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올라온 기사 보러가기

지난해 11월 초 거울 편집장님에게서 거울 필진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었다. 제의를 수락했던 것도 그 무렵. 그러니까 저 서평은 스카웃(?) 제의를 받은지 장장 6개월만에 내놓은 결과인 셈이다.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기도 했다. (작품이 부족해서건 내가 부족해서건) 서평으로 보낼만한 다른 책을 도무지 찾지 못한데다 2월에서야 《타임 패트롤》시리즈를 다 읽었으니까.

허나 그 뒤로도 두 달을 더 놀 정도의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건 아니다. 기왕 이렇게 보낼 글이라면 차라리 2월 초에 보내는게 좋았으리라. 어쩌면 2권을 읽고 난 시점에서 - 서평 이벤트로 소모해버리는 대신 - 2권만을 중점으로 다룬 원고를 보내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고. 

아래는 거울에 보낸 서평에서는 빼버린 단평들이다. 사실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소식을 올렸어야 정상일 텐데, 이 단평들을 정리하다 보니 며칠 늦어버렸다.



타임 패트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타임 패트롤Time Patrol」(1955)
시리즈의 첫 작품. 같은 시리즈에서 사용되는 세계관이나 시간 여행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는 큰 인상을 주지 않지만 시리즈 전체로 보면 이런 작품이 하나쯤은 꼭 필요하다. 즉,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재미는 별로 없다. 다만 셜로키언이라면 맨스 에버라드와 그의 동료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으로 갔다가 만난 탐정을 보고 실소할 수밖에 없으리라. 정확히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니라 읽을 때도 설마 했지만, 역시나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쥬 격으로 등장시켰던 듯 하다. 작가가 셜록 홈즈 팬클럽 회원이었다 하니, 거의 확신범.

왕과 나Brave to be a King」(1959)
키루스 대왕 시절의 페르시아 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 2권에 수록된 「오딘의 비애」만큼이나 타임 패러독스를 크게 활용한 작품이다. 타임 패트롤 소속의 역사학자가 고대 페르시아로 넘어갔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키루스 대왕이 되어버렸더라... 하는 이야기. 사실 썩 편한 심정으로 읽었던 작품은 아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루스 대왕 시대에서 벗어나 원래 아내의 품으로 돌아간 뒤에도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된 섹스 파트너를 생각하는 지저분한 사내의 비극에 공감하기란 영... 차라리 반쯤악역으로 등장하는 페르시아 귀족의 처지가 더 애처로웠다. 글쎄. 문제의 '키루스 대왕'이 그의 시간대에서는 14년간 고대 페르시아에 머물며 그 삶에 적응해야 했다는 걸 감안해야 할까?

지브롤터 폭포에서Gibraltar Falls」(1975)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연애물. 단편의 주인공인 노무라의 심리 묘사가 제법 근사하긴 하지만... 다소 중량감 떨어지는 소품에 가깝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맨스 에버라드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딘의 비애」를 위한 실험작 쯤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 「사악한 게임」에 이어 15년 만에 나온 단편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당시 이 단편을 접한 팬들이 얼마나 맥빠져 했을지 짐작할만 하다. 그 점만 아니라면 꽤 빼어난 단편인데.

사악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1960)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키기 위해 타임 패트롤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던 중국인들을 저지한다는 내용의 단편이다. 요컨대 역사의 개변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타임 패트롤이 역사의 개변을 직접 만들어낸다는 글이기도 하다. 거울에 보낸 서평에서도 비슷하게 언급하긴 했지만, 2,3세계권 국가의 독자들이라면 영 탐탁찮게 읽었을만한 작품. 주인공인 맨스 에버라드는 중국인들의 문명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전달되어서 유럽인이 개입되지 않는 강대국이 생겨나기라도 하면 어떻하겠냐며 나바호 인디언 동료를 설득하는데, 글쎄다. 읽던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심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현대 미국인 독자 입장에서야 그게 대재앙일지 몰라도 우리네야 그런 심정에 공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맨스 에버라드를 비롯한 타임 패트롤의 입장은 그렇게 함으로서 훗날 아메리카 지역에서 일어나게 되는 온갖 학살을 지원한다는 말도 되고. 직접적인 참여는 아니지만 방관과는 또 다른, 간접적 지지가 아닌가. 작가가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보수주의자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케 한 단편이다.

델렌다 에스트Delenda Est」(1955)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스피키오가 한니발을 물리치지 못했다면?'이라는 의문에 대한 단편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그저 가설을 설명하는 선에서 끝내는게 일반적이지만 이 단편은 정말 그렇게 역사가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타임 패트롤 대원들이 우리가 아는 역사로 되돌려놓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세기에도 켈트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세계란 흥미로웠지만, 작품의 길이에 비하면 밀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 싶다. 「사악한 게임」과 비교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덜 불공정할지언정 재미 자체는 영 그렇더라는 이야기다.

바다의 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오딘의 비애The Sorrow of Odin the Goth」(1983)
북유럽 신화의 오딘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분명 자신이 쓰려 하는 장르와 활용하려 하는 소재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선행될 때만이 나올 수 있는 걸작이다. 뜻밖에도 변변찮은 상 하나 받지 못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 《타임 패트롤》 시리즈 안에서 본다면 「왕과 나」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거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중편에 대해서는 예전에 거울에서 이야기한 바 있으니 이하 생략. 그 글을 쓸 때와는 현재 내 사정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만큼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링크)

바다의 별Star of the Sea」(1991)
표제작이긴 하나, 「오딘의 비애」를 먼저 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성에 안찰 수밖에 없겠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딘의 비애」의 여성용 버전이라는 느낌이 강한지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타임패트롤 시리즈 3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상세보기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Ivory, and Apes, and Peacocks」(1985)
솔로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정작 솔로몬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델렌다 에스트」 시절만 해도 어떻게든 역사적 인물(즉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을 등장시키더니 이 때쯤 되면 역사적 위인을 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도 떨쳐낸게 아닐지. 물론 솔로몬 시대라는게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민감한 소재라는 것도 감안해야겠고. 당대의 예루살렘과 티레 시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부분은 재미있게 읽었고, 맨스 에버라드가 만난 소년도 눈에 듸는 캐릭터였다만 사실 시간여행물로서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B+ 정도의 느낌?

몸값의 해The Year of the Ransom」(1988)
스페인인 피사로가 잉카 왕을 잡고 인질극을 벌일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다른 단편들에서도 간간히 역사 개변을 시도하며 악역으로 출연했던 '고양주의자'들이 재출연하지만 스페인인 기사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통에 이 단편에서의 비중은 낮다. 잘쳐줘봐야 중간보스급이고 실상은 '쟈코' 역일 뿐. 만일 타임 패트롤 시리즈가 영화화된다면 「몸값의 해」가 가장 먼저 손꼽힐 테고, 포스터에는 맨스 에버라드와 이 기사의 사진이 가장 크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도서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 인생의 이야기』  (1) 2009/06/02
『타임 패트롤』  (2) 2009/04/30
『파우스트』  (0) 2009/03/25
『퍼언 연대기』  (0) 2009/03/12
Posted by 최진석

트랙백 주소 : http://abraxas.pe.kr/trackback/207 관련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