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그에서 번역자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썼던 글입니다. 커그에 올렸던 버전과는 달리 이윤기 씨에 대한 부분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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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범우사에서 주로 책을 내셨던 영문학자죠. 학계에서는 『서양문학이입사 연구』의 저자로 유명하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헤밍웨이나 마크 트웨인의 번역자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죠. 정작 저는 리처드 버튼 판 『아라비안 나이트』의 번역자로 기억합니다만.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한쪽 눈이 멀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면서도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여하간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번역자라 할 만한 분이지만 현재는 고인입니다. 2007년에 돌아가셨지요.

김석산 
한국 영문학자 중에서는 고대 영문학의 최고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신 관계로 한국에는 이 양반의 책이 얼마 없더군요. 탐구당에서 나온 『베오울프』 번역본이 이 분의 작품입니다. 무려 영한대역본이죠. (그것도 고대 영어...)

김석희
가끔은 이세욱 씨와 헷갈리곤 하는 분... 『로마인 이야기』가 대박을 치기도 해서 지명도만 따진다면 아마 최고 수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실력 있는 번역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는 번역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윤문에 가까운 짓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원저자의 허락은 받았다지만 그런 번역이 권장될만한 일인가 싶긴 합니다. 또... 얼마 전에 봤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영 신통찮게 읽은 것도 김석희 씨의 번역을 미심쩍게 바라보게 하는 이유가 되었고요. 

김운찬 
움베르토 에코의 제자.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김정란 
2001년 부근에는 이명원이라는 평론가와 함께 '김현 논쟁'을 벌인 적도 있는 분이죠. 원래는 본업인 시 창작 쪽에 힘을 쏟았는데 최근에는 신화 - 특히 켈트 - 쪽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더군요. 완소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나온 『아발론 연대기』가 이 분의 번역입니다. 문제의 논쟁 때 문학과지성이나 서울대 불문과 파벌에 밉보인 탓에 그 쪽에선 활약하기 어려워진 걸까 싶기도 합니다. 

김창석
작가들에 대한 가십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꺼냈었죠. 출판사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번역 원고가 모조리 타버리는 횡액을 당하면서도 다시 번역을 해서 개정판을 냈다는 집념어린 번역자... 하필 그 작품은 분량도 많은데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는데 말이죠. 

성귀수 
개인적으로는 번역자 지망생들이 롤 모델로 삼을만한 한국인 번역자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이 양반이 보여준 '프로 정신'이라는게 워낙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원래는 추리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책은 전집이 나와야 한다'라는 생각에 아르센 뤼팽 전집을 기획했고, '추리 문학 팬덤에게 까이는 게 두려워' 아르센 뤼팽에 대한 공부를 한 결과 그 자신이 최고 수준의 팬덤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 본토에서 나온 전집에마저 누락되었던 에피소드마저 발굴해낼 정도의 집념과 열정을 보였던 번역자... 거기에 기본적인 실력도 물론 있었고요. 이 정도로 성실한 번역자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안정효 
이윤기와 함께 이전 세대를 대표하는 번역자죠. 지금은 번역을 그만두고 창작에만 전념하시는 걸로 압니다. 딴에는 당연한 일이겠죠. 안정효에게 있어 번역이란 애초부터 창작 수업의 일환이었습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창작을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영어로 소설을 썼다고 하죠. (나중에 이야기되겠습니다만 천병희 선생에게도 이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결국 『하얀 전쟁』으로 데뷔하면서 창작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비롯한 여러 소설들은 해외에 번역되기도 했고... 김석희 씨도 그렇고 이윤기 씨도 그렇고 번역자들은 대개 창작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더랍니다만 그걸 안정효 씨만큼 균형을 이뤄낸 사례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이세욱
데뷔 번역작이 열린책들 판 『드라큘라』였죠.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작품의 완역본은 저 판본 뿐입니다. 번역이 쓸만하다는 건지 아니면 상업성이 없어서 다른 출판사들은 별로 뛰어들고 싶어하질 않는다는 건지... 그 뒤로도 열린책들에서 계속 활동하신걸 보면 판매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물론 그가 번역한 『개미』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겠죠.

