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진짜로 연애하기까지.
여기 한 쌍의 연인이 있다. 남자는 이제 갓 스물이 된 청년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심취한 생물학도이다. 상대는 자신이 공주라고 생각하는 열여덟 살 처녀이다. 이웃 사이인 두 젊은이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를 증오하는 양 집안에서는 이들의 사랑을 반대하여 두 집 사이에 높은 담을 쌓았고, 연인은 부모의 눈을 피해 밤에만 만나 사랑을 이어간다.
이러한 구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관객들이 이 오래된 로맨스를 떠올릴 무렵 연극은 관객의 기대를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깨버린다. 그 시발점은 연인의 두 아버지이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폭로한다. 두 아버지는 서로 둘도 없는 친우였으며, 가문의 갈등은 사실 두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한 연극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연극이 필요했을까? 그 대답은 두 아버지가 폭로에 이어 부르는 노래에 나온다. '애들은 말릴수록 불타오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연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전통적인 로맨스를 완벽하게 뒤집는 반(反)로맨스가 된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이 순진한 피해자만은 아니다. 연극 자체는 두 아버지가 꾸몄지만 이 두 젊은이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들 자신이 바라왔던 연극이기 때문이다. 기실 '비운의 연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이들의 등장 장면에서부터 암시되었다. 여자주인공은 처음 등장할 때 스스로를 공주라고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들고 나온다. 여주인공 스스로도 자신이 채소가게의 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공주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너무 클 뿐이다. 세상을 모험 소설과 로맨스 소설로 배운 소녀답게도.
남자 주인공은 한 술 더 뜬다. 소녀가 관객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그는 뒤편 무대에 앉아있지만, 그의 시선은 연인을 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 대신 그의 시선을 잡는 것은 손에 잡은 책,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로맨스이다. 관객을 향한 자기소개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얼마나 낭만적인 청년이며, 사랑에 대한 열정에 차 있는가를 떠들어댄다. 처녀 또한 그랬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없다.
두 젊은이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모험 소설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이다. 이들이 세계를 문학의 무대와 연결 짓는다면 그 자신들은 문학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려 하는 게 당연하다. 즉, 이들이 바랐던 것은 연애가 아니다. 문학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로맨스를 그들 자신이 재현하길 바랐을 뿐이다. 기사도 소설의 이상적인 기사 아마디스 경을 흉내 내고자 편력 여행을 떠나는 기사 돈 키호테처럼.
따라서 이 젊은이들에게 상대가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밤중에만, 그것도 담장을 한 가운데 두고서 몰래 이루어지는 연애가 지속 가능한 것은 두 아버지의 설명대로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이 '연애'의 상대방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연기하고자 하는 두 1인극 배우가 결합일 뿐이다. 따라서 담장과 어둠은 장애물이기보다는 차라리 도움물에 가깝다. 햇빛 아래 서로가 서로를 '명확하게' 확인되는 순간 로미오도 줄리엣도 없었다는 진실 또한 폭로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젊은이의 전적인 협력(?) 하에 이 극중극은 성공을 거두고, 두 아버지는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한다. 그 다음 단계는 더 이상 불필요해진 위장극을 끝내면서도 두 '연인'의 욕망을 증폭시켜야 한다. 이에 두 아버지는 납치극과 구출극을 계획하게 된다. 거짓으로 납치시킨 줄리엣을 로미오가 구하게 한다는 시나리오가 노리는 바는 사실 명백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연극에 동원되는 연출가와 다른 두 배우들이다. 두 아버지에게 연극을 제안하고 직접 실행하는 '악당'은 극의 시작부터 무대의 안팎을 넘나들며 연극 내외의 상황에 관여하던 '작가'이다. 연극의 연출가로서 재등장한 작가는 자신과 함께 납치극을 연기할 배우 두 명을 고용하는데,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인 이들은 두 아버지를 연기했던 사람과 같은 배우들이다. 결국 이들 두 배우는 주인공 커플의 거짓 연애를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이 극대화되는 현장에 참여하게 된다.
구출극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마트가 보여주는 검술은 매우 형편없어서, 그 자체로 코미디가 될 정도이지만 그게 구출극의 결말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불안요소는 따로 있다. 납치되었던 줄리엣이 악당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구출극이 성황리에 끝난뒤 담장이 걷힌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다. 햇빛 아래서 드러난 연인의 모습은 각자가 상상했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는 물론 훨씬 못했기 때문이다. 두 젊은이의 감정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악화일로를 걷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악장의 재등장으로 인하여 파국을 맞는다. 두 아버지에게 대금을 받으러 온 악당이 가짜 납치극의 진실을 마트에게 고한 것이다. 분노한 마트는 결투를 신청하지만 자신의 현실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환상을 쫓는 어린 아이가 악당을 상대하기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연극 - 곧 세계 - 전체를 관장하는 작가이자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결투는 간단하게 악당의 승리로 끝나고, 줄리엣은 악당을 좇아 마트를 떠나고 만다.
