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도서/만화 2010/02/15 18:48
낭만적 무법자들에 대하여

《원피스》는 해적 만화라고 합니다. 초장부터 해적왕의 죽음으로 시작했고, 주인공인 루피부터 하여 해적이라 자칭하는 캐릭터들이 한둘이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해적들이 '해적'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다. 루피 일당이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때마다 항해사인 나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식량이나 물을 '구입'하는 일입니다. 여의치 않을 때는 '수렵' 활동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요. 세상에 물품을 돈 주고 사는 악당도 있습니까? 겉으로만 본다면 루피 해적단은 해적단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선원들처럼 보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원피스의 주인공 해적들은 우리가 아는 해적, 즉 소인배적 약탈자로서의 면모를 거의 드러내질 않습니다. 

비단 루피 일당만이 아닙니다. 루피 일당에게 우호적인 샹크스 해적단, 흰수염 해적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민간인을 괴롭히는 장면은 거의 전무하고, 심지어는 일반 마을 사람들과 공존하는 모습마저 보이지요. 물론 원피스의 무대가 이런 낭만적인 반역자들만 가득찬 세계는 아닙니다. 버기 해적단이나 클리크 해적단같은 소인배적 악당들도 명백히 존재하지요. 그러나 루피 일당은 이런 현실적인(?) 해적단과 어울리기는커녕 오히려 반목하고, 심지어는 토벌(?)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해군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셈인 거죠.

루피 일당이 이런 악당 토벌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루피 일당 자신은 의적질(?)을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어요. 그냥 내 '동료'가 괴롭힘당하는게 보기 싫으니 때려눕힌다는 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루피 일당의 의적질이 '동료'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동료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 동료와 아픔을 공유했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함께 구원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동료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폭력과 터무니없는 억압에 신음해야 했던 민중까지 구원하게 되지요. 루피는 거의 본능 레벨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자인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루피만큼이나 희안한 캐릭터도 없습니다. 흔히 이영도 소설을 두고 캐릭터가 작가의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불평하는 독자를 꽤 많이 봅니다만 원피스의 독자들이 루피에 대해 그러한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게 신기할 정도에요. 따지고 보면 후치나 미 그라시엘, 정우의 기계새가 수행하는 정도 이상으로 작가의 뜻을 대변하는 캐릭터인데요.

루피는 살아있는 캐릭터로서의 성격을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눈물짜는 과거들을 가진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과거에 대해 알려진게 없고, 특별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없습니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으로서 으레 보이기 마련인 특징들(바보 속성, 식탐 등)을 보여줄 때를 제외하면 루피는 늘 '동료!'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내밀면서 악당을 거꾸러뜨리는 캐릭터일 뿐입니다. 부패와 폭력에 억압된 자가 보이면 달려가서 악당을 두들겨팬 뒤 구원해주는 영웅이자 대속자이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론 '정의'(justice)라는 가치에 대한 상징 외엔 아무것도 아닌 인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 때문에 루피가 고잉메리호의 처분을 두고 우솝과 반목하는 장면을 볼 때 굉장히 생경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게 루피는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 곧 정의의 구현에 대한 수단이자 상징에 불과했지요. 그런 캐릭터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편견을 가지는 걸 보니 참 낯설더군요.)

루피의 목표, 곧 해적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루피 해적단이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을 보면 추측 가능합니다. 루피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민중을 구원하면서 동료들을 얻으며 또다시 다른 민중을 구하러 가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의도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랬지요. 그리고 루피의 동료들은 루피가 구원했던 민중을 대표하는 자로서 루피와 함께 합니다. 즉, 루피가 - 세계 정부는 가져다주지 못하는 - 정의와 평화를 상징한다면 루피의 동료들은 그러한 정의에 희망을 거는 자들을 상징한다고 봐야겠지요.