이세욱 씨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친밀해진 차경아 엔데 커플(?)은 번역자가 작가의 창작 세계에 깊이 관여하여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우리가 『끝없는 이야기』라는 걸작을 만나게 된 것엔 그 번역자 차경아 씨에게도 공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세욱 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이야기까진 듣지 못했지요.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내는 책들이 가면 갈수록 실망스럽더라는 평가들을 참고한다면 뭐...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이윤기 
이 사람처럼 독자들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번역자도 있을까 싶습니다.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누리지만 먹물 좀 먹었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혹독하게 까이는 사람이니까요. 『장미의 이름』 초판의 오역을 무려 삼백 여 곳이나 지적했던 강유원 씨나 『문화의 오역』이라는 책에서 거의 이윤기 씨를 주 타겟으로 삼아 무참하게 썰어댔던 이재호 명예교수 등... 이전 세대에 명성을 누리던 번역자들이 최근의 번역 논쟁을 통해 평가절하되는 경우는 꽤 많은 편이지만 이윤기 씨처럼 극적인 경우가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윤기 씨의 진가라 한다면 번역보다는 외려 창작이나 편집에서 더 빛을 발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이윤기가 쓴 『뮈토스』만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변변찮은 책이 없던 시절에 출간된 귀중한 책이거든요.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을 지언정 엄청나게 팔린 덕분에 국민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교양 수준을 높여준 게 사실이고... 그 점에서 본다면 이윤기 씨가 번역 쪽에서 욕을 들어먹었던게 안타깝기도 합니다. 좀 더 일찍 전문 저술가로 나섰다면 이윤기 씨의 평가도 훨씬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정영목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유명한 분이죠. 소위 '팔리는' 책의 번역은 정말 많이 했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서도 이 분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이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르문학 번역에도 여기저기 손대기도 했고요. 홍인기 씨와 함께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을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분의 SF 번역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특히 『낙원의 샘』같은 경우는 기존에 정성호 씨의 번역으로 나왔던 책임에도 그에 못지 않은 오역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SF 팬덤의 장탄식을 자아냈다 하고... 번역 관련 상을 여러번 수상하기도 했던 최용준 씨도 『미메시스』에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무자비한 혹평을 가했었습니다. 정영목 씨에게 동정이 가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융의 『황금 당나귀』(The Golden Ass)를 번역하면서 제목의 'Ass'를 엉덩이로 옮기는 실수를 했는데, 이를 절친했던 대학 후배였던 김소진 씨가 소설에까지 써먹었다고 하죠. 

정태원 
추리팬덤계에서는 꽤 명성이 높은 번역자 정태원씨... 번역에 굉장한 정성을 들이는 분이죠. 그 본인이 굉장한 추리문학 팬덤인데다가 하필 셜록 홈즈 전집을 번역해서, 아르센 뤼팽 전집을 냈던 성귀수 씨와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번역자입니다. (지금도 하우미스테리 등의 추리팬덤 사이트에서 이 분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90년대 초반에 이미 셜록 홈즈 전집의 번역을 다 끝내놨지만 당시로선 추리문학의 흥행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서 결국 거진 10년이 지나 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이 대박을 친 후에야 겨우 책을 낼 수 있었던 안습의 역사로도 유명하고... 

차경아
차경아 씨의 에피소드는 제가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다녔던 지라 이미 접해본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사실 작가들에 대한 가십 거리를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기도 했죠. 제가 이 번역자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건 이 번역자와 미하엘 엔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모델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쓰기는 좀 그렇고, 예전에 커그에 올린 다른 글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오겠습니다.

1977년, 한국에서 차경아 씨의 번역으로 첫 소개된 『모모』는 그야말로 밀리언셀러라 할만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는 이후 독일에도 알려져 미하엘 엔데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고, 그 이후로도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후일 미하엘 엔데는 차경아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 『끝없는 이야기』의 경우는 아예 구상 단계부터 차경아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천병희 
이 분은 서울대 문리대 1학년 때부터 그리스문학에 관심을 둬서 여름방학 내내 그리스어 사전을 가지고 호메로스 작품을 읽으려 했다 합니다. 호메로스 사전이 나와있는줄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느라 고생 좀 많이 하셨다고 하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그리스·라틴 문학 계통의 최고 권위자라 할만한 양반입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천병희 씨 말고도 희랍어 원전으로 작업하는 번역자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추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대 그리스·라틴 문학의 번역은 온전히 천병희 선생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신세였죠. 지금도 이 분을 대신할 번역자는 없습니다. 

허창운
천병희 선생이 고대·그리스 문학에서 독보적이라면 허창운 서울대 교수는 고대 독문학에서 말 그대로 독보적으로 활약하는 분입니다. 천병희 선생의 경우처럼 후속 주자들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다 천병희 선생처럼 번역에만 전념하는 분도 아니라서 어깨가 많이 무겁죠. 아무튼 고대 독일어를 이 분처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역자는 한국에 없다고 합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파르치팔』 등을 이 분이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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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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