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고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이 책을 산 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빠순이들아. 나는 이제 당신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당신들도 '오빠'들의 음악이 가장 좋다고 믿진 않았겠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겠는가?
그의 전작들에 대한 경험으로 신작 역시 <자전거 여행>에 나왔던 소재들을 기용할 거라는 짐작은 했었다만 이런 식으로 '재탕'해먹을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자전거 여행>에서 다뤘던 이순신으로 <칼의 노래>를 썼고 우륵으로는 <현의 노래>를 쓰긴 했지만 그 어느 작품에서도 <자전거 여행>에서의 언어를 그대로 박아넣는 추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개>에서는 그런 악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개>에서 주인집 소녀로 하여금 산골의 분교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하고 주인집 할머니로 하여금 댐 건설로 수몰되어 가는 밭에서 악을 쓰게 하는데 이는 모두 그가 <자전거 여행>에서 취재했던 내용들이다.
그러다 보니 <개>는 그가 역대로 발표한 작품 중 가장 희한한 글이 되어버렸다. 개이기에 어느 누구보다 개처럼 보여야 할 주인공은 어느 누구보다 김훈처럼 보인다. 그나마 개가 커서부터는 아예 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건 그냥 김훈이다. 김훈이 개처럼 분장하고는 언어를 팔아먹고 있을 뿐이다.
대중적 인기가 작가 하나를 망치기는 참 쉬운 모양이다. <칼의 노래>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이후 그는 점점 더 쉽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글들만을 쓰고 있다. 사실 <칼의 노래> 자체도 이렇게 인기를 끌만한 글은 아니었다. 수려한 글이긴 했지만 국민 전체가 들끓어야 할 만큼 대중적인 글은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대통령의 추천사와 함께 <칼의 노래>는 대중의 필독서가 되어버렸고 이후 <불멸의 이순신>과 함께 몰려온 이순신 열풍은 김훈을 '국민 작가'로 만들어버렸다. 국민 작가, 그것도 돈 맛을 알아버린 매문가(賣文家)가 어떤 글을 써야 하겠는가.
답은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다.
김훈 단상(클릭)
DC에서 김훈에 대한 게시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현의 노래>가 <칼의 노래>의 아류작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지요.
사실 뭐 그렇긴 하지요. 비록 방송과 대통령의 말에 힘입은 것이었다지만 (그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 하여 잘 팔리기도
했었지요. 지금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칼의 노래>가 근래 나온 소설 치곤 보기 드물게 성공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김훈이나 출판사나 그걸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겠지요. 아마 출판사 쪽이 그런 걸 더 원했을 것이고요. (실제로 원래 김훈이
붙이고자 했던 제목은 그게 아니었는데 출판사 측이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뭐, <현의 노래>는 그 제목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리 아류작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시점으로 보나 문체로 보나 <칼의 노래>와는 다른 시도를 해보려 했던
흔적이 엿보이기도 했으니까요. 비록 그 성과야 <칼의 노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긴 했습니다만...
아류작이라면 차라리
<개>나 <자전거여행2: 경기도편>같은 책을 드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자전거여행2:경기도편> 같은 책은 출판사 측에서 전편의 인기를 업어 책장사를 하려 했던게 너무 역력히 드러나더군요. 경기도편 어쩌고
하는 부제를 붙여서 무슨 관광서적 처럼 보이게 만든 점이나 지도를 첨부한 점이나...
글의 수준도 <자전거 여행>을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더군요. 물론 원래 김훈이 글을 잘 쓰기도 하는 양반이라 그렇게까지 엉망인 것은 아니었지만, <자전거 여행>의
격조 높은 글들을 보며 인문학에 대한 꿈을 키우곤 했던 추억이 있는 저로서는 <자전거 여행2>의 글을 보면서 딱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조광조와 퇴계의 '진짜 양반'으로서의 풍모나, 의상과 원효의 불교적 경지에 대해 그리는 그의 필치는 참으로 멋진 것이었는데, 그
'후속작'에서는 글재주나 겨우 부리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혹시 <자전거 여행3>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몇해가 지난 지금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출판사가 썩 재미를 보진 못했던 모양입니다. 김훈이 쓰기를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어느
쪽이 되었건 저로서는 다행인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망가지는 것을 더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지요.
소설
<개>에서도 실망은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가 <자전거 여행>에서 언급된 이들에 대해 그릴 거라는 예측은
했었습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나 <현의 노래>의 우륵 모두 <자전거 여행>에서 비중있게 이야기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었으니까요. 특히 그가 조광조나 퇴계 같은 선생님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면 얼마나 멋진 글이 될까 많은 기대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최인호의 <유림>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건데...
그리고 정말 <자전거 여행>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가지고 소설을 쓰긴 하더군요. <자전거 여행>을 봤던 분들이라면 혹시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김용택이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있던 6학년 초희,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어가는 마을에서 홀로 남아 밭을 일구는 할머니의 이야기... <자전거
여행>에서 이야기되던 그 사람들의 일화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소설 <개>의 곳곳에서 이야기되고 있었지요.
모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배신당한 기분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제가 평소 김훈을 높이 샀던 것은 물론 그가 미문을 구사한다는 까닭도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필치로 일상의 다른 면모를 곧잘 잡아내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밥먹고 잠자고 노는 일상마저도 각별하고도 소중한 것으로 만드는 그가 그런
식으로 '짜깁기로 떼운' 글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해서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의 격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글을 쓴 적이 있으니 확인하실 수도 있을
거구요) 그 때가 저로서는 책에 쓴 돈을 아까워하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지요. 다른 이도 아니고, 가장 좋아하던 작가 중 한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얼마나 저를 슬프게 하던지요.
그 뒤로 그는 여러 문학 잡지에 몇 편의 짧은 소설들을 기고하곤
했습니다만 굳이 찾아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또 실망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