56, 오늘의문예비평, 2005, 103쪽. [본문으로]
- 유종호, 「좋다! 좋아!」, 『나의 해방 전후』, 민음사, 2004, 110~112쪽. [본문으로]
- 김현, 「한국비평의 가능성」, 『68문학』, 1969, 152쪽. 하상일, 위의 글, 306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고봉준, 「세대론의 이중전략과 감수성의 혁명」, 『오늘의 문예비평』Vol.56, 오늘의문예비평, 2005, 104쪽. [본문으로]
- 이어령, 「문단 등단 과정과 전후 상황」, 강진호․이상갑․채호석 엮음, 『증언으로서의 문학사』, 깊은샘, 2003, 58쪽. [본문으로]
- 하상일, 위의 글, 322쪽. [본문으로]
- 하상일, 위의 글, 323쪽. [본문으로]
- “이와 같은 초기 작가․시인들의 외국 사조 직수입 경향은 모든 상황이 많이 호전되어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까지 소멸되지 않고 계속되어오고 있는 듯합니다. … 다시 말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역사 의식의 결핍을 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사적 문맥과, 자기 자신의 그 속에서의 위치 같은 것에 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김현, 「젊은 세대의 문학」,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 1993, 266~267쪽. [본문으로]
- 김현은 짧은 프랑스 유학 당시 지도교수였던 비록 미셸 망수이 교수에게 그러한 가능성을 문의하지만, 망수이 교수의 부정적인 반응을 듣고는 포기했던 듯 보인다. 그것을 김현은 ‘역사를 비선조적(非線條)으로 기술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곧, 문학사를 파편적으로 기술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현, 「인간의 고향을 찾아서」, 위의 책, 107쪽. [본문으로]
- 김현, 「글머리에」,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지성사, 1992, 19쪽. [본문으로]
- 하상일, 위의 글, 316~317쪽 주석 23번 참조. [본문으로]
- 김병익·김승옥·염무웅·이성부·임헌영·최원식, 위의 글, 20~22쪽. [본문으로]
- 염무웅ㄱ김윤태, 「1960년대와 한국문학」, 『작가연구』Vol.3, 새미, 1997, 203쪽. [본문으로]
- 고봉준, 「세대론의 이중전략과 감수성의 혁명」, 『오늘의 문예비평』Vol.56, 오늘의문예비평, 2005, 98쪽. [본문으로]
- 가령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에 대한 문단의 상반된 평가는 4․19 혁명이 양 진영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수영은 문지든 창비든 4․19 세대적 문인으로서 평가하는, 다소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다. 창비 비평가들이 김수영의 시에 반영된 리얼리즘적 문제 의식을 높이 평가한다면 문지 비평가들은 김수영의 언어 미학, 곧 한글 감수성에 혁명을 불러온 특유의 시적 언어를 높이 평가했다. [본문으로]
- 황국명, 「<문학과 지성>의 도식적 기술체계 비판」, 민병욱․백하현․황국명, 『문학과지성 비판』, 지평, 1987, 57쪽. 하상일, 위의 글, 317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김현, 「참가 문학 시비」,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256쪽. [본문으로]
- 김현, 위의 글, 257쪽. [본문으로]
- 김현, 「왜 문학은 되풀이 문제 되는가」,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 문학과지성사, 1991, 46쪽.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위의 책, 50쪽. 김현, 「문학은 무엇에 대해 고통하는가」, 위의 책, 57쪽. [본문으로]
- 김현, 「‘뜨거운 상징’을 찾으며 ―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소감」, 『자료집』, 문학과지성사, 1993, 125쪽. [본문으로]
-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위의 책, 53쪽. [본문으로]
- 하상일, 위의 글, 318쪽. [본문으로]
- 김현은 1975년 발표한 한 글에서 사르트르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솔제니친 등의 소련 작가들이 소련에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유럽 지성계에 파란이 일어났을 때, 사르트르가 ‘소련 수용소에 대한 고발은 소련의 적대 세력에 유익할 뿐이니 지금 발표해선 안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현은 이러한 사르트르의 태도를 그에 맞서 ‘인간에 대한 죄악이라면 어떤 것이든 고발해야 한다’고 했던 카뮈와 비교한다. 김현,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그 싸움 ― 사르트르, 귄터 그라스, 솔제니친, 솔레르스의 싸움」,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 문학과지성사, 1993, 109~110쪽. [본문으로]
