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주의에 대하여
허나 그 역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일리아스』를 처음 읽는 독자가 그 전에 『파우스트』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물론 『파우스트』를 읽을 때는 좀 어려워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감상을 토대로 『일리아스』는 좀 남다르게 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 경우 '배경 지식'은 『일리아스』가 아닌 『파우스트』다.
요컨대 배경 지식'과 '독서 대상'의 관계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지어 말할 것이 못된다. 그들은 늘 상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의 말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물론 일정한 '테크트리'를 밟는게 여러모로 편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나 그것은 대개 공부 차원의 일이다. 문학 감상에서까지 그런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독서가 기술이 아닌 하나의 취미이며 오락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작품에 대한 경험들도 독자들마다 다르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왜. 그렇잖으면 『변신』을 읽기 전에 곤충도감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할 셈인가.
사실 『파우스트』가 읽기에 그렇게 빡빡한 작품도 아니다. 그리스신화에 대한 교양이 필요하다지만 고유명사들이나 구분할 줄 안다면 족하고 모른다 해도 주석을 통해 짚고 넘어가거나 정 모르겠다면 그냥 넘어가버려도 무방하다. 설령 독자가 정말 일자 무식이라 해도 괴테의 화려한 문장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고전이란 원래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P.S.
가만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도갤에서도 레벨이니 순서니 하는 걸 따지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온라인 게이머들을 생각나게 한다. 스킬 테크트리를 외우고, 커뮤니티에 어떤 스킬이 가장 좋은 스킬인지 묻는... 읽은 책이나 사들인 책의 숫자는 경험치라도 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