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8일 2시 58분, 판갤에 올렸던 감상문(http://gall.dcinside.com/list.php?id=fantasy&no=937410)을 다듬은 글이다. 한번 썼던 글을 다시 손봐 올리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다만 별 도리가 없었다. 애당초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취중에 휘갈긴 잡문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서평을 들려주고 싶었던 어느 누군가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 이하 『양말 줍는 소년』은 『양줍소』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은 『외계인』으로 표기한다.

내용 누설 없는 잡설 - 문근영 대통령에서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김이환은 내게도 낯설지는 않은 작가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004년 말. '거울'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았을 때다. 메인 화면에 실린 기사 제목 중 가장 눈에 띄던 게 그의 단편 「문근영 대통령」이었다. 문근영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은 글은 재밌었다. 심지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당시 내가 그런 류의 문화를 처음 접했던 것도 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내게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김이환의 문장이었다. 담담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문장. 나는 그의 문장 자체에 매료되었던 거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지만.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콧대가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다는 상황 자체가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은 좀 사정이 나았지만 소설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정말 최악이었다. 해서 딴에 보면 내가 거울에서 「문근영 대통령」을 읽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만했다. 아쉽게도 다른 글들에는 그런 기적(?)이 미치지 못했던 것 뿐이고.

그래서 그의 글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출간작인 『양말 줍는 소년』(링크)을 통해서였다. 근 3,4년만의 재회. 다 읽고 나서야 작가에게 좀 미안해졌다. 이런 작품을 출간된지 4개월이나 늦게 샀단 말인가. (이렇게 귀여운 연인들을 보는 걸 4개월이나 늦추다니!) 해서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바로바로 사보마 하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 나왔다.

『양말 줍는 소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양줍소』보다 더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유쾌함과 순진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주는 캐릭터는 단 한 명 뿐이다. 축복받았다 할만한 인물은 딱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냥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는 유쾌함은 어떤 의미에선 장식이다. 위장이고, 허식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받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글을 구연 동화 보듯 순수한 마음으로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전제하자. 내 삶이, 『외계인』의 삶만큼 팍팍하진 않았다. 공감할 영역이 없었냐하면 불행히도 그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먼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거의 극복된 일들이다. 즐겁지는 않은 경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헤묵은 상처와 재회하는 게 즐거운 경험일리는 없다. 물론 이 소설은 남의 상처나 헤집어대며 느끼는 SM적 희열(?)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인물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됨과 몰이해들을 감싸주려 하는게 이 소설의 미덕이다. 작가가 적어도 「문근영 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추구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게 잘 표현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이번 소설에서는 그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 전작인 『양줍소』에서도 결말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외계인』에 와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 듯 하다. 급작스런 결말, 그 와중에도 가엾었던 북극곰. 의아할 정도로 화사한 해피엔딩 속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거북함은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분명 읽을 때는 내 감정도 순조로웠는데. 어찌하여 결말에 와서 이리 헝클어지는 걸까.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허나 지금의 감상만 놓고 본다면 『외계인』에 대한 내 태도는 좀 어정쩡한 편이다. 


P. S.

그래서 이걸 당신에게 추천해도 좋을지는 좀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평가로 어슬렁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작가 홈페이지에서 다른 작품들을 읽었기도 해서, 내가 읽은 김이환 소설은 총 5편이다. 「문근영 대통령」, 「로보트」,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내 개인적인 순위를 매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1위 『양말 줍는 소년』
 2위 「천재 소설가의 가난한 저녁 식사」
 3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4위 「로보트」
 5위 「문근영 대통령」

이 정도로.

※ 이 아래 가려진 내용에는 『외계인』에 사용된 요소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내용을 미리 알면 재미없어지는 질 낮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라는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은 이쯤에서 인터넷 창의 X 버튼을 누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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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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