- 김치수, 「문학적 편력」, 『문학의 목소리』, 문학과지성사, 2006, 17쪽. [본문으로]
- [본문으로]
- 하정일, 「자유주의문학론의 이념과 방법 ― 김현과 ‘문지’ 계열을 중심으로」, 『실천문학』Vol.22, 실천문학사, 1991, 17쪽. [본문으로]
- 김현, 「대중 문화의 새로운 인식」,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 문학과지성사, 1993, 325쪽. [본문으로]
- 김현, 「1986. 4. 19.」,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24쪽. [본문으로]
- 김현, 「만화도 예술인가」, 『김현 예술 기행/반고비 나그네 길에』, 문학과지성사, 1993, 70~77쪽. [본문으로]
- 김현, 「무엇이 지금 문제되고 있는가」, 『한국 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 문학과지성사, 1991, 64쪽. [본문으로]
- “그 무렵 평론가 김 현 씨가 나를 불러 어느 술집에서 자리를 함께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하였다. / "당신은 참 좋은 작가였다. 그런데 <별들의 고향>으로 대중작가가 되려 한다. 당신은 우리가 옹호하던 작가였다. 그런데 당신 때문에도 그렇지 않아도 난처한 우리의 입장이 점점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니 양자 중에 하나를 택일하여 달라." / 나는 그때 단호하게 말하였다. / "내게 신경쓰지 마시오 형님. 내가 못마땅하면 내 이름을 평론에서 빼시오. 내 이름이 부담스러우면 내 이름을 평론에서 제외시키시오."” 최인호, 『별들의 고향 상』, 샘터사, 1994. [본문으로]
- 한 예로 김현은 80년대의 경향에 대해 이렇게 썼다. “80년대의 소설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실험소설의 대두와 책읽기의 경험을 소설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이다. 그 말 자체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쓰고 있는 실험소설이란 말은 전통적인 소설을 파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소설을 지칭하고 있다.” 김현, 「젊은 문학을 만나고 싶다」, 『우리 시대의 문학/두꺼운 삶과 얇은 삶』, 문학과지성사, 1993, 301쪽. [본문으로]
- 김현, 「실험시·실험소설의 공간」, 위의 책, 310쪽. [본문으로]
- 하정일, 「자유주의문학론의 이념과 방법 ― 김현과 ‘문지’ 계열을 중심으로」, 『실천문학』Vol.22, 실천문학사, 1991, 21~22쪽. [본문으로]
- 김병익, 「문화와 민주주의」, 『들린 시대의 문학』, 문학과지성사, 1985, 18~21쪽. [본문으로]
- 하정일, 위의 글, 23쪽. [본문으로]
- 하상일, 「전후비평의 타자화와 폐쇄적 권력지향성」, 『한국문학논총』Vol.36, 한국문학회, 2004, 310쪽. [본문으로]
- 고봉준, 「세대론의 이중전략과 감수성의 혁명」, 『오늘의 문예비평』Vol.56, 오늘의문예비평, 2005, 102쪽. [본문으로]
- 김현, 「1987.4.18.」,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3, 86쪽. [본문으로]
- 한편 이러한 특별 취급은 한국 SF 팬덤 사이에서 이 소설이 듀나의 『태평양 횡단 특급』(2002)과 함께 ‘문단 주류가 인정한 유이한 SF’로 평가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비명을 찾아서』의 출간은 SF 전반에 대한 문단 전반의 인식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복거일에게만 예외적으로 베풀어진 축복(?)이라고 봐야 한다.앞서 설명했듯 자유주의문학 진영은 창비가 집중하지 않는 ‘새로운 문학’, 상상력, 문체 등의 요소에 주목해 진영의 부피를 늘리고자 했다. 『비명을 찾아서』에 대한 문지의 호의적 접근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SF 팬덤의 착각과 달리 문지는 『비명을 찾아서』를 ‘문학성을 갖춘 한국 SF’가 아니라 리얼리즘이 아닌 문법으로 한국 근대사를 조명한 작품으로서, 다시 말해 창비 계열의 리얼리즘문학에 대적하기 위한 다크호스로서 영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지 내부에서 『비명을 찾아서』의 출간을 주도한 이가 김현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거니와, 소설가 김원우 또한 『비명을 찾아서』에 대한 서평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리얼리즘,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사실주의 소설들”을 비판하면서 『비명을 찾아서』의 성과를 상찬한 바 있다. 김원우, 「사실주의 소설에 대한 한 반성」, 『외국문학』Vol.13, 열음사, 1987, 338~346쪽. [본문으로]
- 임헌영, 「현대소설과 권력의 양상―문단권력 논쟁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No.18, 한국현대소설학회, 2003, 1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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