따라서 루피 일당이 선장에 대해 보여주는 절대적인 신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설령 본인이 의도하진 않았다고 해도 루피는 자신들을 괴롭히던 억압을 구축하고 정의를 실현해주었습니다. 루피와 함께 여행을 하고, 루피가 해적왕이 되면 그러한 정의로운 세계가 구현되리라고 믿는 거죠. 그 캐릭터들은.

모험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루피가 대적해야 하는 악(惡)의 규모가 커지고, 루피가 구원해야 하는 사람들의 규모도 커지지다. 처음에는 시골 마을에 앉은 껄렁패들이나 두들겨패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부패한 국가 권력(쵸파 영입 에피소드)이나 국가에 대한 반역자(알라비스타 왕국 에피소드), 심지어는 세계 정부 전체에까지 확장됩니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혁명군의 활동과 궤를 같이하게 되는 거죠.

듣자하니 작년에 오다 에이이치로가 "루피에게 두 명의 동료가 더 생길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루피는 그 동료들을 얻기 위해 드럼 왕국이나 알라비스타 왕국보다는 훨씬 큰 무대에서 훨씬 많은 민중을 구원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해적왕의 길을 걷겠지요. 말하자면 해적왕이란 세계 정부를 대신하여 세계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줄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이로서 루피네가 해적, 곧 무법자로서 띄는 성격이 분명해지지요. 무법자란 본디 법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자이고, 그로서 안정된 체제를 위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부패한 권력 그 자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악당'인 셈이고요.

세계 정부가 선한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리즈 전체를 통해 상당히 자주 암시됩니다. 아론 해적단 같은 무뢰배들을 제대로 청소하지도 못했고, 와포루 국왕 같은 악당 군주도 세계 정부의 한 축을 차지하지요. '버스터 콜'의 사용이나 세계 정부 고위 간부들, 귀족들이 보여주는 행패 등은 참으로 여러가질 시사합니다. 흰수염 해적단이나 샹크스 해적단 등은 이런 부패한 구질서에 저항하는 일종의 레지스탕스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그냥 '무뢰배'에 불과한 '젊은' 해적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죠. 

원피스라는 만화가 처음부터 이랬을까요? 그건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적어도 드럼 왕국 에피소드나 알라비스타 왕국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원피스라는 만화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에피소드들을 기점으로 원피스의 주인공들이 대적해야 하는 상대들의 규모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고, 작가가 간간히 던져주던 설정이나 문제 처리 방식도 그 전에 비해 상당히 묵직해졌습니다.

그 전까지의 에피소드는 대체로 이런 식의 전개로 진행됩니다.

1. 독재 권력의 폭압에 신음하는 민중(혹은 동료) 제시
2. 루피 일당의 등장
3. (루피 일당의 동료 영입)
4. 루피의 악당 정벌
5. 무대 이동

하지만 드럼 왕국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4번과 5번 사이에 '새로운 질서 확립'이라는 순서가 들어갑니다. 루피 일당이 와포루 국왕을 쓰러뜨리자 드럼 왕국에 '새로운' 국왕이 즉위함으로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는 모습이 분명히 제시되었고, 알라비스타 왕국에서는 처음부터 '혁명군'이라는 존재들이 제시되었지요. 그 전까지의 원피스 세계에서 민중이란 그저 폭압에 신음하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어지는 하늘섬 에피소드에서도 억압자인 갓 에넬에게 저항을 하는 민중들이 제시되었고, 갓 에넬의 실각 후 다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됩니다. (물론 새로 즉위한 왕은 예전의 그 인물이지만, 루피 해적단과의 활동을 거친 뒤의 그 왕국은 예전의 왕국으로 되돌아갔다고 보기가 어렵지요)

따라서 최근의 원피스는 단순히 소년만화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소년 만화라는 틀 안에서 부패 권력과 민중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화라고 봐야지요. 『브이 포 벤데타』같은 작품보다는 덜 직접적이지만 충분히 그 기능을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묵직한 주제를 던지고 했던 어슐러 K. 르 귄 같은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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