여기서부터 연극은 반로맨스를 넘어 성장극으로 변화한다.
좌절한 마트는 일자리를 얻어 고향을 떠나고자 한다. '성장을 위한 여행'이라는, 영웅 서사시의 오랜 테마가 재현되는 셈이다. 이 때 마트는 또다른 등장인물, '요정'에게 일자리를 의뢰한다. 극중에서 가장 신비한 존재인 요정이 드디어 극의 전개에 개입하게 되는 순간이다.
요정은 극중에서 가장 신비한 존재이다. 극 시작 부분부터 무대 안팎을 누비고 다녔다는 점에서는 악당과 비슷하지만 그 비중이나 역할은 악당만큼 명확하지 않다. 기껏해야 꽃가루를 뿌리거나 춤을 추고, 악당이 두 아버지에게 납치극을 제안하며 부르는 겁탈송을 흉내낸 어설픈 노래를 부르려다가 혼나는 정도가 전부이다. 굳이 요정이 극의 전개에 기여했던 부분을 찾는다면 두 젊은이의 만남을 가로막는 담을 상징하는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는 정도다.
악당(작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요정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 유추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악당이 주인공들에게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요정은 그 주인공들의 환상을 조장할 무대를 마련하거나 악당을 모방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현실의 모방, 그것은 물론 환상이다. 따라서 마트가 요정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며 말을 거는 장면은 마트가 비로소 자신이 얽매였던 환상과 허구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접촉을 통해 밤의 요정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마트에게 악당이 고했던 '낮의 진실'과 대적할 힘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연극이다.
요정의 인도 하에 마트가 만나는 극단이 왕년에 납치극에 가담했던 바로 그 배우들 - 곧 두 아버지 역을 맡았던 배우들! - 이며 그 배우들에게서 배우는 희곡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마트에게 거짓 사랑을 불어넣고, 그것을 연기하게 했던 이들이 다시 한 번 연극을 하게 하는 셈이다. 물론 이때의 연극은 그전의 연극과는 다르다. 연극이 현실의 모사라는 점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는 법이다. 그 연기를 통해 마트는 진짜 사랑과 연출된 사랑을 구분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해낼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트의 연극은 악당에게 이끌려 도시로 향했던 루이자의 앞에서 공연된다.
마크와 헤어진 뒤 악당은 자신을 찾아온 루이자에게 마트와 비슷한 접근을 한다. 세상이 모험 소설의 무대와 같으리라 믿고 자신에게 낭만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처녀에게 책 속의 사랑이 아닌 자신만의 사랑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루이자가 이 충고를 받아들이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은 마트의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이 끝난 뒤 마트는 악당과 재회하고, 루이자 앞에서 다시 한 번 결투를 벌인다. 물론 관객은 이번 결투의 결말을 알고 있다. 지금의 마트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고,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분별할 줄 알게 된 ‘청년’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악당이 전하는 냉혹함과는 또 거리가 멀다. 결국 마트는 결투에서 승리하고, 악당이 가졌던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되찾는다. 마트는 목걸이를 루이자에게 돌려주지만 루이자는 목걸이를 목에 걸지 않는다. 더 이상 줄리엣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안다. 재회한 연인은 서로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을 고백하고, 길었던 결혼식도 막을 내린다.
자투리 평
- 이 리뷰는 1월 14일에 본 공연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거의 한달 만에 올라온 셈이지만, 개요 자체는 이미 오래 전에 써두었다.
- 이 리뷰는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중 『돈 키호테』와 『적과 흑』에 대한 분석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리뷰의 대상이 된 두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글이니 비평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읽어보는게 좋겠다.
- 리뷰는 이 뮤지컬이 마치 심각한 정극이었던 것처럼 써놨지만, 실제로는 유쾌한 러브 코미디였다. 중간 중간 나오는 '겁탈송'이나 채소밭 노래도 상당히 유쾌했었고. 하지만 내용 자체는 연인들이 보기엔 조금 아슬아슬했다고 생각한다. 마트의 첫 번째 결투 뒤에 비극으로 끝내버렸다면 완성도는 더 높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랬다간 관객이 하나도 안 들어왔겠지.
- 리뷰에서 쓴 내용이 전부 연출자의 의도와 부합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배우들이 모두 1인 2역을 맡았던 구조는 다만 극단의 인원 부족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력, 소품 등 여러 가지가 열악한 상황에서 연출할 수 있는 최대한을 뽑아낸 것은 분명하다. 상당히 정교하게 짠 극이다.
- 배우들의 연기 수준을 따진다면 악당(극중에서는 엘가로) 역을 맡았던 분의 연기가 단연 압권. 아버지/배우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도 코미디 연기를 상당히 잘 해냈다. 주인공 커플의 연기는 다소 쳐지는 편이었는데, 연기력보다는 여주인공이 극중 설정보다는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게 크지 않았나 싶다. 분명 마트 쪽이 연상인 커플인데 막상 모습은 여자 쪽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니. 오히려 엘가로와 루이자가 춤추는 장면이 더 연인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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